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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109화 (109/300)

109화 돈이 궁할 일은 없겠는데?

“여긴 왜 찾아왔지?”

퉁명스럽게 말하는 김종우 회장을 보며 나는 같잖다는 듯, 픽 웃어줬다.

“김 회장님도 우리 회사에 직접 찾아오셨는데, 저라고 못 올 이유가 있습니까?”

“……건방진 자식.”

“세계 상선을 인수할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계십니까?”

“네가 그건 왜 물어?”

“안기부장이 저리됐으니, 궁금할 수밖에요.”

“아, 안기부장이 저리된 것과 나랑 무슨 상관이야?”

되지도 않는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상관이 없다고 하셨습니까? 제가 어디서 듣기로, 김 회장님이 화월관에서 안기부장과 오붓한 이야기를 나눴다던데.”

“……!”

김종우 회장은 어지간히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허를 제대로 찌른 거 같았다.

‘민성준 회장을 상대할 때도 느꼈지만, 역시 정보력이 있으면 누구와 싸워도 백전백승이란 말이지.’

노사가 안기부장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정말 안기부장의 의도대로 내가 구속됐을지, 안 됐을지는 모르지만, 고초를 겪기는 했을 것이다.

어쩌면 김종우 회장에게 세계 상선을 빼앗겼을지도 모를 일이고.

하지만 정보력이 있으니까, 적의 예상치 못한 공격에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지금처럼 상대의 허를 찌르기도 유리했고 말이다.

“어디까지 아는 거냐?”

“저를 구속시키고 그 틈에 세계 상선을 인수하려고 했던 것은 압니다.”

이 정도면 전부 아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 김종우 회장은 식겁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그럼 설마 형제복지원이 저리된 것도 네가 한 짓이냐?”

나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구태여 내가 했다고 밝힐 필요는 없었다.

괜히 대통령에게 빌미만 주는 셈이니까.

하지만 의미심장하게 어깨를 으쓱이는 것만으로도 김종우 회장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하였다.

시기가 공교로웠으니, 그로선 나라고 확신할 수밖에 없으리라.

“누가 했든 간에, 지금 중요한 것은 김 회장을 두둔해줄 사람이 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내 말에 김종우 회장은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이내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다. 세계 상선은 포기할 테니까, 더 소란 피우지 말고 돌아가.”

“겨우 그런 답변을 들으려고 제가 이 누추한 곳에 온 줄 아십니까?”

“뭣이?”

“항복할 거면 확실하게 하십시오. 무릎을 꿇고 제대로 사죄를 하란 말입니다.”

쾅!

김종우 회장은 탁자를 내리치며 일어섰다.

“이 건방진 자식이! 내가 이렇게 말해줬으면 고맙다 생각하고 물러날 것이지, 어디서 건방을 떨어?”

“잘못했으면 응당 사죄해야 할 거 아닙니까?”

“닥쳐! 내가 너 같은 애송이 따위에게 사과할 거 같아?”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이같이 말했다.

“안 그러면 고림 그룹과 같은 꼴이 날 겁니다.”

고림 그룹.

한때는 재계 14위로 혜성 그룹과 비교해도 그리 밀리지 않는 규모를 자랑하던 대기업이었다.

대통령의 장인을 배후로 둔 덕에 사업에서도 승승장구하여 10위권 진입도 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내가 역사를 바꾸지 않았다면, 실제로 이맘때쯤 10위권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을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나를 적으로 둔 이후, 고림 그룹의 규모는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이젠 10위권이 아니라, 20위권으로 추락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나의 협박은 김종우 회장에게 위협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 회장처럼 계열사를 바치기라도 하란 말이냐?”

“진심을 보이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딴 소리를 진지하게 하니 어이가 없군. 혜성이 조금 잘나가고 있다고 쌍호가 우습게 보이더냐?”

나는 그의 반응에 속으로 혀를 찼다.

