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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167화 (167/300)

167화 그 도요타

차기 먹거리 사업이라.

확실히 경영인이라면 항상 고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지금 하고 있는 사업들이 다 잘되고 있다고 들었는데, 구태여 차기 먹거리 사업을 찾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거대했던 일성 그룹의 자산을 나누어 가진 JS 그룹이었다.

절반에 못 미치는 계열사만 챙겼음에도 재계 12위를 할 정도로 그 규모가 상당하였다.

일성 화재를 비롯한 금융 계열사들은 일단 가지고만 있어도 꾸준하게 캐시카우를 해줄 것이고 말이다.

“제 생각에는 지금의 사업들로는 재계 10위권으로 도약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거 같습니다.”

“재계 10위를 노리시고 계시는군요.”

“일성에서 나왔는데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재계 10위를 노린다면 지금 사업들로는 힘들 거 같기는 했다.

JS 그룹의 계열사는 대부분이 내수 사업이니, 수출로 성장을 거듭하는 다른 기업을 따라잡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울 테니.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컴퓨터나 반도체 쪽에 도전하는 것도 별로 바람직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이야 수출 회사들이 유리하지만, 경제가 발전하다 보면 내수만 잡고 있어도 재계 10위의 대기업이 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소비재 사업에 집중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노사가 알려준 미래의 JS 그룹을 생각하면 소비재 사업은 빼먹을 수가 없었다.

식품 제조 쪽으로는 업계 1위였다고 하니 말이다.

“놀랐습니다. 저도 소비재 사업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하, 그렇습니까?”

소비재 사업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대로 할 것이지, 나에게 왜 물어본 거야?

잠시 그런 생각도 했지만, 유정석 부회장의 감탄한 표정을 보고는 웃고 넘어갔다.

어쨌든 나의 조언을 듣고 확신을 얻었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내 조언이 아니었어도 하게 될 사업인데, 내 조언을 들었으니, 소비재 사업이 성공한다면 내 조언 덕이라고 여기겠지.’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장기적으론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사업 말씀입니까?”

“예. 장인어른께서도 아시다시피, 한국의 경제는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경제가 우선이지만, 우리도 언젠가 미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들처럼 영화와 음악 사업이 크게 발전할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이 역시도 언젠가 JS에서 하게 될 사업이었다.

물론 역사가 바뀌었고 원래보다 JS 그룹의 규모가 커졌으니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르지만 말이다.

“흠, 엔터테인먼트라.”

유정석 부회장은 눈을 빛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더니, 내 부연 설명을 듣고는 그럴듯하게 여기는 거 같았다.

“그리고 일본에서 할 수 있는 사업을 하나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오! 어떤 겁니까?”

일본이란 말에 잔뜩 흥분한 유정석 부회장은 내 이어진 말을 듣고 미간을 좁혔다.

“백 엔 샵입니다.”

“예?”

“저가 소비재 산업인데, 말 그대로 모든 상품을 백 엔에 파는 사업입니다.”

유정석 부회장은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첨단 산업을 추천할 거로 생각했건만, 뜬금없이 백 엔 샵 같은 걸 추천하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백 엔이면 한화로 500원이 조금 넘는 돈인데, 이게 과연 수익성이 있겠습니까?”

“물론 말이 백 엔 샵이고, 실질적으로 그보다 비싼 제품들도 많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하기엔 백 엔 샵만큼 적합한 것이 없습니다.”

“이 회장님, 지금 일본은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을 누리고 있는데 저가 소비재 산업이 과연 적합하겠습니까?”

“호황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지금이 적기라는 겁니다.”

“예?”

여전히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유정석 부회장을 보며 나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장인어른! 일본의 호황이 언제까지 갈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음, 기사 보도를 보면 적어도 10년은 이어갈 거라고 하던데, 이 회장님의 생각은 다르십니까?”

“저는 길어야 2년을 보고 있습니다.”

“2년이요?”

눈을 부릅뜨는 유정석 부회장의 모습에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나비효과가 많이 발생했지만, 한국의 일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특히 일본의 거품 경제의 붕괴는 내가 역사를 아무리 바꿨어도 그대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다.

