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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133화 (133/300)

133화 감히 내 사람을 노려?

“허억!”

인정민은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악몽을 꿨는지, 그의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또 악몽 꿨어?”

“으, 음.”

“경찰 현역 때도 악몽을 안 꾸더니, 요즘은 왜 그런데?”

아내가 그리 묻자 인정민도 답답한 한숨을 토해냈다.

첫 살인 현장을 봤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그는 담력이 센 편이라서 지금껏 악몽 한 번 꾼 적이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무슨 병에 걸리기라도 한 건지, 며칠째 계속 악몽을 꾸는 중이었다.

‘하필, 내가 회장님을 배신하는 꿈이라니.’

매일 똑같은 꿈을 꿨다.

그 꿈은 다름 아닌, 그가 한성을 배신하는 꿈이었다.

그리고 악몽은 단순히 배신으로 끝나지 않았다.

배신 후, 온갖 안 좋은 일을 시달리게 되는데, 그와 같이 자고 있는 아내도 예외가 아니었다.

방금도 아내와 자식들이 교통사고로 죽는 꿈을 꿨다.

“나는 물 좀 마시고 올 테니까, 당신은 조금 더 자.”

“그래요.”

아내가 잠든 걸 확인한 인정민은 거실에서 물을 들이켜며 생각했다.

‘나는 회장님을 배신할 생각이 전혀 없는데, 왜 이런 꿈을 꾸는 거지?’

한성을 배신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지금 그가 강남의 아파트에서 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한성이 넉넉하게 임금을 챙겨줬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도 한성의 측근으로서 꽃길을 걸을 예정인데, 한성을 배신할 이유는 없었다.

딩동!

갑자기 초인종이 울리자 인정민은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이내 ‘흠흠!’ 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누구십니까?”

“인정민 서장님 맞습니까?”

“서장? 언제 적 이야기를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인정민입니다.”

“반갑습니다.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찾아왔는데, 혹시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일단 누군지 통성명부터 합시다.”

“저는 쌍호 그룹 회장님을 모시는 이연재란 사람입니다. 쌍호 그룹 회장님이 인정민 서장님께 제안하실 게 있어서 이렇게 찾아뵙습니다.”

“흠, 쌍호 그룹에서 저에게 제안할 게 뭐가 있다고?”

인정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연재가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명함까지 보여주자 어쩔 수 없이 안으로 들여보냈다.

“지금 식구들이 자고 있어서 차를 내주지 못하는 점은 이해해 주십시오.”

“괜찮습니다.”

“그래, 본론부터 묻겠습니다. 쌍호 회장님이 저에게 제안하실 게 도대체 뭡니까?”

“저희 회장님께서는 인정민 서장님을 영입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 말을 듣자, 인정민은 몸을 크게 움찔하였다.

‘영입이라고? 아니, 잠시만. 그러고 보면 이 장면,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이연재가 계속 무슨 말을 했지만, 인정민의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자기 생각에 더욱더 집중하였다.

‘맞다. 오늘 꾼 꿈에서 이런 장면이 나왔잖아? 높으신 분이 영입 제안을 했고 나는 그거에 넘어갔다가 토사구팽을 당했었어!’

오늘 꿨던 악몽의 내용을 생각하자 인정민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하필 악몽을 꿨던 날에 쌍호 그룹에서 영입 제안을 하다니?

마치 꿈이 오늘의 일을 예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느껴졌다.

‘알고 보니 예지몽이 아니었을까?’

왠지 그런 거 같았다.

예지몽이 아니라면, 지금의 상황은 말이 되지 않았다.

“만약 혜성 그룹의 정보를 넘겨주신다면, 한 달에 천만 원씩 드리겠습니다. 정보를 꾸준하게 넘겨주시면, 월급처럼 인정민 서장님의 통장에 다달이 천만 원씩 꽂히게 될 겁니다.”

생각을 멈추고 이연재의 말을 들으니, 예상했던 대로 한성을 배신하라는 제안을 하였다.

‘겨우 월 천만 원에 회장님을 배신하라니. 악몽이 아니었어도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을 거 같은데?’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인정민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천만 원이 적어서 그러십니까?”

