186화 모토로라보다 가볍다니!
“모토로라보다 뛰어난 휴대폰을 우리가 만든다고? 그게 가능할까?”
“일성의 인재님들이라잖아. 벌써 수백억이 투자되었다는데, 그 돈 가지고 못 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겠어?”
“두고 보면 알겠지. 그런데, 회장님께서 과연 휴대폰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계실까?”
“그건 또 무슨 이야기야?”
“쌍호 정유를 인수하셨으니, 올해는 정유 사업에 집중하시지 않겠어?”
“대양 해운도 인수하셨잖아. 해운 업계가 올해 들어 급격하게 사정이 좋아지고 있으니, 해운 사업에 집중하시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두 개나 인수했네. 겨우 2백억을 투자한 휴대폰 사업부와는 비교가 안 되겠는데?”
“그래도 회장님께서는 휴대폰 사업부를 더 중요하게 여기실걸? 전에도 휴대폰이 미래라고 선언하셨잖아.”
“뭐가 됐건, 휴대폰 사업부에서 어떤 것을 개발하지, 기대되는군.”
“망하길 기대하는 건 아니고?”
“하하, 그래도 같은 혜성인데 그럴 리가 있겠어! 어디까지나 나는 휴대폰 사업부가 잘 되기를 기대하는 거라고. 하하하!”
휴대폰 사업부는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었다.
단순히 한성이 보내는 기대에서 오는 압박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다른 부서의 직원들이 보내는 질투와 시기가 더 큰 압박이었다.
혜성 제일의 인재들!
어디서 그런 소문이 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휴대폰 사업부는 본인들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혜성에서 제일가는 인재로 취급받고 있었다.
“요즘은 구내식당 가기도 무서워 죽겠습니다.”
“왜?”
“괜히 눈치가 보여서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입니다.”
혜성 그룹의 직원들은 하나같이 대단한 자부심을 가졌다.
그렇다 보니, 그룹 최고의 인재라고 주목받는 휴대폰 사업부 직원들이 눈엣가시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HS-88이 실패하기라도 하면 어떡합니까?”
“뭘 어떻게 해. 우리 다 잘리는 거지.”
상황이 상황인지라 휴대폰 사업부 직원들은 큰 부담금을 느꼈다.
안 그래도 모토로라 이상의 휴대폰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상당하였다.
그런데 다른 부서와 계열사에서 마치 망하길 기원하는 것처럼 안 좋은 소리를 하니,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HS-88이 실패하면, 후폭풍이 장난 아니겠어.’
직원들만 부담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휴대폰 사업부를 총괄하는 김동윤 역시도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누군가는 그를 향해 이런 말을 하고는 하였다.
“일성에서 온 직원들이야 파리 목숨이겠지만, 김동윤 상무는 다르겠지?”
“뭘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그러냐. 회장님의 하나뿐인 동생의 남편인데, 겨우 이런 일에 실패했다고 문제 생길 일이 있겠어?”
“맞아. 어쩌면 회장님은 휴대폰 사업부가 실패할 것을 알고도 김동윤 상무에게 경험을 쌓을 기회를 주려고 휴대폰 사업부라는 자리를 내준 것일 수도 있어.”
사람들은 김동윤이 설령 휴대폰 개발에 실패한다 해도 큰 타격을 받지 않으리라고 여겼다.
그가 이지현의 남편이란 이유로 목숨이 여러 개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동윤의 생각은 달랐다.
한성은 절대 인정에 휘둘릴 사람이 아니었다.
만약 김동윤의 능력이 예상했던 것보다 형편이 없다?
바로 해고하지는 않겠지만, 다시는 그에게 중임을 맡기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임원직에서 물러나야 할 수도 있었고 말이다.
‘애초에 HS-88이 실패한다면, 내가 자진해서 물러나는 게 맞아. 형님의 기대에 부응하지도 못했으면서 계속 남아 있는 것은 추잡하기 그지없는 일이니 말이야.’
안 그래도 김동윤은 한성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성은 다른 재벌 총수들과 달리, 오직 능력만 보고 임원을 뽑았었다.
