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투자천재-150화 (150/300)

150화 최소한 만 달러는 넘겨야지

‘신진호 회장이 돈을 많이 쓴다면 나야 좋은 일이지.’

하지만 아쉽게도 신진호 회장은 야구에 돈을 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제가 듣기로 고성을 지르고 난리가 아니었다 합니다. 자이언츠 감독을 불러와서 반드시 혜성만은 이기라고 호통을 쳤다나?”

“신 회장다운 반응이군. 하하하!”

“하지만 저만큼이나 돈을 쓸 생각은 절대 못 할 겁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신 회장이 수전노인 것은 재계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권오중 회장은 피식 웃으며 그리 말하더니, 이내 화제를 전환하였다.

“이 회장도 참 대단한 거 같아.”

“갑자기 뭐가 대단하다는 겁니까?”

“승용차 개발을 거의 끝냈다며? 올해에 2.28 조치가 끝날 걸 어떻게 알고 승용차 개발을 지시한 건가?”

아무래도 권오중 회장의 본론은 이게 아닐까 싶었다.

하긴, 자신과 관련 없는 야구 이야기만 하려고 나를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도 사업에서는 누구보다 진지한 재벌 총수였으니 말이다.

“시작부터 말이 안 되는 정책이었습니다. 아무리 꽉 막힌 정부라 해도 그런 정책이 오랫동안 시행될 리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그런 예측 하나로 승용차 개발을 지시했다고?”

권오중 회장이 눈을 크게 떴다.

그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2.28 조치란 다름 아닌, 자동차 산업 합리화 조치를 말한다.

즉, 미래 자동차를 비롯한 극히 일부 자동차 회사를 제외하면 승용차 사업을 법적으로 금지한 정책이었는데, 이 정책으로 기화 자동차조차 승용차 개발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혜성 그룹은 이런 정책이 한창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승용차를 개발하는데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은 것이다.

“허어. 나는 내가 승부사라고 생각했었는데, 자네를 보니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었군. 확실하지도 않은 일에 3년 이상 투자를 거듭하다니 말이야.”

“그냥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 좋은 건지, 감이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이 회장은.”

한때 적이나 다름없었던 권오중 회장에게 그 같은 칭찬을 들으니 뭔가 기분이 어색하였다.

‘권오중 회장이 이 정도의 반응을 보여주면 언론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는군.’

그룹의 임원들이야 이미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준 상태였다.

반도체에 막대한 투자를 거듭하고 있음에도 우려 반응이 더 나오지 않는 것도 나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졌기 때문이었다.

아마 자세한 상황을 알고 나면, 언론에서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이 회장, 자네가 아무리 대단해도 우리 로망의 명성을 꺾을 수는 없을 거야. 암! 로망을 꺾기엔 백 년도 이르지.”

“…….”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웬일로 나를 칭찬하는가 싶더니…….

‘백 년은 무슨. 3년 안에 꺾어드리겠습니다.’

기고만장한 권오중 회장을 향해 나는 속으로 말했다.

* * *

1987년이 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2.28 조치가 끝이 나면서 어떠한 독점도 없는 무한 경쟁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었다.

“임자, 기화에서 승용차 출시를 앞두고 있다던데, 사실이야?”

미래 그룹 회장 왕주형은 다소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예. 3월 말에 출시할 예정으로 지금은 마케팅을 준비하고 있다 합니다.”

“모델명은 뭔지 아나?”

“프리드로 정했다고 합니다.”

“프리드라.”

왕주형 회장은 턱 끝을 쓰다듬었다.

기화 자동차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일찍 승용차를 출시한다고 해서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누가 뭐래도 기화 자동차는 국내에서 미래 자동차를 위협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이니 말이다.

하지만 왕주형 회장은 이내 걱정을 털어냈다.

‘기화가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지금 당장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야.’

기화 자동차는 2.28 조치로 인해 승용차 개발을 거의 6년 가까이 중단한 상태였다.

작년에서야 뒤늦게 개발을 다시 진행했다지만, 이미 시대에 뒤처진 이후였다.

