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직원들 사기 증진에는 역시 돈이 최고야
혜성 자동차의 평택 공장은 항상 분주하기 그지없었다.
평택에서 앱설루트의 부품들을 생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예외였다.
공장 가동을 멈춘 채, 수백 명의 노동자가 강당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곧 회사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올 예정이었던 까닭이다.
“다들 정숙! 곧 회장님이 들어오실 예정이니, 정숙하세요!”
회장의 방문.
이 공장을 처음 인수했을 때를 제외하면 첫 방문이었다.
당연히 간부급 직원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볼 게 뭐가 있어서 회장이 친히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말단 직원은 예외였다.
혜성 자동차에 취업한 지 불과 반년째인 김종인은 작게 투덜거렸다.
그런 김종인을 보며 김재현 조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을 안 하고 쉬는 건데 고맙게 여길 것이지, 뭐가 그리 불만이야?”
“토요일이니 그냥 보내주면 더 좋았을 거 아닙니까?”
“네 녀석을 보면 정말 다른 기업에서 대졸자를 안 뽑는 이유를 알 거 같다.”
“아니, 왜 또 그런 말씀을 하고 그러십니까.”
“다른 기업이었으면 토요일에 일찍 보내주지도 않아. 오히려 야근까지 시켜서 일요일 새벽이 되어야 보낸다니까?”
“다른 기업과 비교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혜성 그룹 안에서 비교해야지.”
“또 사무직과 비교하게? 사무직도 똑같이 토요일에 근무하는데 뭘 또 비교해?”
“제가 대학교 동기들에게 들었는데, 사무직은 토요일에 커피만 마시다 그냥 간답니다. 거의 11시에 끝난다나?”
“그렇게 부러우면 너도 사무직 가지 그랬냐?”
김재현 조장의 말에 김종인은 어깨만 으쓱였다.
‘이놈은 도대체 왜 생산직으로 와서는 불만만 털어놓는 거야?’
보면 볼수록 한숨만 나왔다.
그는 혜성 그룹을 다니는 것에 아무런 불만이 없었는데, 김종인의 말을 듣다 보니 뭔가 아쉬운 점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동종 업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주고 휴가까지 잘 챙겨주는 혜성 자동차인데도 말이다.
“조장님. 부럽습니다.”
“갑자기 뭐가 부러워?”
“이따 끝나고 남아서 회장과 면담의 시간 갖지 않습니까?”
“뭐, 운 좋게 뽑혀서 회장님과 직접 대화할 시간을 갖게 됐다. 다른 놈들은 시간 아깝다는 식으로 말하기는 했지만 말이야.”
그룹 회장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것은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김종인 앞에서는 별로 티 내지 않았지만 사실 김재현 조장도 별로 달가운 기분은 아니었다.
그냥 편하게 집에서 쉬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회장을 만나면 우리 노동자를 위해 한마디 좀 해주시면 안 됩니까? 솔직히 사무직과 비교해서 너무 차별받고 있지 않습니까.”
“회장님한테 한마디를 하라고? 너 미쳤냐?”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면담의 시간을 갖는 거지 않습니까. 솔직하게 몇 마디 한다고 문제 될 게 있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미 반장에게 괜한 이야기 꺼내지 말라는 주의까지 들었는데, 차별 대우에 대해 이야기를 하라니.
‘자기 일 아니라고 아주 그냥.’
그때였다.
“회장님이 입장하고 계십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주십시오.”
회장이 입장한다는 소리에 김재현 조장은 결국 김종인에게 한소리도 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짝짝짝!
열렬히 손뼉을 치며 회장을 환영해 주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와, 진짜 어리게 생겼습니다.”
“어린 게 아니라 젊으신 거지.”
“참 부럽습니다. 저 나이에 혜성 그룹이라는 거대한 그룹의 주인이라니.”
“사는 세계가 다른 분이야. 부러워해 봤자 소용없어.”
“다 같은 한국인인데 사는 세계가 다를 게 뭐 있겠습니까.”
두 사람이 작게 대화를 나누는데, 회장이 입을 열었다.
“토요일이기도 하니, 최대한 짧게 끝내도록 하죠. 30분. 딱 30분 안에 끝내겠습니다.”
-와아아아!
