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투자천재-108화 (108/300)

108화 애먼 짓 하지 마라

경찰 간부 출신으로 내 밑에서 정보를 담당하고 있는 인정민 실장이 평소처럼 유쾌하게 웃으며 물었다.

“하하,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그렇게 뜸을 들이십니까?”

“부산에도 아는 경찰 간부가 있습니까? 이왕이면 정의감 넘치는 경찰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어려운 조건이군요. 그래도 제가 누구입니까. 경찰 인맥 하면 저, 인정민을 따라올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내가 기대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니, 인정민 실장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한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부산 경찰국에 송병두 강력계장이라고 있는데, 이자가 회장님이 원하는 인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송병두란 사람에 대해 몇 가지 질문하였다.

‘나쁘지 않군.’

인정민이 이야기한 송병두란 사람은 한번 수사를 시작하면 무조건 직진하는, 우직한 경찰 그 자체였다.

수사 능력도 뛰어나서 비교적 젊은 나이에 강력계장까지 된 인물이었다.

이 정도의 인물이라면 일을 맡겨도 좋을 듯하였다.

“실장님의 말처럼 딱 제가 원하는 인재인 거 같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인재를 찾으십니까? 그것도 서울이 아닌, 부산의 인재를?”

“혹시 형제복지원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예? 그게 뭡니까?”

“부산에 있는 복지 시설인데, 말이 복지 시설이지 강제 수용소나 다름이 없습니다. 납치나 인신매매를 통해 사람을 모은 뒤에 강제 노역을 시키는데, 아마 지금 그곳에 수용된 피해자만 천 명 이상일 겁니다.”

내 말에 인정민이 혀를 찼다.

“복지 시설은 인원수가 많으면 국가 기금을 더 많이 받으니, 그런 짓을 하나 봅니다.”

“그런 이유도 분명 있을 겁니다.”

“나 참. 이래서 이 나라에서는 아이 키우는 게 무서운 거 같습니다. 지방은 물론이고, 서울 한복판에서도 대놓고 납치가 자행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문제는 그 납치를 하는 주체가 정부 세력이라는 겁니다.”

나는 인정민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인정민이 눈을 부릅떴다.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사람들을 납치하고 인신매매하는 형제복지원은 비밀리에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안기부와 깊게 연결된 상태입니다.”

“……!”

인정민은 입을 떡 벌리더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아니, 안기부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그런 짓을 한답니까?”

“88 올림픽이 다가오고 있지 않습니까? 아시안 게임도 곧이고 말입니다.”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형제복지원은 외국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고자, 거리의 부랑아를 치워버리려는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물론 그 목적이 변질하여 지금은 부랑아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이나 여성들까지 납치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허어, 안기부 놈들이 예전부터 막 나가는 놈들이란 사실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막 나가는 거로 따지면 사실 경찰도 할 말이 그리 많지는 않을 거 같았다.

대공분실을 운영하며 대놓고 고문을 하는 것이 경찰이었으니까.

하지만 경찰 간부 출신인 인정민 앞에서 이런 생각을 드러내 봐야 좋을 게 없었다.

나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형제복지원에 대해 몰랐다면 모를까, 알게 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장님께 정의감 넘치는 경찰 간부를 알아달라고 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인정민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제야 내 뜻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런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어떤 걸 물으시는 겁니까?”

“이 정도의 사건이라면 정권 전체가 피해를 볼 일인데, 대통령이 노기를 터뜨리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즉, 대통령의 보복이 걱정되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안기부장이 제 목을 노리고 있으니, 제가 먼저 안기부장의 목을 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기부장이 회장님을 노린다니요?”

“최근 들어 대통령에게 문책을 받은 일이 많았나 봅니다. 그래서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저를 노리는 거 같습니다. 대통령이 저와 양희수 회장을 싫어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니 말입니다.”

“허. 장세민, 그 무식한 놈이 무식한 수단으로 과잉충성을 하나 봅니다.”

“어쨌거나, 그자를 치기 위해서는 이 형제복지원을 파헤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애꿎은 피해자들도 구제하고 안기부장도 처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좋은 선택인 거 같습니다. 확실히 그만한 일이라면 정권에서도 꼬리를 자르지 않을 수 없으니 말입니다. 다만 문제는 언론이지 않겠습니까? 정권 차원에서 이 사건을 묻히기로 한다면, 장세민도 크게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야 그렇다.

인정민이 추천한 송병두란 사람이 피해자들을 모조리 구해낸다 한들, 결국 그뿐이었다.

