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투자천재-121화 (121/300)

121화 두 곳에다 투자를?

“아시는 미국 드라마가 있습니까?”

(당연하지. 내가 영어를 뭐로 배웠는데? 미드와 미국 영화를 보면서 배운 사람이야.)

의외였다.

노사는 문화생활이란 것을 아예 안 했던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말이다.

‘하긴, 요리도 잘하셨으니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취미를 가지셨다 해도 이상할 게 없지.’

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노사는 참 열심히도 살았던 거 같았다.

맨주먹에서 중견 그룹을 일구어낸 것도 그렇고, 일본어에 중국어에 영어까지 하는 것도 그렇고.

나와 똑같은 재능을 가졌음에도 훨씬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도 언젠가 노사처럼 다재다능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데 노사가 말했다.

(스포츠 선수를 후원하는 것도 마케팅 효과가 상당할 거다.)

“스포츠 선수요?”

(나달이라고 전설이 될 테니스 선수가 있다. 기화 자동차가 운 좋게 나달을 후원했다가 나달이 포텐을 터뜨리면서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보았지.)

“그렇습니까.”

하긴 마이클 조던의 사례도 있으니, 스포츠 마케팅도 효과가 상당할 거 같기는 했다.

“노사께서 미래에 명성을 떨칠 스포츠 선수들을 알려준다면 미리 선점해서 스폰서 계약을 맺으면 되겠군요.”

(그렇게 말 안 해도 어련히 알려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

노사의 말에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 * *

병실에서 한성에게 투자 제안을 받은 뒤, 손정의는 혜성 그룹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그리고 또 어떤 제품을 생산하는지.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감탄만 나왔다.

‘몸집도 큰 기업인데 이렇게 성장 속도가 빠르다니.’

괴물 사업가라는 거창한 별명을 가졌던 그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괴물이란 별명은 그가 아닌 혜성 그룹의 회장인 한성에게 더 어울리는 거 같았다.

그만큼 혜성 그룹의 성장 속도는 놀라웠다.

‘심지어 자동차까지? 혜성 그룹이 다루지 않는 사업이 과연 있는가 싶을 정도군.’

손정의는 최근에 뉴 코렌드라는, 혜성 자동차에서 출시한 자동차를 알게 되었다.

이 차를 처음 봤을 때, 손정의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한국의, 그것도 작년에는 들어본 적도 없었던 혜성 그룹이라는 회사에서 이만한 자동차를 생산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혜성 그룹이 생산했다는 걸 몰랐다면, 독일 같은 곳에서 만들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한성 회장은 나와 나이도 같은데 훨씬 큰 사업을 하고 있구나.’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현재 보유한 자산으로 보나, 미래 잠재력으로 보나 그를 압도하고 있었으니.

외모나 다른 외적인 것들을 제외해도 말이다.

하지만 그는 질투나 시샘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의 좌우명은 뜻을 높게(志高)였다.

손정의 역시 여기서 멈춰있을 사람이 아니었기에 질투나 시샘 따위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20년 뒤에 두부 가게에서 두부를 세듯, 1조 단위로 숫자를 세게 될 거야!’

다시금 각오를 되새긴 그는 모든 업무를 내려놓고 건강을 되찾는 일에 집중하였다.

업무도 중요했지만, 지금 당장은 건강을 되찾는 게 우선이었다.

그래야 회사로 돌아가 병실에서 계획하고 있던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될 테니까.

“일주일 뒤에는 퇴원하셔도 좋습니다.”

“정말입니까, 선생님?”

“예. 경과를 보고 다시 이야기할 텐데, 지금처럼 회복에만 전념하신다면 일주일 뒤에는 반드시 퇴원할 수 있을 겁니다.”

손정의는 얼굴에 화색을 띠었다.

회복에 전념한 것이 큰 효과를 보았는지, 깐깐한 의사의 입에서 퇴원이란 말이 나왔다.

‘이제 사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겠어!’

일주일 뒤, 마침내 병원에서 퇴원하게 되자 손정의는 기쁜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회사를 갈 생각을 하니, 기분이 미친 듯이 좋았다.

