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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180화 (180/300)

180화 잠실을 빼앗아주마

노사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구나.)

“예. 일단 확실한 것은, 쌍호 그룹이고 샤롯 그룹이고 다시 우리에게 덤빌 생각은 하지 못할 겁니다.”

당연한 일이었다.

검찰 조사와 함께 정부에서 대대적인 세무조사가 시작되었고, 금융권에서도 두 그룹의 신용도를 점검하는 등, 온갖 악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혜성 그룹을 상대로 감히 수작을 부릴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자들은 내가 가만히 있어 주길 바라고 있겠지. 물론 나는 그럴 생각은 없지만 말이야.’

상처를 입은 상대가 힘을 되찾을 때까지 기다려줄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나는 결코 신사가 될 생각이 없었기에 쌍호 그룹이고, 샤롯 그룹이고,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하이에나처럼 물어뜯을 생각이었다.

(정부에 맡기기만 해도 놈들의 피해가 클 거 같기는 한데, 그렇다 해서 네 성격에 정부에게만 맡기지는 않겠지?)

마침 노사가 그 같은 질문을 던졌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답게, 내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을 거의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물론입니다.”

(어떤 수를 쓸 생각이냐?)

“우선, 두 그룹의 상장 기업을 건드려볼 계획입니다.”

(적대적 인수 합병을 시도하겠다는 거야?)

“예. 어차피 정권이 바뀌었으니, 문제 될 것은 없다고 봅니다.”

내 말에 노사는 피식 웃었다.

(주가도 꽤 내려갔는데, 인수 합병을 하는 시늉만 해도 아주 재미있는 상황이 만들어지겠어.)

“저희에겐 재미있는 일이겠지만, 신진호 회장이나 김종우 회장에게는 아주 죽을 맛일 겁니다.”

5공 시절이라면, 정부의 허락 없이 다른 기업을 인수 합병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였다.

지분을 다 인수했어도 정부가 반대하면 인수 계획을 초기화해야 할 정도로 정부는 인수 합병에 있어 중대한 변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김영산 정부라면 정당한 인수 합병까지 막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반대로, 쌍호 그룹이나 샤롯 그룹 같은 곳에서 우리 혜성 그룹의 계열사를 인수하려고 한다면 정부에서 막아줄 가능성이 컸지만 말이다.

‘설령 인수에 실패한다 해도 상관없다. 적대적 인수 합병을 막으려면 자금 소모가 클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야.’

두 그룹의 소모만 강요할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물론 인수에 성공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고.

(이왕이면 기업뿐만이 아니라, 부동산도 매입해라.)

“부동산이요?”

(네가 적대적 기업 합병을 시도하면 급하게 매물로 내놓지 않겠어?)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회사를 뺏기지 않으려면 급하게 돈을 마련할 수밖에 없을 거다.

“이번 기회에 신진호 회장이 가지고 있는 잠실의 부동산을 빼앗으면 좋겠군요.”

안 그래도 잠실에 있는 샤롯 그룹의 건물들이 마음에 들지 않던 참이었다.

신진호 회장이 보유한 샤롯의 부동산만 내가 인수한다면 잠실은 오롯이 혜성 그룹의 영토가 되지 않을까 싶다.

(군부 놈들에 대한 보복은 어떻게 할 생각이냐?)

“5공의 주요 인사들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놈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겠어?)

나는 노사의 물음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재계의 인사들이야 나도 같은 재벌이니 복수를 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전 대통령이었던 전대환이나, 노태호 같은 5공의 주요 인사들은 정치인이다 보니 내가 손을 쓰기가 애매하였다.

“쿠데타의 주역들이야, 곧 법의 심판을 받지 않겠습니까? 국민들이 저리도 원하고 있는데.”

예상했던 대로 사법부에서는 열심히 5공의 주요 인사를 옹호해 주었다.

전대환을 수사한다면 국란을 초래한다는 식으로 수사를 막아온 것이다.

물론 이런 사법부의 대응은 이내 국민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국민들은 연신 시위를 하며 5공의 주요 인사를 척결하라고 외치고 있었는데, 아마 곧 사법부에서도 전대환을 포기하지 않을까 싶었다.

(사법부가 저리 나오는데, 법의 심판을 받아봐야 몇 년이나 살고 나오겠어? 길어봐야 20년이다. 만약 원래 역사처럼 IMF가 일어난다면 그보다 짧아질 수도 있어.)

