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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172화 (172/300)

172화 과연 어떻게 나올까?

‘설마 정부에서 먼저 도와준다고 할 줄은 몰랐네.’

언젠가 김영산 대통령의 덕을 볼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내가 요구하기도 전에 먼저 도움을 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고영태 비서실장의 말처럼, 김영산 대통령이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분명한 거 같군.’

당선되자마자 나에게 통화를 걸었던 것만 봐도 나를 중요시 여기는 것은 확실했다.

그런데 내가 요구하기도 전에 먼저 나서서 나를 도우려는 것을 보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의 존재를 훨씬 더 크게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정부와 너무 가까워지는 것도 좋을 게 없는데.’

김태중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이 된다면야 정부와 사이좋다고 손해 볼 것은 없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뀐다면?

그땐 지금 정부와 친한 것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었다.

‘뭐, 일단 지금 득 봤으니 5년 뒤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애초에 5년 뒤에는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상관이 없을 거고.’

5년은 굉장히 긴 시간이었다.

재계 10위에 불과했던 혜성 그룹이 재계 4위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도 불과 5년이었다.

아마 5년 뒤에는 재계 1위에 세계적으로도 꽤 인지도가 있는 기업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어디까지나 나의 기대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미래 그룹에서 과연 어떻게 나올까?’

연회장에서 만난 왕주형 회장은 분명 나에게 대양 상선을 포기하라고 경고하였었다.

재계 1위 그룹 회장으로서의 자존심 때문에라도 쉽게 발을 빼지는 않을 거 같았다.

왕주형 회장의 자존심은 재계에서 특히나 알아주는 편이었으니 말이다.

‘아니다. 생각해 보니, 포기할 수밖에 없겠구나. 대양 상선이 무슨 기화 자동차 급도 아니고 말이야.’

지금은 정권 초기다.

그 어느 때보다 대통령의 힘이 강한 시기라는 뜻.

설령 미래 그룹이라 해도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른다면 좋은 꼴 보기는 힘들었다.

왕주형 회장의 자존심이 얼마나 강하든 간에 지금 당장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 * *

-대양 상선을 인수할 기업으로는 미래 그룹보단 혜성 그룹이 더 적합하다는 판단이 내려졌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고영태 비서실장의 목소리를 듣고 왕주형 회장은 이를 악물었다.

“그 판단은 누가 내린 겁니까?”

-누가 내렸을 거 같습니까?

“······.”

-그러면 이야기는 전했으니, 알아서 잘 처신하리라 믿습니다.

알아서 잘 처신하라.

한마디로 대양 상선에는 욕심도 내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고영태 비서실장은 왕주형 회장의 답변을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굳이 답변을 듣지 않아도 왕주형 회장이 자신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을 거로 확신하는 거 같았다.

뿌드득!

왕주형 회장은 수화기를 내려다보며 이를 갈았다.

“임자. 비서실장 그 애송이 놈이 지금 나에게 뭐라 한 줄 아나?”

“잘 모르겠습니다.”

“대양 상선을 포기하라고 하더군. 혜성 그룹의 것이라면서 말이야!”

정권이 달라졌으니 이런 일도 이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정권이 바뀐 지 일주일도 안 돼서 깨져 버렸다.

미래 그룹에 있어서 5공이나 김영산 정부나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주는 것은 하나도 없이, 위에서 군림하며 기생충처럼 피를 빨아먹는 그런 존재였다.

“지금 시점에 청와대의 심기를 거슬러봐야 좋을 게 없을 거 같습니다.”

왕주형 회장이라고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도무지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다.

대통령도 아니고 겨우 비서실장에 불과한 자의 한마디에 대양 상선을 포기해야 한다니!

굴지의 대기업, 미래 그룹 회장으로서 실로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늦게라도 김영산 대통령 쪽에 선을 댔어야 했나.’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뒤늦은 후회였다.

선을 댈 거였으면, 적어도 대선이 끝나기 전에 선을 댔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결국 샤롯 그룹처럼 푸대접만 당하고 말 것이다.

“언제까지 우리 그룹이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하는가! 다른 재벌 그룹도 아니고 재계 1위인 미래 그룹이!”

