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손정의를 만나라고?
니시다 노리마사는 직접 확인해 보기로 하였다.
‘여긴 사하라 모텔이잖아? 언제 폐업하고 호텔이 된 거지?’
어떻게 소문도 없이 갑자기 호텔이 오픈했나 했더니, 새로 지은 게 아니라 기존의 건물을 매입한 듯하였다.
물론 기존의 건물을 매입했다 해서 예전 그의 여관처럼 후지게 보이지는 않았다.
애초에 건설한 지 5년도 안 된 7층 건물이었기에, 충분히 멋스럽게 보였다.
“이베스 호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호텔 안에 들어가니 프런트에서 여직원이 반갑게 인사하였다.
‘프런트가 참 작군.’
여직원 세 명이 간신히 설 수 있을 정도로 비좁았다.
로비도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치 여관처럼 입구 근처에 바로 객실이 있었다.
‘그래도 깔끔해서 보기가 좋은데?’
속으로 그런 평가를 하다가, 이내 안색을 구겼다.
경쟁 업체에 후한 평가를 해봤자, 득 될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싱글룸의 가격이 얼마입니까?”
“싱글룸은 8,900엔입니다.”
8,900엔이라니!
‘우리보다 10%나 더 싸잖아!’
편의점 어묵이 2천 엔인 시대였다.
다른 호텔의 경우 1만 엔을 넘어 2~3만 엔의 경우도 흔했다.
최고급 호텔을 지향하는 곳이라면 1박에 5만 엔 이상인 곳도 있었고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1박에 8,900엔이라고 하니, 니시다 노리마사는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여기 있습니다.”
니시다 노리마사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현금을 주었다.
그러고는 호텔 안팎을 두루 살펴봤는데, 여느 호텔과 다른 점들이 눈에 띄었다.
일단 객실 자체는 깔끔한 편이었다.
이불이나 침대도 매우 깨끗했고 말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호텔이 갖추고 있어야 할 시설들이 보이지 않았다.
식당도 없었고, 매장도 갖추어지지 않았다.
그저 자판기 하나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숙박시설만 이용하라고 만든 호텔인 건가.’
니시다 노리마사는 안색을 흐렸다.
다른 호텔과 비교하면 흠잡을 구석은 분명 존재하였다.
시설이 부족하다는 것.
오직 그거 하나만으로도 흠을 잡기는 충분하였다.
하지만 니시다 노리마사는 시설이 부족한 것에 대해서는 비난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지향하는 호텔 사업도 이베스 호텔이 지향하는 것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지향하는 것은 같은데, 서비스는 우리가 월등히 떨어진다고?’
니시다 노리마사의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
이베스 호텔은 마치 그를 노리기라도 한 거 같았다.
위치도 절묘했고, 심지어 타깃층까지 정확하게 일치하였다. 가격은 오히려 그의 호텔이 더 비쌀 정도였다.
만약 이대로 그의 호텔이 개업한다면 결과는 보나마나였다.
필패.
반드시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절대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니시다 노리마사는 이를 악물었다.
호텔은 그에게 있어 마지막 도전이나 마찬가지였다.
모든 자금을 끌어모아, 심지어 대출까지 받아 가며 여관을 재건축한 상황이었다.
이번에도 사업에 실패한다면, 다음엔 절대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베스 호텔과의 경쟁에서 승리해야만 했다.
‘가격을 내리는 수밖에 없나?’
역 근처의 이베스 호텔은 8,900엔인데, 역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그의 호텔이 1만 엔이라면 아무도 그의 호텔을 찾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호텔이 시설이나 서비스가 더 좋은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결국 그는 1박의 가격을 처음 정한 가격보다 2천 엔이 싼 8천 엔으로 정하였다.
‘더 내렸다간 감당이 안 돼. 아무리 지출을 줄여도 객실이 다 차지 않는 한, 손해만 볼 거야. 그러니 이게 최선이다.’
다행히도 2월이 되고 호텔을 오픈하니, 여기저기서 손님들이 많이 찾아왔다.
8천 엔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호텔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하니, 많이들 찾는 거 같았다.
니시다 노리마사는 희망을 품었다.
비록 이베스 호텔과 경쟁하느라 고객 확보도 어려워졌고, 기대 수익도 많이 낮아졌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찾아준다면, 그가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세웠던 목표도 이룰 수 있을 듯싶었다.
