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투자천재-115화 (115/300)

115화 후회할 거라고 했지?

손정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저, 혜성 그룹과 계약을 맺고서 한국 SW 시장에 진출할 것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투자 제안을 받을 줄이야.

‘일단 소프트뱅크의 가치를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지 물어만 볼까?’

돈이 급하긴 했지만, 당장 소프트뱅크의 지분을 팔 생각은 없었다.

지금의 가치로 지분을 팔아봤자, 나중을 생각하면 손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남의 눈에 소프트뱅크의 가치가 어느 정도로 보일지 아는 것도 중요하였기에, 손정의는 이같이 물었다.

“투자 금액은 어느 정도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최소 투자 금액으로 50억 엔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50억 엔, 말씀입니까?”

손정의는 눈을 부릅떴다.

설마 이렇게까지 소프트뱅크를 높게 쳐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오히려 금액이 너무 높아서 문제인데?’

차라리 10억 엔이었으면 못 받을 이유도 없었다.

잘 협상해서 지분을 5% 정도만 떼어주면 되니까.

하지만 50억 엔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50억 엔이면 지분을 아무리 못해도 20% 이상은 주어야 했다.

은행이 아니면 투자를 잘 받지 않는 손정의였기에, 50억 엔이라는 투자 금액은 지나치게 부담스러웠다.

“고민해 보겠습니다.”

“50억 엔이 적게 느껴지시면 더 투자할 의향도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손정의는 몸을 움찔하였다.

투자 금액을 올릴 수도 있다는 말에 그는 기가 질리는 것을 느꼈다.

‘도대체 이 사람은 돈이 얼마나 많은 거지?’

한성은 한국 나이로 쳐도 30세에 불과하였다.

손정의와 동갑의 나이인 것.

그런데 자본의 차이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저 정도면 부자들이 넘쳐나는 일본에서도 부자 행세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죄송합니다. 지금 당장 결정을 내리긴 어려울 거 같습니다.”

“아쉽군요.”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고민해 보시고 천천히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손정의 사장님에게 50억 엔의 자금은 큰 힘이 될 겁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50억 엔이라니.

이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 그저 웃음만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혜성 그룹이 정확히 어떤 기업인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지분을 매각할 수는 없어.’

한성이 물러나자 그는 비서를 시켜 혜성 그룹을 조사하게 하였다.

투자자에 대해 기본적인 정보는 숙지하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헉! 혜성 그룹이 한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기업이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원래는 재계 순위가 더 낮았는데, 최근 들어 급성장하고 있다 합니다.”

손정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50억 엔을 투자한다고 했을 때부터 한성의 자금력이 심상치 않다고 여기긴 했지만, 혜성 그룹조차 이렇게 거대한 기업일 줄은 몰랐다.

‘이런 대기업에서 왜 소프트뱅크에 투자하려고 하는 걸까?’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소프트뱅크가 한국에서도 인정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재벌의 투자를 받는 것은 너무 위험해.’

만에 하나 혜성 그룹에서 경영권을 노린다면, 대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자본력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났으니 말이다.

‘그래도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르니, 친분을 쌓는 것은 나쁘지 않겠어.’

지금 당장은 투자를 받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미래는 아무도 몰랐다.

소프트뱅크의 재정 상황이 지금보다 더 악화할 수도 있고, 반드시 인수해야 할 회사가 생길 수도 있었다.

그러니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하여 한성과 인맥을 만드는 게 좋을 듯싶었다.

* * *

첫 일본행은 만족스러웠다.

편의점 구경도 충분히 했고, 니시다 노리마사를 영입하는 것도 성공하였다.

소프트뱅크의 지분을 얻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었지만, 손정의와의 친분을 얻는 것은 성공하였다.

‘갑자기 태도가 달라진 것을 보면, 혜성 그룹을 조사했나 보지?’

두 번째 만남에서 손정의는 더욱더 공손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혜성 그룹이 한국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손정의와 친분을 쌓기도 수월해졌다.

손정의부터가 적극적으로 나서니, 금세 십년지기 친구처럼 되었다.