인정민은 ‘그렇다’라고 말하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만약 이연재가 금액을 높이기라도 한다면,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었다.

그러니 충신인 척, 단호하게 거절하는 게 좋았다.

“얼마를 주든 저를 포섭할 수는 없을 겁니다.”

“…….”

“더 하실 말씀이 없으시면 이만 일어나주시길 바랍니다.”

이연재는 헛웃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리 단호하게 거절하니, 더 할 이야기가 없었던 것이다.

‘오늘은 악몽을 안 꾸겠지?’

이연재를 떠나보낸 인정민은 오늘만큼은 악몽을 꾸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에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이럴 게 아니라 일단 회장님께 보고부터 해야겠구나.’

* * *

오랜만에 내 앞에 나타난 노사가 찝찝한 소식을 전해주었다.

“쌍호 그룹과 샤롯 그룹이 반 혜성 동맹을 결성했다는 말입니까?”

(그래. 김종우 그놈이 주도해서 신진호까지 끌어들이더군.)

“김종우 회장은 두렵지도 않나 봅니다. 노사께서 구해다 주신 정보가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 말입니다.”

(그놈은 지금 가정이 풍비박산 나서, 더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코웃음 쳤다.

가정이 풍비박산 난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민주화가 되고 나면 당장 법정으로 끌려갈 수도 있는 비리들이 수두룩하게 남아 있는데.

‘내후년에 5공 청문회가 열리면 볼 만 하겠어. 뭐 그때까지 두고 볼 생각도 없지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노사에게 물었다.

“그래서 반 혜성 동맹을 결성하고 뭐 한답니까?”

(안 그래도 그것을 이야기하러 널 찾아왔다. 놈들은 지금 너의 수족을 포섭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저의 수족이라면, 혜성 그룹 임원들을 말하는 겁니까?”

(아니. 네 개인 회사인 한성 주택의 임직원을 말하는 거다.)

한성 주택은 내가 부동산과 주식을 법인 명의로 매입하기 위해 만든 회사 이름이었다.

자산 규모만 수천억대였는데, 혜성 그룹의 지분도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성 주택은 투자 회사로만 존재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혜성 그룹 내부에서는 다른 그룹의 기획조정실이나 경영기획실 같은 용도로 존재하기도 했다.

일종에 컨트롤 타워라는 뜻인데, 특히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당연히 한성 주택은 나에게 있어 어떤 계열사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하필 한성 주택을 노리다니. 가만둬서는 안 되겠군요.”

(인정민은 걱정하지 마라. 절대 넘어가지 않을 테니까.)

“어떻게 그리 확신하십니까?”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노사가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배신한 뒤에 처참하게 죽는 악몽을 매일 꾸게 만들었는데, 그런데도 배신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노사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악몽의 위력은 나도 경험해 봐서 잘 알고 있었다.

꿈이 다 그렇듯, 몇 시간 지나고 나면 다 잊는다지만, 온종일 찝찝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심지어 노사가 꾸게 만드는 악몽은 잘 잊히지도 않았기에 더욱더 찝찝하였다.

내가 인정민이라면 신진호나 김종우가 어지간히 많은 돈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 배신하지는 않을 거 같았다.

“저들의 의도를 알았다면, 우리가 역이용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나는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하고만 있는 것은 내 성미에 맞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반 혜성 동맹을 결성한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어떤 식으로 역이용한다는 말이냐?)

“이를테면, 제가 어떤 기업을 인수하려 한다고 저쪽에다 거짓으로 보고하게 하는 겁니다. 그러면 저쪽에서는 제가 인수하려 하는 기업을 빼앗으려 들지 않겠습니까?”

(호오, 그럼 덩치만 크고 미래 성장성이 없는 기업을 인수하려 하면 되겠구나.)

내 의견이 마음에 들었는지 노사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기업은 팬더 웨스트윈드가 좋겠다.)

“왜 하필 팬더 웨스트윈드입니까?”

(원래도 김종우 그놈이 내년쯤에 인수했을 자동차 회사야. 쌍호 그룹이 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회사지.)

“잘 안 됐나 봅니다.”

