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미국에서 대박 나다
자동차 딜러인 브래드 존스가 도로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갑자기 한 사내가 그의 곁으로 다가와서는 담배를 꺼내 들며 물었다.
“브래드, 앱설루트 신차 모델을 백 대나 매입했다던데, 사실이야?”
브래드 존스는 사내, 게일 고든의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그와 게일 고든과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게일 고든은 도요타와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은 딜러였던 것이다.
앱설루트 즉, 혜성 자동차와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은 브래드 존스와는 당연히 사이가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몇 대 매입했는지 알아서 뭐 하게?”
“몇 마디 조언 좀 해주려고 그랬지.”
“조언? 그딴 건 필요 없으니까, 담배 피우고 갈 길 가.”
“이 업계에 먼저 발을 디딘 선배인데 조언 몇 마디는 해줄 수 있잖아?”
게일 고든은 능글맞게 웃으며 그리 말하자, 브래드 존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또 비웃으려고 저러는 거겠지?’
보나 마나 뻔했다.
작년에도 게일 고든은 조언한답시고 오지랖을 부렸으나, 도움 되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그저 잘난 척하며 그를 비웃기만 했을 뿐이다.
“나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 왜 앱설루트야? 차라리 닛산이나, 다른 아시아 메이커들도 있잖아. 아니면 같은 한국의 미래 자동차와 계약을 하던가.”
역시나 작년과 똑같은 레파토리였다.
지긋지긋하기 그지없는 잔소리.
브래드 존스는 짜증이 났지만, 안타깝게도 반박할 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게일 고든의 딜러사와 비교하면 판매량이 저조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물론 그게 혜성 자동차가 다른 자동차 브랜드보다 부족하다는 사실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다른 주만 봐도 앱설루트의 판매량이 상당하였다.
언론에서도 여러 번 언급했을 정도였다.
‘도대체 실패한 원인을 모르겠단 말이지.’
하지만 다른 주에서는 어땠을지 몰라도, 그가 딜러사를 운영하는 시카고에서만큼은 앱설루트의 판매량이 저조하였다.
반면 도요타는 재고가 부족할 정도로 주문량이 폭발적이었는데, 게일 고든이 벌써 딜러사를 하나 더 세울 거라는 소문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
“참 내. 조언을 해줘도 뭐라 하네.”
“신차는 성공할 테니까, 그딴 조언 안 해도 돼.”
“글쎄. 도요타에서 새로운 브랜드 만드는데 그것과 컨셉 겹치는 거 알지? 내가 이번에 도요타의 렉서스와 새로 계약할 건데, 계속 앱설루트를 고집하면 손해가 엄청날 거야.”
그 말에 브래드 존스는 미간을 좁혔다.
렉서스에 관한 이야기는 당연히 그도 들었다.
도요타가 작심하고 만든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라나?
업계에서는 벌써 상당한 기대를 품으며 렉서스의 출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마 새로 운영하는 딜러사까지 도요타의 브랜드로 할 줄이야.’
게일 고든이 딜러사를 하나 더 세울 거란 소문은 익히 들었었다.
그런데 그 딜러사를 도요타의 브랜드와 계약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한 바구니에 여러 개의 달걀을 담지 말라는 격언처럼, 보통은 여러 브랜드와 계약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말이다.
‘그만큼 도요타의 자동차가 잘 팔린다는 거겠지?’
순간,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도요타와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었으면, 게일 고든처럼 여러 개의 딜러사를 운영할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부러워해 봤자 소용없었다.
이미 혜성 자동차와 계약한 이상, 앱설루트로 끝까지 밀고 가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두고 봐. 이번에는 다를 테니까.”
“두고 보자는 사람 치고 무서운 사람 없다던데.”
“그럼 내기해 볼까?”
브래드 존스는 홧김에 말했다.
그러자 게일 고든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 무슨 내기?”
“여기서 할 내기가 뭐 있겠어? 네가 맡은 렉서스와 내가 맡은 앱설루트, 누가 더 많이 판매하나 한번 내기해 보자고.”
“푸하하하! 진심이야?”
“왜? 쫄려?”
“쫄려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지. 아니, 한국 자동차로 일본 자동차에 정면승부를 걸다니. 나는 무슨 리스크를 받아야 할지 걱정했는데 말이야.”