30분 안에 끝내주겠다는 회장의 말에 사원들이 기쁜 함성을 내질렀다.
지금이 10시밖에 안 됐으니, 평소보다도 몇 시간 일찍 끝내는 셈이었다.
사원들로선 기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앱설루트가 이렇게 큰 성과를 낸 것은 여러분이 있어서입니다.”
그 말을 듣고 김재현 조장은 내심 뿌듯함을 느꼈다.
비록 자신이야 앱설루트 같은 고가의 차량을 살 엄두도 못 낸다지만, 그래도 자신이 앱설루트 제조에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미국에서까지 큰 성과를 내고 있다고 하니, 더욱더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고마운 것을 알면서도 우리를 그렇게 푸대접한답니까?”
“이 자식이, 또 뭐가 그리 불만이야?”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덕분에 앱설루트가 큰 성과를 낸 건데, 아직 성과급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하지 않습니까.”
“작년에 연말 성과급 받았잖아.”
“저는 그때 신입이라 별로 못 받았습니다.”
“신입인데도 받았으면 고맙다고 생각할 것이지.”
“전자에 동기 있는데, 거기서는 성과급이 연봉보다 더 많았답니다.”
김재현 조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성과급이 연봉보다 세다니.
그건 좀 부럽게 느껴졌다.
‘투자를 늘리는 바람에 올해도 흑자 전환이 어려울 거 같다던데, 올해도 성과급은 연말 성과급 하나로 끝이려나?’
솔직히 연말 성과급 하나만으로도 만족해야 할 처지이긴 했다.
그가 거하 자동차에 재직하던 시절에는 성과급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었으니까.
미래나 정우, 기화 자동차의 소식을 들어도 성과급은 거의 없다시피 했고 말이다.
하지만 대졸 출신의 김종인이 옆에서 계속 불만을 토로하니, 자신까지도 그 불만이 전염되는 느낌이었다.
‘진짜, 이따가 회장님께 이야기해 볼까?’
김재현 조장이 그 같은 생각을 할 때였다.
회장이 충격적인 발언을 하였다.
“여러분 덕분에 큰 성과를 보고 있으니, 그 보상의 의미로 이번 달에 성과급으로 월급의 300%씩을 지급해드리겠습니다.”
-와아아아아!
무려 300%의 성과급을 지급해 주겠다는 발언에 직급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직원이 함성을 내질렀다.
평소에 불만이 많았던 김종인도 이때만큼은 예외였다.
‘300%라니. 이러면 이번 달에 받게 되는 돈이 얼마야?’
자동차를 바꿔도 될 금액이었다.
물론 혜성 자동차는 못 사고, 기화 자동차처럼 저렴한 차로 바꿔야 할 테지만 말이다.
하지만 회장의 말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늘 제 이야기를 듣느라 고생하셨으니, 여기 있는 봉투를 한 명씩 가져가십시오. 금일봉으로 조금씩 넣어드렸습니다.”
금일봉이라니.
과연 회장이 주는 금일봉의 액수는 어느 정도일까?
김재현 조장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회장에게서 직접 금일봉 봉투를 건네받았다.
‘두둑하다!’
돈 봉투의 두께가 평소에 잡았던 월급봉투와 비교하면 작았지만, 그래도 꽤 두터웠다.
만 원짜리가 아니라, 천 원짜리로 채워졌어도 만만치 않은 액수일 거 같았다.
“헉, 20만 원이 들어 있는데요?”
“뭐? 20만 원씩이나?”
금일봉으로 20만 원이라니.
그것도 팀 단위로 주는 것도 아니고, 개인당 20만 원이었다.
강당에 모인 근로자의 수가 5백 명은 족히 되니, 거의 1억 이상을 뿌린 격이었다.
‘당연히 천 원짜리일 줄 알았는데, 만 원짜리였다니!’
회장님이 미쳤다!
김재현 조장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만 원이면 신인 월급에 가까웠으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조장님. 아까 했던 이야기 다 취소하겠습니다.”
“뭐?”
“아니, 제가 이런저런 불만들을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회장님께 그런 말을 하다니. 진짜 제가 바보였나 봅니다.”
김종인의 말에 김재현 조장은 순간 헛웃음을 지었다.
회장이라고 부르다가 갑자기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것부터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의 변화도 이해 못 할 것이 아니었다.
