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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174화 (174/300)

174화 총선 대비를 해야겠지

‘웃기는 놈이군. 화내야 할 사람이 누군데.’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5공도 몰락했으니, 이제 누군가에게 모욕을 당할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일본인에게 이런 모욕을 당하니 짜증스러운 기분이었다.

“제아무리 도요타라지만, 우리 혜성 그룹을 너무 무시하는 거 같습니다.”

“한국의 기업이라, 우습게 느껴지는 모양이야.”

“쩝. 혜성 그룹이 이 정도면 세계 그룹은 아예 상대조차 하지 않겠군요.”

당연히 그럴 것이다.

혜성 그룹이야 그나마 앱설루트가 미국에서 선전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 상대하는 거지, 다른 기업이었으면 어림도 없었다.

“하루빨리 우리나라도 발전해서 일본에 무시당하지 않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양준현의 말에 나는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우리가 발전할 필요 없이, 일본이 알아서 자멸해줄 예정이었지만, 어찌 되었건 하루빨리 일본을 능가하는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물론 혜성 그룹은 도요타를 능가하는 기업이 되어야 했고 말이다.

‘도요타는 쉽지 않겠어.’

재계 10위에서 재계 4위까지 순식간에 치고 올라온 혜성 그룹이지만, 도요타를 따라잡는 것은 재계 10위가 4위 되는 것보다 힘든 도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도요타의 경상이익만 3조에 가까웠다.

우리나라에서 재계 1위인 미래 그룹조차 매출만 10조가 조금 넘고 경상이익은 천억 단위였으니, 실로 넘기 어려운 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반드시 5년 안에 넘고 만다.’

혜성 그룹은 미래 그룹보다 매출이 훨씬 적지만, 영업이익은 거의 비슷하였다.

특히나 작년 말부터 반도체에서 엄청난 매출이 나오고 있었기에, 올해의 영업이익은 혜성 그룹이 더 높지 않을까 싶었다.

결국, 미래 그룹도 사정권 안에 두고 있으니, 도요타도 5년이란 시간을 두고 쫓아간다면 충분히 쫓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까 그 도요타 전무이사가 말했던 대로, 회장님의 자산이 세간에 알려진다면 곤란을 겪지 않겠습니까?”

“어떤 곤란을 말하는 거야?”

“안 그래도 회장님의 자산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일본에서만 수천억 엔의 자산이 있다고 알려지면, 단순히 궁금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거 같습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감히 혜성 그룹 회장인 나를 상대로 헛된 수작을 부리려는 정치인은 더는 없겠지만, 그래도 귀찮게 할 가능성이 컸다.

정우 그룹의 권오중 회장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비자금을 나에게 맡기려고 할 것이고 말이다.

‘투자 상담이 더 늘어나긴 하겠어.’

많이 귀찮아질 거 같기는 했다.

하지만 그 정도야 감수하자면 감수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내가 무슨 불법적인 일을 저지른 것도 아니니까.

“나보다는 양희수 회장님이 곤란하지 않을까 싶다.”

일찌감치 나에게 50억이란 거액을 맡겼던 양희수 회장이다.

지금 그 50억이 부채 포함하면 천억 이상으로 늘어나 있는 상태였으니, 이 사실이 알려지면 재계에 큰 소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었다.

“에이, 아버지는 괜찮을 겁니다. 아니, 오히려 아버지는 좋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아하신다고?”

“요즘 세계 그룹의 후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지 않습니까? 아버지의 권위가 흔들리고 있다며 신문에서도 말들이 많은데, 아버지의 자산이 그렇게까지 늘어났다면 누구도 아버지의 권위를 뒤흔들 수 없을 겁니다.”

양준현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빚을 모두 갚으면 비자금의 규모가 백억 단위로 줄어들겠지만, 백억 단위도 실로 엄청난 돈이었다.

