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연 매출 3조?
“판매 개시 하루 만에 3천 대가 넘는 계약을 따냈고, 현재는 총 8천 대의 계약을 따낸 상태입니다!”
혜성 자동차 임원이 그 같이 브리핑을 하자, 나는 손뼉을 쳤다.
그러자 나를 따라 다른 임원들이 손뼉을 치기 시작했는데, 얼굴들이 하나같이 흥분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한 달도 안 돼서 천억의 매출을 따다니.’
겉으로야 평온한 척을 하고 있지만, 나도 속으로는 강렬한 희열감과 성취감을 느끼고 있었다.
앱설루트의 판매가는 1,200만 원이었다.
천 대만 팔려도 120억이었는데, 무려 8천 대나 팔린 상태였다.
뉴 코렌드와 다른 버스, 오토바이 등을 제외하고 오직 앱설루트 하나만으로 천억 매출을 달성한 것이었다.
다른 계열사였으면 1분기 또는 반년에 걸쳐서 벌어들일 매출을 단 3주 만에 벌어들였으니 그 희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판매 트림이 최고급 사양에 주문생산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소비자들이 우리 앱설루트를 럭셔리 자동차로 인정했다는 뜻이군요!”
“사실상 그렇게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임원들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매출과 판매량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지만, 앱설루트가 ‘럭셔리 자동차’로 인정받았다는 사실 또한 만족스럽기 그지없었다.
비록 벤츠의 이름값이 큰 역할을 했다고는 해도,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외제차에 버금가는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올해 판매 목표가 1만 대인데, 지금 기세라면 2만 대도 가능할 거 같군요.”
내가 그리 말을 꺼내자, 하운철 대표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수출까지 고려하면 5만 대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5만 대라…….”
과연 그게 가능할까?
만약에 가능만 하다면 실로 엄청난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차 한 대로 6천억의 매출을 기록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렇게만 된다면 혜성 자동차도 1조 매출을 달성할 수 있겠군요.”
버스나 오토바이 쪽에서도 꾸준하게 매출이 나오고 있었다.
뉴 코렌드 역시도 연 3천억에 가까운 매출이 나오고 있었고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앱설루트가 빵 터져준다?
그러면 연 매출 1조도 꿈이 아니었다.
‘그룹 매출 3조도 꿈이 아니지.’
다른 기업들도 3저 호황을 겪으며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었다.
혜성 그룹이라고 성장세에서 밀릴 수가 없으니, 올해 목표는 3조로 잡는 것이 좋을 거 같았다.
“다들 잘 해주셨습니다.”
“저희가 한 게 뭐가 있겠습니까. 다 회장님께서 지시를 내리신 대로 했을 뿐인데 말입니다.”
“맞습니다. 앱설루트의 성공은 회장님의 지분이 100%입니다!”
아부하는 임원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픽 웃었다.
사실 아부라고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내가 아니었으면 앱설루트는 애초에 개발되지도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 사실을 굳이 내 입으로 말할 필요는 없었기에 나는 웃으며 화제를 전환하였다.
“지금까지 잘해주셨지만, 앞으로가 더더욱 중요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미국 진출에 성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 말에 임원들은 다시금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 진출도 세계 진출이지만, 현재로선 세계 시장보다는 미국 시장에 확실하게 자리를 잡는 것이 중요하였다.
다른 나라들 다 합해봤자, 미국에서 발생하는 매출보다 높을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마케팅 부서를 감독하여 더 참신한 마케팅을 연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 역시 법적으로 문제 될 것이 있는지 다시금 검토하겠습니다.”
임원들의 말에 나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전부 다 능력으로 인정받은 인재들이라서 그럴까?
지금까지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혜성 자동차의 임원들이었다.
그런 임원들이 저렇게 믿음직한 모습으로 한마디씩 하니, 걱정 같은 게 완전히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임원들을 믿고 맡기면 미국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겠군. 뭐, 마케팅 같은 경우는 노사의 조언을 듣는 게 좋겠지만 말이야.’
