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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120화 (120/300)

120화 안주할 때가 아니야

혜성 장학생이었다가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혜성 전자에 입사한 박기룡은 오늘도 평소처럼 출근길에 올랐다.

‘정말 차를 사야 하나.’

입사하기 전부터 혜성 그룹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그런지 몰라도 그는 혜성 전자에서의 생활을 굉장히 만족해하고 있었다.

심지어 회사에 다니는 게 즐겁다고 느껴질 때도 있을 정도였다.

남들이 들으면 욕할 수도 있었지만, 사실 그의 동기 중에는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워낙 월급을 많이 챙겨주고 성과에 대한 보상이 확실하니, 돈 버는 즐거움에 흠뻑 빠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을 꼭 하나 꼽자면, 바로 교통이었다.

회사가 강남에 있다 보니, 출퇴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박기룡!”

그때였다.

버스 정류장까지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데, 누군가 갑자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소리가 들린 곳을 확인해보니, 차도에 낯익은 차를 발견할 수 있었다.

회사 동기인 강충구의 자동차였다.

“충구냐?”

“그래, 인마. 멀뚱히 서 있지 말고 어서 타!”

“타라고?”

“회사 갈 거잖아. 내가 태워다 줄게.”

박기룡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전에도 이렇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서인지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강충구가 어서 오라고 손을 흔들고 있었기에 그는 어쩔 수 없이 더 거절하지 못하고 보조석에 올라탔다.

“고맙다. 오늘 점심은 내가 낼게.”

“뭐 그러면 나야 좋고.”

“그런데 진짜 차 좋다. 내가 차는 잘 모르는데, 이 차는 볼 때마다 특별하게 느껴져.”

뉴 코렌드.

박기룡이 존경하는 이한성 회장이 혜성 자동차를 설립한 이후에 처음으로 출시한 차였다.

그래서일까?

차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박기룡의 눈에도 뉴 코렌드는 뭔가 남다르게 느껴졌다.

존재감도 대단히 강렬하였는데, 도로에 뉴 코렌드가 나타났다 하면 그쪽으로만 시선이 쏠렸다.

“그치? 이거 장난 아니라니까?”

“아, 나도 사고 싶다.”

“말만 하지 말고 그냥 사. 돈도 많이 버는 놈이 뭘 그리 쪼잔하게 굴어?”

“너처럼 부잣집 아들이야 1,300만 원이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지겠지만, 나는 아니거든.”

뉴 코렌드의 출시가는 무려 1,300만 원.

국내 자동차 중에는 10위 안에 들 정도로 비싼 자동차였다.

아무리 혜성 전자의 직원들이 월급을 많이 받는다지만, 그런데도 뉴 코렌드는 버거운 가격임이 틀림없었다.

강남 집값이 그새 많이 올라서 강남 아파트 한 챗값이라고는 할 수 없었으나, 그래도 서울 외곽의 아파트 한 채는 거뜬히 살 수 있는 가격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이 차를 꼭 사야 하는 이유를 알려줄까?”

“꼭 사야 하는 이유? 그게 뭔데?”

“이 차를 사면 너 바로 연애할 수 있을 거야. 여자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남자가 될걸?”

그 말에 박기룡이 헛웃음을 흘렸다.

“웃기는 소리 하네. 나도 차를 안 좋아하는데, 여자들이라고 차를 좋아하겠어?”

“보여줄 테니 잘 봐라.”

박기룡은 강충구가 허세를 부린다고만 생각했다.

그 이상으로 여자와 인연이 없는 사람이 강충구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회사에 도착하자 박기룡은 자신이 무언가 착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분명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남자 동기하고만 친하게 지내던 강충구에게 여자 직원들이 달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충구 씨 다음에는 나도 태워줘!”

“저도 충구 씨랑 집 가까운데, 한 번만 태워주세요.”

자신이 호감을 느끼고 있던 여직원까지 강충구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는 모습을 보자, 박기룡은 저도 모르게 입을 떡 벌렸다.

‘겨우 자동차 하나 때문에 이렇게 바뀐다고? 말도 안 돼!’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복도를 지나가며 여직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뉴 코렌드가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확실한 거 같았다.