‘다음에 만났을 때는 꼭 투자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군.’

지금 소프트뱅크에 투자할 수만 있다면, 부동산보다 훨씬 큰 이익을 볼 수 있었다.

노사가 이야기해 준 대로 미래가 흘러간다면 소프트뱅크는 IT 버블이 꺼지기 전, 시가총액이 무려 2백조 이상이었다.

지분 10%만 얻어도 십수 년 뒤에 20조를 얻는다는 뜻이었다.

물론 이것은 단순하게 계산한 결과이긴 했다.

중간에 지분이 희석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 거니까.

어쨌거나, 소프트뱅크에 투자한다면 수년 안에 100배 이상의 이익을 볼 가능성이 컸다.

이러니 나로선 소프트뱅크의 지분이 탐날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는 잘 갔다 오셨어요?”

“예. 이것저것 얻고 온 게 많습니다.”

“그래요? 배울 점이 많았나 보네요?”

유지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얻은 것도 많았고 배운 것도 많았다.

그야말로 일석이조라고 할 수 있으리라.

“다음에는 지은 씨도 같이 가시죠.”

“좋아요!”

나는 그녀를 향해 웃어주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사실 그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유지은 뒤에서 노사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일본 구경은 잘했냐?)

“부럽더군요.”

(뭐가 부러워?)

“건물부터가 일단 한국과는 비교도 안 되게 화려했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렇겠지. 지금 시기가 일본의 최전성기니 말이야.)

“언젠가 우리나라도 지금의 일본과 같은 전성기를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나라에 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소리가 괜한 말이 아닌 거 같았다.

나야 나흘 정도 짧게 나갔다 왔을 뿐이지만, 매우 많은 자극을 받았다.

(쓸데없는 걸 부러워하는군. 몇 년 지나면 꺼질 거품이야. 지금의 일본은 부러워할 가치가 없어. 우리도 올해부터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을 맞이할 것이고 말이야.)

“그렇습니까.”

노사의 말이 맞기는 했다.

다만, 그렇게 따지면 우리나라도 십수 년 뒤에 IMF를 맞이할 것이니, 썩 긍정적인 미래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손정의는 어떻게 됐냐?)

“조금은 친해진 거 같습니다. 올해 안에 한국으로 찾아온다고 하는데, 운이 좋으면 지분을 인수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래. 이왕이면 올해 안에 투자하도록 해라. 지금이 어떻게 보면 가장 저평가를 받는 시기이니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이베스는 잘 됐고?)

“연봉을 잘 챙겨준다니까, 바로 수락하더군요. 결국 니시다 사장이 일본 법인을 맡기로 했습니다.”

(호텔 쪽은 이제 알아서 쭉쭉 성장하겠구나.)

“아마 그럴 거 같습니다. 혜성 호텔도 그렇고 이베스 호텔도 그렇고, 제가 할 수 있는 지원은 다 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는 어느 사업에 집중할 생각이냐?)

노사의 물음에 나는 지체없이 대답했다.

“당연히 자동차입니다.”

뉴 코렌드의 출시가 머지않았다.

혜성 자동차는 뉴 코렌드에 엄청난 자원을 투자하고 있었다.

자본으로 따진다면 지금까지 투입된 자본만 백 억 단위였다.

이렇게 투자한 시간과 인력, 자본이 상당하니 나로서도 뉴 코렌드의 출시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뭐 자동차는 딱히 해줄 말이 없구나. 자동차 쪽은 네가 나보다 더 전문가이니 말이야.)

“아닙니다. 아직 배울 게 많습니다.”

(됐다. 나중에 마케팅 쪽으로만 조금 거들어주마. 그 외에는 네가 알아서 해.)

요즘 이런 일이 잦아졌다.

사소한 것까지 챙겨주던 노사가 이제는 전적으로 나를 믿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의미이니, 기분이 좋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모든 결정을 혼자 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이 되기도 했다.

물론 그룹 총수라면 원래 짊어지어야 할 부담이었지만 말이다.

“근데 김종우 회장은 어떤 결정을 내렸습니까?”

