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투자천재-136화 (136/300)

136화 사고 없이 치러지길

언론의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진퇴양난에 빠졌던 혜성 자동차, 결국 팬더 사 인수 포기하기로.>

<빅 5로의 도약을 선언한 혜성 그룹, 하지만 지금은 역부족.>

우리 그룹이 인수를 포기하니, 마치 엄청난 실수를 한 것처럼 보도하는 언론이었다.

어떤 언론은 혜성 그룹이 빅 5가 되기는 멀었다는 식으로 보도하기도 하였다.

‘재미있군. 과연 나중에 어떻게 태세를 전환할지 궁금한데?’

몇 년만 지나도 알게 될 것이다.

팬더 사를 인수해서 얻을 게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그나저나 정우 그룹까지 난리를 칠 줄이야.’

<정우 자동차, 팬더 사 인수전 참가. 자동차 업계 지각변동 예고!>

<권오중 회장, ‘팬더 사를 인수하여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를 만들겠다!’ 선언!>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르망 공장을 유치하고 자사의 자동차를 미국에 열심히 수출하고 있으면서 이제는 팬더 사까지 노리다니.

‘확실한 건 권오중 회장이 저리 나오는 건, 나 때문이라는 거지. 원래는 팬더 사에 관심조차 보내지 않았었으니 말이야.’

언론은 나를 낮게 평가하는데, 오히려 재벌 총수들은 나를 비정상적으로 높게 평가하고 있는 듯싶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정우 그룹이 팬더 사를 노릴 이유가 없었다.

‘이유야 뭐가 됐든 나로선 나쁠 게 없겠어.’

정우 그룹이고, 쌍호 그룹이고 팬더 사를 두고 서로 경쟁하겠다는데 나는 기쁘게 구경하면 될 거 같았다.

어쨌거나 팬더 사에 관한 소식은 거기까지만 보기로 하였다.

나는 다른 신문의 앞장을 펼쳤다.

<86경기 실행체제 돌입!>

<중공, 세 차례로 입국.>

<아시안 게임 중 TV 편성 크게 바뀔 예정.>

9월이 되면서 아시안 게임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러자 전국적으로 아시안 게임의 열기로 달아올랐다.

사실 나로서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기에 무덤덤하였지만, 국민이나 언론 입장에서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아시안 게임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 따라 88 올림픽의 성패도 결정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이번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으로 외국인들에게 한국이란 나라를 각인시키고 하고 싶어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찬 국민들이기에 열기도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부디 이번에는 아무 사고 없이 잘 치러졌으면 좋겠군.’

물론 금메달까지 중공보다 더 많이 따낸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거 같았다.

* * *

아랍계 사내가 김포 공항을 둘러보았다.

처음 입국했을 때도 느꼈던 거지만, 김포 공항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깔끔한 분위기였다.

유럽의 주요 공항들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물론 그래 봤자 경비 수준은 후진국에 불과하겠지만 말이야.’

사내, 슐레이만 삼린은 차갑게 웃으며 입국 게이트 쪽으로 향하였다.

“비행기 도착 예정 시간이 몇 시랬지?”

“1시에 도착하기로 했으니, 지금쯤이면 도착했을 거 같습니다.”

“정중히 모셔오자고. 사령관님의 아내가 될지도 모르는 여자이니 말이야.”

프레데리케 크라베.

그가 기다리는 여성의 이름이었다.

조직의 우두머리인 아부 니달과 그렇고 그런 관계인 여성이었는데, 사실 삼린이 그녀를 기다리는 이유는 고작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크라베에게 잘 보이기 위해 기다리는 것이 아닌, 그녀가 들고 올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폭탄만 도착한다면 테러는 반쯤 성공한 거나 다름없다.’

삼린이 기다리는 것은 바로 폭탄이었다.

영국인으로 위장한 크라베가 폭탄 제조에 필요한 재료들을 운반하기로 한 것이다.

‘다른 나라였으면 이렇게 허술하게 계획하지 않았지만, 후진국에서는 이 정도야 문제가 될 게 없겠지.’

그가 소속된 조직 SAS는 무기 밀매, 마약 밀매, 청부살인 및 테러, 납치를 전문적으로 실행하는 범죄 조직이었다.