정작 가해자는 어떠한 형벌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노사 역시도 형제복지원이란 것을 몰랐던 걸 보면, 원 역사에서도 흐지부지되지 않았나 싶다.

“언론은 제가 섭외하겠습니다. 그러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려일보와 부딪치는 일이 많아지자, 오히려 다른 언론사들과의 관계는 더 좋아졌다.

특히나 동화일보와 많이 친한 편인데, 기사 한두 개 정도를 보도시키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동화일보에서 한 번 터져준다면 다른 곳에서도 연달아 터져 나올 가능성이 컸다.

그만큼 자극적인 사건이었으니까.

“그럼 저는 송병두 강력계장을 통해서 은밀하게 일을 진행하면 되겠군요. 우리가 관여했다는 것이 걸린다면 좋을 게 없을 것이니 말입니다.”

“예. 은밀하게 진행하시되, 최대한 신속하게 움직여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인정민이 물러나자 나는 턱 끝을 쓰다듬었다.

‘과연 이번 사건으로 5공 정권에 얼마만큼의 타격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군.’

나는 당연히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형제복지원이 아무리 큰 사건이어도 정권 전체가 몰락할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 5공 정권이라면 테러나 간첩 사건 같은 사건을 일으켜서라도 형제복지원 사건을 묻히려 들 터.

‘5공 전체를 몰락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해도, 나를 건든 장세민에게만큼은 반드시 유효한 타격을 입혀야 한다. 다시는 나를 상대로 애먼 짓을 하지 못하게 말이야.’

* * *

어느 날부터, 부산에서 실종신고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아동이나 여성부터, 젊은 사내까지.

하지만 부산 경찰국에서 조사 인력을 늘렸음에도 상황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실종신고는 날마다 늘어났고, 경찰들은 피로감을 호소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빈번하게 늘어나는 실종 사고의 수사를 총괄하는 송병두 강력계장의 저택에 장문의 편지가 날아왔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형제복지원을 조사하십시오. 당신이 수사하고 있는 실종 사고는 바로 이곳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처음 이 편지를 봤을 때, 송병두 강력계장은 황당함을 느꼈다.

형제복지원은 부산에서 가장 큰 복지시설이었다.

언론에서도 가끔 나올 정도로 명성을 크게 얻었다.

그런데 이런 시설에서 납치와 폭행, 강제 노역 등이 자행되고 있다고?

정황 증거 자체는 신빙성 있게 느껴지긴 했지만, 송병두 강력계장으로선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조사해 볼 가치는 있어.’

수사의 진전이 막힌 곳이 항상 형제복지원 근처라는 점이 신경 쓰였다.

형제복지원에서 의문스러운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는 점도 신경 쓰였고 말이다.

“정보가 사실인 듯합니다. 형제복지원 내부를 멀리서 몰래 지켜봤는데, 수상한 정황들이 포착되었습니다.”

“어떤 정황들인데?”

“사람을 노예 다루듯 다루는가 하면, 대놓고 폭행하는 장면도 여러 번 봤습니다. 심지어 운동장 한복판에서 여성을 강간하는 장면까지도 말입니다.”

“…….”

이재한 경위의 보고에 송병두 강력계장은 안색을 굳혔다.

노예처럼 다루고 폭행에다 강간까지 한다면, 그건 복지시설이 아니었다.

오히려 수용소에 가깝다고 봐야 할 터.

“지금 조사한 내용, 나에게 처음 보고한 거지?”

“예. 아무에게도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다행이군.”

사실 이재한 경위가 일선에서 형제복지원을 조사하는 동안, 송병두 강력계장 역시 경찰국 내부에서 형제복지원 관련 자료를 살펴봤다.

결과를 말하자면, 형제복지원은 그야말로 의문투성이였다.

‘어쩌면 편지에 적혀 있는 내용이 사실일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설령 편지의 내용이 사실이라 해도 함부로 형제복지원을 수사할 수는 없었다.

형제복지원은 규모가 큰 복지시설이었다.

그래서일까.

만만치 않은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

부산시청의 공무원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부산 경찰국 내부에서 형제복지원과 협조하는 인물이 적지 않았다.

그가 살펴본 자료에서도 윗선에서 형제복지원을 두둔한 정황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열혈 경찰인 그가 불의를 봤는데 외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수사 방법이 문제였다.

형제복지원을 수사하려면 정식으로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외압이 발생할 거 같았다.

따르릉!

그때였다.

