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투자천재-118화 (118/300)

118화 기절할 지도 몰라

“점포 위치는 어디로 정하셨습니까?”

“구매력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강남이 좋을 거 같습니다.”

김한선 대표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노사가 살던 미래에서야 돈이 많건, 적건, 잘도 편의점을 이용했었지만, 지금 시대는 달랐다.

특유의 고급스러운 이미지 탓에 적어도 중산층 이상들만이 편의점을 이용할 게 뻔했다.

그러니 강남을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었다.

“강남에서 점포를 연다고 해도 너무 고급스럽게 갈 필요는 없습니다. 인테리어야 당연히 깔끔해야 하지만, 상품들은 일반 슈퍼에서 파는 것들도 포함해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라면이나 과자는 물론이고, 분식집에서 파는 도시락도 진열대에 올릴 계획입니다.”

“좋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편의점은 슈퍼의 상위호환이었다.

슈퍼에 있는 상품들은 물론이고, 수입 과자처럼 슈퍼에 없는 상품도 판매하는 그런 유통 업체였다.

그렇기에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썩 긍정적이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고급스럽다는 것은 결국 대중적이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했으니까.

‘어떻게 보면 샤롯이 실패한 원인도 바로 그 고급스러운 이미지 때문이지.’

최초의 편의점을 연 것은 샤롯 그룹이었다.

일본에서 편의점이 잘 되는 것을 보고 아무런 계획 없이 편의점을 세운 것인데, 엄청난 적자를 보고서 망해버렸다.

실패 요인은 다양했지만, 일단 사람들이 편의점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실패 요인이었다.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단번에 없앨 수는 없으니, 차라리 이 이미지를 이용해서 젊은 층부터 공략하는 게 좋겠어.’

신세대를 공략하여 조금씩 연령대를 넓혀가는 게 최선일 거 같았다.

지금 당장 인식의 변화를 주는 것은 힘들 것이니 말이다.

“낯가림이란 벽을 없애려면, 우선 유행에 민감한 20대를 공략해야 합니다.”

“예. 안 그래도 20대들이 주로 보는 잡지 위주로 마케팅을 할 계획입니다.”

“그것도 좋지만, 드라마를 이용하는 게 더욱더 효과가 좋을 거 같습니다.”

내 말에 김한선 대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드라마라면?”

“드라마 주인공이 편의점을 자주 이용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것도 세련된 이미지를 가진 배우들이 말입니다.”

노사의 말을 들어보면 PPL 마케팅 전략은 미래에선 거의 필수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나 역시 PPL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확실히, 인기 있는 드라마에서 편의점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면, 효과가 없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없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상당한 수준일 것이었다.

실제로 머지않은 미래에 편의점이 유행하게 된 이유도 드라마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어떤 드라마를 선택하느냐인데.’

노사가 말해준 질투 어쩌고 하는 드라마는 나오려면 아직 3년이나 남았다.

그러니 다른 드라마를 선택해야 했는데, 아쉽게도 노사는 드라마에 대해 잘 알지 못하였다.

나도 그렇지만, 사업에만 열중하다 보니, 드라마를 볼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이건 아무래도 지은 씨에게 부탁하는 것이 좋겠어.’

유지은은 시간이 날 때마다 드라마를 챙겨보고는 한다.

그녀라면 내가 원하는 드라마를 찾아주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그녀에게만 도움을 청할 게 아니라, 다른 전문가들의 도움도 받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마케팅에 신경 써주십시오. 편의점이 성공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소비자들에게 편의점이 무엇인지 알리는 겁니다.”

“명심하겠습니다.”

* * *

본래, 세계 그룹에서 양희수 회장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사실상 창업주나 마찬가지였기에, 사내의 모든 임직원이 양희수 회장의 말을 철저하게 신봉하였다.

카리스마가 남다르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양희수 회장의 영향력은 작년부터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첫 시작은 정부의 압박을 받았을 때였다.

