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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116화 (116/300)

116화 둘 중 하나는 줘야지

김종우 회장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돈을 원하는 것은 아닐 거고, 우리 쌍호 그룹의 계열사를 원하는 건가?”

“당연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나보다 가난한 이에게 돈을 얻어봤자 얼마나 얻겠는가.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장래가 유망한 기업들이었다.

“설마 공짜로 넘겨달라는 말은 아니겠지?”

“그럴 생각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디를 원하지?”

그 말에 나는 턱 끝을 쓰다듬었다.

과연 어떤 기업을 받아내야 할까?

“솔직히 가장 원하는 것은 쌍호 양회 공업이나 쌍호 건설입니다.”

내 말에 김종우 회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쌍호 양회 공업과 쌍호 건설은 쌍호 그룹의 핵심 계열사였다.

이 중에 쌍호 양회 공업의 경우 시멘트로는 국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회사로서 연 매출만 수천억이 넘는다.

물론 쌍호 건설 역시 연 매출이 3천억이 넘는 계열사였고 말이다.

“하지만 두 회사를 달라는 요구는, 김 회장께서 절대 들어주지 않으시겠죠.”

“잘 아는군. 만약 두 회사를 달라고 했으면, 나는 끝까지 저항했을 걸세.”

나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그가 끝까지 저항하든 말든, 두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귀찮은 것은 사실이었기에,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기로 하였다.

“정유나 중공업. 둘 중 하나는 주셔야 할 거 같습니다.”

쌍호 정유와 쌍호 중공업.

사실 처음부터 내가 원하던 것은 이 두 가지였다.

‘지금 당장에야 괜찮지만, 앞으로 유가가 계속 오를 거야. 유가가 많이 오른 십수 년 뒤에는 유류비만으로 1년에 수조 원을 지출하게 될 수도 있어.’

편의점을 하겠다고 혜성 유통을 계속 키우는 중이었다.

심지어 작년에는 세계 상선을 인수하기까지 하였다.

육상 운송에 해상 운송까지 더해졌으니, 해마다 지출하는 유류비도 이제는 만만치 않았다.

나중에 유가가 상승할 것을 생각하면, 정유사 하나쯤 보유함으로써 헤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쌍호 중공업도 인수해서 나쁠 게 없지. 이 회사도 나중에 대기업이 될 정도로 잠재력이 있는 회사니 말이야.’

지금 당장이야 저평가를 당하고 있었다.

업계에서의 순위를 따지면 중위권 정도.

경영 여건도 심각해서 만성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노사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내년부터 흑자를 보게 될 회사였다.

‘세계 상선도 인수했겠다, 쌍호 중공업에서 생산한 엔진을 써먹으면 그야말로 일석이조지.’

노사 역시도 그런 식으로 중견 기업을 일구어냈다.

상선 회사가 용선료 수입을 벌어들이면 조선 회사에 선박을 대규모로 발주하고 이 선박에 탑재할 엔진을 엔진 회사에 발주하면서 그룹 전체가 발전하였던 것이다.

뭐 그러다 2008년이 되면서 그룹 전체가 한 번에 무너져 내렸지만 말이다.

“둘 중 어디든 괜찮다는 건가?”

“대신, 쌍호 정유를 주신다면, 석유 관련 자회사들도 전부 주셔야 합니다.”

김종우 회장은 혀를 차더니, 이내 결단을 내렸다.

“중공업이 낫겠군.”

예상했던 대로의 선택이었다.

사실 김종우 회장으로선 선택이 정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매출로 보나 회사 규모로 보나 정유 쪽이 훨씬 컸으니까.

애초에 중공업은 만년 적자이기도 했고 말이다.

“인수가는 어느 정도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250억 이상은 줘야 할 것이네.”

“200억을 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김종우 회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나는 달래는 말투로 덧붙였다.

“대신, 잔금 지급을 이번 달 안에 해드리겠습니다.”

인수가를 50억이나 줄일 수 있다면, 잔금 정도야 일찍 줘도 무방하였다.

어차피 황 노인에게 6백억을 빌린 뒤로 현금 유동성도 다시 여유로워진 상황이고 말이다.