예전이었으면 이렇게까지 자존심에 상처 입을 일도 아니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의 미래 그룹은 연 매출만 10조에 종업원 수는 15만 명이 넘었다.

덩치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는 뜻이었다.

그래서인지 왕주형 회장은 어느 때보다 정부의 개입을 불쾌하게 여겼다.

“차기 정권 때부터는 혜성 그룹처럼 적극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5년 동안 문민정부 아래에서 짓눌러 살라는 건가?”

“…….”

“임자, 굳이 5년 뒤를 볼 필요가 있나? 다음 달이 총선인데?”

“총선에 개입하실 생각입니까?”

“혜성 그룹이 한 일을 우리가 못할 건 없지.”

원래도 총선에 개입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여야에 조금씩 성의를 보였을 뿐, 혜성 그룹처럼 적극적으로 개입한 적은 없었다.

‘이참에 국회에다 미래 그룹의 말만 따르는 의원들을 꽂아 넣어야겠어.’

미래 그룹에 우호적인 정치인들이야 지금도 많았다.

물론 왕주형 회장이 원하는 것은 그 이상이었다.

왕주형 회장은 단순히 자신에게 우호적인 것을 넘어, 자신의 지시에 적극적으로 복종하는 그런 정치인들을 키워볼 생각을 하였다.

* * *

‘하아. 언제쯤 상황이 좋아질지.’

이민규 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법정 관리를 받는 회사 직원의 삶은 실로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월급은 50% 이상 삭감되었고, 유급 휴가는 꿈도 못 꿨다.

은행에서 나온 관리단은 경비 지출에 인색하여 영업 때 사용하는 대부분의 지출을 사비로 처리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해운 운임이 상승해 경영이 호전되고 있다는 점인데…….’

불과 몇 달 전에는 회사 전체가 공중분해 될 뻔했다.

국내의 선주들이 수송위탁을 기피하여 수렁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때 관리단에서 회생 불가라고 결정을 내렸으면 대양 상선의 역사도 거기서 끝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해운업의 경기가 조금씩 살아나면서 공중분해시키기에는 아까운 회사라는 결론을 내렸다.

대양 상선의 수명이 조금은 연장이 된 셈이다.

‘그래도 여전히 암울하기 짝이 없군. 도대체 언제쯤 정상적인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다시금 한숨을 내쉬는데 갑자기 부하 직원이 그를 향해 말했다.

“부장님, 저는 아무래도 퇴사를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정 과장, 그게 무슨 말이야? 퇴사하겠다니,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갑자기가 아닙니다. 지금 저 말고도 퇴사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지 않습니까.”

“정 과장은 다를 줄 알았는데…….”

“월급이 50% 삭감되고 몇 달이 지났습니다. 회사를 오가는 교통비와 식비라도 줄이기 위해서 한 달에 9일간 무급휴가까지 써가며 버텼지만, 이제는 한계입니다.”

“정 과장! 나를 믿고 한 달, 딱 한 달만 결정을 미루어 봐.”

“한 달이 지난다고 상황이 달라지겠습니까?”

정영준 과장이 비관적인 목소리로 그리 말하자 이민규 부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이민규 부장도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에 상황이 호전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에 오랫동안 충성한 인재가 회사를 나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비록 이민규 부장은 일개 직원일 뿐이었지만, 회사를 생각하는 마음은 사장 못지않았던 것이다.

“지금이야 법정 관리를 받는 신세지만, 곧 공기업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재계의 유력 재벌이 우리 기업을 인수할 수도 있지 않겠어?”

사실 공기업이 되거나 재벌 그룹의 계열사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품고 퇴사를 미룬 직원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아무도 그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대양 상선을 인수할 기업이 있었으면 진즉에 인수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과연 그런 날이 오겠습니까?”

“날 믿고 한 달만 기다려보게. 딱 한 달만!”

이민규 부장은 억지를 부렸다.

그만큼 정영준 과장의 퇴사를 원치 않았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딱 한 달만 기다리겠습니다. 그 뒤에는 저도 가장이라 어쩔 수 없이 퇴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영준 과장의 그 같은 답변에 이민규 부장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과연 한 달 사이에 상황이 극적으로 바뀔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런데 나흘 뒤.

