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투자천재-162화 (162/300)

162화 최악을 대비해야지

김영산은 고뇌에 찬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단일화.

그라고 아예 고민해보지 않은 문제는 아니었다.

애초에 그는 김태중 후보를 당으로 끌어들일 때, 불출마를 약속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태중 후보를 먼저 대통령으로 만든 다음에 차기 대통령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대선이 다가오자, 생각이 달라졌다.

당장이라도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만에 하나, 이한성 회장의 말처럼 된다면?’

설마 그럴 리가 있겠냐는 생각도 들지만, 다른 누구도 아니고 한성의 말이었다.

플라자 합의까지 예측했다는 한성이었으니, 그의 말을 흘려들을 수는 없었다.

사실상 유일한 실책이던 반도체까지 주문량이 폭주한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이 기회가 어떤 기회인데 중도 포기한단 말인가.’

10월에 있었던 단일화 협상 때, 김태중 후보의 생각을 알게 됐다.

김태중 후보도 자신처럼 출마를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 말은 즉, 단일화를 하려면 자신이 출마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후우. 어렵군.”

머릿속으로 심각하게 고민하였지만,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심복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그의 심복들이야 불출마를 결사적으로 반대할 게 분명했으니까.

김영산은 결국 답답한 한숨을 내쉬며 잠자리에 누웠다.

“헉!”

하지만 김영산은 한 시간도 채 잠을 자지 못하였다.

잠에 빠지기 무섭게, 노태호 후보가 당선되는 악몽을 꿨기 때문이었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긴 한가 보군. 이런 꿈을 꾸다니.’

-보통 사람, 노태호 만세!

-와아아아!

노태호 후보를 향한 사람들의 환호성 소리가 아직도 귀에 울리는 거 같았다.

분명 비현실적인 광경인데도 이상하게 뇌리에서 지어지지 않았다.

‘꿈이다. 이건 꿈에 불과해.’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다시금 악몽이 이어졌다.

노태호 후보가 당선되기 무섭게, 김영산은 보안사의 사찰을 당했다.

그의 측근들 역시 그를 떠나거나, 정부로부터 핍박을 받았는데, 이건 김태중 후보도 다르지 않았다.

‘이번 대선에서 패배하면 이런 미래가 펼쳐지는 건가.’

6.29 승리가 거짓처럼 느껴졌다.

직선제 개헌을 이루었음에도 민주주의는 오히려 후퇴하였다.

군부 출신인 노태호 후보가 당선되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나 때문이다.’

김영산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였다.

하지만 이게 현실이라 생각하니, 자책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조금만 욕심을 버렸으면.’

물론 권력욕 하나 때문에 단일화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다 핑계에 불과하였다.

어떤 변명을 해도 노태호 후보가 차기 대통령이 된 순간, 그는 이 나라의 역적과 다를 게 없었다.

“김태중 고문님과 다시 만나서 이야기해 봐야겠어.”

이번에는 기필코 단일화 협상을 이루고 마리라

꿈에서 깬 김영산은 그 같이 중얼거렸다.

악몽 때문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지만, 이상하게 정신은 명료하였다.

욕심을 버리니, 마음이 편해진 듯싶었다.

* * *

“단일화 협상은 완전히 결렬된 거 아니었어?”

“나도 그렇게 알고 있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래? 김 기자는 뭐 아는 거 없나?”

“글쎄요. 국민들의 시선이 안 좋으니 요식행위를 하는 게 아닐까요?”

“이미 국민들도 두 사람이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다 아는데 인제 와서 그런 요식행위를 할 필요가 뭐 있겠어?”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양김이 만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인제 와서 전당 대회를 다시 열 수도 없는 일이고 말입니다.”

양김이 다시 한번 회동을 한다는 소식에 기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10월에 있었던 단일화 협상 때 이미 두 사람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었다.

유세 과정에서 두 사람의 지지자들이 서로 충돌하기까지 하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자들로선 두 사람이 회동하는 것을 의문스럽게 여겼다.

