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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127화 (127/300)

127화 구단주가 되라고?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문을 열기 무섭게 꼴 보기 싫은 얼굴이 보이니,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권오중 회장님.”

“참 일찍도 오는군. 나이도 가장 어린 주제에 말이야.”

역시 보자마자 시비를 거는 권오중 회장이었다.

난 그런 권오중 회장에게 늘 그렇듯, 퉁명스럽게 반응하였다.

“정시 전에만 오면 되는 거 아닙니까?”

“건방진 것 같으니.”

“처음 뵙겠습니다. 도레미 그룹 회장인 정성완이라고 합니다.”

“예, 반갑습니다. 저는 이한성이라고 합니다.”

도레미 그룹 회장인 정성완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30대 중반인 그는 키 180㎝ 정도 되는 깔끔한 인상의 사내였다.

나만큼은 아니지만, 재계의 젊은 회장으로 한때 언론에서 화제가 된 인물이었다.

‘뭔가 탐색하는 눈빛이군.’

한눈에 봐도 나에 대해 관심이 많아 보이는 눈빛이었다.

하긴, 재벌 총수가 나에게 관심이 없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것도 한때 재계 순위 5위였던 도레미 그룹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고.

“정 회장. 올해 초에 야구단을 만들었던데, 재미 좀 보고 있나?”

“투자는 많이 했는데, 아직 성과는 미흡합니다.”

“순위가 몇 위 정도 되는데?”

“아직 꼴등에 머물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력 있는 선수들을 많이 끌어모았으니, 내년에는 좋은 성과를 기대해도 될 거 같습니다.”

“스포츠를 쉽게 보는군. 돈만 쓴다고 다 되는 게 아니야.”

“하하, 그렇습니까?”

“나처럼 꾸준하게 관심을 주고 애정으로 보살펴야 성과를 낼 수 있어. 우리 축구단 봐봐. 벌써 날아다니잖아?”

아시안 게임이 가까워졌다고 재벌 총수들도 스포츠에 관한 관심이 늘어난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며 스포츠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다 정성완 회장이 나를 보며 물었다.

“이한성 회장님은 혹시 야구에 관심이 없으십니까?”

내가 대답하려는데 권오중 회장이 나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저놈이 스포츠에 관심이 있겠어? 돈 버는 것에만 관심을 두는 놈이야. 돈이 안 되는 스포츠에 눈길을 둘 리가 없잖아?”

“마치 저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내 말이 틀린 게 있나?”

“…….”

그의 말이 맞았든, 틀렸든 간에 기분 나쁜 것은 사실이었다.

‘나를 무슨 돈 귀신 취급하는군. 자기도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주제에 말이야.’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정성완 회장에게 말했다.

“아직은 배구나 탁구처럼 기존에 맡고 있던 단체들 말고는 다른 스포츠의 구단주가 될 생각은 없습니다.”

“내 말이 맞지? 혜성 그룹의 배구단도 실력이 형편없더군. 돈이 안 돼서 제대로 투자도 안 하는 모양이야.”

나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원래 저런 성격이 아니었던 거 같은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깝죽거리나 싶다.

‘정말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밉상인데?’

기분이 나빴지만, 더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마침 문이 열리며 다른 재벌 총수들도 들어오고 있었기에 신경전을 벌일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말이다.

* * *

재벌 총수들이 입장하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 명 한 명에게 인사를 건넸다.

나이도 가장 어린데 느긋하게 앉아만 있다가 뒤에서 어떤 험담을 들을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자네가 혜성 그룹의 이 회장인가? 허허, 훤칠하구먼!”

“반갑습니다. 이한성 회장님. 저는 애정 그룹의 윤석민이라고 합니다!”

“이 회장이 그렇게 주식을 잘한다면서요? 나중에 주식 좀 알려주세요.”

“저도 알려주십시오. 요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주식을 한다는데, 저도 해보고 싶습니다.”

“내가 알기로 주식만 달인이 아니라는데? 부동산도 그렇게 잘 본다나?”

의외로 재벌 총수들 사이에서 나에 대한 여론이 긍정적인 듯하였다.

하나같이 나를 웃으며 대해주는데, 딱히 내가 잘해서라기보다는 돈을 잘 번다는 소문이 나서 그런 거 같았다.