1985년 1월, 세계 그룹은 대출이 끊기고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는 등, 그룹이 통째로 사라질 뻔한 위기를 맞이하였었다.

이때 그룹 내부적으로 양희수 회장에 대한 비판이 처음으로 생겼는데, 지나친 반정부 행태에 대한 비판이었다.

물론 혜성 그룹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나면서 비판도 차츰 옅어졌다.

하지만 연말에 세계 상선을 혜성 그룹에 매각하자, 양희수 회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다시 생겨났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양희수 회장이 노망났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양희수 회장의 영향력이 흔들리자, 후계 경쟁도 본격화됐다.

언론에서도 세계 그룹의 후계 경쟁을 연일 보도할 정도였다.

“이 자리를 만든 이유가 뭡니까?”

세계 그룹의 부회장, 한제인이 불쾌한 목소리로 물었다.

일본식 요정에는 그 말고도 네 명의 사내가 앉아있었다.

모두 양희수 회장의 사위들이자, 세계 그룹의 전문 경영인들이었다.

“세계 그룹 계열사의 임원들끼리 자리 한번 만들었다고 그렇게 공격적으로 반응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양희수 회장의 셋째 사위였으나 나이는 가장 많은 안웅종이 허허롭게 웃으며 말했다.

“그냥 임원들이 아니라는 게 문제 아닙니까.”

“그럼요? 우리가 세계 그룹 임원이 아니면 뭔데 그러시는지?”

“회장님은 아십니까? 안웅종 대표께서 이런 자리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허허,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께서 따로 전하지만 않는다면 모르실 겁니다.”

한제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다른 참석자가 물었다.

그 역시, 이런 비밀스러운 자리인 줄 모르고 참석했는지 따지는 목소리였다.

“그래서 저희를 부른 이유가 뭡니까?”

“요즘 그룹의 사정이 좋지 않은 거 다들 아시죠? 재작년부터 성장 동력을 잃고서, 작년에는 심지어 계열사가 하나 줄기까지 했습니다. 재계 순위도 9위로 떨어졌고 말입니다.”

“다 아는 이야기를 왜 하시는 겁니까. 본론만 말해주십시오.”

“맞습니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할 거면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40대 중반의 나이인 안웅종 대표임에도 예의를 갖추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만큼 그들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진정들 하시고, 바로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이 자리를 만든 이유는 여러분과 힘을 합치기 위함입니다.”

“우리 다섯이서 힘을 합친다고요?”

“허, 참.”

황당해하는 분위기였지만, 안웅종 대표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다들 아시다시피, 그룹의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올해는 재계 순위가 어디까지 떨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우리 다섯 사람이라도 힘을 합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웅종 대표의 말에 한제인이 코웃음을 쳤다.

“별로 내키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신뢰도 안 가고 말입니다.”

“부회장님. 저는 사실 부회장님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갑자기 그건 또 뭔 소리입니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제가 자리를 만들었지만, 사실 가장 급한 쪽은 부회장님 아닙니까?”

한제인이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안웅종 대표가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회장님께서 기현이를 후계자로 밀어주려고 하시는 거 같은데, 그래도 걱정이 안 되나 봅니다.”

“…….”

한때 후계자로 유력했던 것은 그룹 부회장인 한제인이었다.

평사원에서 계열사 대표로, 계열사 대표에서 그룹 부회장이 된 그는 그야말로 평사원 신화의 주인공이었다.

여러 방면에서 능력을 입증한 그였기에 후계자로 유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양희수 회장의 장남인 양기현이 세계 그룹에 입사하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한제인이 아무리 유능한 전문 경영인이든, 회장의 사위든, 간에 그의 성은 양 씨가 아닌, 한 씨였다.

양희수 회장이 자신의 자식에게 회장직을 물려주기로 한다면, 그는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이겁니까? 우리 다섯이 힘을 합쳐서 이제 막 상무가 된 양기현을 몰아내자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상무라는 직위가 중요한 게 아니지요. 양기현이 회장님의 장남이라는 사실이 중요할 뿐입니다.”