겉으로는 단일화 협상을 표방하고 있어도, 단일화 외에 다른 정치적인 목적이 있다고 의심하는 것이었다.

“분위기 봐라. 살벌한데? 누가 보면 전쟁이라도 난 줄 알겠어.”

“역시 단일화를 협상할 생각은 없어 보이네.”

“당연하지. 다음 달이 바로 대선인데 인제 와서 단일화는 무슨 단일화야.”

회동 당일.

기자들은 양김의 측근들을 보며 혀를 찼다.

그도 그럴 것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두 진영의 모습은 누가 봐도 화합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하지만 그때, 한 기자가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런데 TJ 쪽도 그렇고 YS 쪽도 그렇고 표정들이 이상한데? 측근들도 이번 회동의 목적을 모르는 거 아닐까?”

“에이 설마 그러려고?”

“이 회담도 갑자기 성사되었다잖아. 통화 한 번으로 말이야.”

“그건 그냥 만들어낸 이야기겠지.”

“아니야. 이번에는 뭔가 심상치 않다니까?”

“심상치 않기는. 괜한 기대하지 마. 지역감정 때문에라도 두 사람이 단일화할 일은 절대 없을 거야.”

기자들이 그 같은 대화를 나눌 때였다.

“저기 김영산 후보 들어온다.”

“얼굴색이 좋아 보이는데?”

마침내 주인공 중의 한 명이 회담장에 입장하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른 주인공이 회담장 안으로 들어왔다.

“김태중 후보다!”

“오! 김 기자, 사진 찍을 준비해! 이 장면을 내일 헤드라인으로 올려야 한다.”

“예! 알겠습니다!”

찰칵! 찰칵! 찰칵!

두 사람이 서로 마주치는 장면을 기자들이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그러던 중,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뭐야, 갑자기?”

“포옹이라니!”

김태중 후보를 마주한 김영산 후보가 양팔을 벌렸다.

그런 김영산 후보의 모습에 잠시 당혹해하던 김태중 후보다 마주 양팔을 벌리더니, 서로가 서로를 강하게 껴안았다.

“트, 특종이다!”

찰칵! 찰칵! 찰칵!

기껏해야 눈싸움이나 하는 장면을 찍을 거로 생각했던 기자들이었다.

그런데 포옹하는 장면을 찍게 되었으니, 특종을 외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 * *

모두를 경악하게 한 두 사람은 테이블을 두고 마주 앉았다.

두 사람의 측근들은 여전히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지 작게 웅성거리고 있었다.

“김태중 후보님, 아니, 김태중 고문님!”

먼저 입을 연 것은 김영산 후보였다.

“예, 김영산 총재님.”

“제가 이렇게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부디 제 사과를 받아주십시오.”

“……!”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김영산 후보의 모습에 좌중은 다시금 경악하였다.

“총재님께서 사과하시다니요. 사과할 사람은 접니다.”

“아닙니다. 제가 억지를 부리는 바람에 상황이 이렇게까지 나빠졌습니다. 부디 못난 저를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거 참, 저를 곤란하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이왕 곤란하게 한 김에, 한 가지 더 곤란하게 하겠습니다. 김태중 후보님! 야권의 유일한 대선 후보가 되어 우리 국민들을 이끌어주십시오.”

또다시 충격 발언을 하는 김영산 후보였다.

사실상의 불출마 선언을 한 것이었으니 충격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김태중 후보의 반응이었다.

“사실 저도 대선 출마 포기 선언을 하려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예?”

“이번 대선에서 대통령이 되어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니라, 김영산 후보님입니다. 야권의 승리를 위해 열심히 도울 테니, 이번에는 김영산 후보님께서 힘을 써주십시오.”

그가 그리 말할 것을 측근들조차 예상 못 했는지, 김태중 후보의 뒤에서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태중 후보님께서 왜 저런 말씀을?”

