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투자천재-110화 (110/300)

110화 드디어 재계 5위

“송병두 강력계장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내가 묻자 인정민이 살짝 미간을 좁히며 대답했다.

“잘은 모르지만, 뭔가 상황이 난처해진 거 같습니다.”

“상황이 난처해지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형제복지원 사건으로 부산 경찰국에서 옷을 벗은 경찰들이 꽤 있지 않습니까? 그 일 때문에, 부산 경찰들이 송병두 강력계장을 일종의 배신자 취급하는 거 같습니다.”

인정민의 말에 나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공을 세웠는데, 특진을 시키지 못할망정, 배신자 취급한다고요?”

“저도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긴 한데, 부산 경찰국 내의 분위기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답니다.”

나는 쓰게 웃었다.

내 딴에는 상부상조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송병두 강력계장은 손해만 본 거 같았다.

물론 열혈 경찰인 그는 직위나 금전적인 이유로 형제복지원 사건에 개입한 것은 아닐 테지만 말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송병두 강력계장이 사회로 나오게 되면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경찰국 내에서 배신자 취급을 받고 있다면, 웬만해서는 경찰 생활을 오래 하기 힘들 것이다.

나로서는 그에게 빚을 진 상황이었으니, 은혜를 갚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송병두 강력계장이 사회로 나오게 된다면 인정민 밑에서 일하게 시키건, 아니면 그냥 현금을 주는 식이건,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을 줄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앞으로도 부산 경찰국 내의 소식을 주의 깊게 살펴보겠습니다.”

“형제복지원의 원장은 어떻게 된답니까?”

“징역형을 받게 될 거 같습니다.”

“그런 놈은 사형을 받아야 할 텐데, 겨우 징역이라니.”

“그러게 말입니다.”

“돈이 많으니, 징역도 몇 년 안 살 거 아닙니까?”

“길어야 5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혀를 찼다.

안기부장도 그렇고, 가해자의 처벌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었다.

‘내가 원래 이런 일에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닌데, 내 일이라고 생각돼서 그런지 뭔가 기분이 나쁘네.’

가해자도 가해자지만,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미미하다는 사실도 괜히 화가 났다.

형제복지원 폐쇄 이후, 피해자들은 정부의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거리의 노숙자로 살아가고 있었다.

너무 오랜 시간을 수용소에 갇힌 채, 피동적인 삶을 살아서 사회에 적응하지를 못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들은 이런 피해자들을 동정하기는커녕, 오히려 가해자 쪽인 박 원장과 안기부장을 동정한다는 점이었다.

그들이 수용소를 만들어서 거리가 깨끗해졌다고 생각하는 거 같았다.

‘정부에서 나서지 않는다면 나라도 도와주는 수밖에.’

미국에서 2억 2천만 달러를 번 것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다.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는데, 가엾은 사람들을 위해 약간의 호의 정도야 못 베풀 것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그들 덕에 구속 위기에서 벗어난 것이기도 했고 말이다.

* * *

세계 상선에 대한 실사 작업이 끝나자, 양희수 회장이 혜성 그룹 본사를 찾아왔다.

“잘 오셨습니다.”

“환영해 줘서 고맙네.”

인사말을 몇 마디 나누고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본론이란 당연히 세계 상선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남들은 애물단지를 드디어 치웠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오히려, 내 자식을 떠나보내는 기분일세.”

양희수 회장은 잠깐 심경이 복잡한 표정을 짓더니,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저도 양희수 회장님이 힘든 결단을 내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회장! 세계 상선을 잘 부탁하네. 지금 당장은 적자가 많이 나서 안 좋게 볼 수도 있겠지만, 나중에 세계 상선이 효도 노릇을 톡톡히 할 걸세.”

그야 그럴 것이다.

머지않아 해운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 역시 세계 상선을 제 자식이라고 생각하며 소중하게 다룰 겁니다.”

내 말에 양희수 회장이 그제야 안심한 듯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잔금은 12월 말에 완납하겠습니다.”

“정말 고맙네. 정말 고마워!”

보통 인수 대금은 아무리 빨라도 석 달은 지나야 완납하고는 한다.

계약 자체를 연 단위로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고.