하지만 기분 좋게 회사에 출근한 그는 충격적인 일을 경험하였다.

“갑자기 돌아오셔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곤란합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사장인 제가 지시를 내리는데 거절하신다는 말씀입니까?”

“사장이라니요. 손정의 전 사장께서 저를 사장으로 임명하셨지 않습니까? 지금 세상 사람들 전체가 저를 소프트뱅크의 사장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해가 될 만한 발언은 자제해주시길 바랍니다.”

“…….”

“사장직을 되찾고 싶으시면 직원들에게 물어보십시오. 누가 사장으로 있는 게 더 좋은지, 물어보란 말입니다.”

믿었던 동료의 배신.

정이 많은 손정의였기에,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손정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정신적으로 충격이 컸지만, 충분히 견뎌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는 곧바로 이사회를 소집하였다.

사장직을 되찾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압도적인 지분 차이로 그는 사장직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기쁨을 느끼기도 전에 또 한 번 배신을 경험하였다.

회사를 창립했을 때부터 믿고 의지하던 동료들이 대거 다른 회사로 이직한 것이다.

손정의는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았던 거지.’

배신을 연달아 당하니, 손정의는 본인이 잘못된 삶을 살았단 생각마저 들었다.

“사장님, 마스터 트러스트 은행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어떤 연락이죠?”

“연체된 이자를 신속히 갚으라는 전화였습니다.”

손정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회사로 돌아오자마자 나를 기다리는 게 동료의 배신과 10억 엔의 빚이라니.’

실로 끔찍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손정의는 절망을 느끼지는 않았다.

이 정도의 시련으로 무너질 그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혜성 그룹 회장의 투자를 받는 게 좋겠군.’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싶어도 지금 상태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일단 금전적인 여유를 가지고 사업을 시작하는 게 좋을 거 같았다.

* * *

미국에서 희소식이 날아왔다.

물론 뉴 코렌드의 판매고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던가, 뭐 그런 희소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못지않은 희소식임은 분명하였는데, 다름 아닌 스티브 잡스와 관련된 소식이었다.

“스티브와 투자 협상을 재개하였다고요?”

-예. 저희가 먼저 요구한 것이 아닌, 스티브 잡스의 요구로 투자 협상이 재개되었습니다.

“스티브가 갑자기 그렇게 나오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2월에 루카스필름(픽사)을 인수한 뒤, 투자를 거듭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자금 사정이 많이 안 좋아진 모양입니다.

“그렇군요.”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마이크로소프트가 성공적으로 상장한 모습을 보고 소프트웨어를 향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었다.

이럴 때, 스티브 잡스가 투자에 긍정적인 자세를 보이니, 그의 회사 지분을 인수하여 소프트웨어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 우리가 요구하는 조건은 변함이 없습니다.”

-예. 스티브 잡스도 하드웨어에 대한 고집이 조금 줄어든 태도를 보였으니, 곧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신은규 대표와의 통화가 끝나자 나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노사를 찾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노사는 누구를 관찰하러 갔는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이따가 이 이야기를 하면 노사께서 많이 좋아하시겠지?’

솔직히 나는 스티브 잡스와의 동업하는 것을 그리 절실하게 갈망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스티브 잡스가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든 간에, 그거는 노사의 세계에서만 있는 일이었다.

노사의 회귀로 미래는 많이 바뀌었고, 스티브 잡스의 미래 역시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스티브 잡스와의 동업을 절실하게 여기지 않았는데, 노사의 생각은 달랐다.

노사는 스티브 잡스와 동업을 하게 되면 반드시 성공할 것처럼 굴었다.

늘 이성적인 그가 거의 맹신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성공을 확신하였다.

‘곧 만나게 될, 손정의 사장과도 이야기가 잘 풀린다면 더 좋아하시겠군.’

얼마 전, 소프트뱅크 손정의의 전화가 걸려왔다.

한국에 직접 찾아갈 테니 만나 달라는 식의 전화였다.

그러면서 투자 조건이 아직도 유효하냐는 물음을 덧붙였다.

아직 정확한 이야기는 나눠봐야 알겠지만, 손정의가 먼저 투자 이야기를 꺼내는 것만 봐도 긍정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을 거 같았다.