“이 과장이 차 바꿨잖아? 나는 처음엔 애사심 때문에 차를 바꾼 건 줄 알았다? 원래 이 과장이 애사심 하나는 엄청나잖아. 근데, 직접 실물을 보니까 애사심 때문이 아니었어. 내가 봐도 차가 예쁘더라고!”

“이현석 과장이 뉴 코렌드로 바꿨다고 했죠? 저도 그 차 TV에서 봤을 때, 뭔가 세련되게 느껴지기는 했어요. 실내도 뭔가 고급스러웠고요.”

“대형차만 아니었으면 진짜 나도 샀을지 몰라.”

“저는 비싸서 못 샀어요. 가격이 조금만 낮았으면 바로 샀을 텐데!”

박기룡은 혀를 내둘렀다.

평소에 자신 이상으로 차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여인들이 저렇게까지 열성적으로 차에 대해 이야기를 할 줄이야.

‘나도 진짜 뉴 코렌드를 사볼까?’

안 그래도 차를 살지 말지 고민이었는데, 이왕 살 거면 뉴 코렌드를 사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 * *

“형님, 뉴 코렌드의 반응이 상당한 거 같습니다.”

양기현이 내 술잔에 양주를 따르며 그 같이 말했다.

“판매고가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긴 해. 설레발일 수도 있지만, 올해는 뉴 코렌드 하나로 5백억 매출도 가능할 거 같더군.”

“5백억이 아니라, 수출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면 천억 이상도 가능할 거 같습니다.”

나는 피식 웃었다.

하나의 제품으로 천억이라.

예전 같았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겠지만, 호황기인 지금이라면 또 몰랐다.

워낙에 경제가 좋아지면서 자동차에 대한 수요도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우 그룹에서 SUV 자동차를 대폭 할인했다던데, 혹시 혜성 그룹을 노리고 한 일 아닙니까?”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정우뿐만이 아니라, 미래에서도 나를 견제하기 시작했어.”

“미래에서도 말입니까?”

“혜성 그룹이 자동차 산업에서까지 잘 나가는 것을 보기 싫었나 봐.”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실제로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두 기업의 견제라고 해봤자, 자동차의 가격을 낮추거나 광고를 빼앗는 정도에 불과하였다.

이미 다 대응 대책을 마련해놓은 상태였기에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러자 양기현이 감탄하였다.

“형님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정우와 미래라니. 저였으면 두 기업 중 하나만 상대하라고 해도 크게 긴장했을 거 같은데…….”

“전자 쪽에서는 일성이나 은성과도 경쟁을 하고 있는데, 새삼스럽게 긴장할 필요가 있겠어?”

솔직히 규모에서 밀릴 뿐이지, 혜성 그룹도 빅 4에 비교하면 꿀릴 게 없었다.

이건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재계에서도 혜성 그룹을 빅 5의 일원으로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올해 그룹의 총 매출이 2조를 돌파하고 전자나 자동차 쪽에서 크게 터져준다면 그때 되면 누구도 혜성 그룹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우리 사이에 존경은 무슨.”

“전 솔직히 형님이 스승님처럼 느껴집니다. 사업을 가르쳐주는 스승 말입니다.”

“그 이야기는 됐고, 한제인 부회장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

나는 손을 휘저으며 화제를 전환하였다.

스승이라느니, 존경한다느니 그런 이야기를 듣는 건 겸연쩍게만 느껴졌다.

그에게 따로 가르친 것도 별로 없는데 말이다.

“아무것도 안 하기로 했습니다.”

“한제인이 하는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겠다는 거냐?”

“예. 어차피 한제인 부회장을 노리는 사람은 저 말고도 많이 있습니다. 저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어부지리를 취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눈을 빛냈다.

양희수 회장 앞에서 양기현의 자질을 높이 평가하기는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양기현의 모습을 보니 그의 단점 중에 몇 가지는 고쳐진 듯싶었다.

‘양기현이 각성한 이상 세계 그룹의 후계 경쟁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

양희수 회장의 사위들이 탐욕스럽게 몸집을 불려가고 있었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할 거 같았다.

