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나는 정답을 알고 있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재벌 총수란 자리는 실로 부담스러운 자리가 아닐 수 없었다.
‘결단’을 내려야 하는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미래 정보가 있어서 결단을 내리기가 쉬웠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
미래 정보가 있느냐, 없느냐는 굉장히 중요하였다.
반도체처럼 선택 하나에 수천억, 어쩌면 조 단위의 자금이 걸려있다면 더더욱 그러했다.
이제 미래가 바뀌었으니 나는 미래 정보로 득을 보기는 힘들어질 거다.
어쩌면 선택을 잘못하여, 수천억이 넘는 피해를 보게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다행히도 이 두 가지의 기술 방식에서 무엇이 정답인지는 나는 알고 있다.’
스택으로 만들 것이냐, 트렌치로 할 것이냐.
혜성 반도체의 누구도 선뜻 판단을 내리기 힘든 결정이었다.
잘못된 판단을 내릴 경우, 그 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명확한 결단을 내렸다.
미래 정보를 통해 정답을 알고 있기에 내릴 수 있는 결단이었다.
“스택으로 갑시다.”
늘 그렇듯 자신감 있는 나의 말에 임원들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을 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선장만큼 든든한 존재는 또 없을 터.
임원들은 나를 보며 든든함을 느끼고 있을 거다.
하지만 모든 임원이 아무런 이견이 없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모두가 예스맨이 되는 것은 나 역시도 원하지 않았기에 나는 임원들이 제기하는 이견을 열심히 귀 기울여 경청하였다.
“트렌치는 평탄도를 유지하면서 칩 크기를 작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안전하기도 하니, 트렌치 방식이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본과 미국의 선두 업체들도 트렌치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안전하게 트렌치 방식으로 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들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실제로 미국 일부 업체를 제외하면 현재 D램 반도체의 선두 업체들은 트렌치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
아직 그들도 양산에 성공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후발 업체인 혜성 반도체로선 그들을 따라가는 것이 안정적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합시다. 지하로 파는 게 쉽겠습니까? 아니면 위로 쌓는 게 쉽겠습니까?”
내 말에 임원들이 눈을 크게 떴다.
“확실히, 위로 쌓는 게 훨씬 더 쉬울 거 같습니다.”
“명언이십니다!”
지하로 파는 것보다 위로 쌓는 게 쉽다.
사실 이 말은 이호승 회장이 원래 해야 했을 말이었다.
노사가 이호승 회장에 관해 설명할 때 언급했던 명언이었으니까.
하지만 이호승 회장에겐 D램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계열사가 없었으니, 내가 대신한다 해도 뭐라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근데 괜히 미안해지네.’
나는 속으로 그리 중얼거리고는 임원들을 향해 물었다.
“또 제가 결단을 내려야 할 일이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겁니까?”
내가 잠시 대선에 신경 쓰느라고 일거리가 꽤 쌓여있는 상태였다.
그중에서 시급히 처리해야 할 결재사항을 오늘 다 처리하기로 하였다.
“생산 라인을 재구축하는 문제에 관해 회장님의 지시가 필요합니다.”
“재구축이라면?”
“일본에선 이미 1M D램의 양산 준비를 끝냈습니다. 다음 달부터는 바로 양산에 들어갈 텐데, 저희도 생산 라인을 재구축하여 1M D램을 양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이건 이전부터 나오던 이야기였다.
1M D램의 개발이 끝난 것은 작년.
하지만 아직도 혜성 반도체에는 1M D램의 양산 준비가 미흡한 상태였다.
내가 64K D램과 256K D램의 생산에 주력했기 때문이었다.
“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습니다.”
“예? 하지만 회장님. 일본과의 격차를 줄일 절호의 기회입니다. 지금 양산 준비를 한다면 일본과의 격차를 6개월 이내로 좁힐 수 있습니다.”