“회장님이 말씀하신 일본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손정의를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손정의가 내 비서와 함께 뉴 코렌드를 타고 회사에 도착하였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손정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손정의 사장님, 어서 오세요.”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쾌차하셨다는 이야기 들었습니다. 축하합니다.”

“회장님이 쾌차를 기원해 주신 덕분입니다.”

“제 영향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하니, 기분이 좋군요. 일단 앉으시죠.”

“예, 알겠습니다.”

“한국은 어땠습니까?”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빌딩들, 도로들, 전철역들을 보면 미국이나 일본이라고 생각해도 이상할 게 없을 거 같았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특히 혜성 그룹의 빌딩들을 보고 놀랐습니다. 호텔도 그렇고 백화점도 그렇고 건물들이 어찌나 크고 화려한지. 도쿄 어느 곳에 둬도 어색함이 없을 거 같았습니다.”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 그를 보며 나는 속으로 아쉬움을 느꼈다.

‘진즉에 사옥을 바꿨어야 했는데.’

이런 일이 생길 줄 알고서 국내 파트의 김명운 사장에게 사옥 건설을 준비하라고 했는데 너무 늦은 일이 되어버렸다.

뭐 다행히 손정의는 크게 의식하지 않는 거 같았지만 말이다.

“사실 백화점이나 호텔을 보고 놀라기는 했지만,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뉴 코렌드였습니다. SUV가 이렇게 예쁘다니! 정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좋아할 거 같은 자동차입니다.”

백화점과 호텔을 칭찬하였던 손정의가 이번에는 뉴 코렌드 이야기까지 꺼냈다.

‘어떻게 해서든 내 환심을 사려고 하는 거 같군.’

지난번과는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일본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내가 그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했었는데 말이다.

‘하긴, 처지가 바뀌었으니 당연한 거겠지.’

저번에는 내가 손정의에게 제안하는 쪽이었다면, 이제는 반대로 손정의가 나에게 제안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손정의가 저자세를 취하는 것도 이상하게 볼 일이 아니었다.

“얼마가 필요하십니까?”

이야기가 길어질 듯 보이자,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최소 10억 엔은 필요합니다.”

“50억 엔을 투자하면 저에게 지분을 얼마나 주시겠습니까?”

나는 저번과 같은 금액을 불렀다.

IT 버블 당시 소프트뱅크가 20조 엔의 회사가 될 것을 아는데 투자를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손정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저는 지분을 10% 이상 매각할 생각이 없습니다.”

“10억 엔 이상의 투자를 받으려는데, 10% 이상의 지분을 매각할 생각이 없으시다면 소프트뱅크의 가치를 백억 엔 이상으로 잡고 계신다고 봐야겠군요.”

“예. 저는 제 회사의 가치가 100억 엔 이상 아니, 200억 엔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2백억 엔이라.”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무슨 대단한 기술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매출이 높은 것도 아닌데 2백억 엔이라니.

만약에 내가 노사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그와 더 길게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프트뱅크의 가치를 깎아내려서 투자금을 낮춰볼까? 아니다. 스티브 때도 느꼈지만, 천재의 자존심을 쉽게 생각하면 안 돼.’

괜히 몇억 엔 아끼겠다고 협상이 파투나면 손해 보는 건 나뿐이었다.

그러니 이럴 때는 져주는 것이 오히려 이기는 것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20억 엔을 투자하겠습니다. 대신 지분 10%를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20억 엔으로 소프트뱅크 지분 10%라.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다음 행보를 여쭙고 싶습니다만, 20억 엔을 받으면 어떤 사업에 집중하실 계획입니까?”

“우선 미국에 갈 생각입니다.”

“미국을요?”

“마이크로소프트사에게서 일본 내에서의 독점 판매권을 얻어내고자 합니다.”

나는 작게 감탄하였다.

확실히, 지금의 소프트뱅크로서는 제일 나은 선택이라 해도 무방하였다.

일본 SW 시장의 규모를 생각하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독점 판매권만 얻어도 상당한 매출을 올릴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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