유럽에서는 SAS 가장 위험한 테러 조직이라 부르기도 하였는데, 작년 한 해에만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에서 테러를 자행했을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삼린에게 한국에서의 테러는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누구를 직접적으로 암살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공항에서 폭탄을 설치하기만 하면 됐으니 말이다.

“저쪽이 입국 게이트인 거 같습니다.”

“그녀도 보이는군.”

영국인으로 위장한 게 무색할 정도로 눈에 띄는 차림을 한 크라베가 삼린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삼린이 그런 크라베를 향해 마주 손을 흔들려다가 무언가를 보고서 안색을 구겼다.

‘공항 검색대가 언제 이렇게 바뀌었지?’

며칠 전에 그가 한국으로 입국했을 때만 해도 한국의 공항 보안은 형편없는 수준이었었다.

유럽의 공항에는 필수로 갖추어져 있는 검색대도 갖추지 않은 채, 거의 몸수색으로만 폭발물이나 총기 따위를 찾아냈다.

그마저도 미국인이나 영국인 같은 선진국의 사람이라면 몸수색도 하지 않았다.

가방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고 묻는 정도의 형식적인 조사만 할 뿐이었다.

크라베를 영국인으로 위장시킨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겨우 며칠 만에 김포 공항의 보안 체계는 유럽의 그것처럼 바뀌어 있었다.

금속 탐지기에 전문적인 검색대까지 갖추었던 것이다.

‘이거 왠지 불안한데?’

지금껏 무수히 많은 테러를 성공한 그의 직감은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삼린은 다급하게 발걸음을 돌리며 자신의 심복에게 지시를 내렸다.

“지금 바로 공항을 빠져나간다.”

“예?”

“그녀랑 눈 마주치지 마!”

심복은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직감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대처는 늦은 감이 있었다.

웨에에에엥!

크라베가 공항 검색대를 지나는 순간, 요란한 사이렌이 울렸다.

“젠장!”

불안한 예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는 거 같았다.

‘하필 후진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이탈리아나 오스트리아에서도 위기라고 할 만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때는 폭탄을 설치한 뒤, 비행기를 타고 유유히 그 나라를 벗어났었다.

그런데 후진국이라고 방심한 것인지, 한국에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경찰들이 그녀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그녀가 문제야? 우리까지 다 잡히게 생겼어! 어서 움직이기나 해!”

경찰들은 처음 겪는 상황에 잠깐 당황하면서도 사이렌의 진원지를 확인하고는 크라베를 검거하였다.

아마 곧 크라베의 짐에서 폭탄 재료를 발견할 테니, 삼린도 서둘러 공항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거기 두 사람! 잠깐 멈춰 서십시오!”

그때였다.

갑자기 경찰들이 두 사람을 향해 달려왔다.

아무래도 아까 크라베와 눈인사를 한 것을 누군가 본 모양이었다.

‘경찰의 반응이 이렇게 빠르다니. 젠장!’

한국의 공항 보안이 이렇게까지 엄중한 줄 알았으면 절대 이런 식으로 테러를 계획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럽에서 그랬던 것처럼 최대한 신중하게 행동했을 터.

하지만 인제 와서 후회해봤자 늦었다.

삼린은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이내 양손을 번쩍 들었다.

그가 제아무리 뛰어난 테러리스트라 해도 경찰들에게 포위된 상태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빌어먹을 노스 코리아! 이런 나라를 겨우 5백만 달러 주고 테러하게 시키다니!’

거저먹는 돈이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렇게 발목을 잡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 * *

공항에서 폭탄 테러기도 사건이 일어났다는 소식에 한국 국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아시안 게임이 코앞인데 이게 무슨 일이래!”

“그러게 말이야. 터지지 않아서 다행이지, 폭탄이 터졌으면 어쩔 뻔했어!”

“하늘이 도왔지! 만약 폭탄이 터졌으면 아시안 게임이고, 88 올림픽이고, 우리가 준비했던 게 허사가 되었을 거야!”

온 국민이 관심을 두고 있는 아시안 게임이었다.

자칫 테러로 인해 아시안 게임이 제대로 시작도 못 해 보고 실패로 끝이 날 뻔했으니,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개 같은 북괴 놈들. 우리가 잘되는 꼴은 죽어도 보기 싫은가 봐!”

