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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161화 (161/300)

161화 파급력이 달라

(어떠냐? 단일화가 가능할 거 같으냐?)

노사가 불쑥 나타나서 그 같이 묻자,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힘들 거 같습니다.”

(그래?)

“두 사람 다 너무 고집이 셉니다. 직접 만나서 설득하지 않는 한, 단일화는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제는 두 사람을 직접 만나기도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내가 아무래도 혜성 그룹 회장이다 보니 대선 후보를 만나는 것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여당에서 온갖 의혹을 제기할 것이 분명하였으니.

(그럼 누구를 고를지도 아직 안 정한 거냐?)

“양김 중에 누가 되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저는 노태호 대표만 낙선하면 그걸로 만족입니다.”

내 말에 노사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단 말이지?)

나는 그런 노사의 모습에 눈을 빛내며 물었다.

“무슨 방법이 있으십니까?”

(일단 기다려 봐라. 나도 확실한 것은 아니니.)

“알겠습니다.”

노사라면 뭔가 좋은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노사만 믿고 있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반도체 호황이 드디어 시작되려 하고 있구나.)

“예. 미국의 일본 규제로 반도체 공급이 줄어들고 있답니다.”

(반도체의 성공으로 이한성이란 이름값을 다시 한번 증명했으니, 언론이 떠들썩해지겠어.)

“뭐 이름값 같은 건 이제 크게 신경 안 씁니다.”

노사의 말처럼 언론이 떠들썩해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언론에서 주장하는 대로라면, 나의 유일한 흠은 반도체였다.

반도체 적자만 한해 1,500억에 가까운 상황.

혜성 전자의 영업이익뿐만이 아니라, 다른 계열사의 영업이익까지 이 반도체 적자를 메꾸기 위해 사용되고 있었다.

이러니 언론에서는 반도체 사업이 나의 실책이라는 식으로 비판하였다.

그런데 그 반도체 사업이 이번에 빵 터져주고 있으니, 언론의 보도 방향도 바뀔 수밖에 없었다.

혜성 그룹의 광고비를 받는 언론들은 아마 찬양에 가까운 기사를 보도하지 않을까 싶었다.

유일하게 비판의 대상이던 혜성 반도체마저 큰 성공을 거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봤자 달라질 게 뭐가 있겠어?’

투자 조언을 해달라는 사람만 늘지, 실질적으로 좋아지는 것은 없을 거 같았다.

아니면 노태호 대표처럼 뇌물을 요구하는 정치인만 늘어나던가.

뭐가 됐건, 이제는 명성이나 이름값 같은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기로 하였다.

(대선 직전에 네 이름값이 증명됐다는 것은 결코 무덤덤하게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닐 거다.)

“예? 대선이 무슨 상관입니까?”

(너를 무슨 예언가처럼 여기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잖아? 그런데 이번에 반도체까지 대박이 났으니, 그들의 반응이 어떻겠냐?)

“놀라겠죠.”

(놀라는 정도가 아니다. 너의 말을 반드시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설령 네가 어떤 개소리를 지껄인다 해도 말이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세계 그룹의 양희수 회장님이나 일성 그룹의 이호승 회장이라면 내 말을 절대적으로 따라주지 않을까 싶었다.

(단순히 재계뿐만이 아니라, 정계에서도 너를 주목하는 일이 늘어날 거야.)

“정계에서도 말입니까?”

(너의 그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이 정계에서도 통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잖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생각해도 이상할 거 같지는 않아 보였다.

실제로 권오중 회장이나 다른 재벌 총수들도 대선과 관련해서 내 조언을 듣기 위해 찾아오지 않았던가.

‘양김도 내 말을 들어줬으면 좋을 텐데.’

과연 어떨지 모르겠다.

두 사람의 고집을 생각하면 내 명성이 아무리 올라도 설득이 통할 거 같지가 않은데 말이다.

‘그래도 해볼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지.’