어떻게든 콩고물이라도 주워 먹겠다고 친한 척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친한 척한다고 뭐 안 떨어집니다.’

세계 그룹의 양희수 회장 정도라면 모를까, 다른 재벌 총수들에게 내 귀한 정보를 줄 리는 없었다.

물론 나중에 사모펀드를 세워서 50% 이상의 수수료를 뗀다면 얼마씩 투자를 받아줄 의향은 있었지만 말이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각하의 지시를 받다가 시간이 지체되고 말았지 뭡니까.”

그렇게 재벌 총수들을 상대하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체육부 장관인 윤희봉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통령을 핑계 대니까 이건 뭐 따질 수도 없게 됐군.’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일개 장관 따위가 재벌 총수들을 불러 모은 것도 마음에 들지 않던 참이었다.

그런데 30분이나 지각하니 불쾌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었는데, 대통령을 운운하는 바람에 화를 낼 수도 없게 되었다.

“다 바쁜 사람들입니다. 늦었으니 서둘러 본론에 들어갑시다.”

그때, 미래 그룹의 왕 회장이 입을 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통쾌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왕 회장만 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실제로 윤희봉 장관은 얼굴을 붉히기만 할 뿐, 왕 회장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왕 회장에게는 일개 장관 정도는 압도할 수 있는 카리스마가 있었던 것이다.

“흠흠! 왕 회장님이 그리 말씀하시니, 바로 본론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윤희봉 장관은 헛기침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네.’

그가 꺼낸 본론은 내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아시안 게임이 코앞으로 다가왔으니, 재벌 총수들의 조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였는데, 한마디로 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돈이 필요하면 평소처럼 한 사람씩 부르면 될 것이지, 굳이 이렇게 번거롭게 해야 하나?’

하긴, 5공이 언제 우리의 사정을 생각해줬나 싶다.

기회가 생겼다 하면 쥐 잡듯 재벌 총수들을 잡으려고 하는 5공 정권이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리고 혜성 그룹의 이한성 회장님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예, 말씀하십시오.”

“재계 순위가 5위까지 올랐는데, 혜성 그룹의 책임감이 너무 약한 것은 아닌지, 정부에서는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책임감이 약하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다른 그룹들처럼 야구단이나 축구단 하나 정도는 운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황당하게 느껴졌다.

난데없이 야구단이나 축구단을 운영하라니.

안 그래도 아까 정성완 회장과 권오중 회장이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했었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일이 흘러갈 줄은 예상 못 했다.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시면 곤란하군요.”

“뭘 엄살을 부리고 그러십니까. 혜성 그룹의 사정이 어떤지 모르는 사람이 여기에 누가 있다고.”

윤희봉 장관의 말에 재벌 총수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그러자 괜히 창피한 기분이었다.

몇몇 총수들이 좀생이 보듯 바라보니 더욱더 그렇게 느껴졌다.

“정 곤란하시다면, 88 올림픽을 대비해서 테니스나 복싱에라도 투자를 해줬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룹 차원에서 테니스나 복싱 중의 한 곳을 정하여 투자를 해보겠습니다.”

“역시 이한성 회장이십니다. 시원시원하게 결정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뒤늦게 치켜세워봤자 의미 없었다.

공개적으로 저리 말하는데 어찌 거부한단 말인가.

‘이렇게 된 이상,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성과를 내줘야겠군.’

돈을 조금 더 쓰더라도 제대로 된 성과를 내고 싶었다.

마침 아시안 게임이든, 88 올림픽이든 우리가 주최국이니 유리한 점이 많을 터.

잘만 하면 단기간에 큰 성과를 내는 것도 가능하였다.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하면 될 거 같고, 혹시 아시안 게임과 관련해서 여러분의 고견을 듣고 싶은데, 좋은 말씀들 좀 한마디씩 해주십시오.”

고견이라.

글쎄, 의견을 제시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듣기 거슬리는 말이면 바로 무시해버릴 것이 지금의 정부인데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질서 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경기장에 들어가려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쓰레기는 아무 곳에서나 버리면 안 된다. 국민으로 하여금 이런 사소하면서 기본적인 것을 지키게 하는 것이 아시안 게임을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질서 의식이라. 그거참 중요한 이야기군요. 고견 감사합니다. 정성완 회장님.”