“당연하지, 그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신길동인지 뭔지 하는 그 빨갱이 놈도 금메달을 땄을 때, 적을 쏘는 심정으로 권총을 쐈다고 했잖아!”

“근데 범인들은 외국인이라던데? 아직 북괴가 저지른 것인지는 모르는 일 아닌가?”

“북괴가 아니라면 누가 이런 짓을 해! 그 외국인 연놈들도 북괴의 사주를 받고 저지른 것이겠지!”

그렇게 국민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테러의 주범이 확실한 북한을 씹어댈 때, 언론에서 새로운 내용의 기사가 뿌려지기 시작했다.

그 기사에는 폭탄 테러를 막아낸 요인이 금속 탐지기를 비롯한 최신형 보안 시설이라고 설명하면서 이 보안 체제를 갖추자고 주장한 게 누구인지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들었어? 테러를 막은 게 노태호 여당 대표라던데?”

“노태호가 테러를 막았다고?”

“그 양반이 올해 초까지 아시안 게임 준비 위원장이었잖아. 그때 보안 시설도 감독했었다더라.”

“허어, 군인 출신이라서 그런지 역시 보안을 생각하는 게 남다르네.”

“괜히 차기 대통령감이란 소리가 나온 게 아니라니까!”

보안 체계에 첨단 장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한성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한성이 아닌, 노태호 여당 대표를 추켜세웠다.

* * *

“하하, 고맙습니다. 윤 장관. 장관 덕에 내 체면이 많이 세워졌습니다.”

노태호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후임으로 위원장을 맡게 된 윤희봉 장관을 치하하였다.

그러자 윤희봉 장관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뭘 한 게 있다고요.”

“한 게 없다니, 윤 장관 덕에 북괴의 테러를 막았지 않습니까. 하하하!”

만약 김포 공항 테러를 막지 못했다면, 국가 위신도 위신이지만, 노태호 자신에게도 화가 미쳤을 게 분명하였다.

아시안 게임을 유치하고 올해 초까지 준비 위원회를 맡았던 게 바로 그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테러범이 범죄를 저지르기도 전에 체포함으로써 오히려 상황이 좋아졌다.

인터폴이 전하기를, 테러범의 정체는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은 SAS라는 테러 조직의 이인자였다.

그야말로 거물 중의 거물인 것.

한국은 그런 거물 테러리스트의 테러를 막았고, 그렇게 테러를 막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아시안 게임 준비 위원회가 있었다.

공항의 보안을 강화하게 지시한 것이 바로 아시안 게임 준비 위원회였으니 말이다.

결국, 모든 공은 올해 초까지 아시안 게임 준비 위원장을 맡았던 노태호에게 돌아갔다.

노태호는 순식간에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일부 여당 지지자들은 이미 그를 차기 대통령으로 내정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저보다는 혜성 그룹의 이한성 회장의 공이 컸지요.”

“이한성 회장이라. 확실히 그자가 공항 보안에 첨단 기기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었지요.”

윤희봉이 공을 다른 사람에게로 돌리자, 노태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역시도 알고는 있었다.

이번에 공을 세운 사람은 정부나 여당의 인물이 아닌, 민간 그것도 재벌의 인물이란 사실을 말이다.

“걸물은 걸물인가 봅니다. 사업도 잘하면서 이런 식의 운까지 따라주다니.”

“예.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는 마치 하늘이 따라주는 거 같습니다.”

“하늘이 따라준다고요?”

“워낙에 하는 일마다 잘 돼서 말입니다. 혜성 그룹의 성장세를 보면 무시무시하지 않습니까?”

“뭐 그건 그렇군요. 재계 10위였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빅 5로 거론될 정도니.”

노태호는 턱 끝을 쓰다듬었다.

굳이 윤희봉의 말이 아니어도 그는 한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애초에 정부에게 특혜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승승장구하는 모습만 봐도 한성의 능력이 다른 재벌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봐야 했다.

‘이번에 팬더라는 자동차 회사를 인수하다가 실패했다고 하는데, 내가 인수를 도와줘서 인연을 만들어볼까?’

한성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노태호는 개인적으로 한성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했다.

그의 덕에 테러를 막아낸 것과 다름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은혜도 갚을 겸, 한성과의 인연도 만들 겸, 어려움에 부딪힌 그를 도와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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