순수 현금으로 수백억이니, 양희수 회장의 권위도 당연히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양 회장님이 이 돈으로 무엇을 할지 기대가 되는군.’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공격적인 사업을 펼친다면 순식간에 재계 순위를 몇 단계 더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 * *

도요타 데쓰로는 이를 갈았다.

설마 자신이 몸소 사옥을 찾았는데 이렇게 단호한 거절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혜성 그룹 회장 정도 되는 사람이, 도요타의 무서움을 모른단 말인가.’

심지어 일본에서 엄청난 규모로 부동산 투자까지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도요타 데쓰로의 협박을 같잖게 여기며 무시하였다.

도요타 데쓰로로서는 설마 한국의 기업인에게 모욕을 당할 줄 몰랐기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앱설루트 하나만 믿고 그렇게 설치는 거라면, 단단히 실수한 거다. 이 회장!’

렉서스 출시가 코앞이었다.

지금 당장이야 앱설루트의 인지도가 더 높았지만, 그것도 시간문제였다.

그가 준비하고 있는 렉서스가 출격한다면, 앱설루트는 순식간에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시장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앱설루트가 실패하면 돈이 부족해지겠지. 그러면 엠파이어 빌딩을 급하게 처분할 수밖에 없을 거다.’

혜성 자동차가 앱설루트에 투자한 자본은 천문학적이었다.

도요타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한국 기업으로서는 실로 큰 금액이었으니 앱설루트가 실패하면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때 도요타의 인맥을 총동원하여 한성의 자금을 관리하는 회사를 전 방위적으로 압박한다면 결국 엠파이어 빌딩을 토해낼 수밖에 없을 터였다.

‘어디 한번 두고 보자고.’

도요타 데쓰로는 다시금 이를 갈며 한성을 향해 복수를 다짐하였다.

* * *

대통령 선거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국회의원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한성 회장님, 오랜만에 인사를 드립니다.

선거 때가 되어서 그럴까?

갑자기 정치인들의 전화가 물밀듯이 걸려왔다.

물론 이 시기에 정치인들이 전화를 거는 이유야 뻔했다.

돈.

선거 자금을 얻고자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제가 자주 인사드렸어야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한진영 의원님.”

-하하하, 이한성 회장님이 바쁘신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이해합니다.

한진영 의원.

5공 시절,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안기부 간부 출신의 국회의원이었다.

‘그때만 해도 내가 한진영 의원에게 굽실거려야 했었는데…….’

새삼스럽게 감회가 새로운 기분을 느꼈다.

두렵기만 했던 권력자가 이제는 동등한, 아니 동등한 수준을 넘어 오히려 내가 우위에 있는 상황이 되었으니 감회가 새로운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우월감에 취해 있을 생각은 없었다.

한진영 의원보다 영향력 면에서 우위에 서게 되었다고 해도, 결국 그뿐이었다.

국회의원을 적대해 봐야 좋을 게 없었으니, 아직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좋았다.

“선거 준비하느라 바쁘실 거 같은데, 어떻게 준비는 잘 되고 계십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초선은 어떻게 되긴 했는데, 과연 2선에도 성공할 수 있을지…….

“제가 알기로 지지율이 상당하시던데, 잘 되실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응원이 더해진다면 당선 가능성이 조금은 올라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응원이란 당연히, 선거 자금을 말했다.

뭐 대선 때처럼 크게 지원할 생각은 없었고 대략 5천만 원 안팎의 자금을 지원할 생각이었다.

-회장님께는 늘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오랫동안 함께 한 관계인데, 응원 정도는 당연히 해줘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 그런데 회장님. 이걸 말해야 할지, 조금 고민스럽긴 한데 얼마 전에 모 재벌 그룹에서 저에게 접촉했습니다.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재벌 그룹이 접촉했다는 게 나랑 뭔 상관인가 싶었다.