“그러면 노사께서는 어떻게 하시길 바라십니까?”

(당연히 사형 때리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

사형이라.

그렇게만 된다면야 국민들도 더 바랄 것이 없을 거 같았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고.

‘아버지를 막대하던 군부 놈들이 사형을 당한다면 통쾌하기는 하겠어.’

하지만 문제는 그 방법이었다.

과연 내가 어떻게 해야 법의 판결을 바꿀 수 있는 것일까?

(5공 청문회가 시작될 때쯤, 전대환 그놈은 아마 비자금 일부를 사회에 기부하는 식으로 자신의 죄를 덮으려 할 거다. 그때 네가 전대환 그놈이 가지고 있는 비자금 규모를 언론에 공개해.)

“3천억에 달하는 그 비자금을 말씀하시는 거 군요.”

노사는 시간이 날 때마다 5공의 비리를 조사하고는 했다.

그때 나에게 전대환이 가진 비자금의 규모를 알려준 적이 있었는데, 노사가 추적한 자금만 3천억이 넘었다.

‘아마 제대로 조사하면 그보다 더 많겠지. 우리 재벌들에게 뜯은 돈만 1조가 넘는데 말이야.’

이른바 통치 자금이랍시고, 당원들이나 지지자들에게 돈을 뿌리기도 했겠지만, 어쨌든 전대환은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들고 있었다.

노태호를 비롯하여 다른 5공의 주요 인사들까지 조사한다면 1조는 가뿐히 넘을 게 분명하였다.

(끽 해봐야 수십억을 기부할 텐데, 기부하자마자 그놈이 3천억 넘는 비자금을 들고 있다는 게 밝혀진다면 국민들은 더욱 분노하게 될 거야.)

“확실히 그렇겠습니다.”

(그 외에도 내가 전대환을 옹호하는 사법부 놈들의 약점도 알려줄 테니, 언론이나 김영산 정부를 통해서 이 약점을 잘 활용해봐.)

노사는 어지간히 전대환을 죽이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긴, 5공 때문에 혜성 그룹이 무너지고 가족이 해체된 경험을 겪었던 노사였으니 그가 이 정도의 원한을 갖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도 최선을 다해서 5공을 응징해야겠군.’

정권이 바뀌었다고 5공 쪽을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았던 거 같았다.

그들은 노사의 원수이면서 나의 원수이기도 했는데 말이다.

“알겠습니다. 노사께서 정보를 주시면 제가 잘 참고해서 계획을 짜보겠습니다.”

내 대답에 노사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 * *

신진호 회장은 분기를 참지 못하고 허영만 기획조정실장의 뺨을 후려쳤다.

짝!

“비자금을 왜 그따위로 관리해서 이 사달을 만드는 거야!”

“죄송합니다.”

“지금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기나 해? 내가 징역을 살게 생겼다고!”

단순히 세무조사 때문에 그가 이리 화를 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횡령 및 배임 의혹,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검찰 조사가 시작되었다는 게 심기가 불편한 주된 원인이었다.

“집행유예 선에서 끝낼 수 있게 상황을 이끌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꼭 그렇게 해야 할 거야. 징역 1년 이상 선고당했다간 허 실장이 책임져야 해. 알겠어?”

허영만 기획조정실장은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리하겠습니다.”

“그런데 아까 그 이야기는 뭐야? 우리 회사의 지분을 어떤 놈이 매입하고 있다고?”

“예. 지금 어떤 세력이 샤롯 호텔의 지분을 공격적으로 인수하고 있습니다.”

신진호 회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세무조사에 검찰 조사까지 당하고 있어서 상황이 좋지 않았는데, 웬 미꾸라지가 장난을 치니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개미 놈들인가?”

“움직임을 보면 아무래도 세력이 나선 거 같습니다.”

“그니까, 그 세력이 어딘데?”

잠시 주저하던 허영만 기획조정실장이 조심스럽게 입술을 열었다.

“아무래도 혜성 그룹의 이한성 회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뭣이!?”

쾅!

한성의 이름을 듣자마자 신진호 회장은 분기를 참지 못하고 책상을 내리쳤다.