엔진부터 디자인까지, 모든 면에서 미래 자동차에 밀릴 것이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혜성 자동차에서도 승용차를 곧 출시한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 왕주형 회장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솔직히 기화 자동차가 승용차를 출시한다는 거야 들어줄 만 한 이야기였다.

기화 자동차는 원래도 승용차를 생산했던 기업이니, 다시 생산하는 거로 생각하면 크게 이상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혜성 자동차라니?

SUV와 버스를 생산하기 바쁜 혜성 자동차에서 승용차까지 출시한다는 말이 선뜻 믿기 어려웠다.

“벌써 개발이 끝난 거야?”

“예, 벤츠와 협약해서 몇 년간 개발한 끝에 만들었다고 합니다.”

왕주형 회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혜성 자동차가 벤츠와 협약했다는 것은 진즉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다.

SUV의 제왕이 된 뉴 코렌드부터가 벤츠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왕주형 회장이 이를 모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설마 승용차까지 이렇게 빨리 개발에 성공할 줄은 몰랐다.

‘도대체 이한성 그자는 돈이 얼마나 많은 거야?’

반도체에 투자하고 있는 돈도 천문학적이었다.

그런데 제재가 언제 풀리지 확실치도 않은 상황에서 승용차까지 개발하다니.

돈이 넘치지 않고서야 이런 식으로 돈을 쓰지는 못할 것이다.

“아무래도 기화보다 혜성이 더 위험하겠어.”

“혜성은 승용차를 생산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기업인데도 말입니까?”

“반도체나 가전제품은 이전부터 생산한 적이 있어서 저리 성과를 보는 것인가?”

“…….”

“임자. 임원들을 불러서 단단히 경고해. 혜성을 상대하는 일에 방심하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왕주형 회장은 지금 이 순간, 자동차 판매량 2위인 기화 자동차보다, 4위에 불과한 혜성 자동차를 위협적인 회사로 생각하였다.

혜성 자동차의 사주인 한성이 그만큼 위협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 * *

“새로 출시되는 자동차의 모델명은 어떻게 됩니까?”

“2.28 조치가 끝이 날 걸 어떻게 아시고 소형차를 개발하신 겁니까? 혹시 정부와 어떤 유착 관계가 있었던 거 아닙니까?”

“소형차 개발에 투입한 자금이 500억이 넘는다는데 사실입니까?”

새로 지어진 잠실의 사옥에 기자들이 떼거리로 몰려왔다.

그들은 온갖 것을 물었는데, 가장 많이 나오는 주제가 자동차였다.

‘이젠 야구 이야기보다 자동차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오는군.’

확실히, 그룹의 마케팅 부서가 일을 잘하는 거 같았다.

프로 야구 창단으로 받게 된 국민적인 관심을 자연스럽게 자동차로 옮겼다.

원래라면 큰돈을 주고 광고를 해야 했을 텐데, 마케팅 부서의 활약으로 크게 돈 들이지 않고 신차를 홍보하게 된 것이다.

“회장님, 오셨습니까?”

“예, 비서실장님.”

“오시는 데 불편한 점은 없었습니까?”

“워낙 기자들이 많이 몰려와서 그게 불편했습니다.”

“경비실에 전하겠습니다.”

“직원들이 곤란하지 않게끔 잘 조치해주십시오.”

“예, 그리고 하운철 대표가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봉현 비서실장의 말에 나는 알겠다고 답변한 뒤, 곧바로 소회의실로 향하였다.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혜성 자동차도 어서 잠실로 옮겨야 할 텐데, 제가 혜성 건설에 다시 한 번 독촉해보겠습니다.”

“그러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

“출시 준비는 잘 마무리되고 있지요?”

“물론입니다. 출시가만 정하면 지금 당장 출시해도 문제가 없을 겁니다.”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마침내 혜성에서도 승용차를 생산할 날이 왔다.

그것도 무려 벤츠와 합작해서 생산하는 아주 멋진 승용차를 말이다.

