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투자천재-112화 (112/300)

112화 일단 시작은 일본에서 하자

‘그룹의 매출이 많이 늘었군.’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3저 호황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룹의 매출은 올해 들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연 매출 천억을 돌파한 계열사만 일곱 개나 될 정도였다.

‘혜성 모직의 성장이 둔화한 게 조금 아쉽지만, 이 정도도 엄청난 거지.’

내가 상무로 있을 때만 해도 혜성 모직은 30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했었다.

연 매출이 수십억에 불과했던 혜성 모직을 단번에 3백억을 기록하게 했던 것.

하지만 작년까지 높은 성장세를 이어오던 혜성 모직은 올해 들어 둔화한 성장률을 보여주었다.

물론 매출 자체는 월등하게 늘어, 연 매출 2천억을 기록하였기에 나는 만족하였다.

이 정도의 매출이라면 사실상 효자 중의 효자 기업이었으니 더 바랄 수도 없었다.

‘내년에도 드봉이 외국에 더 잘 팔렸으면 좋겠군.’

혜성 모직이 2천억이라는 천문학적인 매출을 기록한 배경은 바로 수출이었다.

일본을 비롯한 세계의 여러 나라에 비싸게 옷을 팔고 있어서 이만한 매출이 나온 것이다.

그리고 혜성 모직 말고도 수출이 늘어난 기업이 있었다.

다름 아닌, 혜성 전자였다.

‘가장 기대가 되는 계열사는 역시 혜성 전자지. 세탁기, 통돌이에 이어 청소기와 냉장고가 연달아 히트 쳤으니 말이야.’

혜성 전자는 처음 출범했던 1983년은 물론이고, 작년까지도 혜성 전자는 적자만 백억 단위의 기업이었다.

흑자 전환은 꿈도 못 꿀 정도로 매출이 저조했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혜성 전자의 매출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탱크주의를 선언하면서 소비자들에게 튼튼한 제품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일성 전자나 은성 전자에 비하면 아무래도 기술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부족한 기술력을 마케팅으로 극복한 것이다.

소비자들은 기능이 단순하면서 튼튼하다는 이유로 혜성 전자의 제품을 구입하였고, 혜성 전자의 점유율은 빠르게 상승하였다.

심지어 외국에서도 비슷한 마케팅을 하였는데, 일본 제품들과의 경쟁에서도 조금씩 우위를 점해갔다.

내년부터 급격한 엔고 현상이 일어날 테니, 수출은 더욱더 늘어나게 될 터.

반도체 매출까지 합하면, 내년 혜성 전자의 매출은 3천억 이상도 노려봄 직했다.

물론 내 계획대로 일성 반도체를 인수하게 된다면, 반도체 하나만으로 몇 년 안에 조 단위의 매출도 문제없었고 말이다.

‘어쩌면 세계 상선을 인수하지 않았어도 근시일 내에 재계 5위가 되었겠어.’

어쩌면이 아니라,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룹의 연 매출만 해도 1조를 훌쩍 넘어 2조를 노리고 있었다.

다른 그룹들도 경제가 발전하면서 전체적으로 매출이 늘었다지만, 빅 4를 제외하면 연 매출 2조에 가까운 기업은 우리뿐이었다.

아마 연 매출 2조를 돌파한 상황이 되면 빅5라 불려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었다.

“회장님, 이베스 호텔의 대표가 찾아왔습니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이소희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돈에 관한 생각을 하니, 시간이 무척이나 빨리 가는 거 같았다.

‘그나저나 세라 콜리스라고 했던가? 참 당돌한 여인이군.’

이렇게 갑자기 한국을 찾아올 줄은 몰랐다.

물론 그것을 무례하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오히려 행동력이 남다르다는 의미로 볼 수 있어서, 그녀를 더욱더 긍정적으로 평가해도 좋을 거 같았다.

철컥.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한 명은 세라 콜리스였고, 다른 한 명은 식음료 담당 이사였다.

“반갑습니다. HS 인베스트먼트의 대주주이자, 혜성 그룹을 경영하는 이한성이라고 합니다.”

나의 인사말에 두 사람은 매우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마 두 가지 이유에서 놀라지 않았을까 싶다.

하나는 내 젊은 나이에, 하나는 내 유창한 영어 실력에.

물론 내가 뻔뻔한 성격은 아니어서, 뭐에 놀랐냐고 따로 물어보지는 않았다.

“앉으시죠.”

“예, 알겠습니다.”

“진즉에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따로 하는 사업이 많아서 신경을 못 썼던 거 같습니다. 그 점, 사과드리겠습니다.”

솔직히 두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예의를 갖출 필요는 없었다.

아직 인수를 못 한 상태라면 모를까, 이미 지분 100%를 인수한 상황에서 구태여 저자세를 취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베스 호텔을 세계 최대 규모의 호텔로 키울 계획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계획을 이루자면, 두 사람 아니, 세라 콜리스 한 사람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였다.