20만 원의 금일봉에 성과급까지 준다고 하지 않는가!
아무리 불만이 많은 사람이라도 이렇게 큰돈을 받는 상황에서 불만을 토로할 수는 없을 것이다.
* * *
“신문이 또 떠들썩하군요.”
“금일봉으로 억 단위를 뿌린 경우는 아무래도 드문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그룹에서는 앞으로 자주 있을 일입니다.”
이미 다른 공장에서도 나를 찾는 일이 많아지고 있었다.
근로자들이 오히려 회장의 얼굴을 보기 위해 안달 난 상황이라는 것.
나 역시 평택의 근로자들만 챙겨줄 수는 없었기에, 경기도권에 소재한 공장이라면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방문하여 금일봉을 나눠 줄 생각이었다.
‘사기 증진에는 역시 돈만큼 효과적인 게 없지.’
금일봉도 금일봉이지만, 성과급 역시도 큰 화제가 되었다.
300% 규모의 성과급은 그리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사실 나 역시도 혜성 자동차가 상장해 있는 회사였으면 이렇게 성과급을 뿌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근데 회장님, 괜찮겠습니까? 다른 자동차 기업에서 분명히 가만히 있지 않을 거 같은데.”
진봉현 비서실장이 살짝 우려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우나 미래의 반응을 걱정하시는 겁니까?”
“예, 아무래도 요즘 파업이 자주 벌어지고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는데 우리 그룹에서는 성과급을 뿌리고 있으니, 다른 기업에서도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괜한 우려는 아니었다.
우리가 우리 돈을 뿌린다는데 문제 될 게 뭐가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원래 사람 일이라는 것이 그랬다.
누가 잘 나가면 별 이유 없이 시기하고 질투하기도 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인건비 문제로 시위나 파업이 벌어지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고.
“어쩔 수 없습니다. 미래나 정우 때문에 노동자의 권익을 침해할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딱히 나라고 노동자의 권익을 보장해주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작은 봉제 회사를 경영했던 경험이 있어서 노동자를 친숙하게 여기긴 해도, 나는 재계 4위의 재벌 회장이었다.
위치가 위치다 보니,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할 수는 없었다.
회사 이윤이 더 중요하였으니.
하지만 시국이 시국인 만큼, 노동자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곧 우후죽순 노동조합이 만들어질 텐데, 괜히 미래 그룹처럼 강경한 포지션을 취해 봐야 좋을 게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다른 기업은 신경 쓸 거 없고 지금은 우리 그룹만 신경 쓰면 될 거 같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비서실장님. 노동자들의 갖는 불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장 크게 불만을 느끼는 것은 월급인데, 일단 그 문제는 해결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거 같습니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300%의 성과급은 혜성 자동차의 전 직원에게 지급될 예정이었다.
원래도 업계에서 가장 잘 챙겨주는 혜성 자동차였는데, 300%의 성과급까지 더해졌으니 돈 가지고 불만을 느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돈 다음으로 갖는 불만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무래도 사무직과 생산직 간의 차별 대우가 돈 다음으로 갖는 불만이 아닐까 싶습니다.”
“차별 대우라. 쉽지 않은 문제군요.”
“예. 진급의 경우는 솔직히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아무래도 사무직이 대졸자가 많아서 더 우대받을 수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생산직은 진급에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승진해도 고위 직급에는 거의 올라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사무직 중간관리자가 생산직 최고위자보다 높은 권한을 가지는 경우도 허다하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해도,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그냥 넘어가면 이 또한 명분이 되어 과격한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는 빌미가 될 수도 있었다.
나는 미래에 생길 미래 자동차의 노조처럼 회사를 을이라고 생각하는 노조를 만들 생각이 티끌만큼도 없었다.
노조가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었지만, 서로 상부상조할 수 있는 그런 노조가 만들어지게끔 의도할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불만을 최대한 억누를 필요가 있었다.
‘야간 대학이든 뭐든 간에 최대한 학력을 높일 수 있게끔 도와줘야겠어.’
고졸 또는 중졸 노동자들을 회사 차원에서 석사, 박사를 딸 수 있게 도와주고 그렇게 노력한 사람들 위주로 승진을 시킨다면 불만이 해소되지 않을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