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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146화 (146/300)

146화 별세하다

“자멸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김종우 회장이 눈을 끔뻑이며 되물었다.

한창 잘나가고 있는 혜성 그룹이 자멸한다고 하니 그로선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제가 또 일본 기업들과 친하지 않습니까? 일본에서 혜성 반도체에 대해 말들이 많다고 합니다.”

신진호 회장이 일본 기업들과 친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애초에 일본에서 출발한 기업이었으니, 몇몇 재벌 총수들은 아예 샤롯 그룹을 일본 회사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건 김종우 회장이라고 다르지 않았기에, 신진호 회장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경청하였다.

“일본에서 어떤 말들이 오갔답니까?”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과 같은 기술력이 부족한 나라에서도 도전할 수 있는 산업입니다. 그리고 그 말은 자유중국이나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결론이 뭡니까?”

신진호 회장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까지 말해줬으면 알아들을 것이지, 번거롭게 하는군.’

역시 재벌 총수 노릇 하기에 여러모로 부족한 인물이었다.

한마디로 수준이 낮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렇다고 인제 와서 김종우 회장을 배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그는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앞으로 반도체 산업의 경쟁이 더욱더 치열해질 겁니다. 일성 반도체에서 적자가 얼마나 났는지 아시죠? 1년에 천억이 넘습니다. 혜성 반도체는 생산 라인도 증설했고, 일성 반도체까지 인수했으니 적자가 2천억이 넘을 수도 있습니다.”

“허, 2천억이요? 그 정도면 미래 그룹도 버티기 힘들 거 같은데요?”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어쨌든 올해만 해도 1,500억 이상의 적자가 나올 겁니다.”

신진호 회장의 말을 듣고 김종우 회장은 크게 웃었다.

“하하하! 그럼 이한성, 그놈이 멍청한 선택을 한 것이로군요!”

“언론에서 말했던 대로, 젊은 혈기가 일을 망친 거 아니겠습니까?”

“어리다고 나대더니, 그렇게 될 줄 알았습니다.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두 사람은 마치 혜성 그룹이 망하기라도 한 것처럼 기뻐했다.

반도체에 문외한인 그들이 보기에도 반도체 시장은 암울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 * *

나는 오랜만에 동생의 남자친구인 김동현을 만났다.

“형님, 잘 지내셨습니까?”

“너는 잘 지냈냐?”

“예, 잘 지내긴 했는데, 설마 형님과 이런 식으로 재회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내가 말했잖아. 언젠가 일성 반도체를 능가할 것이라고.”

“능가할 거라고만 했지, 일성 반도체를 아예 먹어버릴 거라고 한 적은 없지 않습니까.”

김동현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러자 김동현도 미소를 짓고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인제 저도 혜성 반도체의 직원이니 회장님이라고 불러야겠습니다.”

참고로 김동현의 소속은 일성 전자의 반도체 사업부였다.

본래 다른 부서에 있었다가, 이호승 부회장이 반도체 사업부로 옮기게 한 건데, 혜성 반도체가 일성 전자의 반도체 사업부를 인수함으로써 그도 혜성 반도체로 오게 되었다.

“둘이 있을 때는 평소처럼 형님이라고 불러.”

“그래도 되겠습니까?”

“사석에선 그래야지. 곧 처남남매 사이가 될 텐데.”

두 사람이 사귄 지도 벌써 5년째였다.

원래였으면 결혼하고도 남았을 시점이었다.

‘나 때문에 이렇게 결혼을 늦게 하게 됐지.’

내가 결혼을 늦게 하는 바람에 지혜도 결혼을 늦출 수밖에 없었다.

결국에 20대 중후반의 나이까지 노처녀로 있다가 이제야 시집을 가게 된 것.

‘집이랑 차밖에 해줄 게 없어서 미안했는데, 김동윤이 우리 회사로 왔으니 앞으로 해줄 수 있는 게 많겠어.’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김동윤에게 말했다.

“다른 직원들의 반응은 어때?”

“반응이요?”