내가 두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도 바로 세라 콜리스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었다.

“아니에요. 미국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는데, 한국으로 와서 혜성 그룹의 규모를 보니 이해가 갔어요. 바쁠 수밖에 없을 거 같더라고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보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요. 앞으로 저희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보스의 호텔과 흡수 합병이 되는 건가요?”

“원래 인수 절차를 밟을 때 미리 이야기를 해야 했는데, 제가 급하게 인수를 하느라고 이야기를 못 했었군요.”

세라 콜리스는 내 말이 부정적으로 느껴졌는지, 안색을 흐렸다.

나는 그런 세라 콜리스의 모습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혜성 호텔과 이베스 호텔을 합병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베스 호텔은 기존처럼 세라 콜리스가 이끌어주시면 될 거 같습니다. 물론 세라 콜리스가 이베스 호텔에 남는 것을 반대한다면 다른 사람을 찾아봐야겠지만 말입니다.”

내 말에 세라 콜리스는 상기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대표이사를 맡겨주신다면, 저야 이베스 호텔을 떠날 이유가 없죠.”

“잘 됐군요. 저는 사실 세라 콜리스 대표가 돈을 많이 벌어서 은퇴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었습니다.”

“꼭 돈만이 인생의 목표는 아니잖아요? 이베스 호텔은 제가 창업한 회사에요. 이왕이면 마지막까지 가보고 싶어요. 물론 이제는 제 회사가 아니지만 말이죠.”

역시 그녀는 이베스 호텔에 미련이 남은 모양이었다.

뭐, 나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주인의식을 가지고서 이베스 호텔을 경영하게 될 테니까.

“저는 한국인이지만, 다른 미국 회사들이 그러는 것처럼 이베스 호텔에 스톡옵션을 도입할 것입니다.”

혜성 전자를 비롯하여 일부 계열사에만 도입되고 있는 제도였다.

이베스 호텔은 미국 사업체였기에 전격적으로 도입하고자 하였다.

“스톡옵션을요?”

“예. 어쩌면 이전에 세라 콜리스 대표가 보유하고 계셨던 지분은 되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미첼 이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라 콜리스는 창업주였지만, 지분은 적었다.

여기저기서 투자를 받다가 지분을 잃게 된 것이다.

사실, 회사를 매각하게 된 이유도 그녀의 결정이 아니었다.

주주들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매각을 결정하게 된 것.

그러니 내 말에 그녀는 반색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이베스 호텔의 주주가 될 기회를 얻은 셈이니 말이다.

“또한 내년 1월에는 먼저 천만 달러를 투자할 계획입니다.”

“먼저라는 말을 덧붙인 것을 보면 투자가 더 있을 거라는 뜻이겠죠?”

“현재 HS 인베스트먼트의 자산으로 1억 달러 조금 안 되게 남아 있습니다. 다른 투자처를 찾고 있지만, 이베스 호텔이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이 1억 달러를 이베스 호텔에 투자할 수도 있습니다.”

천만 달러를 들었을 때는 무덤덤하던 그녀지만, 1억 달러라는 말에 표정이 확 달라졌다.

1억 달러는 그만큼 큰돈이었다.

심지어 이 자금은 혜성 그룹과는 별개의 자금이었다.

즉, 이베스 호텔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룹 차원에서의 지원이 있을 수 있다는 뜻.

세라 콜리스는 물론이고 옆에 조용히 앉아있던 미첼도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단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어떤 거죠?”

“투자를 늘리긴 할 거지만, 그 투자금은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쓰이게 될 겁니다.”

“다른 나라에서요?”

조금 당황한 얼굴이었다.

하기야, 뜬금없이 다른 나라에서 사업을 하라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호텔 사업을 시작하시려는 건가요? 하지만 보스에게는 혜성 호텔이 있지 않나요?”

“예, 혜성 호텔이 있죠. 그래서 이베스를 지금 당장 한국으로 진출시킬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또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말입니다.”

“한국이 아니라면 어느 나라에 점포를 열라는 말인가요?”

“일본입니다.”

“그렇군요. 일본이라면 이해가 되네요.”

그녀는 더 질문하지 않았다.

별다른 설명을 안 했음에도, 일본이란 이유로 납득을 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의 반응에 잠시 쓴웃음을 짓고는, 일본에서 어떤 식의 호텔 사업을 해야 할지 설명해 주었다.

“최저 비용으로 최고 효율을 보여주는 것. 이게 앞으로 이베스 호텔의 지향점이 될 겁니다.”

호텔은 기본적으로 고급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객실 인테리어부터 룸서비스까지 모든 것이 고급적이어야 한다는 뜻.

하지만 이베스 호텔의 지향점은 달랐다.

고급보다는 효율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적당히 저렴하면서 일정 수준의 서비스를 보장해주는 그런 호텔 말이다.