* * *
3월에 새로이 기화산업 그룹의 아시아 자동차 회장으로 선임된 천현무 회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가격이 네 배 차이 나는데도 판매량이 거의 비슷하다니.”
기화 자동차가 새로 출시한 프리드의 시판가는 3백만 원이었다.
반면에 혜성 자동차에서 출시한 앱설루트는 무려 1,200만 원.
가격이 이 정도로 차이가 난다면 당연히 프리드의 판매량이 앱설루트의 판매량을 압도해야 하는 게 맞았다.
인지도도 업계 2위인 기화 자동차가 훨씬 높다고 볼 수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기화에서 판매량을 압도하기는커녕 온갖 할인 공세를 했음에도 혜성 자동차가 근소하게 판매량을 앞서가고 있었다.
매출은 당연히 네 배 이상 났고, 영업이익으로 따지면 아마 다섯 배 이상 차이 나지 않을까 싶었다.
‘야구에서도 기세가 매섭더니, 설마 승용차까지 이렇게 큰 성과를 보일 줄이야.’
혜성 팰리스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야구단이었다.
전문가들은 물론이요, 전북 야구팬들까지 혜성 팰리스의 순위를 하위권으로 예상하였다.
선수 숫자는 겨우 17명에, 올해 막 리그에 참전하는 신생팀이었으니, 저평가를 당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혜성 팰리스는 예상외로 크게 선전하고 있었다.
김영일이 벌써 6선발 승을 거두며 에이스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냈고, 타선도 만만치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샤롯 자이언츠와의 광주 3연전 맞대결에서는 그야말로 싹쓸이 승리를 거두었을 정도였다.
야구단이고, 그룹이고 그야말로 승승장구를 거듭하고 있었던 것이다.
‘후우. 아시아 자동차 회장직을 괜히 받았나 싶군.’
프리드를 개발하는 데 엄청난 자금이 소요되었다.
적어도 10만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해야 투자 손실을 만회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지금 기세를 보면 10만대는커녕 5만 대도 어려워 보였다.
그리고 프리드의 판매량이 저조하면 저조할수록 천현무의 입지도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5만 대를 달성하지 못한다?
임기도 마치지 못하고 회장직에서 물러나게 될 것이리라.
‘어떻게든 해외에서 성적을 내야 하는데, 문제는 혜성 자동차가 미국 진출을 선언했단 말이지.’
이전부터 활발하게 미국 시장에 진출하고 있던 혜성 자동차였다.
뉴 코렌드가 미국에서만 수백억의 매출을 기록했단 사실은 업계 관계자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앱설루트는 뉴 코렌드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돈을 쏟아가며 미국 진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케팅 비용만 200억이 넘을 거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역시 미국은 피하고 다른 나라를 공략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겠군.’
천현무는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업계 2위로서 자존심이 있지, 혜성 자동차와의 싸움이 무서워서 미국을 포기해야 한다는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승용차 부문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6년 전의 기화 자동차와 달리, 지금의 기화 자동차는 승용차 부문에서 약자라고 분류해도 이상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 * *
이호승 부회장, 아니 일성 그룹의 회장으로 취임한 이호승 회장이 모처럼 혜성 그룹 본사를 찾아왔다.
“신차가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했다고 들었습니다.”
“분에 넘치는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만, 아직 시장에 안착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는 아닙니다.”
“그렇습니까? 우리 그룹 임원들도 앱설루트를 타고 다니던데, 역시 이 회장님은 방심을 모르는 분이신 거 같습니다.”
“앱설루트의 연 매출 목표는 6천억입니다. 목표치에 다다르려면 갈 길이 멉니다.”
원래는 기껏해야 천억 정도가 목표였다.
워낙 고가여서 럭셔리 브랜드로 안착하는 것을 우선시할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국으로 수출하기도 전에 이미 목표를 달성하였다.