“일성 그룹의 직원이었다가, 혜성 반도체의 직원이 되는 거잖아. 내가 생각하기에 탐탁지 않아 하는 직원들도 있을 거 같은데.”

“글쎄요.”

김동윤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요즘 일성 그룹의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오히려 기뻐하는 직원들이 더 많습니다.”

“그래?”

“예, 그리고 애초에 혜성 그룹은 일성 그룹과 비교해도 규모가 거의 비등하지 않습니까? 요즘 언론에서는 빅 5라고 말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사실상 빅 5나 마찬가지지.”

“그래서 딱히 부정적인 여론은 없는 거 같습니다. 무엇보다, 혜성 그룹이 젊은 기업이라서 기대를 하는 직원들이 많습니다.”

“승진에 대한 기대감이겠군.”

“예. 일성은 아무래도 올라갈 자리가 한정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직원들의 반응이 그렇다면 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 같았다.

* * *

“언론의 반응은 예상대로군요.”

(그야 그렇겠지. 일성 그룹조차 포기한 사업이니 말이야.)

내가 지금까지 이룬 성과가 있음에도 언론은 나의 도전을 폄훼하기 바빴다.

반도체 산업의 시장성을 부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비웃기 바쁠 거다.)

“다른 나라요?”

(일성 전자가 그래도 나름대로 인지도가 있는 기업이지 않으냐. 그런 일성 전자의 반도체 사업부를 듣도 보도 못했던 혜성 반도체란 곳에서 인수하니, 얼마나 우습게 느껴지겠어?)

“식견이 짧은 것은 외국도 마찬가지군요.”

(특히 일본의 반응이 그렇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일본이란 나라는 좋아할 수가 없는 나라인 거 같았다.

(일본에서는 혜성 그룹이 90년대가 되기 전에 몰락할 것이라고 거의 확신하는 분위기야.)

“본인들 미래도 모르면서 남의 미래를 예단하다니. 우습기 짝이 없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90년대가 되면 잃어버린 10년이니 뭐니 그런 소리를 할 작자들이 일본이었다.

그런데 우리 혜성 그룹을 보고 90년대도 보지 못할 그룹이라고 폄훼하다니.

‘나중에 후회하게 해줘야겠어.’

그날도 이제 멀지 않았다.

미국 기업들과 일본 기업들이 하나둘 메모리 반도체에서 철수하고 있었다.

곧 메모리 반도체의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는 시기가 올 터.

그때가 되면 지금 나를 비웃기 바쁜 작자들도 후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호승 부회장은 시스템 반도체 사업에 진출할 생각이 있어 보입니까?”

(반반이다. 지금 그의 상황에서는 결정을 내리기가 힘들 거야.)

“하긴, 아직 후계가 확정 나지 않은 상황이니 섣부르게 행동할 수도 없겠군요.”

(그래도 곧 어떤 식으로든 결정을 내릴 거다. 이병건 회장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 거 같거든.)

“…….”

나는 노사의 말을 듣고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도 1987년에 별세하게 될 이병건 회장이었다.

지금은 상태가 더 안 좋으니, 노사가 기억했던 것보다 훨씬 일찍 별세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일성 그룹이 과연 어떻게 될지 모르겠군.’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이미 반도체를 가져왔으니.

그래도 일성 그룹이 빅 5의 일원인 만큼, 관심이 없을 수는 없었다.

이명승 사장과 사적으로 처조카 사위 관계이기도 했고 말이다.

‘이왕이면 이명승 사장이 회장직을 이었으면 좋겠는데, 그건 아마 힘들겠지?’

* * *

누가 뭐라 하건 간에 나는 반도체 사업에 투자를 거듭하였다.

마치 그룹의 운명을 반도체에 걸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언론에서는 이런 나를 두고 폭주하는 기관차라고 하였다.

노사가 이야기하기를, 일본에서는 그보다 훨씬 심한 말이 오고 간다나?

“회장님. 이병건 회장님이 한 시간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이병건 회장이 결국 뇌사 상태로 별세하였다.

향년 77세였다.

“유언이나 유서는 있답니까?”

“그런 이야기는 따로 들은 것이 없습니다.”

