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투자천재-141화 (141/300)

141화 내가 빌려줄게

“TMSC요?”

(파운드리 회사다. 다른 기업에서 설계를 넘겨받아 생산에만 집중하는 회사라고 볼 수 있지. 즉, 반도체 생산만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를 만들라는 뜻이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기업이라면 결국, 우리 혜성 반도체의 경쟁자라는 뜻인데, 경쟁자의 반도체를 생산한다니?

설령 우리 혜성 반도체에서 그러길 원한다고 해도 경쟁자가 과연 우리 반도체에 생산을 맡길지가 의문이었다.

“혜성 반도체에 따로 자회사를 설립하면 되겠습니까?”

(내 말에 오해가 있을 수 있겠군. 파운드리 회사를 만들라고 해서 혜성 계열사로 만들라는 뜻은 아니다. 손정의나 스티브 잡스 아니면 네가 최근에 투자한 한제인 등, 다른 이에게 권유해봐. 파운드리 회사를 만들라고 말이야.)

“아, 그런 뜻이었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모든 의문을 해소하지는 못했다.

TMSC라는 기업이 정확히 어떤 기업인지 모르기에 노사의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저희가 자본력이나 기술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구태여 생산을 다른 기업에 맡길 필요가 있습니까?”

(비메모리에는 주문형 반도체(ASIC), 마이크로프로세서, 마이크로컨트롤러 등 그 종류가 한도 끝도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혜성에서 이 모든 반도체를 생산해봤자 수지가 안 맞아. 차라리 생산은 다른 기업에 맡기고 설계에만 집중하는 게 낫다.)

노사의 설명을 들으니 얼추 이해가 갈 거 같았다.

하긴, 일성 그룹에서 시스템 반도체를 외면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양산 효과가 작다는 이유 말이다.

“그런데 파운드리라는 게 유망하다고 보십니까?”

(당연히 유망하다. 미래에는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이, 시스템 반도체 설계는 미국, 생산은 대만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TMSC가 반도체 생산에 있어 세계적으로 엄청난 위상을 가지게 돼. 오죽하면 일성 전자보다 시가총액이 높을까?)

“그 정도입니까? 도대체 매출이 얼마나 되기에……?”

(연 매출로 따지면 아마 50조가 넘을 거다. 영업이익도 20조가 넘을걸?)

“……!”

경악스러웠다.

기껏해야 남의 제품을 외주 생산해주는 곳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벌까 의심했었다.

그런데 매출이 50조라니?

너무 터무니없게 느껴지는 액수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50조라니. 차라리 우리 그룹에서 파운드리 회사를 만들고 싶을 정도군요.”

(도박성이 짙어서 추천하지는 않는다. TMSC가 성공했던 배경도 여러 운이 따라준 결과야. 물론 대만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도 한몫했지. 태생부터 공기업이었거든.)

“그렇습니까.”

하기야, 일성 전자보다 시가총액이 높은 기업이 되는 게 쉬울 리가 없었다.

기술력도 기술력이지만, 외주를 따내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냥 내 일에나 집중하자.’

애초에 성공 확률이 높았다면 노사가 진즉에 추천해줬을 것이다.

인제 와서 TMSC를 거론하는 것은 그만큼 성공 확률이 높지 않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그러면 이 파운드리 회사를 누구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까?’

넥스트사?

나는 가장 먼저 스티브 잡스의 넥스트사를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스티브 잡스의 성격을 생각하면, 절대 불가능해 보였다.

그라면, 기술력도 있고 자본력도 있는데 굳이 파운드리에 집착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다른 반도체 회사들이 스티브 잡스가 CEO로 있는 넥스트사에 외주를 맡길 일도 없었고 말이다.

그렇다면 손정의의 소프트뱅크는 어떨까?

일단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소프트뱅크는 SW를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생산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주로 유통으로 매출을 올린다.

유통과 외주는 다르다고 볼 수 있지만, 자체 생산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볼 수 있었다.

손정의라면, 파운드리 기업의 역할에 집중해주지 않을까 싶었다.

일본 회사이니, 우수한 인력을 구하기도 쉬울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일본이라서 또 싫단 말이지.’