순식간에 이성을 잃게 할 정도로 신진호 회장에게 있어 한성이란 존재는 철천지원수였다.

“확실해? 이한성, 그놈이 움직인 게 확실하냐고 묻는 거다!”

“공교롭게도 오늘 오후 1시경에, 이한성 회장이 직접 본인 입으로 88 올림픽을 대비하여 호텔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하겠다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호텔 사업을 확장하겠다고 발언한 뒤에 우리 호텔 지분을 인수한다고? 그놈을 너무 단순하게 보는 거 아닌가?”

“황인범 회장의 자금도 같이 움직인 것을 보면 거의 확실하다고 봐도 무방할 거 같습니다.”

“황 회장이? 그 양반은 은퇴한 거 아니었어?”

“회장님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황인범 회장은 이한성 회장과 무척이나 가까운 사이입니다. 명동에서 은퇴한 뒤로도 이한성 회장이 도움을 요청할 때는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우리 샤롯 호텔을 인수하기 위해 황인범 회장이 돕고 있다는 것인가?”

“제 추측으로는 그렇습니다.”

“빌어먹을! 정권이 바뀌기 전에 어떻게든 그놈을 밟아놨어야 했는데!”

상황이 이 지경이 되니,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던 과거가 후회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김종우 회장이랑 힘을 합쳤을 때, 김종우 회장이 말한 것처럼 극단적인 수라도 썼어야 했는데.’

사업에서도 그렇지만, 후회는 언제나 늦는 법이었다.

신진호 회장이 속으로 후회를 삼킬 때, 허영만 기획조정실장이 말했다.

“아무래도 부동산을 조금 정리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땅값이 한창 오르고 있는데, 부동산을 왜 정리해?”

“경영권을 방어하려면 자금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허영만 기획조정실장의 말에 신진호 회장은 미간을 좁혔다.

사실 상대가 한성만 아니라면 적대적 인수 합병 따위는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을 거다.

그가 보유한 지분이라면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회사를 노리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혜성 그룹 회장인 한성이었다.

명동의 큰손들은 물론이요, 이제는 다른 재벌 총수들까지 제 뜻대로 다루는 한성이었으니, 절대 방심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우리 회사를 인수하기 위해 움직인다는 것은 김영산 대통령의 허락이나 적어도 묵인이 있었다는 뜻이다.’

단순히 황인범 회장이나, 재벌 총수 그리고 은행권만 경계한다고 끝이 아니었다.

혜성 그룹은 김영산 정부의 총애를 받는 기업이었으니, 자칫하면 정부까지 관여해서 샤롯 호텔 인수를 도와줄 수가 있었다.

“젠장! 그놈은 왜 김종우 회장은 가만 놔두고 우리만 이렇게 괴롭히는지 모르겠군!”

차라리 쌍호 그룹을 공격해줬으면 강 건너 불구경하듯 즐겁게 지켜봐 줬을 텐데, 하필 자신을 공격하니 그저 화만 날 따름이었다.

‘언젠가 이 수모를 갚아주마!’

* * *

나는 샤롯 그룹의 동향을 살피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신진호 회장이 내가 의도했던 대로 잠실의 부동산을 급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던 까닭이다.

‘설령 내 의도를 알아차렸다 해도 방법이 없었을 거다. 돈이 어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니 말이야.’

빅 4의 기업 중의 한 곳인 혜성 그룹에서 적대적 인수 합병에 나선다는데, 팔짱 끼며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세무조사에서 발견된 비자금도 워낙에 많아 앞으로 뜯겨갈 벌금과 추징금도 천문학적이라 추측되고 있었으니, 부동산을 매각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을 거다.

‘그대로 조금은 아쉽군. 만약 신진호 회장이 배짱 장사를 했다면 그때는 진짜 샤롯 호텔을 인수해 버렸을 텐데.’

신진호 회장의 지분이 상당하긴 해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여느 재벌 가문이 그렇듯, 샤롯 가문도 콩가루 집안이었으니, 샤롯 가문의 내부 사정을 잘만 이용한다면 경영권 분쟁을 일으키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진호 회장이 저리 완강하게 경영권을 방어하기 시작했으니 지금은 발을 뗄 수밖에 없었다.

‘뭐 사실 아쉬워할 필요가 없긴 하지. 샤롯 그룹 대신 쌍호 그룹을 노리면 그만이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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