“돈이 참 많은 모양이군. 2백억을 한 달 안에 구한다니 말이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답은 정해져 있는 거 아니었나? 쌍호 중공업을 매각할 테니, 다시는 우리를 건들지 말게.”

“누가 보면 제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내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니, 그가 다급히 말했다.

“그런 뜻은 아니었네. 나는 그저 용서를 빈 것이야. 자네가 부디 우리 그룹을 용서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말일세.”

“알겠습니다. 김 회장님을 더 건드렸다가는,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저도 더 건드리지는 않겠습니다. 혹여나, 킬러를 구하시다가 역으로 킬러에게 당하면 제가 미안한 감정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김종우 회장은 몸을 움찔하였다.

농담 같은 나의 말에 정곡을 찔린 듯, 당황한 기색이었다.

“자세한 인수 협상은 실무진을 통해서 하는 거로 하고, 이만 가보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아, 알겠네!”

“마지막에 와서 허튼수작을 부리지는 않으리라고 믿습니다.”

“중공업에 장난질 같은 건 절대 안 할 테니, 걱정하지 말게.”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짜 살인 청부를 알아보기라도 한 거야, 뭐야?’

저렇게 나오니 뭔가 더 수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더 신경 쓰지는 않기로 하였다.

어차피 받아낼 것은 다 받아냈으니, 허튼짓하지는 않는지 가끔 감시만 해주면 될 거 같았다.

(깔끔하게 끝났구나.)

노사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나보다 기분이 좋을 사람은 노사였다.

김종우 회장을 감시한 것도 그였고, 해운 쪽으로의 확장을 원하는 것도 그였으니까.

“노사의 바람이 이루어졌군요.”

(내 바람?)

“예. 쌍호 중공업까지 인수했으니, 해운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은 정해진 일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내 말에 노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겨우 엔진 만드는 회사야. 엔진뿐만이 아니라, 선박 그 자체를 직접 건조해야 내 바람을 이루게 될 거다.)

나는 피식 웃었다.

노사의 욕심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야말로 끝도 없는 욕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소를 인수하는 것은 당장은 힘들 거 같습니다.”

(나도 당장 인수하라고 할 생각은 없다. 아직 해운 업계의 불황이 끝나려면 몇 년 남았으니, 88 올림픽 때쯤 결정을 내리면 될 거야.)

“알겠습니다.”

(그리고 쌍호 중공업을 인수하게 된 거, 세계 그룹 회장에게도 알려주는 게 좋겠다.)

“양희수 회장에게 말입니까?”

(네가 혜성 해운에 신경을 안 쓰는 거 같아서 섭섭해하고 있거든. 쌍호 중공업을 인수한 사실을 알리면 많이 기뻐할 거다.)

“그렇습니까?”

노사의 말을 들으니, 확실히 양희수 회장이 섭섭한 감정을 느껴도 이상하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껏 세계 상선을 매각했더니, 혜성 해운으로 이름을 바꾸고 지금까지 별다른 신경을 안 쓰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노사의 충고에 따라 바로 양희수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쌍호 중공업을 인수하게 되었다고? 아니, 그게 정말인가?

예상대로 양희수 회장은 매우 놀라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하기야, 그의 입장에서는 뜬금없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혜성 그룹이 견원지간이나 마찬가지였던 쌍호 그룹의 계열사를 인수한다니.

물 밑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모르고 있던 입장에서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됐습니다.”

-허어. 자네는 이렇게 큰일을 쉽게도 말하는군.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 마냥 말이야.

“일본에서 진행하고 있는 투자 사업을 생각하면 그렇게 큰일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거 같습니다.”

내가 그리 말하니, 양희수 회장이 헛웃음을 흘렸다.

남다른 나의 배포에 기가 질린 거 같았다.

-아무튼 축하하네. 이제 쌍호 중공업까지 얻었으니, 그야말로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단 격이나 다를 게 없겠어.

“혜성 해운이 높게 날아오를 날이 머지않은 거 같아서 그게 가장 기쁩니다.”

-어서 그날이 왔으면 좋겠군.

노사에게도 미리 말했지만, 혜성 해운이 비상할 날은 그리 멀지 않았다.

기껏해야 3년.

3년 안에는 반드시 이 나라 최고의 해운 회사가 되어있을 것이다.