국회의원을 지원하는 재벌 그룹이 어디 한둘인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 재벌 그룹에서 저에게 제안하기를, 앞으로 제한 없는 지원을 해 줄 테니, 다른 그룹과의 관계는 끊으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빅 4 중 한 곳일 가능성이 높겠어.’

당연하다면 당연한 추측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국회의원에게 오만한 요구를 하는 것부터가 평범한 재벌이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혹시 미래 그룹입니까?”

내가 툭 던지자, 그가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미래 그룹이 맞았던 모양이다.

‘왕 회장이 정치 쪽으로 무언가 결심을 한 거 같군.’

노사가 전해주기를, 왕주형 회장은 나중에 대선에 도전한다고 했다.

나비효과도 있는데 과연 그 역사적인 사건이 다시 일어날지는 알 수 없지만, 왕주형 회장이 총선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게 아니라면 초선 국회의원인 한진영 의원에게 저런 요구를 할 리가 없으니 말이다.

-하하, 이한성 회장님. 제가 이 사실을 말했던 것은 비밀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물론입니다. 그런데, 의원님은 미래 그룹의 제안에 어떻게 답변하셨습니까?”

-이한성 회장님이 든든하게 제 곁에 계시는데, 다른 선택을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당연히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아무튼 저뿐만이 아니라 저희 당 초선이나 2선 의원들도 비슷한 요구를 받은 거 같으니 참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좋은 정보를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아닙니다.

내가 무슨 정당을 차릴 것이 아닌 이상, 그리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 정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상대가 왕주형 회장이니 알고 있는 게 이익이었다.

‘도움을 줬으니 이번에는 1억 정도 지원해 줘야겠군.’

나는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하며 한진영 의원과의 통화를 끊었다.

* * *

“오셨습니까.”

(그래. 그동안 잘 지냈냐?)

거의 한 달 만에 나타난 노사가 태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그런 노사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노사가 어디에 계신지 몰라서 답답했던 거 말고는 잘 지냈습니다.”

-나는 알아서 잘 지내니, 내가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는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다. 그보다, 앱설루트 RA 모델 광고는 어떻게 됐어?

“잘 뽑혔습니다. 노사도 보시면 감탄을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앱설루트의 새로운 모델이 곧 출시될 예정이다.

일부로 렉서스 출시 일정과 맞추었는데, 광고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괜히 미국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광고가 아닌 거 같단 말이지.’

아직 미국 TV에 광고를 내보내기 전이지만, 나는 성공을 장담하였다.

그만큼 이번에 준비하고 있는 광고는 혁신적이었던 것이다.

-렉서스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렉서스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그쪽이 어떻게 나올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마치 나보고 렉서스를 조사해오라고 하는 거 같은데?

“아닙니다. 오해십니다.”

-뭐 나중에 시간 나면 도요타 구경이라도 해보고 오마. 어차피 귀신의 몸이라서 바다 건너는 것도 순식간이니 말이야.

“그래주시면 저야 감사할 뿐입니다.”

-또 할 이야기 있으면 지금 말해라. 조언해 줄 게 있으면 조언해 줄 테니.

“특별한 것은 없고, 왕주형 회장이 이번 총선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거 같은데 노사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 적당히 견제는 해야 하지 않겠어?

“신경 쓰지 말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군요.”

-미래 그룹이 대양 상선을 포기한 이유도 결국 정치권과 친하지 않아서 그런 거잖아? 근데 이제 정치권에 영향력을 투사하려 하고 있으니, 적당히 방해는 해줘야지.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국회에서 미래 그룹의 영향력이 늘어봐야 좋을 게 없긴 했다.

-내가 당선 가능성이 높은 의원들을 알려줄 테니까, 네가 이 사람들을 잘 지원해 봐. 그러면 미래 그룹도 견제하고 혜성 그룹의 영향력도 늘릴 수 있게 될 거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업에만 집중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이미 김영산 정부와 긴밀한 관계인 것이 세상에 알려졌으니, 정치와는 뗄 레야 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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