한성의 외사촌인 김종태 부대표 역시도 혜성 모직에서부터 출중한 능력을 보여주어서 부대표에 오를 때도, 누구 하나 이견을 달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런데 김동윤은 능력 한 번 제대로 보여준 적도 없으면서 휴대폰 사업부라는 중책을 맡았다.
그러자 한성을 두고 이런 이야기까지 나왔다.
“역시 회장님도 혈연 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 보네.”
“재벌이 괜히 재벌이겠어?”
“이러다가 이태한 도련님이 장성하시면 다른 기업처럼 20대 때부터 임원이 되고 그러려나?”
“아마 그럴걸. 김동윤 상무도 따지고 보면 20대 때부터 임원이 되었잖아.”
“부럽다. 부러워. 여자 잘 사귀어서 꽃길만 걷다니 말이야.”
쉬쉬하고 있지만, 뒤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김동윤이라고 모를 수 없었다.
김동윤이 한성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자신을 위해서 예외란 것을 두었으니 말이다.
‘형님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하여 김동윤은 거의 목숨을 걸다시피 하고서 휴대폰 개발에 착수하였다.
귀가하지 않고 회사에 숙식하면서 오직 휴대폰 개발에만 몰두하였던 것이다.
지현이에겐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성의 기대를 배신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드디어!”
이 같은 노력의 결과, 마침내 HS-88이 만들어졌다.
모토로라에 버금가는, 아니 그 이상의 휴대폰이 만들어진 것이다.
* * *
은성 그룹의 구자성 회장도 나를 직접 찾아와 전경련 회장직을 권하였다.
지금 시점에 정부와 충돌하면 가장 손해를 볼 그룹이 은성 그룹이다 보니, 급하게 움직인 거 같았다.
물론 나는 권오중 회장에게 했던 말을 똑같이 반복하였다.
고민해 보겠다며, 결정을 내리면 그때 이야기했다는 식으로 시간을 번 것이다.
“혹시 기회가 생기면 청와대에 잘 이야기해주십시오. 우리 전경련은 절대 정부와 다툴 생각이 없다고 말입니다.”
김영산 대통령도 비슷한 부탁을 나에게 하더니, 참 상황이 우습게 됐다.
서로 싸울 생각은 없으면서 괜히 호들갑을 떨며 싸울 것을 걱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뭐, 정부의 재벌 개혁 의지를 생각하면 구자성 회장이 걱정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나는 그러겠노라고 답변하고는 더 신경 쓰지 않았다.
나 역시 재벌이다 보니, 정부의 개혁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조금 불안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노사의 조언을 듣고는 조금 안심한 상태였다.
왜냐하면, 노사가 이야기하기를, 정부의 개혁 방향은 대기업의 경영 투명성과 재무구조 개선 즉, 부채 비율을 줄이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혜성 그룹은 부채 비율이 낮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어. 경영 투명성이야 말할 것도 없고.’
오히려 혜성 그룹에는 유리한 개혁이었다.
부채를 늘려서 자산 규모를 키우던 경쟁 기업들이 이제는 그러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었으니까.
경영 투명성 역시도 나처럼 비자금이 천문학적으로 있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재벌들이 분식회계를 하고 경영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대부분이 비자금을 만들려는 목적에 있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간에, 전경련 회장직을 유보한 나는 혜성 그룹의 사업에 집중하였다.
급격하게 살아나고 있는 해운 시장도 그렇고 반도체나 자동차도 그렇고 신경 쓸 것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7월이 되자, 휴대폰 사업부에서 엄청난 소식이 전해졌다.
새로 개발하고 있는 HS-88가 마침내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이었다.
‘이렇게 빨리 개발에 성공하다니.’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최악의 경우, 올해 안에 개발을 끝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휴대폰을 처음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보니,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불과 반년도 안 돼서 개발에 성공했다니.
실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 기뻐하기엔 이르다.’