‘그냥 순순히 항복하면 좋을 텐데, 귀찮게 만드는군.’

하지만 귀찮다고 응징을 포기할 순 없었다.

사나이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는 법.

물론 이미 안기부장을 단칼에 썰어버린 이후지만, 김종우 회장도 가만히 놔둘 수는 없었다.

그 역시 나를 공격하려고 했던 사람이니 말이다.

“협상이 결렬되었군요. 머지않아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게 될 겁니다.”

지금 계열사 하나 정도 넘겼다면, 큰 피해 없이 상황이 종료되었을 것이다.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나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게 됐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김종우 회장이 전쟁을 선택한 이상, 그런 기회는 사라졌다.

‘다음에 볼 때도 과연 무릎을 꿇을지, 안 꿇을지 보자고.’

* * *

노사가 불쑥 물었다.

(쌍호 그룹은 어떻게 할 거냐?)

“당연히 응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또 바빠지겠구나.)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김종우 회장은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쌍호 그룹이 재계 6위의 대기업이라는 점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그의 뒤에 5공 정권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그렇기에 나는 노사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염치없지만, 이번에도 부탁을 드려야 할 거 같습니다.”

아무리 정보력을 키워도 재벌 회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꿰뚫어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노사가 나선다면?

김종우 회장이 그날 무엇을 먹었는지부터 시작해서 누구와 만나고 어떤 계획을 꾸미고 있는지까지 상세하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알게 된 정보를 찌라시나 언론에 퍼뜨리면, 김종우 회장도 곤란을 겪게 되겠지. 스트레스도 왕창 받을 것이고 말이야.’

재벌 회장들은 여전히 찌라시의 위력을 과소평가하는 중이었다.

주식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고림 그룹을 상대할 때도 찌라시를 최대한 활용하였는데, 이게 대단히 큰 역할을 하였다.

안 좋은 내용이 담긴 찌라시가 한 번 퍼지고 나면 은행권에서도 그 그룹의 신용도를 의심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찌라시 내용이 상세할수록 그 후폭풍도 거셀 수밖에 없으리라.

(김종우 그놈도 어떻게 보면 내 원한 대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5공의 비호를 받는 놈이니 말이야. 그러니, 고개 숙이면서 부탁할 필요는 없다.)

“노사의 원수라면 철저하게 응징을 해야겠군요.”

(네 편한 대로 하면 된다.)

나는 주먹을 쥐며 다짐했다.

김종우 회장을 최대한 괴롭게 해주겠다고 말이다.

‘뭐, 자신의 사생활이 찌라시로 낱낱이 공개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입지 않을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노사가 화제를 전환하였다.

(어쨌거나,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장세민은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겠구나.)

“아무래도 그럴 거 같습니다. 정계에서 전해지는 소식만 들어봐도, 곧 해임될 거라는 이야기가 무성하니 말입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벌어졌는데, 조용하게 지나가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솔직히, 정권 전체가 뒤집혀야 정상이 아닐까 싶었다.

무려 천 명이 넘는 사람을 아무런 이유 없이 감금하고, 노예처럼 부렸으니 말이다.

“이참에 6.29 선언이 앞당겨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6.29 선언?)

“네. 노사께서 말씀해 주셨지 않습니까. 2년 뒤에 대통령이 직선제 개헌 요구를 결국 받아들이게 된다고. 근데 야당의 힘도 커졌고 형제복지원 사건도 터졌으니 2년 뒤가 아니라, 내년쯤에 직선제로 개헌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기대하였다.

5공 정권은 신물이 날 만큼 지긋지긋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니 하루빨리 직선제로 개헌하여 5공 정권이 몰락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웬만해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내년에 뭐가 있는지 잊었느냐?)

“아시안 게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정권으로부터 직선제 요구를 받아내려면, 수없이 많은 시위를 전개해야 하지 않겠어?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나라의 눈치를 심하게 보는 편이라서 아시안 게임 직전에는 시위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드러낼 거다. 혹여나 시위 때문에 외국 사람들이 한국을 안 좋게 볼까 걱정하는 마음에서 말이야.)