이죽거리는 게일 고든의 모습에 브래드 존스는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빌어먹을! 누가 보면 일본인인 줄 알겠어!’
일본 자동차를 팔아 직원 50명을 둔 딜러사 사장이 되었으니 일본을 좋아하는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브래드 존스는 일본인처럼 구는 게일 고든의 모습이 짜증스럽게만 느껴졌다.
한국 자동차를 취급하다 보니, 그도 일본이 싫어진 거 같았다.
“쓸데없는 소리는 됐고, 판돈은 5만 달러로 하지!”
5만 달러면 게일 고든에겐 별거 아닌 돈일 수 있어도, 브래드 존스에게는 상당한 금액이었다.
무려 1만 달러가 넘는 고가 차량인 앱설루트를 수십 대는 팔아야 벌 수 있는 돈이었으니까.
“5만 달러를 누구 코에 붙여? 차라리 10만 달러로 하자.”
“…….”
하지만 게일 고든은 5만 달러가 너무 적게 느껴졌는지, 단숨에 두 배로 높였다.
‘괜히 내기하자고 했나?’
순간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일이 이 지경까지 됐으면 자존심 싸움이었다.
“좋아! 10만 달러 걸고 해보자고.”
“후회하지 않겠어?”
“너나 후회하지 마. 그리고 진 다음에 돈 안 내놓으면 총으로 네 대가리 쏴버릴 테니까, 각오하고 있어.”
“당연히 그래야지. 겨우 10만 달러에 총 맞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 하하하! 뭐 내가 질 일도 없겠지만 말이야!”
큰 소리로 비웃는 게일 고든의 모습을 보며 브래드 존스는 속으로 다짐했다.
‘저 새끼 돈은 내가 반드시 뺏어주고 만다!’
그러기 위해서는 앱설루트 신차 모델이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
* * *
‘신차 모델의 광고가 혁신적이다. 반드시 성공할 수밖에 없어.’
브래드 존스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지만, 불안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작년에도 그는 앱설루트가 반드시 성공할 거라고 확신했었다.
디자인이면 디자인, 성능이면 성능, 안전성이면 안전성.
그가 보기에, 앱설루트는 부족함이 없는 자동차였다.
독일의 자동차 메이커와 비교해도 절대 꿀리지 않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실제로 독일의 도움을 받아서 제조한 자동차이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결과는 대실패였다.
이런 과거를 가지고 있었기에 브래드 존스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불안해도 할 수 없다. 이미 대출도 했고 매입 계약도 다 끝냈으니까.’
브래드 존스가 불안해하고 있는데 게일 고든이 얄미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때, 신차 모델은 잘 팔리고 있어?”
“우리 일은 신경 쓰지 말고, 도요타나 잘 팔아.”
“손님이 별로 늘지 않은 거 같은데? 지금이라도 내기를 취소하는 게 낫지 않을까?”
“왜? 광고 보고 쫄리냐?”
“광고? 아, 보닛 위에 와인 잔 스무 개 세워놓고 허세 부리는 거? 보기야 멋있는데, 상식적으로 그런 게 통하겠어? 밸런스를 아무리 강조해봐야 소비자들은 밸런스 보고 차를 사지 않아. 그 브랜드의 명성을 보고 사지.”
벌써 이기기라도 한 것처럼 훈계하려 드는 게일 고든의 모습에 브래드 존스는 단호한 축객령을 내렸다.
“꺼져!”
그렇게 게일 고든이 사라지고 브래드 존스는 초조하게 손님들을 기다렸다.
‘왜 이렇게 오질 않는 거야. 그 광고를 보고 감격한 사람이 나뿐인 건가?’
이번에도 실패한 것은 아닐지, 걱정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틀 뒤.
드디어 반응다운 반응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어, 이 차 TV에서 본 거 같은데?”
“그러게! 그 와인 잔 나오는 광고에서 본 차 아니야?”
“와, 그게 이 차구나! 실물이 훨씬 잘 빠졌네!”
처음에는 단골들 사이에서 반응이 나왔다.
TV에서 본 자동차를 실물로 봐서 신기하다는 그런 반응이었다.
