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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130화 (130/300)

130화 세기의 라이벌

나는 자신감 있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한철 명예 회장이 걱정하는 것이야 이해하지 못 할 일은 아니었다.

특히 반도체에 수백억을 투자한 일이나, 법적으로 생산할 수도 없는 승용차 라인에 투자하는 것은 우려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구체적인 성과로 그런 우려를 불식시켰다.

반도체야 여전히 적자가 나고 있지만, 자동차를 비롯하여 다른 계열사들이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문제 될 것은 없으리라.

“언론에서 하는 말들은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다른 재벌들의 사주를 받고 악의적인 선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한철 명예 회장이 새삼스럽게 우려를 표하는 것은 아마 언론들 때문일 거 같았다.

요즘 들어 혜성 그룹을 향한 언론 공세가 한층 더 거세지고 있었으니까.

“사실 언론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임원들도 나에게 이야기를 많이 하였다. 네가 너무 무모하다는 식으로 말이다.”

“혜성 그룹의 임원들이 말입니까?”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그룹 내부에서 내 경영 능력을 의심하는 임원이 남아 있었단 말인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성과를 보여줬는데 아직도 의심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최근 들어, 회의 없이 독단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일이 잦아지지 않았느냐? 아마 그런 이유로 걱정이 많아진 듯싶다.”

“그렇습니까?”

“물론 나는 너의 경영 능력을 신뢰한다. 설령 독불장군이라 해도 결과가 좋으면 그만이긴 해. 다만, 혜성 그룹의 임원들은 너의 부하들이니 신뢰가 깨지지 않게 잘 보살폈으면 하는 바람이구나.”

내 자존심을 생각해서인지, 이한철 명예회장은 강하게 충고하지는 않았다.

바람이라면서, 그저 자신의 생각을 주장할 뿐이었다.

나는 그런 이한철 명예회장의 말에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야. 노사께서는 따로 충고하지 않았지만, 과거를 되새겨보면 내가 너무 오만했던 거 같기는 해.’

반도체 라인을 추가 증설했을 때도 임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따로 노력하지 않았었다.

내가 결정을 내리면 임원들은 당연히 따라야 한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마 반도체 사업이 성공한다면 이런 생각은 더욱더 강해졌을 터.

‘앞으로 조심해야겠군.’

나는 경각심을 가졌다.

어젯밤에 스티브 잡스의 연락이 와서 그런지, 더 경각심이 드는 거 같았다.

스티브 잡스도 독불장군처럼 행동했다가 자신이 창업했던 애플사에서 쫓겨나지 않았던가.

물론 내가 스티브 잡스처럼 혜성 그룹에서 쫓겨날 일은 없을 것이다.

지분부터가 압도적이었으니.

하지만 소프트뱅크의 손정의가 당했듯이 임원 여럿이 집단 퇴사하는 일이 벌어질 수는 있었다.

그렇기에 이한철 명예회장의 충고를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앞으로는 임원들의 이야기에 더욱더 귀를 기울이며, 소통의 시간을 늘리겠습니다.”

당장 바뀌기는 쉽지 않겠지만, 노력은 해 보기로 하였다.

기껏 유능한 인재들을 영입했는데, 거수기로만 써먹으면 너무 아까우니 말이다.

“내 말을 들어줘서 고맙구나.”

“당연한 말씀을 하시고 그럽니까. 그리고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한 마음입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면, 전혀 의식을 못 했을 겁니다.”

내 말에 이한철 명예 회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별거 아닌 말인데도, 내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쁜 모양이었다.

* * *

“요즘 저의 경영 능력을 의심하는 임원들이 있다던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불쑥 묻자 진봉현 비서실장이 눈을 크게 떴다.

“저희 그룹 내부에, 회장님의 경영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이 설마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다르게 묻겠습니다. 저의 독선을 우려하는 임원은 누가 있습니까?”

“…….”