한 명이 의견을 제시하자 다른 이들도 차례대로 의견을 제시하기 시작하였다.

“경비를 강화하는 게 가장 시급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경비라?”

“만에 하나 북괴의 테러가 발생할 경우, 주최 준비가 아무리 성공적이었다 해도 아시안 게임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니, 경비를 강화하여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일성 그룹의 이병건 회장이 그리 말하자, 윤희봉 장관이 어느 때보다 경청해서 들었다.

역시 빅4의 재벌 총수가 하는 말이니, 듣는 사람의 태도도 달라지는 듯싶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확실히, 북괴로 인해 소란이 벌어지면 다른 걸 아무리 준비해도 의미가 없겠지요. 이병건 회장님의 말씀처럼, 경비 인력을 최대한 늘리는 쪽으로 각하께 건의해보겠습니다.”

이병건 회장이 발언한 이후에는 정우 그룹의 권오중 회장이 입을 열었다.

그는 나를 보며 발언하였는데, 내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외국 관광객이나 기자들이 가장 오랜 시간 머무는 장소는 호텔입니다. 그러니 호텔 관리가 시급한데, 혹여나 호텔들이 성수기라는 이유로 가격을 높이는 일을 제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기야, 호텔 가격이 너무 비싸면 외국인들에게 안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완전히 무료로 하던가, 아니면 아시안 게임 때만큼은 특별 할인을 하여 저렴하게 객실을 제공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정우 그룹도 호텔 계열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저런 말을 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외국인들에게 잘 보이기만 한다면 그룹의 작은 손해쯤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허어, 호텔 회사들이 그렇게만 해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군요.”

“호텔 회사들이 얼마나 애국심이 뛰어난데, 그 정도도 못 해주겠습니까?”

윤희봉 장관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호텔들이 자진해서 나라를 위해 힘써주겠다는데 그로서는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른 분들도 좋은 의견이 있으면 개의치 말고 말씀해 주십시오.”

“…….”

“이한성 회장님. 회장님은 이곳에서 가장 나이가 젊지 않습니까? 나이가 나이이니, 조금 더 참신한 의견이 있을 거 같은데, 어떤 이야기라도 해주십시오.”

이 많은 사람 중에 하필 나를 지목하다니.

나는 성가신 기분을 느꼈지만, 할 수 없이 입을 열었다.

“경비를 강화하는 것도 좋지만, 검문검색이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면 외국인들에게 나쁜 인상을 심어주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또한, 경비 인력을 늘리는 것은 경기장의 분위기를 흐릴 수 있고 말입니다.”

여성의 자그만 손지갑까지 뒤진다든가, 사생활이 담긴 노트나 사진까지 수색한다면 한국을 부정적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 경비 인력을 늘리는 것은 그리 좋은 해답이 아닌 거 같았다.

“그러면 경비를 최소화하라고? 그러다 테러라도 발생하면 이 회장이 책임질 것이오?”

이병건 회장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자신의 의견을 정면으로 반박해서 그런지 나를 보는 눈빛이 영 좋지 않았다.

“경비를 최소화하라는 게 아닙니다. 몸수색 같은 경직된 경비보다는, 최신시설과 첨단 장비를 동원하는 식으로 검문검색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호오, 그거 일리가 있는 말이군요.”

내 말에 이병건 회장이 무슨 말을 하려다가 윤희봉 장관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급히 입을 다물었다.

“금속탐지기 같은 공항의 기기부터 첨단 장비를 갖춘다면, 한국에 대한 이미지도 더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좋은 의견이군요. 경비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을 못 했는데, 이 회장님의 말을 듣는 순간, 정말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입니다!”

“그리고 아까 권 회장님께서 호텔 서비스를 무료로 하자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과연 공짜 선심 공세가 한국의 이미지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지 의문입니다.”

이번에는 권오중 회장이 눈썹을 씰룩였다.

하지만 나는 그의 표정이 어떤지는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말을 이어나갔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된다는 말처럼, 외국인이란 이유로 공짜 선심 공세를 한다면, 결국 그들은 우리의 호의를 당연하다고 여기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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