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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156화 (156/300)

156화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네

미래 그룹은 아직까진 노동자의 움직임을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동자들 사이에서 시위, 파업 등으로 불만의 목소리를 표출하고 있다지만, 경찰을 통해 강경 진압 몇 번 해주면 다시 수그러지니 예민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혜성 자동차, 역대 최고 성과급!>

<회장님이 쏜다! 금일봉으로 500명의 노동자에게 20만 원씩 지급한 혜성 그룹 회장!>

하지만 혜성 그룹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래 그룹의 임원들, 특히 미래 자동차 임원들은 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혜성 자동차를 비교 대상으로 삼던 언론이었다.

그런데 언론에서 혜성 자동차를 광고라도 하는 듯, 임금과 복지, 300% 규모의 성과급을 소개하니 노동자들의 불만이 커졌다.

“우리가 혜성 자동차보다 못한 게 뭐야? 매출도 더 많고 회사 규모도 훨씬 큰데 왜 우리는 혜성보다 적게 받아야 해?”

“그니까! 애초에 월급만 적은 게 아니잖아? 이번에 이야기 들어보니까, 복지부터가 차원이 다르더구먼!”

“혜성에서는 아플 때 병원 간다고 뭐라 하는 사람 아무도 없다더라. 토요일에는 오전 근무만 하고 보내준다던데?”

“내가 듣기로 거기는 학비도 지원해줘. 우리 같은 무식쟁이들도 학비 지원받으면서 공부할 수 있다니까?”

“성과급도 저리 큰데 복지도 많다고? 우리는 뭐냐?”

임금만 해도 거의 30% 이상 차이가 났다.

그런데 성과급까지 따지면 50%, 어쩌면 그 이상이 날 수도 있었다.

심지어 그 임금조차도 점진적으로 늘려가겠다고 혜성 그룹 회장이 직접 약속했으니, 앞으로 두 기업의 임금 차이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이러니 미래 자동차의 노동자들로선 불만이 안 생길 수가 없었다.

“상도덕이 없는 자 아닙니까? 아니, 자기만 성인군자예요?”

“진짜 빨갱이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빨갱이가 아니고서야 뭐 저리 노동자를 챙긴답니까?”

미래 자동차 임원들은 한성을 비난하기 바빴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뿐만이 아니라, 사무직 직원들까지 불만을 품기 시작하는 상황이었다.

임원들이라고 이런 노동자들의 불만을 느끼지 못할 리는 없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한성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이었기에 한성을 비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심지어 어떤 이는 한성 보고 빨갱이라 비난할 정도였다.

“임자, 대책을 세우라고 했더니 지금 저게 대책을 세우는 건가?”

왕주형 회장은 그런 임원들의 모습을 보며 미래 자동차 사장에게 질책하였다.

그러자 미래 자동차 사장은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사과할 시간에 대책을 마련하게. 대책을.”

미래 자동차 사장에게 한소리 한 왕주형 회장이지만, 그도 사실 알고 있었다.

현 상황에서의 대책은 임금을 인상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한 번 임금을 인상하면 끝도 없이 임금 인상을 요구할 것이 아닌가.’

한창 중요한 시기였다.

인건비에 발목이 잡힌다면 미래 자동차의 성장세도 여기서 멈추게 될 터.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를 만드는 것이 그의 오랜 꿈이었기에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는 절대 들어줄 수 없었다.

‘혜성 자동차만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시끄러워질 일이 아니었는데.’

원래도 그는 한성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자동차뿐만이 아니라 여러 산업에서 무서울 정도의 성장세를 보이며 미래 그룹을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지급한다는 300%의 성과급도 미래 그룹에 작지 않은 타격을 주기도 했고 말이다.

‘역시, 이한성 회장을 가만히 놔둬서는 안 되겠어.’

기화 자동차나 정우 자동차도 그에게 어떤 위기감을 느끼게 하지 못하였다.

한국에서는 오직 단 한 곳.

혜성 자동차만이 미래 자동차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왕주형 회장은 혜성 자동차를 본격적으로 견제하기로 마음먹었다.

* * *

6월이 되면서 민주화 시위는 더욱더 뜨겁게 불타올랐다.