노사의 설명대로라면 TMSC는 대만의 대표적인 기업이 된다.

한국에서 일성 전자를 취급하는 것과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나?

만약 일본에서 TMSC와 같은 기업이 만들어지면 일본에 여러 이로운 효과를 줄 것이기 때문에 나는 뭔가 껄끄러운 기분이었다.

뭐 애초에 일본의 최저 임금을 생각하면 지금 시점에 파운드리 회사를 만드는 것이 수지 타산에 맞는지도 의문이었고 말이다.

‘결국, 선택지는 한제인 사장뿐인가?’

내가 파운드리 기업을 만들 사람으로 한제인 사장을 점찍을 때, 노사가 말했다.

(나는 이만 가볼 테니까, 시스템 반도체는 아까 말했던 것처럼 해라. 생산 시설은 따로 짓지 말고 연구소만 지어.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투자 금액이 필요할 거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호승과도 한 번 만나볼 수 있으면 만나보고. 그놈도 지금은 반도체에 집착하고 있지만, 그렇다 해서 반도체를 회장직보다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을 거다.)

맞는 말이었다.

아무리 반도체를 그룹의 미래라고 생각한다지만, 그룹을 못 얻는다면 그런 가정도 무의미하였다.

내가 이호승 부회장이라 해도 나란 사람을 적으로 두느니, 차라리 반도체를 팔아넘기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 * *

세계 그룹에서 나와 동현 무역을 창업한 한제인은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회사를 창업했으니 사장인 그가 바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이 회사를 차린 건 후회가 없다.’

사회적인 지위로 따지면 세계 그룹에 재직하던 시절에 비해 많이 낮아졌다고 볼 수 있었다.

그때는 무려 재계 10대 기업의 부회장이었고, 지금은 자본금만 많은 중소기업의 사장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제인은 동현 무역을 창업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세계 그룹은 장인의 회사였고 동현 무역은 그만의 회사였다.

자신의 회사를 키운다는 그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최근, 동현 무역은 나름대로 성과도 보이는 중이었다.

디자인도 좋고 품질도 우수한데 영업력이 부족하여 외국에 팔리지 못했던 한국의 제품들을, 세계 그룹에 재직하던 당시에 구축했던 영업망을 이용하여 수출하자, 조금씩 반응이 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한성 회장님의 덕이라고도 볼 수 있지.’

새로 회사를 창업했을 때, 자본이 있느냐 없느냐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아무리 아이템이 좋아도 자본이 없으면 실패할 수도 있고, 반대로 자본이 많으면 성공할 것을 더 크게 성공시킬 수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제인은 한성의 도움을 받아 성공했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한성이 무려 30억이나 지원해주지 않았다면, 이렇게 빨리 성과를 거둘 수가 없었을 것이니 말이다.

따르릉!

그때였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려서 수화기를 드니 익숙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전해졌다.

-한제인 사장님. 저 이한성 회장입니다.

그 목소리를 듣고 한제인은 순간 움찔하였다.

하필 한성의 목소리를 지금 듣게 될 줄은 예상 못했던 것이다.

“예, 전화 받았습니다. 말씀하십시오. 회장님.”

-오늘 시간 됩니까?

한제인은 시계를 봤다.

워낙에 바쁜 하루를 보내다 보니 스케줄이 없는 날이 없었다.

오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한성이 보자는데 비싸게 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물론입니다. 언제든 불러만 주십시오.”

-그럼 오늘 저녁에 뵙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어떤 일로 저를 찾으시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한제인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상대는 재벌 총수이기 이전에 동현 무역의 대주주였다.

경영권에 따로 간섭하지는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사내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으로 보자면 오히려 한제인보다 더 막강한 것이 한성이었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설마 질책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지금까지 크게 성과가 없었으니 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한성의 입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그룹에서 새로운 사업을 해볼까 하는데, 한제인 사장님께서 도와주실 일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 불안감은 사라지고 오히려 기대감이 생겨났다.

혜성 그룹은 빅 5로 언급될 정도로 거대한 재벌 그룹이었다.

그런 기업에서 신사업을 하는데, 동현 무역이 낀다면 그 콩고물은 엄청날 것이 분명하였다.