차상민이라는 일성 그룹 출신 임원의 말에 몇몇 임원들이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혜성 반도체가 일성 그룹과의 격차를 줄이는 게 목표였다면, 일성 그룹의 반도체 사업부의 제1 목표는 일본과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작년부터 일성 그룹은 일본과의 격차를 3년 이내로 좁혔는데, 양산 시점을 서두른다면 개발 시점은 늦어도 양산 시점만큼은 1년 이내로 좁힐 수가 있었다.
격차가 6년 이상 났던 예전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었다.
‘만약 이병건 회장이 살아있다면 이 격차를 좁히기 위해 안달 났겠지.’
물론 나도 개발 시점만큼은 최대한 격차를 좁히고 싶었다.
일본의 뒤를 좇기만 하는 것은 달가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업계 최고가 되기 위해서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양산 시점만큼은 구태여 일본을 따라갈 필요가 없었다.
“현재 미국에서 컴퓨터의 가격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차상민 상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달러 조금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얼마였습니까?”
“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500달러가 일반적이었습니다. 물론 대형컴퓨터들은 그보다 훨씬 비쌌습니다만.”
“그렇습니다. 차 상무의 말씀하신 것처럼 이전에는 대형컴퓨터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습니다. 대형컴퓨터의 시대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대형컴퓨터의 본산이던 IBM까지 개인용 컴퓨터 제조에 뛰어든 상황입니다.”
“예, 맞습니다.”
내 말에 동조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의문스러운 표정이었다.
반도체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왜 대형 컴퓨터 이야기를 꺼내나 싶을 것이다.
하지만 반도체와 컴퓨터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면 컴퓨터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 컴퓨터의 가격은 계속 낮아질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 거 같습니까?”
차상민 상무가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하였다.
내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마침내 깨달은 거 같았다.
“부품들도 저렴해져야 할 거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품들도 저렴해져야 하고, 당연히 반도체의 가격도 저렴해져야 합니다. 아까 일본이 1M D램을 양산한다고 하셨는데, 과연 1M D램의 생산 단가가 어느 정도일 거 같습니까?”
“아무리 못해도 5달러는 될 거 같습니다.”
“예. 초기에는 분명 그 정도 될 겁니다. 반면 256K D램의 생산 단가는 2달러가 안 됩니다. 수출가도 그래서 2달러로 하는 것이고 말입니다.”
예전에야 컴퓨터 회사들이 대형컴퓨터만 출시하니, 반도체 회사들도 대형컴퓨터용 반도체, 즉 수명이 25년 이상의 고품질 반도체만 만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IBM조차 퍼스널 컴퓨터를 만드는 시대였다.
저가 디램이 더 인기 있는 시대란 뜻이었다.
그러니 일본에서 1M D램을 양산한다고 해서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다.
“제가 왜 256K D램 양산에 집중하시는지 아시겠습니까?”
“깨우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어리석은 것은 아닙니다. 일본이 저렇게 나오니 조급할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일본이 1M D램 양산으로 넘어간 것은 우리와의 정면 싸움을 피하고자 도망친 거나 다름없으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가격 경쟁력을 비교하면 당연히 일본이 압도적이었다.
현재 일본 반도체 업체들이 세계 순위권을 석권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의 가격 경쟁력을 비교한다면?
당연히 한국이 압도적일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서 256K D램의 생산 단가가 3.5달러라면 혜성 반도체의 생산 단가는 1.5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현재 반도체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256K D램의 가격이 1달러에서 2달러로 올라갔다지만 일본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적자였다.
그러니 1M D램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1M D램으로 넘어갔다는 것은 사실상 치킨 게임에서 패배를 선언한 거나 다름없지.’
일본이야 새로운 시장이 나올 것을 기대하고 고사양 제품으로 넘어간 거지만, 저가 PC의 시대에서 그런 일은 한참 뒤에나 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혜성 반도체는 일본 반도체와의 격차를 줄이거나 오히려 앞서나갈 터.
이때부터 진정한 혜성 반도체의 신화가 시작될 거다.
‘일성은 1992년이 되어야 일본 반도체를 앞서나가기 시작했지. 하지만 우리 혜성 반도체는 그보다 빠를 거다!’