한 달은커녕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희소식이 날아왔다.

“미래 그룹과 혜성 그룹이 동시에 우리 회사를 노리고 있답니다.”

“그게 정말이야?”

“예! 이미 신문에 다 나왔습니다!”

정영준 과장이 흥분한 기색으로 외쳤다.

그러자 이민규 부장도 주먹을 강하게 쥐며 쾌재를 불렀다.

그러더니 정영준 과장을 향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 과장. 어떻게 할 거야?”

“어떤 거 말씀하시는 겁니까?”

“퇴사할 거냐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대양 상선의 직원인 제가 가긴 어딜 갑니까? 하하하!”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정영준 과장의 모습을 보며 이민규 부장은 픽 웃었다.

“그런데 정 과장은 미래 그룹과 혜성 그룹 중 어떤 그룹에서 우리를 인수하면 좋을 거 같은가?”

“어떤 기업이 인수하든 법정 관리가 끝나기만 하면 기뻐할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둘 중 더 나은 곳이 있을 거 아니야?”

이민규 부장의 질문에 정영준 과장은 잠깐 고민하더니, 미래 그룹을 이야기하였다.

“둘 다 빅 4라서 솔직히 고민되기는 하는데, 역시 재계 1위인 미래 그룹의 계열사가 되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그래?”

이민규 부장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미래 그룹보다 혜성 그룹이 더 낫다고 생각하였다.

‘성장성을 생각하면 혜성 그룹이 훨씬 낫지.’

재계 10위에서 재계 4위까지 순식간에 치고 올라갔던 혜성 그룹이었다.

지금도 성장세는 이어가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전 계열사가 매출 증가세를 보이었다.

더군다나 혜성 그룹은 직원 복지와 대우가 상당히 좋다고 알려진 기업이었다.

‘혜성 그룹의 직원이 되면 월급도 많이 늘어나고, 아들놈 학비 지원도 받을 수 있겠어.’

생각만 해도 기쁜 일이었다.

망해가는 회사의 부장에서 혜성 그룹이라는 대기업의 직원이 된다니!

“이민규 부장님 맞으십니까?”

“예, 맞습니다만. 어디서 오셨습니까?”

“저는 혜성 그룹 회장님의 수행비서인 양준현이라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혜성 그룹 회장의 수행비서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양준현 수행비서가 전하기를, 곧 혜성 그룹에서 대양 상선을 인수할 거라고 한다.

“그, 미래 그룹도 인수 의사를 밝혔다고 들었는데 혹시 미래 그룹과는 이야기가 끝난 겁니까?”

“미래 그룹은 대양 상선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민규 부장은 그 같은 말에 혀를 내둘렀다.

재계 1위를 상대로 엄청난 자신감이 아닐 수 없었다.

‘정말 이 사람 말대로 될까?’

아직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사실은 따로 있었다.

“그런데 저를 찾아오신 용건이 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대양 상선에 대해 알아보니, 법정 관리가 되고서 회사에 남아있는 간부가 별로 없더군요.”

“예, 그렇습니다.”

그의 말처럼 다른 간부들은 제 살길 찾아서 떠난 상태였다.

임원들도 남아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회장님께서 이민규 부장님을 대양 상선의 부대표로 임명할 것을 고려하고 계십니다.”

“……!”

이민규 부장은 눈을 부릅떴다.

부대표라니!

믿기 어려울 정도로 파격적인 인사 조치였다.

‘잘리지나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원래 회사를 인수하면 구조조정이 일어나는 법이었다.

그런데 구조조정은커녕 임원으로, 그것도 부대표로 승진한다고 하니 믿을 수가 없었다.

‘역시 회사에 충성하길 잘했어!’

동기들은 그를 바보 취급하며 회사를 떠났다.

나이 어린 관리단 직원들에게 모욕을 당했을 때는 그도 회사에 잔류한 것을 후회하고는 했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그가 승리자였다.

무려 혜성 그룹이라는 굴지의 대기업에서 부대표직을 맡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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