하지만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세계 그룹을 상대로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나 역시, 자네에게 빌린 3백억을 내년 2월까지 반드시 갚겠네.”

“여유가 없으시면 나중에 갚으셔도 됩니다.”

“아닐세. 세계 상선을 매각하고 2백억의 현금이 생겼는데, 빚부터 갚는 게 순서 아니겠는가. 자고로 돈 관계는 깔끔해야 하는 법일세.”

그의 말에 나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돈을 갚을 때가 되면 마치 제 돈을 뺏기는 것처럼 부정적인 감정이 드는 게 인간의 본성이었다.

사업하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이런 성향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양희수 회장은 돈을 갚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이자까지 충실하게 줬으면서 말이다.

‘역시 양 회장님과는 끝까지 가야 할 거 같군.’

내가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하는데, 양희수 회장이 불현듯 말했다.

“이거, 다른 이야기를 하느라 축하가 늦었군. 이 회장, 재계 5위가 된 것을 축하하네.”

양희수 회장이 그리 말하자,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세계 상선을 인수하면서 혜성 그룹의 재계 순위는 크게 상승하였다.

8위였던 재계 순위가 단번에 5위까지 치고 올라간 것이다.

‘심지어 그냥 5위도 아니지. 6위와 큰 차이가 있는 5위야.’

원래도 비슷비슷한 규모였었다.

그런데 아무리 작게 잡아도 3백억 이상의 자산 가치를 가진 세계 상선을 인수했으니, 차이가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만, 빅 4랑도 압도적인 차이가 있다는 게 아쉬운 점이지.’

빅 4의 벽은 여전히 높기만 했다.

물론 지금의 성장 속도라면 1년 안에 빅4와 동급까지 치고 올라갈 수 있을 거 같지만 말이다.

“아닙니다. 세계 상선을 밟고 올라간 기분이라, 양희수 회장님께는 죄송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우리를 밟고 올라간 게 아닐세. 처음부터 혜성이 있어야 할 자리로 가고 있는 것이지. 물론 우리 세계 그룹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세계 그룹도 다시 올라올 수 있을 겁니다.”

“말이라도 고맙네.”

양희수 회장은 뭔가 의욕을 잃은 얼굴이었다.

하긴, 그룹의 규모가 순식간에 쪼그라들었으니 의욕을 상실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재계 순위만 따져도 7위에서 9위로 쭉 내려간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나에게 3백억이라는 돈까지 갚아야 하는 상황.

내가 양희수 회장의 입장이었어도 의욕을 잃었을 거 같았다.

“일본의 소식을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몇 년 안에 회장님께서 투자하신 자금이 크게 늘어날 거 같습니다.”

나는 그의 의욕을 불어 주고자 일본 부동산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양희수 회장의 눈빛에 생기가 감돌았다.

“사실 자네에게 투자한 돈을 잊고 있었는데…… 50억을 일본 부동산에 투자했다고 했었지?”

“예. 정확히는 일본 도쿄에 투자했습니다.”

“요즘 신문 기사를 보니, 일본 도쿄의 땅값이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자네는 여기서 더 올라갈 거로 생각하나?”

“플라자 합의로 일본 경제에는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습니다. 일본 경제의 방향을 제시하는 대장성의 관료들로선 경기부양책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그 경기부양책은 부동산 대출의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대장성 안에서 경기부양책에 관한 논의가 나오고 있었다.

재정투입이나 금리 인하와 같은 내용이었는데, 부동산 대출의 규제 완화에 관련된 이야기도 무성하였다.

참고로 선물거래로 번 HS 인베스트먼트의 자금 일부는 도쿄 부동산을 추가 매입하는 데 사용되고 있었다.

일본의 부동산 가치가 오르는 것은, 나비효과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확정적이기 때문이었다.

“내년 봄부터, 일본 부동산은 무서운 속도로 상승하게 될 겁니다. 회장님이 기대하는 그 이상으로 말입니다.”

“이 회장은 어느 정도를 예상하나? 두 배는 건질 수 있으리라고 보는가?”

두 배?

나는 속으로 조소를 지었다.

겨우 두 배 먹자고 일본에다 회사를 차린 게 아니었다.

“회장님께서 투자하신 50억의 돈도 최소 2백억 이상으로 불어날 겁니다.”