노사가 말했던 대로 이제는 교수, 학생들뿐만이 아니라, 직장인과 가정주부, 택시 기사들까지 시위에 나서고 있을 정도였다.

‘이런 건 나비효과가 발생하지 않아서 다행이군.’

만약 나로 인해 민주화 운동이 실패로 돌아갔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민주화 운동은 노사가 이야기했던 것보다 더 뜨겁게 타올랐으면 타올랐지, 사그라들지는 않았다.

‘문제는 이 민주화 운동으로 우리 회사에까지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는 건데.’

월급도 미리 올려줬고 여러 복지도 마련해줘서 우리 그룹만큼은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그룹이 아니라, 우리 그룹의 하청 업체 정확히는 신광 산업이라는 자동차 부품 업체에서 파업이 발생하였다.

신광 산업은 혜성 자동차의 승용차 범퍼와 프레스 가공물을 전량 공급하고 있었는데, 이 회사에 파업이 발생함으로써 앱설루트 생산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왕주형이 이런 수작을 부릴 줄은 몰랐군.)

“왕주형이라면 미래 그룹 회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이번 일은 그놈이 저지른 일이다.)

나는 눈을 부릅떴다.

우연히 발생한 파업인 줄 알았는데, 설마 다른 그룹의 음모였다니.

“어떻게 된 일입니까?”

(단순해. 선광 산업에서 파업을 주도하는 놈들은 미래 자동차의 자리를 약속받았다. 돈도 몇 푼 받았고 말이야.)

“저를 견제하기 위해 그런 짓을 한 겁니까?”

(왕주형은 다른 기업들보다 너의 혜성 자동차가 가장 위협적으로 보였나 보다.)

이걸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기쁘지는 않았다.

뒤에서 그런 장난을 치는데 당연히 기쁠 수는 없었다.

‘왕 회장도 웃기는 사람이군. 본인 회사나 신경 쓸 것이지, 남의 회사를 분탕 칠 생각이나 한다니.’

다음 달만 돼도 본인이 파업과 시위 때문에 골치를 썩이게 될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 못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걸 예상했다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노조는 용납할 수 없다.’라는 발언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왕 회장의 눈에 흙을 퍼주든가 해야겠어.’

나는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하며 노사에게 물었다.

“미래 자동차를 어떻게 하면 좋을 거 같습니까?”

(뭘 어떻게 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너도 똑같이 갚아줘야 하지 않겠어?)

역시나 노사는 나와 생각이 똑같았다.

‘어차피 가만 놔둬도 노조 때문에 골치 썩게 될 미래 그룹이지만, 더 골치 아프게 만들어 주면 일이 재미있어지겠는데?’

우선 선광 산업과 관련해서 후속 조치를 비서실에 전달하고는 한성 주택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인정민 실장님. 지금 바로 사옥에 와주십시오. 실장님께서 해주실 일이 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겉으로 내세울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인정민 실장의 손을 빌리는 게 편했다.

경찰 출신인 인정민 실장은 복잡한 일도 쉽게 해내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미래 그룹에 리더십 있고 덕망이 높은 노동자들을 조사해주십시오.”

나는 인정민 실장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인정민 실장이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짓다가 물었다.

“한마디로 노동자들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알아 오면 되겠습니까?”

“예. 그들을 은밀하게 지원하여 노조를 만들게끔 유도해야겠습니다. 그것도 아주 강경한 노조를 말입니다.”

정정당당하게 미래 자동차를 쓰러뜨리고 싶었지만, 왕주형 회장이 먼저 선을 넘은 이상 나도 거리낄 게 없었다.

‘사실 이쪽이 나도 편하다. 미래 자동차가 노조로 발목이 잡힐 때, 치고 올라가면 그만이니 말이야.’

나는 노조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노사의 지식이 있으니, 세련되게 노조를 통제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미래 그룹은 어떨까.

왕주형 회장이라면 결코 노조와 타협하지 않으려고 들 거다.

그리고 왕주형 회장이 비타협적으로 나올수록 노조는 강경해질 터.

결국 노조와 경영진은 끝없는 전쟁에 들어갈 것이다.

이겨도 남는 게 없는 그런 전쟁을 말이다.