물론 90년대에는 한국 최고로 만족하지 않고 세계로 쭉쭉 뻗어 나갈 것이고 말이다.

-자네, 2세 계획은 세웠는가?

“콜록! 콜록!”

양희수 회장이 갑자기 그렇게 묻자, 나는 헛기침을 하였다.

안 그래도 이한철 명예회장이 손자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양희수 회장까지 2세에 대해 질문을 하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갑자기 왜 물으십니까?”

-다름이 아니라, 후계자 문제로 골치가 아파서 말일세.

“아…….”

후계자 문제라.

확실히 내가 양희수 회장의 입장이어도 골치 아플 거 같기는 했다.

능력 있는 사위만 다섯 명에, 아들까지 끼어있으니 말이다.

‘뭐, 애초에 나였으면 후계자를 고르는 것을 이렇게 오래 끌지도 않았겠지.’

양희수 회장처럼 60대 중후반의 나이까지 후계자를 정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었다.

지금 세계 그룹이 내부적으로 불협화음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후계자를 정하지 않아서라고 볼 수 있었으니까.

-이 회장, 여전히 기현이와는 잘 만나고 있나?

“예. 일본에 가기 전에도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한 가지 묻겠네. 이 회장은 기현이가 내 뒤를 이으면 세계 그룹을 잘 이끌 수 있으리라 보는가?

난감한 질문이었다.

물론 나는 세계 그룹의 후계자로 양기현을 지지하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대놓고 양희수 회장에게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가 너무 어려운 걸 물었나 보군.

“아무래도 제가 함부로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라서, 제대로 된 답변을 해드리지 못할 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네. 내가 괜한 것을 물었던 거지.

“기현이에 대한 제 생각을 짧게 말씀드리자면, 기현이는 한 명의 경영인으로서 손색이 없는 능력을 갖췄다고 생각합니다.”

-흠.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하네. 다만, 기현이 그놈은 결단력이 없어서 문제야. 돌다리야 두드리고 건너가는 게 맞긴 하네만, 신중해도 너무 신중하단 말이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양기현은 좋게 말하면 신중하고, 나쁘게 말하면 우유부단한 성격이었다.

비서 일을 할 때도 내가 시킨 일은 누구보다 신속하게 처리했지만, 본인이 결정해야 하는 일은 시간이 오래 걸렸었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이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세계 그룹 정도 되는 기업의 후계자라면 저돌적인 성격보다는 차라리 신중한 성격이 낫지 않을까 싶었다.

애초에 후계자가 완벽한 사람이길 바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욕심이기도 했고 말이다.

‘어쩌면 나 때문에 양희수 회장님의 눈이 높아진 게 아닌가 싶군.’

만약 그런 거라면 양기현에게 미안할 따름이었다.

-아무튼 알겠네. 자네의 조언을 들었으니 더욱더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도록 하지.

“예, 심사숙고하셔서 결정을 내리십시오.”

통화가 끝나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슬슬 세계 그룹의 후계 경쟁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해야겠어.’

물론 세계 그룹보다는 일성 그룹이 더 급했다.

노사가 이야기해 준 대로 역사가 흘러간다면 이병건 회장의 수명이 1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으니 말이다.

* * *

미래 그룹 회장 왕주형은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임자, 그 말이 사실이야?”

“예. 이미 혜성 그룹에서도 인정한 사실입니다.”

“혜성 그룹에서 쌍호 중공업을 인수하였다라. 정말 믿기 어려운 소식이군 그래.”

재계가 한성에 관한 이야기로 떠들썩할 때도 왕주형 회장은 무관심으로 일관했었다.

혜성 그룹이 아무리 급성장을 하고 있다지만, 그래봤자 하위권에서 순위가 오른 정도일 뿐이었다.

미래 그룹이 포함된 빅 4와는 급이 달라도 너무 달랐으니, 신경을 쓸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혜성 그룹은 어느새 재계 5위가 되며 빅 4를 가시권 안에 두기 시작하였다.

왕주형 회장도 더는 혜성 그룹을 무시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김종우, 그놈은 무슨 생각으로 자기 회사를 매각한 거지? 이한성 그놈은 또 무슨 돈이 있어서 쌍호 중공업을 인수한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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