하지만 나흘이 지나자 주문 계약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게 광고에 나왔던 앱설루트라는 자동차 맞죠?”
“예, 앱설루트 RA라고 작년에 화제가 되었던 자동차 브랜드의 신차 모델입니다.”
“사겠습니다. 일시불로 주세요.”
“오, 옵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런 고급차를 타는데 옵션은 당연히 풀 옵션으로 해야죠.”
“감사합니다!”
백 대를 어떻게 팔까, 그런 걱정도 겨우 며칠 만에 사라지고 말았다.
어느 순간부터 미친 듯이 계약을 따내더니, 결국 열흘도 안 돼서 백 대 모두를 판매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역시 내 생각대로구나!’
게일 고든은 무시했지만, 앱설루트 RA의 광고는 실로 혁신적이었다.
도저히 실패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대성공을 하고 말았다.
‘이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지!’
이제 겨우 백 대였다.
내기에서 이기려면, 그리고 딜러사를 하나 더 세우려면 최소 수백 대는 팔아야 했다.
“미스터 정! 여기 시카고의 에버그린입니다. 백 대, 아니, 2백 대를 추가 매입하고 싶은데 어서 차를 보내주십시오!”
이번에는 2백 대를 한 번에 매입했다.
지금의 기세라면 2백 대도 순식간에 팔 수 있으리란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본인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백 대가 아니라, 5백 대를 가져와야 했어!’
앱설루트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하였다.
심지어 시카고뿐만이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심상치 않은 소문들이 들려왔는데, 어떤 지역은 없어서 못 팔고 있을 정도였다.
실제로 브래드 존스가 추가 주문을 하려고 전화하니, 인기가 워낙 좋아서 시간이 3개월 이상 소요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게일 고든, 그놈과의 내기는 더 신경 쓸 필요도 없게 되었구나!’
이미 이긴 거나 다름없는 내기였다.
게일 고든도 그 사실을 아는 것인지, 어느 순간부터 모습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방심할 여유도 없다. 이참에 앱설루트의 무서움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거야!’
브래드 존스는 앱설루트가 무시당하는 것이 싫었다.
본인부터가 앱설루트와 뉴 코렌드를 타고 다닐 정도로 혜성 자동차를 애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반드시 이번 기회에 앱설루트를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기록적인 판매고를 달성해볼 생각이었다.
* * *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은은한 목소리로 노기를 표출하는 도요타 회장을 보며 도요타 데쓰로는 식은땀을 흘렸다.
“앱설루트의 신차 모델이 무조건 실패할 거라고 하지 않았었나?”
“죄, 죄송합니다.”
도요타 데쓰로는 허리를 굽혀 사죄하였다.
그도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작년에는 그저 운이 좋아서 아주 약간의 인지도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한성 앞에서야 감탄하듯 칭찬해주긴 했어도 진심으로 앱설루트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연히 앱설루트의 신차 모델도 실패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비슷한 컨셉의 렉서스가 출시하면 존재감도 없이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 앱설루트는 미국에서 심상치 않은 기세를 보여주는 중이었다.
렉서스가 출시한다고 해도 과연 저 정도의 반응을 받을 수 있을까 의문일 정도였다.
“광고는 또 어떻게 된 거야? 앱설루트의 신차 광고, 우리가 준비하는 광고와 비슷하잖아?”
도요타 회장의 말에 도요타 데쓰로는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가장 이해 안 되는 일이 이거였다.
‘어떻게 우리가 준비하려는 광고와 거의 똑같은 거지?’
물론 차의 컨셉이 겹치니 광고가 어느 정도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거야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보닛 위에 와인잔을 피라미드로 세운 뒤, 차를 운행하는 장면은 절대 우연으로 겹칠 수가 없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어디서 유출이 된 건지.”
“유출이 아니라, 네놈이 혜성 자동차의 것을 표절한 거 아니야?”
“제가 표절할 것이 없어서 한국의 것을 표절하겠습니까. 절대 그런 거 아닙니다!”
도요타 데쓰로는 거칠게 반박하였지만, 도요타 회장의 의심을 지우는 것엔 실패하였다.
광고 건도 광고 건이지만, 앱설루트의 수요 예측에 완전히 실패했다는 점에서 이미 점수가 많이 깎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