개발엔 성공했지만, 생산 단가가 세서 양산이 어렵다던가, 아니면 성능이나 외향이 별로여서 출시를 못 할 수도 있었다.
보통 대부분의 제품이 여러 번의 실패를 거친다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 과하게 기대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김동윤 상무를 불러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휴대폰도 가지고 오라고 전해주세요.”
나는 지체하지 않고 김동윤을 집무실로 불렀다.
김동윤이 만들었다는 휴대폰이 궁금해서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 * *
“이것이 HS-88이라고?”
나는 김동윤이 건네준 휴대폰을 자세하게 살폈다.
일단 무게감이 모토로라의 휴대폰과는 차원이 달랐다.
물론 더 무겁다는 뜻이 아니었다.
훨씬까지는 아니어도 모토로라보다는 가볍게 느껴졌다.
“무게가 어떻게 되지?”
“695g으로, 모토로라의 다이나택보다 무려 100g이 가볍습니다!”
“100g이나 가볍다니.”
이미 모토로라의 다이나택 출시가 예견된 상황이었다.
업계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다이나택 출시에 관심을 가지며 기다리는 상황.
이 같은 상황에서 HS-88의 출시는 엄청난 주목을 받을 게 분명하였다.
무려 국내산이었으니 말이다.
‘100g이나 가볍다면, 사람들의 반응이 엄청날 수밖에 없겠군.’
벌써 어떻게 광고해야 할지, 문구까지 세세하게 떠오르는 거 같았다.
일단 모토로라와 비교하는 문구를 적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다.
“다른 성능은 어때? 충전 시간과 사용 시간이 어느 정도지?”
“솔직하게 말하면 성능은 아직 기대에 못 미칩니다. 10시간 충전하면 대략 1시간 정도를 연속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무게를 이렇게 줄였는데 성능까지 뛰어나리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었다.
“차기작은 사용 시간을 더 늘려야겠군.”
“예, 적어도 두 시간 이상으로 늘릴 수 있게끔 해보겠습니다.”
“두 시간이라. 그 정도면 나쁘진 않겠어.”
1시간 연속 통화도 나쁘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충전 시간이 길다는 게 문제였지만, 휴대폰이란 신문물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은 1시간도 충분히 만족할 거 같았다.
물론 가격이 적당하다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하지만.
“양산은 언제쯤 될 거 같아? 그리고 생산 단가도 알아봤나?”
“양산 준비는 올림픽이 끝나기 전까지는 끝내놓도록 하겠습니다.”
“그 정도면 시기적으로는 괜찮은데? 모토로라보단 늦겠지만, 거의 동일한 시기에 출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겠어.”
“다만 생산량은 그리 많지 않을 거 같습니다. 하루에 최대 백 대 정도가 한계입니다.”
“아직은 어쩔 수 없지. 어차피 국내에서만 판매한다면 그 정도로도 충분하기는 할 거야.”
“생산 단가는 150만 원 정도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나는 침음을 흘렸다.
150만 원이라면 비싸도 너무 비싼 가격이었다.
“설치비까지 고려한다면 소비자가 부담하는 것은 아무리 적어도 200만 원은 되겠어.”
순익을 생각하지 않고 팔아도 200만 원이었다.
물론 양산이 본격화된다면 생산 단가도 떨어지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실로 부담스러운 가격이 아닐 수 없었다.
‘어지간한 소형차 한 대는 살 수 있는 가격이군.’
소형차 정도가 아니라, 서울 외곽 아파트의 전셋집도 구할 수 있는 돈이었다.
이 가격이라면, 아무리 국내산이라고 홍보해도 판매량은 기껏해야 만대 단위일 듯싶었다.
‘적자를 보더라도 가격을 낮추는 게 좋을까?’
선점 효과라는 것은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지금이야 적자를 본다 해도, 한국 시장을 확실하게 선점할 수 있다면 적자 보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그래야지만 세계 시장을 노릴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일단 모토로라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판단하는 게 좋겠어. 나비효과가 발생하여 노사가 이야기해 준 가격보다 비싸지거나 낮아질 수도 있으니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