“뭐가 됐건 저는 거절하겠습니다.”

한제인은 더 들어줄 것도 없이 거절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안웅종 대표가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이야기도 제대로 듣지 않고 거절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진심으로 세계 그룹의 미래를 위하신다면 이렇게 뒤에서 모략을 꾸밀 시간에, 세계 종합 기계의 매출이나 늘리십시오. 그게 진정으로 세계 그룹을 위하는 일이니까.”

그는 따끔하게 일갈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론 그가 애사심이 넘쳐서 이 같은 행동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한심하기 짝이 없군. 다섯이서 힘을 합치면 뭐가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양기현을 견제하기 위해 양희수 회장의 사위들과 힘을 합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기현이보다는 기현이 뒤에 있는 이한성 회장이 문제다.’

혜성 그룹의 회장, 이한성.

양기현의 뒤에는 바로 그자가 있었다.

그리고 한성이 양기현을 지지하는 한, 어떤 수를 써도 승산이 없었다.

한성은 단순히 자본력만 막강한 것이 아니라, 양희수 회장의 조언자 같은 존재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이한성 회장을 직접 만나보는 수밖에 없겠어.’

양기현이 비서 일을 하면서 한성과 개인적인 친분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아는 한성은 공과 사를 명확히 구분하는 사람이었다.

만약 한제인이 양기현보다 이익이 되는 존재라면?

한성은 양기현을 버리고 한제인을 선택할 가능성도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의 추측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 * *

나는 차의 시동을 켰다.

그러자 부르릉하며 시원한 소리가 났다.

“시동 걸리는 소리가 시원시원하군요.”

“회장님의 지시했던 대로, 남성미 넘치는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확실히, 차 외관부터 멋스러움이 물씬 느껴지긴 했습니다. 차내도 그렇고요.”

뉴 코렌드는 기대 이상이었다.

1세대 코렌드의 단점을 완전히 보완했다고 할까?

심지어 세련되기까지 하였다.

정통 지프 스타일을 살리면서, 승용차의 디자인 요소를 조합한 것인데, 이게 굉장히 세련되면서 멋스럽게 보였다.

‘이전의 코렌드는 실내가 싸구려처럼 느껴졌었는데,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급스럽게 변하였군.’

여러모로 만족스러웠다.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하운철 사장에게 말했다.

“하운철 사장님. 정말 큰일을 해줬습니다. 이 차를 보니, 미래 자동차를 따라잡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하, 회장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부담스럽군요. 아직 출시하지도 않은 상태인데, 이러다 뚜껑을 열었을 때 시장 반응이 처참하면 어쩔지 두려울 정도입니다.”

하운철 사장의 말처럼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법이었다.

막상 출시하고 나니, 소비자의 반응이 차갑거나, 아예 관심을 보내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이렇게 차가 잘 뽑혔는데, 실패할 일이 있겠습니까? 벤츠의 이름값도 있는데 말입니다.”

설레발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확신에 차 있는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호재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혁신적이면서 세련된 디자인에다, 성능도 SUV 중에서 거의 최고 수준이었고 벤츠의 이름값까지 더해졌다.

더군다나 경제 호황이 몇 년간 지속될 거라는 점도 큰 호재라고 볼 수 있었다.

‘이런 호재들이 있는 데도 실패한다면 그때는 자동차 사업을 접든가 해야지.’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하운철 사장에게 말했다.

“그러니 연말 보너스를 기대하십시오. 올해는 역대 최대급의 성과급을 지급할 것입니다.”

“하하, 정말 기대가 되는군요. 작년 성과급도 작은 액수가 아니었는데 더 많은 성과급이라니…….”

하운철 사장의 반응에 나는 피식 웃었다.

혜성 자동차가 작년에 받았던 성과급은 다른 계열사에 비하면 그리 많은 액수는 아니었었다.

아무래도 적자 회사였으니 말이다.

‘흑자 전환했을 때 성과급을 받고 나면 기절할지도 모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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