‘운이 좋으면 3년 안에 2호점을 열 수 있겠어.’
지금은 1호점에 불과하였다.
그의 계획대로 착착 돌아간다면 3년 안에 2호점, 그 뒤로 프랜차이즈화하여 20개 이상의 호텔을 개업하게 될 것이다.
“사장님! 이베스 호텔에서 가격을 낮췄습니다.”
“뭐? 얼마나 낮췄는데?”
“7,900엔입니다!”
하지만 그의 행복한 상상도 오래가지 못했다.
이베스 호텔에서 가격을 낮추었고, 그 결과 고객들이 대거 이탈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친놈들 같으니! 여기서 가격을 더 낮추면 어쩌자는 거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마치 돈을 벌겠다는 목적이 아니라, 그의 사업을 망가뜨리겠다는 목적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노리마사, 어떻게 할 거야? 우리도 가격을 낮춰야 하나?”
“우리가 낮추면 저놈들이 또 낮추지 않을까?”
“설마 그렇게까지 하려고?”
“지금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이야. 손님도 많아지고 있는데 가격을 낮출 이유가 어디 있냐고. 이건 우리를 견제하는 목적으로밖에 생각하기 어려워.”
니시다 노리마사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대로는 힘들어.’
지금 당장이야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베스 호텔이 계속 견제를 한다면?
자본이 부족한 니시다 노리마사는 오래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아무래도 이베스 호텔에 매각하는 수밖에 없을 거 같아.”
“뭐? 우리 호텔을 매각하자고?”
“우리 호텔의 성공 가능성은 충분히 확인했어. 손님들도 많이 찾아왔었고, 매출도 상당히 늘어날 전망이었지. 하지만 이베스 호텔, 저놈들이 여기서 버티고 있으면 성장에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어.”
“그러니 호텔을 팔아서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자는 거야?”
“그래. 가능성은 확인했으니, 굳이 오타구 지역에 남아서 이베스 호텔과 경쟁할 필요는 없잖아?”
“뭐 그렇긴 하네. 근데 이베스 호텔이 과연 제값을 쳐줄까?”
“이베스 호텔이 어떻게 나올지는 두고 봐야지.”
니시다 노리마사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그리 말했지만, 속으로는 초조함을 느꼈다.
그 역시 이베스 호텔이 제값을 안 쳐주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하고 있었다.
* * *
1985년이 가고 1986년이 되었다.
여느 때처럼 회사에 출근하여 신문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올해는 왠지 다사다난한 해가 될 거 같은데? 특히 정치 쪽으로 사건이 많이 일어나겠어.’
노사는 언젠가, 1986년에 아시안 게임이 있어서 민주화 투쟁의 열기가 약해질 거라는 이야기를 했었지만 전혀 아니었다.
1986년의 민주화 투쟁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신한당에서는 올가을 직선제 개헌을 마치고 내년에 바로 대통령 선거를 하게 만들겠다고 기자회견을 열기까지 하였다.
물론 거리의 시위도 많이 개최되었다.
노사가 이야기했던 1987년의 시위 현장처럼 대학교 교수부터 회사에 다니는 샐러리맨까지 참여한 시위는 아니었지만, 매일같이 천 명이 넘는 대학생들이 시위에 나섰다.
‘부디 큰 피를 흘리지 않고 민주화가 되었으면 좋겠군.’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크게 기대를 걸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민주화 투쟁이 거세진 만큼, 5공 정권의 탄압도 거세졌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종교 지도자들까지 건드릴 정도였다.
‘내가 여기서 더 할 수 있는 것은 없겠지. 괜히 안기부에 걸릴 수도 있으니 말이야.’
나는 떳떳했다.
다른 기업인들이 파업이나 노동자 시위 등의 이유로 운동권을 적대하고 있을 때, 나는 오히려 운동권을 지원하고 있었다.
비록 큰 액수는 아니지만, 한 달에 5천만 원 이상의 지원을 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선거 때도 신한당에 수십억의 거금을 지원해 준 만큼 기업인으로서 나는 할 만큼 했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물론, 순수한 목적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나는 정치에 더 신경 쓰지 말고 오직 회사 경영에만 집중해야겠어. 수출이 곧 애국인 시대니까.’
내가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할 때, 마침 전화가 왔다.
이베스 호텔의 CEO인 세라 콜리스의 전화였다.
-니시다 사장의 회사를 인수했어요. 비록 호텔의 규모는 작지만, 보스의 말대로 미래 잠재력은 있어 보여요.