거품 붕괴의 원인이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었으니까.

“예, 그리고 2년이 지나면 단순히 호황이 끝나는 수준이 아니라, 거품이 붕괴하는 수준으로 일본 경제에 큰 타격이 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뭔가 엄청난 이야기를 들은 거 같군요. 저렇게 잘 나가는 일본 경제에 불황이 찾아온다니.”

“어디까지나 제 예상일뿐이니, 너무 과민반응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회장님의 예측은 틀린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 정보는 비밀로 해주십시오. 저도 장인어른이라 이 정도까지 이야기해 주는 겁니다.”

“물론입니다. 입을 꾹 다물고 저만 알고 있겠습니다.”

유정석 부회장은 살짝 감격한 얼굴로 그 같이 대답하였다.

백 엔 샵을 추천해 준 것보다는, 일본 경제의 미래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 것에 더 감격하는 모습이었다.

하기야 경영자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을 거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백 엔 샵보다 이 정보가 더 귀한 거 같기도 했고 말이다.

‘그래도 백 엔 샵, 아니, 다이소는 꽤 쏠쏠한 사업인데…….’

혜성 그룹에서 할 만한 사업은 아니었다.

하지만 JS 그룹이라면?

사운까지는 아니어도 한 번쯤 도전해 볼 만한 사업이었다.

일본에 불황이 찾아온다면 사업을 확장하기도 어렵지 않았으니까.

* * *

유정석 부회장은 결국 백 엔 샵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은 채 돌아갔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이나 소비재 사업은 마음에 들어 하면서도 백 엔 샵은 별로 마땅치 않았나 보다.

뭐 이해는 했다.

다짜고짜 일본에서 잡화 할인점이나 다를 게 없는 백 엔 샵을 열라고 했으니, 탐탁지 않을 수밖에.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의 선택이 아쉽게 느껴졌다.

‘다이소를 이렇게 버리기는 아까운데?’

유정석 부회장에게 말했던 것처럼 일본에서 백 엔 샵을 키우기엔 지금이 적기였다.

호황일 때 사업을 시작해야 경쟁자가 없을 테니 말이다.

다이소가 마침 자금을 필요로 하는 때라 인수 제안하기도 수월했고.

하지만 그렇다고 혜성 그룹에서 다이소를 인수하기는 모양새가 좋지 않았기에 아쉬움을 털어내기로 하였다.

나중에 투자 제안이나 해서 지분을 얻는 게 좋을 거 같았다.

‘그나저나 올해 안에는 일본 자산도 정리하기는 해야겠군.’

지금 생각해보니 일본 자산에 대해 너무 소홀했던 거 같았다.

단순히 자산만 비교하면 혜성 전자, 혜성 자동차 등 혜성 그룹의 주요 계열사 몇 개를 합친 것에 버금가는 자산인데 말이다.

물론 대부분의 자산이 부채라서 현금화를 하면 계열사 하나와도 겨우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하지만 그것도 적은 돈이 아니지.’

당연한 이야기였다.

다른 곳도 아니고 무려 혜성 그룹의 주요 계열사가 비교 대상인데, 그 자산 규모가 작을 리는 없었다.

하나같이 조 단위였던 것이다.

‘게다가 내년까지 더 오를 테지.’

일본에서의 자금을 현금화한다면 1조를 넘어 어쩌면 2조가 넘는 자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현금으로 2조라니.’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이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른 건 몰라도 돈으로 살 수 있는 건 뭐든지 살 수 있을 거 같았다.

당연히 기업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단 대양 상선부터 인수해야겠지? 그다음에는 기화 자동차도 인수하고 말이야.’

회사 몇 곳을 인수하고, 나머지는 재투자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비자금이나 마찬가지인 돈을 혜성 그룹에만 투자하는 것은 너무 아까운 일이었으니까.

이번 대선에 백억을 썼던 것처럼 언제 어떤 식으로 비자금을 쓰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유동연 대표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물론입니다, 회장님.

일본의 상황도 알아볼 겸, 일본에서 내 자산을 관리하는 유동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어려운 점이나, 저의 결정이 필요한 일이 있습니까?”