(그러니까 추천해 준 거 아니겠어? 내가 알기로 김종우 그놈이 비싼 돈 주고 팬더 웨스트윈드를 인수해놓고 정작 판매한 차량은 수십 대 정도였을 걸?)

혀를 내둘렀다.

실패도 그런 실패가 있나 싶었다.

‘나쁘지 않은데?’

거하 자동차와 동화 자동차를 이미 보유한 상태에서도 팬더 웨스트윈드는 쌍호 그룹에 손해만 안겨주었었다.

그런데 자동차 회사도 없는 상태에서 팬더 웨스트윈드만 달랑 인수한다?

원 역사보다 훨씬 더 처참하게 실패하지 않을까 싶었다.

‘만약 잘 될 거 같으면 내가 망하게 만들어 버리지 뭐.’

이미 혜성 자동차는 한국의 4대 자동차 메이커 중의 하나였다.

쌍호 그룹이 팬더 웨스트윈드를 인수하여 자동차 시장에 진출하려고 하면 철저하게 짓밟아주면 그만이었다.

지금의 혜성 자동차에는 그만한 힘이 있었으니까.

따르릉!

그때였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자 나는 노사와의 대화를 멈추고 수화기를 들어 올렸다.

“여보세요?”

-회장님, 인정민 실장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보고드릴 게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지금 시간 되시면 그룹 본사로 찾아가도 되겠습니까?

그의 말을 듣고 나는 피식 웃었다.

왠지 그가 보고할 내용이 뭔지 알 거 같았다.

“쌍호에서 제안을 받으셨습니까?”

수화기 너머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말에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었다.

“바로 오시면 될 거 같습니다.”

-예, 지금 바로 찾아뵙겠습니다.

인정민은 애써 침착하게 대답하고는 통화를 끊었다.

(역시 바로 보고를 하는구나.)

“악몽의 영향이 크긴 한 거 같습니다.”

(뭐 악몽이 아니었어도 설마 배신을 했겠나. 10억 이상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에 말이야.)

“10억이라. 그 정도 제시하면 인정민 실장이 배신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당연하지. 10억을 제시하는데 누가 충성심을 유지하겠어? 애초에 인정민은 충성심이 아니라 능력이 출중해서 고용한 거잖아?)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배신의 대가로 거액을 제시한다면 누구라도 흔들릴 수밖에 없으리라.

‘혜성 그룹이 독보적인 위치에 선다면 그때는 나를 배신할 사람이 없지 않을까?’

* * *

인정민은 자신이 오늘 아침에 겪었던 일에 대해 상세히 고백하였다.

쌍호 그룹의 사람이 찾아와 자신에게 얼마를 제시했는지까지 이야기해 준 것이다.

“월 천만 원이라면 절대 적지 않은 돈인데, 이렇게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당연한 일입니다. 제가 어찌 회장님을 배신한단 말입니까?”

마치 충신이라도 되는 양 말하는 인정민의 모습에 나는 속으로 픽 웃었다.

“아마 그쪽에서는 계속 제안을 할 겁니다. 김종우 회장의 목표는 우리 그룹의 정보력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쌍호 그룹뿐만이 아니라, 샤롯 그룹에서도 제안할 가능성이 큽니다.”

“샤롯에서도 말씀입니까?”

“두 그룹이 반 혜성 그룹을 결성했답니다.”

“허어, 반 혜성 그룹이요?”

헛웃음을 흘리는 인정민에게 내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인정민 실장님께서 해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어떤 겁니까? 두 그룹을 감시하면 되겠습니까?”

“그보다는 두 그룹에 역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내 말에 인정민은 눈을 빛냈다.

역정보란 단어만 듣고도 내 의도를 파악한 거 같았다.

“제가 매수당한 척 연기를 하면 되겠군요. 그런 뒤에 회장님께서 제공해 주는 정보를 그쪽에다 유출하고 말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과연 그쪽이 속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번 해보겠습니다.”

“이참에 그들에게서 돈도 많이 받아내십시오. 운이 좋으면 10억 정도는 받아낼 수 있을 겁니다.”

“하하, 그야말로 일석이조군요!”

기분 좋게 미소를 짓는 인정민을 보며 나 역시 미소를 지었다.

신진호나 김종우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벌써 기대가 되는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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