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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177화 (177/300)

177화 물어보나 마나지

(내가 알려준 광고 하나 때문에 자동차 업계가 아주 난리가 났구나.)

언제나처럼 불쑥 나타난 노사가 그 같이 말하였다.

“덕분에 앱설루트의 신차 모델이 크게 성공했습니다.”

(자동차가 잘 됐으면 해운 쪽에 조금 더 신경 쓰도록 해라.)

“예,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 들었냐? 모토로라가 곧 한국에 진출한다는 소식?)

나는 눈에 이채를 띠었다.

모토로라가 한국에 진출한다니.

휴대폰 사업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었다.

“정확히 언제쯤 진출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늦어도 8월 안에는 한국으로 들어올 거다.)

“8월이라.”

지금이 5월이니 불과 3달도 남지 않았다.

‘동윤이가 올림픽이 끝나기 전까지는 휴대폰을 완성할 수 있다고 했는데, 8월 전까지 완성하는 것은 어렵겠지?’

이왕이면 모토로라가 한국에 진출하기 전에 먼저 출시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선점 효과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휴대폰이란 게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기에 쉽지는 않을 거 같았다.

‘더군다나 내가 요구한 것도 많으니까.’

1세대 휴대폰은 비싸고 크고 무거운 데다 충전 시간에 비해 사용 시간이 극도로 짧았다.

나는 이런 아쉬운 점들을 고려하여 최대한 소형, 경량화를 해달라고 요구하였는데, 내가 생각해도 무리한 요구였다.

여름 전까지가 아니라, 올해 안에 개발을 끝난다 해도 크게 자축해야 할 일이었던 것이다.

“아쉽군요.”

(뭐가 아쉬워?)

“조금 더 휴대폰 개발을 서둘렀다면 모토로라가 진출하기 전에 휴대폰 개발을 끝낼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참 아쉽습니다.”

단 3개월만 일찍 개발을 시작했다면 좋았을 터.

역시 사업은 시간과의 싸움이란 것을 다시금 체감하였다.

(지금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휴대폰 사업부를 발족한 지, 이제 석 달이 조금 넘게 지났는데,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너는 혜성 그룹의 직원들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거 같군. 혜성 그룹의 직원들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능력이 뛰어나.)

“우리 그룹에 인재가 많다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여름 전에 휴대폰을 출시하는 게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나는 가능하다고 본다. 네가 기대치를 조금만 낮춘다면 말이야.)

뭐 성능 면에서 타협을 본다면야 불가능할 게 없기는 했다.

혜성 전자의 기술력은 이제 어떤 기업과 비교해도 꿀릴 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상대는 모토로라였다.

“모토로라를 상대하는데, 성능이 최소 수준은 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격으로 승부를 보면 돼. 어차피 너도 이번에 출시하는 휴대폰으로 돈을 벌 생각은 없잖아?)

그건 그렇다.

지금 시점에서 휴대폰 판매량은 기대할 게 못 됐다.

사실상 사치품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내가 알기로 모토로라, 다이나텍의 가격이 250만 원 정도 할 거다.)

“250만 원이요?”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 정도는 할 거야.)

나는 혀를 내둘렀다.

휴대폰의 가격이 비싼 것은 알고 있었지만, 웬만한 소형차만큼 비쌀 줄이야.

“흠, 그럼 우리는 100만 원대에 판매하면 어느 정도 점유율을 가져올 수 있겠군요.”

(어느 정도가 아니라, 70% 이상 가져올 수 있을걸? 앱설루트로 국민들이 지금 얼마나 국뽕에 취해 있는데? 경쟁자가 외국 회사라면 무조건 혜성의 휴대폰을 사줄 거다.)

국뽕이라.

확실히, 혜성 그룹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기는 했다.

나야 그저 사업을 했을 뿐인데, 마치 국위선양이라도 한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였으니까.

‘노사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한 번 도전해봐도 좋을 거 같은데?’

원래는 올림픽 전후로 개발을 끝낸 뒤, 내년 출시가 목표였다.

하지만 노사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조금 더 서둘러도 괜찮을 거 같았다.