-한 가지, 회장님께 보고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의례상 물어본 질문이었는데, 그가 이렇게 답변할 줄은 몰랐다.

분명 며칠 전에 보고받았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었는데 말이다.

“어떤 사항입니까?”

-도쿄 긴자의 세이부백화점 유라쿠초점 정면에 있는 엠파이어 빌딩을 일본 기업이 노리고 있습니다.

“엠파이어 빌딩은 이미 저희가 매입한 곳인데, 다른 기업이 노리든 무슨 상관입니까?”

도쿄 긴자에 위치한 세이부백화점 유라쿠초점은 일본에서 패션 1번지라 불릴 정도로 번화한 곳이었다.

엠파이어 빌딩은 이런 세이부백화점의 정면에 있었다.

당연히 엠파이어 빌딩을 노리는 기업이 많은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저에게 인수 제안을 했는데,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자들이 은행권을 압박하여 저희에게 매각을 강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유동연이 왜 우려를 표하나 했더니 이유가 있었다.

‘가치가 계속 올라갈 내 빌딩을, 인맥과 영향력을 이용해 싸게 사들이려는 것이로군.’

한국에서도 흔히 벌어지는 일이었다.

60, 70년대에는 깡패 용역들을 동원해서 강제로 땅을 빼앗는 일도 적지 않았다.

지금도 그런 일이 없으리란 보장이 없었고.

하지만 일본에서 이런 일을 겪게 될 줄은 몰랐다.

“그쪽에서 얼마를 제시하였습니까?”

-1,700억 엔을 제시했습니다.

1,700억 엔이면 한국 돈으로 거의 4천억에 가까운 돈이었다.

한국의 땅값과 비교하면 이것도 실로 엄청난 가격이 아닐 수 없었다.

언론에서 괜히 일본 땅값을 미쳤다고 표현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엠파이어 빌딩의 시세가 현재 3천억 엔까지 올랐다.

내가 기억하는 시세가 맞다면, 유동연의 말처럼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한 셈이었다.

“도대체 그 회사가 어느 회사이기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수작을 부린답니까?”

-도요타입니다.

“도요타라.”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솔직히 내가 모르는 기업 이름이 나올 줄 알았는데, 도요타가 떡 하니 나올 줄이야.

‘자동차 회사가 왜 내 빌딩을 탐내는 거야?’

잠시 그런 의문도 들었지만, 생각해보니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었다.

신문에서 도요타의 사내 유보금이 넘쳐흐른다는 보도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다른 기업들처럼 부동산으로 재미를 보려고 그러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다 내년에 크게 손해 볼 텐데.’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유동연에게 말했다.

“도요타든 뭐든 그런 말도 안 되는 협박을 들어줄 필요는 없습니다. 단호하게 거절 의사를 밝히세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추가 대출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어차피 유동연 대표님께서 관리하는 회사가 한두 곳이 아니지 않습니까? 엠파이어 빌딩을 소유한 회사의 추가 대출이 막힌다면 다른 회사에서 대출을 더 받으면 그만입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의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귀찮은 일이 생겼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제아무리 상대가 도요타라 해도 합법적인 자산을 마음대로 강탈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도요타에서 내 정체를 알아차린다면 조금 곤란해질 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정권을 바꿔서 다행이군. 노태호 정권이었다면 불안해서 잠도 못 잤겠어.’

* * *

동생, 도요타 슈헤이가 전해준 소식에 도요타 데쓰로는 작게 혀를 찼다.

“우리의 요구를 거절했다고?”

“예, 형님. 1,700억 엔이 아니라 현재 시세인 3천억 엔을 주더라도 절대 매각할 생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외국인이라서 그런지 도요타 가의 무서움을 잘 모르는 모양이군.”

도요타 데쓰로도 엠파이어 빌딩을 1,700억 엔에 인수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매각을 강요하기 위해 압박한 것일 뿐, 실질적으로 협상에 들어가면 3천억 엔까지 쓸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이렇게 단호하게 거절을 표하니 심기가 불편해졌다.

“일단 그놈들의 정보를 자세하게 알아 와. 엠파이어 빌딩은 무조건 우리가 가져야 한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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