세라 콜리스의 말에 나는 반색하였다.
그녀야 그냥 작은 호텔을 인수했다는 식으로 보고했지만, 나는 그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알고 있었다.
일본 최대 규모를 넘어 세계 최대 규모의 호텔 프랜차이즈가 될 회사였던 것이다.
‘설마 토요코인을 이렇게 쉽게 인수하게 될 줄이야.’
토요코인을 견제하기 위해 일부러 가마타 역 근처에 점포를 연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인수 자체는 계획에 없었다.
그저 견제 자체가 목적이었는데, 이렇게 토요코인을 인수하게 되었으니 나로선 좋은 일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별로 어려운 건 없었어요. 워낙 자본이 미미해서 그런지, 가격 경쟁을 하니 바로 기권을 하더군요.
“그렇습니까?”
-보스가 점포 위치를 잘 정해줬어요. 승리의 요인이 바로 위치였거든요. 역 근처라서 구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보스의 능력이 참 대단한 거 같아요.
“운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쪽 회사의 임직원들은 어떻게 할까요?
“저희와 서비스나 시설 등이 비슷하다고 했었죠?”
-예, 맞아요. 마치 우리를 따라 하기라도 한 것처럼 비슷한 구석이 많더라고요.
뭔가 민망했다.
저들이 우리를 따라 한 게 아니라, 우리가 저들을 따라 한 것인데 말이다.
물론 세라 콜리스는 절대 동의하지 않을 말이겠지만.
“세라 콜리스 대표의 생각은 다를 수 있으나, 저는 니시다 사장의 경영 능력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토요코인을 만든 사람이었다.
당연히 능력이 없을 수는 없었다.
-음, 두 달 만에 회사를 접은 사람인데 과연 능력이 좋을까요?
“그만큼 시류를 잘 읽는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포기해야 할 때 포기할 줄 아는 것.
이 또한 사업가가 가져야 할 필수 요소였다.
그런 의미에서 니시다 노리마사는 사업가로서 뛰어난 자질을 가졌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니시다 사장 본인보다는 그의 딸이 더 능력자인 거 같지만 말이야.’
노사가 이야기해주길, 토요코인은 니시다 노리마사의 딸이 가업을 물려받은 이후에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니시다 노리마사의 능력도 뛰어나지만, 그의 딸은 더 인재라는 의미였다.
-아무튼, 그래서요? 니시다 사장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뭔가요?
“저는 니시다 사장에게 일본 법인을 맡길까 합니다.”
-일본 법인을요?
세라 콜리스가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기껏 내 지시에 따라 일본 사업에 몰두했더니만, 갑자기 발을 빼라고 말하니 그녀로선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니시다 노리마사가 있는데 구태여 그녀까지 일본에 놔둘 필요는 없지.’
그녀는 미국에서의 사업에 집중하면 된다.
일본은 니시다 노리마사 한 명으로 충분할 것이니까.
“가능성을 보여주셨으니, 4천만 달러를 새로 투자할 계획입니다. 이 4천만 달러로 미국 동부를 넘어 서부에까지 점포를 늘려주십시오.”
-보스의 지시라면 당연히 따르긴 하겠는데, 니시다 사장이 과연 일본 법인을 맡으려고 할까요? 다른 사업체도 경영하는 거로 봐서, 자기 사업을 하려고 할 거 같은데요.
“연봉으로 설득해 봐야죠.”
-일본인을 연봉으로 만족시키기는 쉽지 않을 텐데요. 아무튼, 알겠어요. 니시다 사장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기만 한다면, 그때부터는 저도 미국 사업에 집중할게요.
“예.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야 미국에서 사업하는 게 더 좋은걸요.
통화가 끝나자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세라 콜리스의 능력이 기대 이상이었다.
그녀를 믿고 적극적으로 투자해준다면, 토요코인 이상의 기업은 만들 수 있을 거 같았다.
‘여기에 니시다 노리마사까지 더해진다면, 엄청나겠어.’
잘하면, 이베스 호텔 하나만으로도 웬만한 대기업을 압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일본에 가봐야겠는 걸?”
니시다 노리마사도 회유하고 일본 부동산도 직접 살필 겸 일본으로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선진국의 편의점을 직접 살펴볼 필요도 있었고 말이다.
(일본에 갈 거면 손정의를 한 번 만나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