* * *

“지금까지 총 3천 대의 판매고를 기록하였습니다!”

“오! 매출로 따지면 그게 다 얼마지?”

“거의 4백억에 가깝습니다.”

“단일 기종으로 4백억이라니. 대단하군!”

“그만큼 뉴 코렌드의 인기가 무시무시하다는 의미입니다. 아마 인지도로 따지자면, 미래나 정우의 대표적인 기종들과 엇비슷할 겁니다.”

“요즘 스포츠 선수들 사이에서도 코렌드가 엄청난 인기라던데요? 김영일 야구 선수도 저희 코렌드 차를 샀다고 합니다. 으하하하!”

“크! 김영일 선수가 우리 차를 탈 줄이야. 세상 살다 보니 별의별 일이 다 있군!”

나는 혜성 자동차 임원들과 회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뉴 코렌드의 출시로 혜성 자동차의 매출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올해 안에 3천억 매출도 가능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보고하는 임원들의 목소리는 하나같이 격앙되어 있었다.

‘성공해서 자축하는 건 좋은데, 이건 너무 들떠있는 분위기군. 아직 갈 길이 먼데 말이야.’

나도 기쁜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자축하는 시간도 하루 이틀이었다.

할 일도 많은데 언제까지 자축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미국에서 미래 자동차의 인기가 상당하다던데, 다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내가 나직한 목소리로 물으니 임원들이 급히 입을 다물었다.

“다르게 묻겠습니다. 미래 자동차의 성공 요인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무래도 마케팅의 역할이 크지 않았나 싶습니다. 미래는 하나의 광고로 미래라는 회사를 고품질 수송기기 제조회사로 둔갑시켰습니다. 미래 그룹을 모르는 미국인들 입장에서는 미래 그룹이 대단히 발전된 기술 회사로 보였을 겁니다.”

“김 전무님의 말씀대로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미래는 단순히 새로 출시한 자동차를 홍보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광고에서 신차에 관한 내용은 30%도 안 됐습니다. 즉, 미래의 마케팅 전략은 제품이 아닌, 브랜드에 치중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미래 그룹의 광고는 기발하였다.

광고에서는 총 열 개의 이야기를 하였는데, 미래란 회사에 대한 소개와 이름의 발음, 회사의 규모 같은 설명이 대부분이었다.

노사가 말해준 전형적인 브랜드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미래 그룹의 성공 요인을 파악했는데, 우리라고 따라 하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브랜드 마케팅에 최선을 다해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께 경고하겠습니다. 한국에서 잘 나가고 있다고 방심하지 마십시오. 뉴 코렌드를 개발한 목적은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함이지, 국내에서 안주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내 말에 임원들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혜성 그룹의 임원들치고 내 성격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경고했을 때 처신을 똑바로 하지 않으면 큰일을 당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임원들은 크게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격앙된 분위기도 이제 조금은 잦아들겠군.’

임원들도 다시 침착함을 되찾고 미국을 비롯한 해외 진출을 노리지 않을까 싶었다.

뭐 사실 내가 경고를 하지 않았어도 프로들답게 알아서 분위기를 추슬렀을 거 같기도 했지만 말이다.

* * *

(마케팅하니까 갑자기 생각난 건데, 미드를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구나.)

“미드요?”

(편의점을 홍보하려고 지금 드라마 여럿에 PPL을 넣지 않았느냐?)

“예, 지은 씨가 이야기해 준 드라마들 위주로 편의점 씬을 집어넣었죠.”

요즘 집에 가면 드라마 이야기만 실컷 하고 있었다.

편의점 사업을 성공하기 위해 유지은에게 과외를 듣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몇 개의 드라마를 골라 PPL을 넣었는데, 이게 은근히 효과가 있는 거 같았다.

얼마 전 강남에 개점한 편의점에서 손님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특히나 오렌지 염색을 한 10대, 20대 손님들이 대거 찾아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편의점이란 공간이 신세대를 자극한 것이 분명하였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미국에서도 PPL을 넣으면 좋지 않겠어?)

그야 그렇다.

미국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뉴 코렌드가 등장한다?

이건 미국뿐만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게 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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