“이거 지금이라도 말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후보님을 어떻게 말립니까?”

“당혹스럽군요. 설마 이렇게 단일화가 되는 것은 아니겠죠?”

잠시 침묵을 지키던 김영산 후보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갑자기 왜 그런 결정을 내리신 겁니까?”

“꿈을 꿨습니다.”

“꿈이요?”

“예. 광주의 시민들이 다시 끔찍한 고통을 받는 꿈이었습니다.”

“두려운 악몽이었겠습니다.”

“아주 두려우면서도 현실감 넘치는 악몽이었습니다.”

악몽이란 말에 김영산 후보가 눈을 크게 떴다.

한성의 설득도 큰 영향을 끼쳤지만, 그가 단일화를 하려고 마음먹었던 이유는 악몽 때문이었다.

그런데 마침 김태중 후보도 악몽을 꾸었다고 하니, 놀라우면서 두렵게 느껴졌다.

‘과연 그게 정말 악몽이었을까?’

단순한 악몽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조상님께서 일종에 계시를 내려주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잠깐 하고 만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그런 꿈을 꾸셨으니 더더욱 김태중 후보님께서 대권을 가져가는 게 맞을 거 같습니다.”

“아닙니다. 후보님이 하시는 게 맞습니다.”

“광주의 시민들을 위해서라도 김태중 후보님이 대권을 가져가셔야지요.”

“후보님이 대통령이 되신다면 전국적으로 균형적인 발전을 꾀하실 거 아니십니까? 저는 후보님을 믿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양보를 거듭하였다.

그러자 뒤에서 회담을 지켜보던 두 사람의 측근들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 전까지 서로 대통령을 하겠다고 싸우던 두 사람이 이제는 서로에게 대권을 양보하고 있으니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 * *

“결국 단일화가 되었군요.”

나는 양김이 서로 꼭 껴안고 있는 사진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단일화.

11월이 되면서 반쯤 포기했던 것인데, 결국엔 단일화가 되었다.

이로서 대선에 대해서는 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 같았다.

(너무 안심하지는 마라.)

“예? 단일화가 되었는데 또 무슨 걱정거리가 남아 있습니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영산 후보가 야권의 단일 후보로 선출된 상황이었다.

설령 다른 모든 후보가 단일화를 선택한다 해도 김태중 선생이 돕는 김영산 후보를 꺾을 수는 없을 게 분명했다.

(5공이 어떤 놈들이냐? 그놈들이라면 무슨 짓을 해도 이상할 게 없어.)

“그러고 보니 아직 테러가 남아있군요.”

(뭐, 테러는 북한 놈들이 저지른 거지만, 어쨌든 그 테러도 이번 선거에 중요 변수가 될 거다.)

나비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곧 KAL 858 폭파 사건이 일어날 터.

솔직히 양김이 단일화를 한 이상, 북괴의 테러가 대선에 무슨 영향을 끼칠까 싶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대선은 어떤 면에선 사업보다 변수가 많았기에 KAL 858 폭파 사건을 막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었다.

‘무엇보다 희생자들을 위해서라도 테러를 막아야겠지.’

내가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하는데 노사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암살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어.)

“암살이라니, 갑자게 그게 무슨 말입니까?”

(김영산이 대선에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100%긴 하다. 하지만 무사히 대통령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야.)

“5공이 김영산 후보님을 암살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당선인 신분이 되기도 전에 암살을 당한다면 전대환 그놈은 계속 권력을 유지할 수 있지 않겠어?)

나는 눈을 부릅떴다.

아무리 그래도 암살이라니.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생긴다면, 6.29때 모였던 150만 명의 국민이 다시 모이게 될 거다.

아니, 150만 명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 어쩌면 500만 명 이상의 국민이 모일 수도 있을 터.

‘하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는 이야긴 아니야. 5공에 상식을 바라는 것부터가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이제 미래는 예측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 노사의 경고처럼, 언제나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는 게 좋을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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