갑자기 전화가 울리며 한 가지 신고가 접수되었다.

“조폭들이 패싸움? 지금이 때가 어느 땐데 패싸움을 벌여?”

“그런데 이상합니다. 패싸움을 벌이는 위치가 형제복지원 위치랑 똑같습니다.”

“뭐? 그게 정말이야?”

이재한 경위의 말에 송병두 강력계장은 눈을 부릅떴다.

일이 공교롭게 되었다.

하지만 나쁘게 볼 상황은 아니었다.

‘편지를 보낸 자가 허위 신고를 한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우연? 뭐가 됐건, 일단 신고가 들어왔으니 가봐야겠어.’

송병두 강력계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외투를 걸쳤다.

“애들 데리고 출발 준비해!”

“계장님도 가십니까?”

“보통 일이 아닌데, 나도 가봐야 하지 않겠어?”

“알겠습니다. 바로 출발 준비하겠습니다.”

그는 곧바로 혜성 자동차의 코렌드 차에 올라탔다.

연식은 오래됐지만, 코렌드라는 이름값이 괜한 것은 아닌 듯, 아직 잘만 굴러갔다.

“당신들 뭐야!”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수사에 협조해 주십시오.”

“신고는 무슨!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형제복지원의 정문에 도착하니, 그곳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경비원으로 보이는 자들이 이재한 경위를 비롯한 그의 부하들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경찰국의 강력계장입니다. 수사에 협조를 안 하시면 저희도 힘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강력계장이고 뭐고 들어올 거면 영장부터 가지고 오시던가!”

송병두 강력계장은 혀를 차더니, 이재한 경위에게 지시를 내렸다.

“내가 책임질 테니, 이자들 끌어내서 수갑 채워!”

“받들겠습니다!”

“어어? 지금 뭐 하는 거야?”

“이러고도 당신들이 무사할 거 같아?”

끌려나가면서도 기고만장한 모습을 보이는 경비원들의 모습에 다시금 혀를 찬 송병두 강력계장은 본격적으로 형제복지원 내부를 수사하였다.

“허.”

형제복지원 내부는 실로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8평도 안 되는 비좁고 더러운 방 안에 최소 15명이 갇혀 있었다.

그런 방이 수십 개이니, 적어도 수백 명이 갇혀 있다고 봐야 했다.

심지어 이 중에는 어린아이도 적지 않았다.

‘이런 거대한 수용소를 아무도 몰랐다고? 형제복지원의 뒷배가 내 예상보다 훨씬 더 거물인가 보군.’

송병두 강력계장의 얼굴이 딱딱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예상하였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해임되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르겠어.’

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쓴웃음을 지을 때, 갑자기 운동장 쪽에서 소란이 들렸다.

“뭔 일이야?”

“기자들이 왔습니다.”

“기자들이 어떻게 알고 여기를 와?”

“잘은 모르겠지만,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는 듯합니다. 아마, 신고자가 언론사에도 신고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절묘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신고자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왠지 경찰의 움직임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하였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손에 놀아나다니. 내 꼴도 우습게 됐군.’

하지만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어찌 됐든, 형제복지원에 갇힌 피해자들을 구출했으니 말이다.

“쫓아낼까요?”

“아니. 쫓아내지 말고, 방해하지도 마.”

쫓아내기는커녕 오히려 협조를 해줘야 한다.

그래야 형제복지원 관련 내용이 더욱더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될 테니까.

* * *

김종우 회장은 비서실장의 말을 듣고 눈을 부릅떴다.

“안기부장이 해임될 거 같다고?”

“예, 형제복지원 설립 과정에서 안기부가 개입했다는 증거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 이상, 정권에 피해가 안 가려면 안기부에서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할 거 같습니다.”

“그게 안기부장이다?”

“제 예상은 그렇습니다.”

비서실장은 예상이라고 에둘러 말했지만, 표정을 보면 안기부장이 숙청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 사건이 설마 이렇게까지 비화할 줄이야. 그것도 하필 이 시점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본격적으로 세계 상선 인수전에 가담하려고 했더니, 시기가 공교로웠다.

이래서야 안기부의 조력을 받을 수가 없었다.

사실상 세계 상선을 포기해야 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빌어먹을, 그 애송이 놈이 세계 상선을 가져가는 걸 가만히 지켜봐야 한다고?’

똑똑!

“회장님, 혜성 그룹의 이한성 회장이 찾아왔습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마치 김종우 회장의 상황을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한성이 찾아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