“일단, 김동윤에게 개발 시점을 앞당기라는 지시는 내려놓겠습니다.”

(공돌이는 굴리면 어떻게든 답을 내놓으니, 복지 같은 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굴려봐.)

“……알겠습니다.”

굴리면 답이 나온다라.

과연 그 말이 정답일지 두고 보면 알 거 같았다.

* * *

“태한이가 벌써 많이 자랐군요.”

“예. 유치원을 어디에 보내야 할지, 고민이 들 정도예요.”

유지은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유치원이라니.

이제 겨우 두 살 된 아이에게 유치원은 아직 이르지 않을까 싶었다.

“유치원은 천천히 고민해 보죠.”

“그런데 요즘은 생후 18개월만 되어도 어린이집에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그렇습니까?”

“예, 그리고 태한이는 발달이 빠르니, 어린이집에 보내도 잘 적응할 거 같아요.”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4살쯤에야 유치원에 보내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유지은은 태한이의 엄마였다.

엄마의 조언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할 거 같았다.

물론 그래도 2살에 유치원은 너무 빠르게 느껴졌지만 말이다.

“일단 비서실을 시켜서 유치원을 알아보라고 하겠습니다.”

내 말에 유지은이 방긋 웃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줘서 기쁜 모양이었다.

“요즘 지현이와 주말마다 식사를 같이한다고 들었습니다.”

“예, 시간이 날 때면 아가씨와 식사를 하거나, 백화점에서 오붓한 시간을 가지고는 해요.”

재벌가에서 시누이올케가 친해지기는 쉽지 않은데 신기한 일이었다.

‘하긴, 둘 다 재벌 가의 자식으로 크지는 않았으니 그리 이상하게 볼 일도 아니겠어.’

어렵게 자란 지현이야 말할 것도 없고, 사실 유지은도 재벌가의 여식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장인어른인 유정석 JS 부회장이 재벌 출신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서로 통하는 게 많은가 보군요.”

“아무래도 남편이 바쁘다는 공통점이 있죠.”

“…….”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머쓱한 기분이었다.

“농담이에요. 한성 씨 말대로, 아가씨와 통하는 게 많아서 친해진 거예요.”

“두 사람이 친하게 지내니 보기 좋습니다.”

괜히 두 사람이 싸우기라도 하면 누구 편을 들기가 애매한데, 두 사람이 친하게 지낸다고 하니 참으로 잘된 일이었다.

물론 지금 당장에야 친하게 지낸다 해도 나중에 유산 문제가 걸리게 되면 어떻게 사이가 바뀔지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아가씨가 요즘 많이 힘들어하세요.”

“지현이가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현이에게 힘든 일이 뭐가 있을까?

설마 김동윤이 나쁜 짓이라도 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가만둬서는 안 되겠어.’

내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데 유지은이 말했다.

“김동윤 서방님이 회사에서 거의 살다시피 한다고 하더라고요? 아가씨는 이제 신혼인데, 벌써 이러니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거 같아요.”

유지은의 말을 듣고 나는 속으로 아차 하였다.

‘그러고 보니 지현이에게 못된 짓을 하고 말았군.’

생각해 보면 이제 막 신혼인 두 사람이었다.

나야 동윤이의 입지를 생각해서 휴대폰 사업부로 발령을 낸 것이었지만, 지현이 입장에서는 남편이 바빠지니 썩 좋아할 일은 아닐 듯싶었다.

‘그렇다고 인제 와서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인데.’

지현이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지금은 대단히 중요한 시점이었다.

그룹의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김동윤의 미래를 위해서 지금은 회사 업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내년부터는 괜찮아질 거라고 대신 전해주세요.”

“내년부터 괜찮아진다니, 아가씨에게 많이 위로되겠어요.”

“그런데 지은 씨는 회사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으세요?”

나는 불쑥 그 같이 물었다.

역동적이고 능동적인 커리어우먼이 바로 유지은이었다.

한때는 나보다 회사 일을 더 좋아한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일에 빠져 살았었다.

그러니 지금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가 궁금하였다.