몇 년 전부터 고대하고 고대하던 일이었기에 나는 기분이 들뜰 수밖에 없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허허, 저보다는 직원들과 연구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물론 벤츠의 직원들도 고생이 많았고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벤츠의 직원들이 우리 연구원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우리 민족이 모든 걸 빨리빨리 하지 않습니까? 배우는 것도 워낙에 빨라서 벤츠가 많이 놀란 거 같습니다. 아마 벤츠의 경영진은 우리에게 대외 수출을 허락한 걸 지금쯤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을 겁니다.”

그 말을 들으니 자부심이 생겼다.

역시 우리가 지금은 기술력이 부족할 수 있어도, 잠재력만큼은 어떤 나라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았다.

혜성 그룹의 직원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고 말이다.

“아무튼, 출시가만 정하면 된다고 하니, 어서 출시가를 정하고 출시 일정을 잡아야겠군요.”

“예, 회장님께서 출시가를 정해주시면 저희가 편할 거 같습니다.”

“임원들이 생각하는 출시가는 어느 정도입니까?”

“아무래도 벤츠와 합작한 자동차이고, 전자제어식 서스펜션 등, 시대를 앞서가는 첨단 안전장비가 탑재되어 있으니 럭셔리 자동차로 분류해야 합니다. 가격으로 따지면 천만 원 안팎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천만 원이라.”

나는 턱 끝을 쓰다듬었다.

몇 년 전이었으면 외제차도 아니고 천만 원이 말이 되느냐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그때도 세금 때문에 외제차가 비싼 거였지, 실질적인 가격은 5백만 원 정도에 불과했다.

국내산 자동차의 가격은 당연히 그보다 훨씬 낮았고 말이다.

하지만 1986년부터 한국의 경제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재벌 임원급이나 고위 공무원들만이 자동차를 타고 다녔다면 이제는 빌라촌에서도 흔하게 자동차를 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니 승용차가 천만 원이 넘는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었다.

하물며 혜성 자동차에서 출시하는 ‘앱설루트’처럼 럭셔리 차를 추구한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고.

‘뉴 코렌드도 잘 팔렸으니, 출시가가 1,200만 원이어도 충분히 될 거 같은데?’

당연하겠지만, 이미 나는 실물을 본 상태였다.

그렇다 보니 자신이 있었다.

출시가를 1,200만 원 이상으로 해도 연 5천 대 이상 판매할 수 있으리라.

“그럼 해외 수출가는 1만 달러가 넘겠군요.”

내 말에 하운철 대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게, 내수가와 해외 수출가는 조금 차이를 둬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차이를 둔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회장님도 물론 아시고 계시겠지만, 정우의 자동차도 그렇고 미래의 자동차도 그렇고 판매가가 5,000만 달러를 넘지 않습니다.”

“그런데요?”

“가격이 낮은 것은 도요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역시 1만 달러를 넘기지 않으려고 안달 내고 있습니다.”

“즉, 1만 달러를 넘기면 수출이 어려울 거 같다는 말씀입니까?”

“예. 어려울 겁니다.”

하운철 대표는 단호하게 말했다.

“혜성 자동차가 해외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저가 브랜드를 지향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뜻입니까?”

“미래 그룹이나 정우 그룹처럼 십만 단위의 판매량을 기록하려면 가격을 낮추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다른 나라는 어떨지 몰라도, 일단 미국에서의 한국 자동차는 그리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그야말로 ‘싸서 타는 차.’에 불과하였다.

아니, 도요타 역시도 저가 브랜드로 인식되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니 동양 자동차 전체를 안 좋게 인식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만 단위의 수출을 기록하려면 하운철 대표의 말처럼 가격을 크게 낮추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한 번 저가 브랜드로 안착하면 그 이미지를 극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웬만해서는 전문가인 하운철 대표의 말을 듣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노사의 조언으로 미래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민주화 운동의 영향으로 곧 노동자 대투쟁이 벌어질 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노동자 대투쟁으로 가장 크게 피해를 받게 될 산업이 자동차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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