진봉현 비서실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곤란할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동료를 배신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제가 뭘 어떻게 할 생각인 것은 아닙니다. 그냥 오해를 풀고 싶어서 묻는 겁니다.”

“오해라면?”

“그동안 임원들과 너무 소통이 없었던 거 같습니다. 하여, 오늘부터 소통의 시간을 늘려서 제가 하려는 사업에 대해 함께 상의하고 싶습니다.”

“흠, 그렇다면 건설의 임원들과 소통의 시간을 갖는 게 좋을 듯합니다.”

“왜 하필 건설입니까?”

“최근 들어 그룹의 중심 사업에서 배제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쯤 분명 소외감을 느끼고 있을 겁니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혜성 건설은 한때 그룹의 핵심 계열사였다.

그룹의 본사도 혜성 건설의 사옥이었고, 혜성 건설의 임직원들은 그룹 전체에서 가장 우대를 받았었다.

하지만 진봉현 비서실장이 말했듯, 내가 회장이 된 이후 혜성 건설은 중심 사업에서 철저하게 배제당하였다.

내가 백화점, 자동차, 전자 등등 신사업에만 열중하였기 때문이다.

“지금 바로 건설 임원들과 긴밀한 대화를 나눠봐야겠군요.”

같은 건물을 쓰고 있었기에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혜성 건설 임원들을 소회의실로 불러들였다.

“오셨습니까, 회장님.”

“모두 반갑습니다.”

얼굴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같은 건물을 쓰는데도 왕래가 없다 보니, 그런 거 같았다.

‘확실히 내가 건설에 소홀하기는 했나 보네.’

쓴웃음이 나왔다.

내가 주도하는 사업에서 조금 성과가 나왔다고 기존의 사업을 무시하다니.

건설이라면 이한철 명예회장이 직접 주도해서 확장해온 계열사인데 말이다.

“편히들 앉으세요.”

편히 앉으라고 말했지만, 임원들의 얼굴은 전혀 편해 보이지 않았다.

하나같이 좌불안석인 것이, 내가 뭐 때문에 부른 것인지 몰라서 불안해하는 거 같았다.

“제가 건설은 잘 모르지만, 사옥이 잘 만들어지고 있는 거 같더군요.”

“건설의 모든 임직원이 합심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따로 신경 쓰지 않아도 잘 만들어지겠군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내 미소를 본 것인지, 건설의 임원들도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전문가도 아닌 제가 사소한 일까지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지시를 내리지는 않겠습니다. 그저, 여러분을 믿겠습니다.”

몇백억을 투자하겠다, 그룹 차원에서 건설을 지원하겠다, 그런 말들은 하지 않았다.

내가 한 것은 그저, 당신들을 믿겠다는 한마디뿐이었다.

하지만 그 한마디만으로도 임원들의 표정은 크게 밝아졌다.

지금까지 잘했다는 칭찬 한마디도 제대로 해 준 적이 없어서 저러는 거 같았다.

‘앞으로는 칭찬을 자주 해줘야겠군.’

기왕 하는 김에, 다른 계열사 임원들에게도 해주기로 하였다.

혜성 모직의 임원들부터, 아직은 그룹 내에서 존재감이 그리 크지 않은 혜성 출판사나 혜성 주류의 임원들에게까지.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요즘 임원들이 활기가 넘치는 거 같습니다. 회의에서도 그렇고, 평소 업무에서도 그렇고 적극적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래요?”

소통이란 게 이리도 큰 역할을 할 줄이야.

이한철 명예 회장이 조언해 주지 않았다면 평생 모르지 않았을까 싶다.

‘감사 인사를 하러 찾아봬야겠군.’

노사에게 배운 것만으로 충분할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에게도 배울 점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 듯싶었다.

감사 인사를 하러 찾아뵐 겸, 이한철 명예 회장에게 조언을 받기로 하였다.

꼭 사업적인 조언이 아니라도 배울 것은 많이 있으리라.