“……!”

“90년 직전까지 포지션을 유지한다면 3백억 이상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사실 이조차도 보수적으로 잡은 거다.

내가 기대하는 것은 500%~600% 수준이 아니라, 1,000% 이상의 수익률이었으니까.

‘역 근처에 매입한 부동산은 잘만 하면 수십 배의 수익률을 거두는 것도 가능할 테지.’

물론 나비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하는 이야기였다.

미래가 바뀐 이상, 나 역시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단지 일본 부동산이 크게 오른다는 사실만 확신할 뿐이었다.

“3백억이라니,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가?”

“예.”

“허어, 50억이 3백억이라!”

“물가를 생각하면 그때는 3백억이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비자금만 3백억인데, 어떻게 그 돈이 크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역시 이 회장, 자네는 내 은인일세.”

양희수 회장은 환희를 지었다.

3백억을 벌써 손에 쥐기라도 한 거 같았다.

나는 그런 양희수 회장의 모습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사람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돈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었다.

* * *

대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자, 박기룡을 찾는 사람이 급격히 늘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일성 전자에서 나왔습니다. 혹시 생각이 있으시면, 일성으로 오지 않으시겠습니까.”

“박기룡 군, 미래에 가는 게 어떻겠나? 미래에서 전자공학과의 인재를 찾고 있는데, 내가 자네를 추천하였네. 지금 미래에 입사하면 임원까지 승승장구할 수 있을 걸세.”

“은성 전자의 제품을 많이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소비자로서 은성 전자의 제품을 사는 것도 좋지만, 연구자가 되어 전자제품을 직접 개발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끝없이 이어지는 영입 제안에 박기룡은 난처한 기분을 느꼈다.

물론 기분이야 좋았다.

기업들이, 그것도 빅 4의 대기업들이 그를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하지만 그는 혜성 장학생이었다.

혜성 그룹 덕에 무사히 대학교를 졸업할 수 있게 되었는데, 다른 기업에 입사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죄송합니다. 저는 이미 갈 곳이 정해진 사람입니다.”

“갈 곳이라면, 혜성 그룹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혜성 그룹의 도움을 받은 순간부터 저는 혜성맨이 되었습니다. 어떤 제안을 하셔도 혜성맨인 저에게는 의미가 없습니다.”

“장학금이 걱정이시라면, 위약금은 우리 일성 그룹에서 빌려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그런 사소한 일은 신경 쓰지 마시고 일성 그룹으로 오십시오.”

“죄송합니다.”

“후회하실 텐데요?”

일성 그룹에서 나온 인사 담당 직원이 혀를 끌끌 찼다.

마치 박기룡이 최악의 실수를 저지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동기들이나 교수들도 그의 선택을 만류하였다.

“자네의 실력이라면 은성에서도 최고가 될 수 있을 텐데, 굳이 혜성으로 가야 하겠나?”

“야. 그간 받은 돈도 어차피 일성에서 대신 내준다잖아. 사실상 빚진 것도 없는데, 구태여 혜성 그룹에 갈 필요가 있겠어?”

“혜성 전자가 요즘 잘 나간다는데, 그거 다 마케팅 빨이야. 기능으로 보나, 디자인으로 보나, 다른 기업의 제품군과는 상대가 안 되잖아? 그러니 다른 기업을 가는 게 어때?”

솔직히 이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열불이 나기도 했다.

그가 생활비 구하기도 어려워할 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던 이들이, 그에게는 은인이나 다를 게 없는 혜성 그룹을 욕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혜성 장학생인 그가 보기에도 혜성 그룹이 다른 빅 4의 기업들에 비해 처지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만약 내가 혜성 그룹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나도 일성이나 은성 중의 한 곳을 선택했었겠지.’

평생 다녀야 할 직장이었다.

그러니 이왕 다닐 거, 업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기업을 선택하는 게 당연했다.

두 곳은 그룹의 규모도 혜성 그룹과는 비교도 안 되게 크니, 더욱 안정적으로 느껴지기도 했고 말이다.

그래서 박기룡은 가끔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혜성 장학 재단의 장학금을 받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었다.

“기룡아. 오늘 신문 봤냐? 혜성 그룹이 재계 5위 됐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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