“예, 알겠습니다. 이따 저녁에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통화가 끝나자 한제인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 이한성 회장님의 투자를 받은 것이 최고의 선택이었어.’

동현 무역에서 성과를 보이고는 있었지만, 한제인은 내심 미래의 먹거리 사업을 고민하고 있었다.

겨우 계열사 하나로 만족할 그가 아니었던 것이다.

불황이 오면 무역 사업이 위태로워질 것도 걱정이었고 말이다.

‘과연 혜성 그룹에서 어떤 사업을 할지 기대가 되는군.’

그가 그런 기대를 하며 한성을 만났을 때, 한성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예? 반도체를 외주 생산한다는 말씀입니까?”

신사업이라기에, 아예 새로운 사업을 할 거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한성이 하려고 하는 새로운 사업이란, 그와는 전혀 관계가 없을 거 같은 시스템 반도체였다.

‘도대체 나보고 뭘 도와달라는 거지?’

그가 속으로 의아해하고 있을 때, 마침 한성이 그의 의문을 해결해 주었다.

“단순하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희는 메모리 반도체를 설계하고 생산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니, 동현 반도체에서 시스템 반도체의 생산을 담당해 주십시오.”

“그럼 저희 동현 반도체는 혜성 반도체 말고 다른 기업의 외주를 받아도 되는 겁니까?”

“예. 동현 반도체는 말 그대로 생산만 담당하여 우리 혜성 반도체의 제품뿐만이 아니라, 다른 기업의 제품까지 생산하는 겁니다.”

한제인은 턱 끝을 쓰다듬었다.

솔직한 그의 심정을 말하자면, ‘난감하다’였다.

반도체가 첨단 산업으로서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도 알고 있었다.

혜성 그룹의 외주를 받는다면 일거리가 없어서 공장이 놀 이유도 없으니, 사업성도 썩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일단 가장 큰 문제는 어떻게 반도체 생산 시설을 갖출지였다.

대기업에서도 어려워하는 것이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것인데, 자본금이라고 해봐야 50억도 안 되는 동현 무역에서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기는 벅찰 수밖에 없었다.

“저희가 과연 반도체 생산을 할 수 있을까요?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동현 반도체를 설립한다 해도, 공장이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도 아닐 텐데…….”

“공장이나 생산 시설은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혜성 그룹에서 말씀입니까?”

“예, 아시겠지만 지금 혜성 그룹에서는 두 개의 라인을 동시에 증설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생산 시설을 짓는 것에 있어서 혜성 그룹만큼 전문가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래도 시스템 반도체와 메모리 반도체는 생산 시설도 다르지 않습니까?”

“해서, 인텔의 직원을 영입했습니다.”

“인텔이요?”

“예, 150명의 전문가를 영입했으니 생산 라인을 갖추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한제인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한성의 추진력이 남다르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무리 그래도 세계 최고의 반도체 회사인 인텔의 직원까지 대거 영입하다니.

‘정말 작정하고 시스템 반도체를 키우려나 보군.’

한성의 의지를 알게 되니, 한제인도 동현 반도체를 설립해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불과 4년도 안 돼서 재계 10위의 기업을 빅 5의 재벌 그룹으로까지 성장시킨 것이 한성이란 인물이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실패를 경험해보지 않은 한성이니, 그를 믿고 파운드리 사업을 한다면 동현 반도체도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거 같았다.

“다른 기업의 외주를 받아내는 일도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퀄컴이나 넥스트 등, 미국의 IT 기업에 동현 반도체와 한제인 사장님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한성이 이렇게까지 말을 하니, 더욱더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이한성 회장님의 말대로 동현 반도체를 설립하는 방향으로 가보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겁니까? 어떤 문제든 제가 적극적으로 도와드리겠습니다.”

실로 든든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한제인은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요구사항을 말하였다.

“자본금이 문제입니다. 동현 무역의 자본으로는 동현 반도체를 설립하기엔 역부족입니다.”

“제가 빌려드리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돈을 빌려주겠다고 말하는 한성의 모습에 한제인은 반색하였다.

역시 재력으로는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 사람다웠다.

부럽기 그지없었지만, 그가 자신의 편이란 생각을 하니 그저 든든하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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