‘스티브 잡스가 오면 스티브 잡스에게도 이것저것 배워야겠어. 그는 누가 뭐래도 혁신의 아이콘이 되는 사람이니, 배울 점도 많겠지.’

* * *

마침내 스티브 잡스가 한국에 왔다.

이날만을 손꼽아 온 나는, 직접 공항으로 마중 나갔다.

“웰컴 투 코리아!”

“오! 미스터 리!”

스티브 잡스도 내가 반가웠는지 격하게 악수하였다.

‘신은규 대표의 보고는 들었지만, 확실히 분위기가 바뀌긴 한 거 같군.’

나는 스티브 잡스와 인사를 나누고 그의 수행원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신기하게도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성도 있었는데, 궁금해서 물어보니, 한국계라고 한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썩 긍정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뭐 하나 제 생각대로 되는 게 없더군요. 사업이든, 가정사이든 말입니다.”

“스티브답지 않은 모습이군요.”

“하하, 애플에서 쫓겨나고 많이 바뀌었습니다.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거죠.”

“그렇습니까?”

“미스터 리도 꽤 달라진 거 같습니다. 자신감도 더 생긴 거 같고…….”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자신감 빼면 시체라고 느껴졌던 스티브 잡스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하긴, 혜성 그룹이 그렇게 잘 나가는데 미스터 리도 바뀔 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미국에서 저희가 하는 사업에 대해 따로 들은 게 있으십니까?”

“물론입니다. 가전제품 사업과 자동차 사업을 활발히 하고 계시더군요. 심지어 혜성 자동차의 뉴 코렌드는 여기 있는 제 비서도 들어봤답니다.”

한국계니 당연한 거 아닌가?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스티브 잡스의 칭찬이라 그런지 기분은 좋았다.

스티브 잡스는 그 이후로도 나의 경영 성과에 대해 크게 칭찬하였다.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졌군.’

내가 주요 투자자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새 성격이 겸손해진 것일까.

뭐가 됐건, 나를 높이 봐주니 나쁘지는 않았다.

“넥스트 사가 소프트웨어에만 집중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

사담이 끝나자, 나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SW의 중요도에 대해 다시 한번 이야기한 것이다.

“저 역시 하드웨어를 더 고집할 생각은 없습니다. 미스터 리에게 투자받은 돈도 SW 사업에 쓸 계획입니다.”

“현명하신 생각입니다. 소프트웨어는 그 어느 때보다 기회가 많습니다. 지금 시작해도 선두 주자인 마이크로소프트를 따라잡는 게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말입니까.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시장의 지배자로 자리를 잡은 상태인데.”

“IBM도 꺾으려고 했던 스티브가 고작 마이크로소프트를 두려워할 필요가 있습니까?”

사실 마이크로소프트는 ‘고작’이라고 평가할 기업은 아니었다.

지금도 지금이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관계를 알기에 나는 일부로 마이크로소프트를 낮게 평가하듯 말했다.

“제가 너무 자존심이 없었군요. 빌 게이츠, 그 배신자 놈을 꺾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약한 말을 했는지 자책감이 들 정도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말했다.

내 말에 무언가를 느낀 모양이었다.

“예. 스티브라면 빌 게이츠를 이길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목표를 아예 마이크로소프트 타도로 잡아야겠군요.”

“언론에다 대놓고 선언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습니다.”

“언론에다요?”

“스티브 잡스가 소프트웨어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면 얼마나 많은 언론이 관심을 가지겠습니까? 그때, 마이크로소프트 타도를 외친다면 사람들의 반응이 제법 괜찮지 않겠습니까?”

비싼 돈 내고 광고를 할 필요도 없었다.

언론들이 알아서 세기의 라이벌, 빌 게이츠 vs 스티브 잡스의 대결에 대해 열심히 보도할 테니까.

‘반응이 벌써 기대가 되는군.’

어쩌면 한국에서까지 화제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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