‘여관과 호텔 그 사이의 무언가라고 해야겠지.’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말문을 이어나갔다.

“다른 호텔들처럼 따로 식당 시설을 갖출 필요도 없습니다. 물론 다른 여가 시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오직 숙박에만 집중할 겁니다. 매장 같은 편의시설은 자판기로 대체할 것이고 말입니다.”

“그러면 손님들은 식사를 어디서 합니까?”

미첼이 묻자, 나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였다.

“객실에서 해야죠.”

내 말에 미첼은 황당한 눈빛을 하였다.

아마 속으로 ‘그게 무슨 호텔이냐?’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세라 콜리스의 표정은 달랐다.

역시 이베스 호텔을 창업한 여자답게, 나와 생각이 비슷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베스 호텔은 모든 점포가 침대의 이불부터, 객실 사이즈와 서비스까지 다 통일되어야 합니다. 어떤 점포를 가도 똑같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끔 말입니다. 제대로 된 비유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맥도널드를 생각하면 될 겁니다.”

“맥도널드요?”

“예. 맥도널드처럼 적당한 가격에 일정 수준의 서비스를 보장하는 게 저의 목표입니다.”

“보스는 저와 추구하는 방향이 같으시네요.”

“그런 거 같아서 이베스 호텔을 인수한 겁니다.”

“최고의 선택이었단 걸 제가 증명해줄게요. 이베스 호텔을 인수한 걸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의욕이 넘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미래를 경험한 노사가 이름 한 번 들어본 적도 없는 여인이었지만, 왠지 믿어도 될 거 같았다.

* * *

니시다 노리마사는 32살에 가업을 이어받아 한 회사의 사장이 되었다.

전기 설비 공사였는데, 직원 수가 50명이 넘었던 그의 회사는 석유파동 이후 15명밖에 안 남을 정도로 상황이 안 좋아졌다.

‘이대로 있으면 안 돼. 이대로라면 결국 그저 그런 인생을 살게 될 거야.’

그는 여러 사업을 시도해봤다.

하지만 시도하는 사업마다 실패를 경험하였다.

“노리마사. 호텔 사업을 해보는 게 어때?”

“돈도 없는데 무슨 호텔이야?”

“돈은 없어도 건물은 있잖아. 그것도 여관 건물 말이야.”

좌절하는 그에게 친구가 다가와 새로운 사업을 종용하였다.

다름 아닌, 호텔이었다.

니시다 노리마사는 처음엔 친구의 제안을 가당치 않다고 여겼다.

낡은 여관 하나 가지고 호텔 사업이라니.

현실성이 없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니시다 노리마사는 친구의 거듭된 제안에 생각을 바꿔먹었다.

‘이거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겠는데?’

그는 조사 차원에서 여러 호텔을 둘러보았다.

가격이 비싼 곳도 가봤고, 비교적 저렴한 곳도 가봤는데, 100% 만족스러운 곳이 없었다.

들인 돈을 생각하면 모든 호텔이 불만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 같은 경험을 통해 니시다 노리마사는 호텔 사업의 가능성을 엿봤다.

자신이 불만을 느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불만을 품고 있으리란 생각에서였다.

‘꼭 돈이 많아야만 호텔 사업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마찬가지로 꼭 돈이 많은 사람만 호텔을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호텔들은 대체로 가격이 비싼 편이었다.

그래서 돈 많은 부자만 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호텔이라고 꼭 그렇게 비쌀 필요가 있을까?

몇몇 시설을 없앤다면 숙박비용을 저렴하게 받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을 거듭하던 니시다 노리마사는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한번 해보자. 비즈니스맨들을 위한 호텔 사업을 해보는 거야.’

그 같은 결정을 내린 니시다 노리마사는 지체하지 않고 움직였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여관을 현대식 건물로 재건축한 것이다.

시간이 흘러 1986년.

호텔 완공이 끝나자 그는 정식으로 회사를 설립하고 직원을 모집하였다.

‘이 사람들과 반드시 성공해서 일본 최고의 호텔 회사를 만들어보겠어!’

주먹을 불끈 쥐며 성공을 다짐할 때, 그의 친구 테츠야가 다급히 뛰어왔다.

“노리마사! 노리마사!”

“왜 그래, 테츠야?”

“가마타 역 근처에 호텔이 생겼어!”

하필 가마타 역 근처에 호텔이 생기다니.

니시다 노리마사의 호텔이 가진 장점 중의 하나가 바로 역세권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가마타 역 근처에 호텔이 생긴 이상, 그 장점이 퇴색되게 생겼다.

“호텔 이름이 뭔데?”

“이베스라는 호텔인데,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내가 가격을 알아봤는데 우리보다 저렴해!”

“마, 말도 안 돼!”

눈을 부릅떴다.

역 근처에 위치한 데다 저렴하기까지 하다면 니시다 노리마사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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