설마 그런 이유로 직선제가 밀어질까?

노사의 추측에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노사의 추측이 틀린 적은 거의 없었기에,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5공 정권이 몰락한다고 해서, 바로 네 세상이 올 거라고 기대하지는 마라. 어쩌면 이번에도 전대환의 후계자가 집권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쓴웃음이 나왔다.

또다시 하나회 출신의 대통령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 미래가 아닐 수 없었다.

국민들이 정당하게 투표로 뽑았다는 점이 더욱 끔찍하게 느껴졌다.

‘노사가 김영산 대표님과 김태중 선생님을 싫어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랬지.’

두 사람의 대권 욕심으로 국민들은 5년을 더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사실, 나 역시 두 사람을 똑같이 존경하지만, 단일화에 실패한 부분만큼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 노사가 전해준 정보는 한 사람의 편협한 시각에서 비롯된 정보였기에,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부디 이번에는 두 사람 중 한 명이라도 대권 욕심을 버렸으면 좋겠군.’

국민을 위해서 현명한 선택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 * *

형제복지원 사건은 예상했던 대로 어정쩡하게 마무리되었다.

안기부장을 팽하는 것으로 사건이 급하게 마무리된 것이다.

‘야권에서조차 안기부장을 동정하는 여론이 있다는 게 충격적이군.’

나는 솔직히 정권 전체가 뒤집힐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형제복지원 사건의 여파는 미미하기 그지없었다.

안기부장이 직위에서 해임되고 부산 시청과 경찰국에서도 몇 명이 옷을 벗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5공 정권의 피해는 거의 없다 해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심지어 안기부장조차 직위에서 해임당한 것을 제외하면, 큰 타격을 입었다고 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부랑아를 치우려는 것이 국가를 위한 행동이었다며, 그의 행동을 지지하는 여론까지 생길 정도였다.

‘그래도 김종우 회장의 일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고 있어서 다행이야.’

쌍호 그룹은 세계 상선 인수에 대해 어떤 의사 표명도 하지 않았다.

사실상 포기를 한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쌍호 그룹의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찌라시로 김종우 회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공개하면서 쌍호 그룹 내부에 큰 파문이 일어났다.

김종우 회장은 매일 고함을 지르며 자신의 최측근들을 혼냈는데, 여대생을 자신의 별장에 끌어들인 일까지 찌라시로 퍼지자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내부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알 수 없는 정보가 세상에 공개되고 있으니, 나라도 이성을 잃을 수밖에 없을 거 같았다.

아무튼, 이성을 잃은 김종우 회장은 임원들과 비서들을 마구 폭행했고, 아예 해고까지 하는 경우도 생겼다.

물론 그런 김종우 회장의 행동이 다시 찌라시로 퍼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는군.”

고림 그룹의 민성준 회장과 달리, 성격이 다혈질이라서 그런지 반응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거 같았다.

은행권과 연계해서 따로 수작을 부리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결과를 볼 수 있을 듯했다.

시간은 제법 걸리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열심히 김종우 회장을 괴롭히는 동안, 시간이 흘러 12월이 되었다.

‘2억 2천만 달러라. 엄청난데?’

플라자 합의 이후로 달러의 가치가 계속 내려갔기에 나는 처음 추측했던 것보다 조금 더 많은 수익을 볼 수 있었다.

원금까지 합치면 2억 달러가 넘는, 무려 2억 2천만 달러라는 거금이었다.

‘달러가 많아지니 든든하네. 세계 상선을 인수해도 돈이 궁하지는 않겠어.’

돈이 궁하기는커녕 뭘 인수할지 행복한 고민을 해도 좋을 거 같았다.

황 노인에게 6백억이라는 거금을 대출받을 예정이었으니 더더욱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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