1990년.
아무리 못해도 1990년 안에는 일본 반도체를 추월하고 마리라.
* * *
“태한이가 눈을 떼질 못하네요.”
유지은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태한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말처럼 태한이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지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고모의 모습이 낯선가 봅니다.”
“정말 아름다우신 거 같아요.”
“저렇게 꾸몄는데, 예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죠.”
“이럴 때는 한성 씨도 여느 오빠들과 다를 게 없네요.”
그렇게 유지은과 대화를 나누는데, 유명 가수의 축가가 시작되었다.
짝짝짝!
듣기 좋은 축가가 끝이 나자, 결혼식도 끝이 났다.
‘행복하게 잘 살아라.’
나는 속으로 동생인 이지현에게 그 같이 전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하객들 몇 명이 나에게 접근하였다.
정계 인사들도 있었고 재계 인사들도 있었는데, 재벌 총수임에도 나는 정계 인사에게 가장 먼저 인사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다가오는 하객 중에는 김태중 선생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귀한 발걸음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태중 총리님.”
솔직히 김태중 선생이 지현의 결혼식에 참석한다고 했을 때, 깜짝 놀랐었다.
한때 유력 후보로 손꼽혔던 김태중 선생이었다.
지금은 벌써 차차기 대통령이란 소리를 듣고 있었으니, 그의 존재감은 실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인물이 내 결혼식도 아니고 내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한 것은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아직은 내정자일 뿐입니다. 하하.”
김태중 선생은 겸손한 미소를 지으며 그리 말하더니, 덥석 내 손을 잡았다.
“이 회장, 고맙습니다. 정말 이 회장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갑자기 며칠 전에 있었던 김영산 당선인과의 통화 내용이 생각났다.
그때도 이런 식으로 감사 인사를 들었었는데 말이다.
‘근데 이렇게 사람들이 있는 장소에서 감사 인사를 하다니. 정치인으로서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 말이야.’
주변 사람들의 반응만 봐도 경악하는 분위기였다.
차차기 대통령으로 거의 확정된 거나 다름없는 김태중 선생이 나에게 친근한 태도를 보이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해준 게 없다니, 이 회장이 저를 설득해 주었지 않습니까.”
“그저 김태중 총리님의 결정을 도울 수 있게 몇 마디 거들었을 뿐입니다.”
“그 몇 마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정말 이 회장께는 감사한 마음입니다.”
김태중 선생은 연신 감사 인사를 하였다.
나는 겉으론 겸손하게 대꾸했지만, 속으로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차기 정권도, 차차기 정권도 다 문제없겠는데?’
물론 김태중 선생이 차차기 대통령이 될 거라고는 확신할 수 없었다.
5년 뒤에는 나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었고.
하지만 어쨌든 지금 당장으로선 미래가 기대될 따름이었다.
“제가 이 회장을 도울 일은 없겠지만,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를 주십시오. 이 회장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같은 정치인이라서 그런지, 김태중 선생은 김영산 당선인과 똑같은 말을 하고는 물러났다.
뭐 진짜로 부탁하려고 전화하면 어떻게 반응할지는 의문이었지만 말이다.
“이한성 회장님의 인맥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말씀 편히 하십시오. 장인어른.”
김태중 선생과의 대화가 끝이 나고 내가 상대한 사람은 JS 그룹의 부회장이자 나의 장인어른인 유정석 부회장이었다.
참고로 유정석 부회장은 실질적인 JS 회장이나 다를 게 없었는데, 그룹 경영을 그가 책임지고 있었다.
“김태중 총리님도 그렇게 존경을 표하는데, 제가 어찌 회장님에게 말씀을 편히 할 수 있겠습니까.”
유정석 부회장은 은은한 미소를 그리며, 마치 내가 대견스럽다는 듯 말했다.
하긴, 그로서는 사위인 내가 잘 나갈수록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을 거다.
설령 자신보다 더 윗사람처럼 느껴지는 사위라 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