“돌아가고 싶죠. 하지만 태한이가 있는데, 회사로 돌아가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람을 쓰면 되긴 하지만, 그래도 태한이를 위해서는 부모 중 한 명이라도 태한이 곁에 붙어있어 주는 게 좋았다.

“그럼 나중에 태한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나면 그때는 회사로 복귀할 생각이 있으십니까?”

“예! 그때라면 저도 다시 회사 일을 해보고 싶어요.”

어느 때보다 활기차게 느껴지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피식 웃었다.

‘어지간히 회사로 돌아가고 싶은 모양이군.’

나도 일 중독자란 소리를 들었는데, 그녀도 남자로 태어났으면 아마 나 못지않았을까 싶다.

* * *

‘혜성 호텔에 부대표 자리 하나를 만들어둬야겠어.’

유지은이 회사로 돌아오면 대표 자리는 힘들어도 부대표 자리 정도는 쥐여줄 생각이었다.

물론 말이 부대표지, 회장의 아내라는 그녀의 신분을 생각하면 혜성 호텔 대표도 감히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부대표 자리를 주는 거뿐이었다.

‘사실 남들의 시선을 생각하면 부대표 자리도 주면 안 되는 건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세계 그룹처럼 전문 경영인 체제를 도입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하였었다.

아무래도 전문 경영인이 오너 경영인보다 능력이 좋은 거야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유지은도 나름대로 유능한 편이라지만, 인재가 구름처럼 많은 혜성 그룹에서 그녀보다 유능한 인재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내가 그녀를 부대표로 기용하려는 것은 믿을 만한 전문 경영인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계열사 대표쯤 되면 뒷돈으로 억 단위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야.’

물론 회장의 친인척이라고 해도 비리를 저지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예전에 이준성이나, 이재성이 하던 짓만 봐도 일개 전무, 상무 주제에 억 단위의 비리를 저지르고는 했다.

다만 오너 경영인과 전문 경영인의 차이가 있다면, 오너 경영인에게는 그래도 주인의식이 있다는 점이었다.

오너 경영인 같은 경우는, 아무리 돈을 밝혀도 장기적으로 회사에 손해가 갈 거 같으면 적당히 자제라는 것을 하지만 전문 경영인에게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러니 내가 김동윤이나 종태 형, 유지은 등의 친인척을 임원으로 기용하려는 것이었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혜성 건설인데, 아직은 마땅히 맡길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지.’

건설만큼 비리가 심한 곳도 없었다.

다른 재벌 그룹의 건설 계열사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아마 혜성 건설도 깨끗하지만은 않을 거다.

뭐 그렇다고 지금 당장 혜성 건설을 갈아엎을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곧 올림픽이니 혜성 호텔을 신경 쓰긴 해야겠어.”

아시안 게임 때도 혜성 호텔과 백화점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88 올림픽은 아시안 게임 때보다 훨씬 더 매출이 늘어날 가능성이 컸다.

어쩌면 혜성 반도체나 혜성 전자, 혜성 자동차와 혜성 건설 이외에도 5천 억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계열사가 등장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근데 올림픽이 코앞이니, 슬슬 정부에서 귀찮게 굴 거 같군.’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고영태 비서실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혜성 그룹의 활약이 정말 대단합니다. 미국에서 그런 성과를 내다니. 이거야말로 국위선양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저는 그저 저에게 주어진 일에만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겸손하시니, 참 보기 좋습니다. 다른 재벌이었으면 자랑하기 바빴을 텐데 말입니다.

“제가 자랑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이번에 보여준 성과는 전적으로 앱설루트를 개발한 연구진의 공입니다.”

겸손하게 대꾸하며 몇 마디를 더 주고받으니, 그가 마침내 본론을 꺼냈다.

-이 회장님. 혹시 5월 28일에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스케줄이야 조정하면 되니 상관없습니다만, 혹시 어떤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대통령께서, 재벌 총수들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재벌 총수들의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런데, 이 회장님께서도 참석하실 수 있겠지요?

참석할 수 있냐고?

물어보나 마나였다.

“물론입니다. 반드시 참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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