“만약에 유서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일성 그룹의 후계 경쟁이 더 복잡해지겠군요.”

물론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이명승 사장이 회장직을 잇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지만, 이호승 부회장의 바뀐 태도를 보면 그리 절실하지도 않았다.

솔직히 누가 된다 해도 나로선 나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이명승 사장의 전화가 왔다.

나는 그가 후계 경쟁을 도와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이명승 사장은 그저 부고 소식만 전달하였다.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뭔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예의상 물어보았다.

“혹시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겠습니까?”

만약 그가 후계 경쟁을 이기는 데 도와달라고 한다면 몇 가지 조언 정도는 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이명승 사장은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지금까지 이 회장께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이 이상 폐를 끼칠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폐라니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에요. 이 회장에게 미안해서라도, 더는 도움을 받지 않겠습니다.

나로서는 의외의 답변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시점에 나의 도움을 거절하다니. 후계 경쟁에서 이기는 데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말이야.’

솔직히 나였으면 엎드려 절을 해서라도 도움을 청했을 것이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시점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더 말하지 않고 알겠다 하며 전화를 끊었다.

당사자가 거절하는데 내가 권하기도 뭐 했던 것이다.

‘이명승 사장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곧 알게 되겠지.’

그렇게 통화가 끝나자, 유지은이 착잡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고모부는 괜찮아 보이나요?”

“많이 힘들어하시는 거 같습니다.”

“그런가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명승 사장님은 마음이 강하신 분이니, 훌훌 털고 일어나실 겁니다.”

“고모부가 너무 안타까워요. 이병건 회장님과 제대로 화해하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가시다니. 아마 고모부는 평생을 후회하며 살 거예요.”

나는 아무 말 없이 유지은의 어깨를 감싸주었다.

* * *

이병건 회장의 빈소.

역시 일성 그룹의 창업주라서 그런지, 재계 사람들은 물론이고, 각계 지도자까지 빠짐없이 조의를 표명하였다.

나 역시 직접 빈소를 방문하여 조문하였다.

“다들, 일성 그룹이 앞으로 어떻게 될 거 같습니까?”

“역시 장남이 회장직을 잇지 않겠습니까? 상주도 장남이 섰는데 말입니다.”

“글쎄요. 부회장은 삼남인데, 부회장이 회장직을 잇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이호승, 그자는 소문이 안 좋지 않나요? 믿기 어려운 소문까지 나돌던데, 과연 그런 자가 회장직을 이어도 될지.”

뇌사 상태에 빠졌을 때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어서 그런 것일까?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뒤에서 정치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내 장례식 때도 이러려나?’

모르겠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구자성 회장님.”

상주인 이명승 사장과 몇 마디 나누고 장례식장 뒤편으로 가니, 은성 그룹의 구자성 회장이 와 있었다.

“이 회장도 오셨군요.”

“재계의 별이 졌는데 오지 않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재계의 별이라. 그렇죠.”

“뭔가 심경이 복잡해 보이십니다.”

“그럴 수밖에요. 한때는 누구보다 든든한 동료였고 또 한때는 원수나 다를 게 없었던 사람이 영면에 들어갔는데.”

구자성 회장은 그렇게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겁니다.”

“지옥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을까 걱정입니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새삼스럽지만, 이 회장이 정말 부러워요. 그 능력과 젊음. 내게 그 두 가지가 있었다면 은성 회장 자리도 포기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나는 난감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저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흰소리를 하고 말았군요. 일 보세요. 이 회장.”

“예, 들어가십시오.”

오늘따라 구자성 회장의 뒷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저분을 여기서 보다니.”

“허어, 그러게 말이야. TV에서나 보던 분 아닌가.”

그때였다.

갑자기 사람들이 내 뒤를 보며 작게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누가 왔길래?’

구자성 회장이나 내가 왔을 때는 무덤덤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저런 반응을 보이니, 나도 괜히 궁금해졌다.

‘김태중 선생님이잖아?’

뒤를 돌아본 나는 눈을 부릅떴다.

한때 내가 존경했던 김태중 선생이 빈소에 들어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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