(쌍호에서 어떤 계열사를 받아올지 고민해 봐. 곧 김종우 그놈이 알아서 회사를 바치러 올 테니 말이야.)

노사의 말에 나는 얼굴에 화색을 띠었다.

얻을 것도 없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 전쟁이 마침내 끝난 듯싶었다.

* * *

“회장님, 도착했습니다.”

김지태 운전기사의 말에 나는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16층의 거대한 건물이 눈에 보였다.

‘분명 큰 건물이긴 한데, 눈이 높아진 것인지 아쉬운 구석이 꽤 보이는 거 같군.’

처음 혜성 그룹에 입사했을 때는 속으로 감탄을 거듭했었다.

공식적으로 혜성 그룹의 후계자가 된 이후, 이 건물의 주인이 되는 것을 상상했을 때는 짜릿한 기분을 느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지금은 감흥이 없었다.

일본에 갔다 와서 그럴까?

자랑스러운 감정은 온데간데없고, 손정의나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들에게 이 건물을 보여줄 것을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창피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하긴, 그룹의 규모에 비하면 그리 크다고 볼 수는 없지.’

혜성 그룹은 재계 순위 5위의 대기업이었다.

연 매출이 천억 넘는 계열사만 수두룩하였는데, 당연히 16층짜리 건물도 비좁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혜성 건설의 본사로 쓰이던 곳이라, 더욱더 공간이 작았다.

‘어차피 땅도 충분하니, 김명운 사장에게 말해서 그룹 본사를 지을 준비를 하라고 해야겠어.’

지금이야 일본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강남 부동산을 쓸어 담았던 사람이었다.

세계 그룹이 소유한 매물들도 대거 매입한 적이 있었기에, 그룹 본사를 지을 땅이야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었다.

“오셨습니까, 회장님.”

“예, 비서실장님은 잘 지내셨습니까?”

“물론입니다.”

“혹시 쌍호 그룹 회장이 저를 찾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아셨습니까?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 했는데, 쌍호 그룹의 김종우 회장이 직접 전화를 했었습니다. 회장님께서 시간을 내주면 언제든 찾아가겠다고 말입니다.”

나는 피식 웃었다.

노사의 말을 듣고 예상하긴 했지만, 그 김종우 회장이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올 줄이야.

“올 거면 지금 바로 오라고 전해주세요.”

김종우 회장을 괴롭히려면 일부러 만남을 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었다.

내가 계속 피해 다니면 김종우 회장으로선 극도로 초조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김종우 회장과 쓸데없는 신경전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문제는 속전속결로 해결하는 게 최선이었다.

“김종우 회장이 찾아왔습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아침 업무를 보고 있는데 김종우 회장이 도착하였다.

30분도 안 걸린 거 같았다.

진봉현 비서실장의 전화를 받고는 바로 출발한 듯싶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쓸데없는 신경전을 할 거면, 그냥 돌아가세요.”

나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김종우 회장에게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김종우 회장이 안색을 굳혔다.

“……신경전 같은 건 할 생각이 없다.”

“그러면 무슨 용무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패배를 인정할 테니, 찌라시를 퍼뜨리는 짓은 중단하면 안 되겠나?”

그의 자존심을 생각하면 이 한마디를 하는데 엄청난 고민을 했을 것이다.

자존심 하나는 미래 그룹의 왕 회장 못지않은 인물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가 어떤 마음을 품고서 패배를 인정했든, 나에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는 오직 하나, 그가 나에게 어떤 계열사를 바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안기부장과 손잡고서 저를 물 먹이려고 하셨는데, 겨우 이 정도로 끝날 거로 생각하시지는 않으리란 믿습니다.”

증거를 조작해서 나를 구속시키려 했던 자다.

그냥 관대하게 넘어갈 수는 없었다.

“무릎을 꿇으라면 꿇겠다. 그러니 부디 나를 용서해다오.”

“제가 원하는 건 따로 있음을 아실 텐데요.”

“……그럼 무엇을 원하지?”

“고림 그룹의 사례를 다시 이야기해드려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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