이번 대선만 넘기면 다음 대선부터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혜성 그룹을 어쩌지 못할 것이다.

5년 뒤의 혜성 그룹은 대통령조차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세계적인 기업이 되어있을 테니까.

그러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태호 대표가 당선되는 것을 막아야만 하였다.

* * *

<이한성 회장, 반도체 결단을 성공으로 입증!>

<미국에서 천억 규모의 공급 계약을 따낸 혜성 반도체.>

<반대를 무릅쓰고 일성 반도체를 인수한 이유가 있었다!>

<애플 CEO, 존 스컬리. 반도체 공급 계약을 위해 급히 방한하다.>

혜성 반도체가 미국에서 천억 규모의 공급 계약을 따내자, 언론들은 매일같이 혜성 반도체에 대해 보도하였다.

안 그래도 앱설루트의 성공으로 혜성 그룹을 주목하고 있던 언론이었다.

그런데 또 다른 호재가 반도체에서 나오니,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지금의 반도체 호황이 언제까지 갈까?”

“몇 달만 가도 혜성 반도체는 적자를 만회하고도 남을걸?”

“매출이 그 정도야?”

“벌써 천억인데 시간이 갈수록 더 늘어나겠지. PC 붐에다가, 일본 규제까지 점점 심해지고 있으니 말이야.”

“와, 반도체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냐.”

“이한성 회장은 알고 있었으니까 생산 라인을 증설하고 일성 반도체까지 인수한 거 아니겠어?”

“반도체 시장이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다고? 그 양반도 진짜 대단하다. 도대체 몇 수 앞을 보고 사업을 하는 거지?”

“그러니 사업의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 거 아니겠냐.”

“투자의 귀재든, 사업의 천재든, 진짜 대단하다.”

기자들은 연신 감탄하였다.

처음 일성 그룹에서 반도체 사업을 도전했을 때도 비판적인 논조를 보여줬던 기자들이었다.

당연히 혜성 그룹의 도전은 더더욱 비판할 수밖에 없었다.

날이 갈수록 반도체 사업의 전망이 어두워졌기에, 반도체 사업을 포기한 이호승 회장의 평가는 올라갔고 반대로 반도체 사업을 고집하는 한성의 평가는 내려갔다.

하지만 갑자기 시작된 반도체 호황으로 이 같은 평가도 순식간에 바뀌었다.

끝까지 고집을 부려서 오만하다는 평가를 받던 한성이 결단력 있는 승부사로 평가받기 시작한 것이다.

“거참. 어린놈이 운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군.”

“운이라니, 김 회장. 저게 운으로 되는 일인가?”

“그러게 말이야. 그리고 운도 이 정도면 실력이지. 어떤 사업을 하든, 하는 족족 성공하면 그게 실력이 아니고 뭐겠어?”

“혜성 자동차의 매출이 올해 1조 이상이고, 전자도 1조인데 반도체까지 저리 터져주니, 재계 순위가 높아지는 것도 시간문제겠습니다.”

“이한성 회장의 실력이라면 재계 1위까지 순식간에 올라가지 않을까?”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가겠습니까? 미래 그룹의 매출도 매년 상승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왕 회장님이 노조가 설립된 일로 얼마나 상심이 크신데? 리더십이 흔들리는 이때, 혜성 그룹이 치고 올라가면 어떻게 막겠어? 애초에 혜성 그룹이 4위까지 올라올 거라고 누가 예상이라도 했던 일인가?”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혜성 반도체의 소식은 재계에서도 큰 파문을 일으켰다.

재계 4위의 대기업이 혜성 그룹이었다.

유일하게 혜성 그룹의 발목을 잡던 것이 혜성 반도체였는데 이제 그 족쇄도 풀렸으니, 재계 인사들로선 관심 어린 시선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 *

-혜성 그룹의 소식을 들으니 이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반도체라는 첨단 기술로 한국의 이름을 떨쳐줘서 고맙습니다. 이 회장님이야말로 이 나라의 진정한 애국자입니다.