지금 기세대로라면 정말 6천억도 꿈이 아닐 것이다.
“6천억이라…… 자동차 회사들이 잘 나간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실로 엄청나군요.”
이호승 회장은 부러워서 미치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JS 그룹이 떨어져 나간 상황에서도 일성 그룹에는 고부가가치를 지닌 계열사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이호승 회장도 내가 부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성 그룹에 아무리 고부가가치를 지닌 계열사가 많아도 연 매출 6천억은커녕 그의 절반인 3천억이 넘는 계열사도 많지 않았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이호승 회장은 자동차광으로 유명하다지?’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부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을 터.
그래서일까?
이호승 회장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한성 회장님. 혹시, 저희가 자동차 산업에 진출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흠, 자동차 산업이 탐나시는 겁니까?”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나는 눈에 이채를 띄었다.
이호승 회장이 자동차 산업에 진출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 사실을 나에게 알려주었다는 것도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당연히 나를 믿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닐 테고…… 설령 자동차 산업에 진출해도 나와 싸우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
아마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이호승 회장은 이미 나에게 처참한 패배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토록 미련을 가졌던 반도체 사업부조차 포기해야 할 정도의 패배였다.
당연히 그로서는 나와 다투는 것에 대해 부담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제가 뭐라고 이호승 회장님께 조언하겠습니까?”
“나이야 제가 많다지만, 재벌 총수로서의 경험은 제가 훨씬 미숙하지 않습니까? 선배의 조언이라 생각하고 어떤 조언이라도 따끔하게 받습니다.”
일성 그룹의 회장이 이렇게까지 저자세를 취할 줄이야.
뭐 지금의 일성 그룹이 예전의 일성 그룹이 아니라고 하지만, 후계자로 오랫동안 군림했던 그가 이렇게 자세를 낮추기는 쉽지 않았을 터.
나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고는 그에게 직설적으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호승 회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지금 시점에서 일성 그룹이 자동차 산업에 진출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신문에서도 자주 나왔듯, 이미 자동차 업계는 미래, 기화, 정우, 혜성 이렇게 네 개의 기업이 4강 체제를 이루는 것으로 완전히 고착화 되었습니다. 일성이 아무리 대단한 기업이라 해도 지금 업계의 판도를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단순히 일성 그룹이 위협적인 기업이라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 솔직한 생각으로도 지금 시점에 일성 그룹이 자동차 산업에 진출해봤자 득 될 것이 없어 보였다.
올해부터 2년 뒤까지가 딱 재미를 볼 시점인데, 지금 자동차 시장에 진출한다면 이런저런 준비를 하느라 2년은 기본적으로 허비하게 될 것이다.
암흑기까지는 아니어도, 자동차 시장이 어려워질 때 사업을 시작해야 하니, 여러모로 시기가 안 좋다고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제가 이호승 회장님을 말리려는 가장 큰 이유는, 인건비 때문입니다.”
“인건비요?”
“현재 자동차 한 대를 생산하는데 인건비 비중은 5%가 채 안 됩니다. 하지만 제가 장담하는데, 3년 안에 인건비 비중이 10%에 가깝게 오를 겁니다.”
“……!”
겨우 두 배라고 볼 수 있었지만, 사업하는 입장에선 겨우 두 배가 아니었다.
인건비가 오르면 당연히 수출가도 오를 수밖에 없었고 이는 결국 경쟁력 약화를 불러일으킬 게 분명하였다.
“제 말이 믿어지지 않으신다면, 7월까지만 지켜보십시오. 업계 1위인 미래 자동차부터가 큰 소란에 빠지게 될 겁니다.”
나는 마치 예언자라도 되는 듯,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이건 예언도 뭣도 아니었다.
민주화의 흐름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필연이나 다를 게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노사가 미래 그룹의 내밀한 사정까지 알려주고 있으니, 미래 자동차가 어떻게 될지는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아마 노사가 알고 있는 미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