* * *

일요일이 되자 나는 화월관으로 향하였다.

노태호 대표를 보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훤칠하시군요. 10대 재벌 총수들 중에 가장 젊다는 말만 들었는데, 가장 잘생겼다는 말은 왜 못 들었는지 의문일 정도입니다.”

“과찬이십니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이 회장.”

“예, 알겠습니다.”

자리에 앉자, 그가 웃으며 물었다.

“춘부장은 건강하십니까?”

“예. 다행히 건강을 회복하셨습니다.”

“아들이 워낙에 회사를 잘 경영하니, 마음이 든든해서 그런가 봅니다.”

그는 연신 나를 칭찬하였다.

하지만 칭찬을 들을 때마다 나는 기쁘기보단 부담스러움을 느꼈다.

나를 잘 대해준다는 것은 그만큼 큰 요구를 하려는 의미로 해석해도 이상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 시국이 참 심상치 않아요. 그렇죠, 이 회장?”

여기서 ‘예, 심상치 않습니다.’라는 식으로 동조하는 발언을 해봐야 좋을 게 없었다.

5공 정권이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늘 그랬듯, 영명하신 각하께서 난국을 잘 극복하실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하,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이 회장?”

노태호 대표가 웃으며 물었지만, 눈은 왠지 차갑게만 느껴졌다.

“물론입니다.”

“역시 이 회장은 애국심이 남다른 거 같아서 보기 좋아요. 다른 재벌들은 벌써 딴마음을 품기 시작해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말이죠.”

“그렇습니까?”

“솔직히 저는 이해가 안 돼요. 우리만큼 기업인들을 신경 써주는 정치인들이 어디 있다고 저런 행보를 보이는 건지. 쯧쯧.”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 자동차 쪽도 아주 시끄럽다면서요? 혜성 그룹의 하청 업체에서도 파업이 발생했다던데, 이게 다 데모하는 그 작자들이 벌인 짓 아니에요? 정권이 저쪽으로 넘어가면 이런 일이 더 자주 발생할 겁니다. 아마 자동차 회사들은 매일같이 노동자들과 싸워야 할 거예요.”

그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는 너무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야당의 편을 들어봐야 좋을 게 없으니, 자신들 편을 들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내가 이도 저도 아닌 중립이라 생각하고 있나 보군.’

뭐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는 지금껏 5공과도 거리를 두었고 야당 세력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었다.

뒤에서 은밀하게 자금을 지원했을 뿐, 공식적으로 관계를 맺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노태호 대표로서는 나의 존재가 탐이 날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재계에서 가장 돈이 많다고 소문이 난 상태였으니 말이다.

“대표님 생각에 저도 동의합니다.”

딱히 그의 편을 들고 싶지는 않았지만, 면전에서 ‘나는 야당 편!’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대충 동조해주는 시늉을 해주자, 그가 마침내 본론을 꺼냈다.

“각하께서는 절대 인정하지 않으시겠지만, 제 생각으로는 곧 정부에서 직선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어요.”

“직선제 말씀입니까?”

“예, 이 회장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저는 일개 기업가일 뿐입니다.”

“하하, 그런가요?”

“예.”

“하지만 이 회장은 일개 기업가치고 자본이 지나칠 정도로 커요. 이 회장의 자금이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대선의 향방이 달라질 정도로 말이죠. 아, 물론 정부에서 직선제 요구를 받아들일 때 하는 이야기지만 말이에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을 총동원한다면 누구 한 명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였다.

뭐, 나로서는 그렇게 무리하면서까지 누구 한 명을 대통령으로 만들 이유가 없었지만 말이다.

‘어차피 가만히만 있어도 시장으로 권력이 넘어올 텐데, 구태여 무리수를 둘 필요는 없지.’

대통령보다 일성 그룹 회장의 영향력이 더 세질 날도 멀지 않았다.

물론 내가 바꾼 역사에서는 그 일성 그룹의 자리를 혜성 그룹이 대신할 것이다.

“이 회장.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만약 직선제로 개헌하게 되어 제가 대선에 나가게 되면 자금 좀 지원해 주세요.”

노태호 대표의 말에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놀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원을 해줘도 문제고 안 해줘도 문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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