“과찬이십니다. 저는 일개 기업가일 뿐입니다.”

김영산 후보의 말에 나는 겸손을 떨었다.

노사가 예측했던 대로 혜성 반도체의 매출이 크게 증가하자, 재계의 인사들뿐만이 아니라 정계의 인사들까지 나를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재벌 중 극히 드물게 국민들의 인정을 받고 있었다.

다른 재벌들과 달리 정부의 특혜를 받지 않고 오직 나의 능력만으로 무수히 많은 업적을 달성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내 과거사에 대해서도 재조명을 받고 있었는데, 내가 서자 출신에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마치 드라마의 주인공과 같은 과거를 가지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더욱더 호감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러니 정치인들, 양김 중 한 명인 김영산 후보까지 나를 주목하는 것이다.

돈도 돈이지만, 내가 누구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지지율에도 영향을 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회장님, 혹시 저의 공약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침 김영산 후보가 민감한 질문을 던졌다.

아마 그의 질문이 의미하는 바는 이렇지 않을까 싶다.

‘나를 지지한다면, 네가 원하는 공약을 세워주겠다.’

정치인이니 이렇게 돌려서 회유책을 건네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저야 다 만족스럽습니다. 통일 관련해서도, 노사 화합과 관련해서도 물론 지역의 균형 발전에 관해서도 다 만족하고 있습니다.”

나는 김영산 후보에게 따로 바라는 것이 없었다.

물론 IT를 키워주고 반도체와 해운 사업을 키워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정부의 지원 없이도 나 혼자서 클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러니 딴소리 말고 이기기나 해라.’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양김 중의 한 명이 대선에서 이기는 것이다.

하지만 김영산 후보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듯, 대선을 양보할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어 보였다.

나에게 러브콜을 날리는 것도 결국 김태중 후보를 견제하는 차원에서 그러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면 이 회장님, 김태중 후보의 공약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태중 후보의 공약도 전부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흠.

김영산 후보가 헛기침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의 표정이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인상을 와락 찌푸리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양김 중 누구도 선택하지 않고 있으니 그로서는 심기가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회장님의 생각을 도통 모르겠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전 국민의 뜻이 함께 만들어낸 6.29 선언이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확실하게 열매를 맺는 것. 이번 대선에서 바라는 것은 오직 그뿐입니다.”

나는 강한 어조로 그 같이 말했다.

누구를 지지하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화를 이룩하는 게 우선이라는 내 생각을 전한 것이다.

-이 회장님은 진심으로 노 후보를 우려하시는 겁니까? 국민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군 출신 노 후보를?

김영산 후보는 의문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역시 그는 자신의 경쟁자가 김태중 후보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거 같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렇습니다. 저는 노태호 후보가 30% 이상의 표를 받을 것으로 예측합니다.”

-허어.

내 말의 파급력은 예전과 달랐다.

예언가까지는 아니지만,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이 남다르다는 사실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니 김영산 후보도 내 말에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른 선거 때라면 몰라도, 지금처럼 양김이 박빙으로 싸울 때 30%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투표율이었으니 말이다.

“5공이 얼마나 두려운 세력인지 총재님이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들이 평화롭게 정권을 넘길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두 후보께서 분열하고 있는 것도 5공의 수작이란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마치 김영산 후보를 훈계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노태호 후보를 경계하라 직언해도 듣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5공의 수작이라. 하긴, 그들이 그냥 물러날 자들은 아니지요.

“부디 현명한 선택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이 회장의 조언은 제가 새겨듣겠습니다.

다행히 화내는 기색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 말에 정신이 번쩍 든 목소리였다.

‘조금 경각심을 갖게 된 거 같기는 한데,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모르겠군.’

설령 노태호 후보가 위협적인 상대인 것을 알아도 김영산 후보가 단일화를 선택할지 의문이었다.

권력욕이란 것은 원래 한 번 맛을 보고 나면 빠져나올 수 없는 덫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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