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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103화 (103/300)

103화 3저 호황의 시대가 왔다

“일단 가장 먼저 황 노인에게 돈을 갚아야겠죠?”

(당연히 그래야지. 앞으로도 황 노인의 덕을 보려면 상환할 것은 확실하게 상환하고 가는 게 좋다.)

노사가 말한 것처럼 이해타산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큰돈을 벌었으면 빌린 돈부터 갚는 게 사람의 도리였다.

(그런데 황 노인에게는 얼마나 줄 거냐?)

나는 잠시 고민하였다.

황 노인 덕에 수익을 극대화했으니 되도록 많이 챙겨주는 게 좋았다.

위험을 함께 감수하기도 했고 말이다.

“적어도 2천만 달러는 얹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그 정도는 주는 게 맞겠지.)

아무런 조건 없이 4천만 달러를 빌려준 황 노인이었다.

그러니 2천만 달러 정도는 챙겨줘야 했다.

이 정도만 해도 150억 이상의 이익이니 황 노인도 만족할 거 같았다.

(5,000만 달러는 스티브 잡스에게 투자할 돈으로 빼두면 되겠구나.)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안 그래도 스티브 잡스가 넥스트 사를 설립했다는 소식을 들은 게 불과 얼마 전이었다.

기회가 오면 바로 투자를 해야 하니, 5,000만 달러는 계속 가지고 있는 게 좋을 거 같았다.

“근데 만약 스티브 잡스가 내년까지 대답을 안 하면 어떻게 할까요?”

(그때는 네가 직접 소프트웨어 회사를 차려야겠지.)

하긴, 미래를 생각하면 혜성 그룹에도 소프트웨어 회사가 하나쯤 있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노사가 이야기한 대로 미래가 흘러간다면 세계 시총 1위부터 10위까지, 석유 회사 한두 곳을 제외하면 전부가 IT 회사들이었다.

나로서는 이런 미래를 알고 있는데 굳이 흐름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한국도 IT 쪽으로 능력자가 많다고 하니, 그들을 영입해서 미국에 진출하면 되겠어.’

그런데 이렇게 되니 벌써 1억 달러가 빠졌다.

이제 남는 돈은 1억 달러 정도.

뭐, 그래도 1억 달러면 나중에 바뀔 환율을 생각해도 830억이 넘는 돈이었다.

결코 작은 액수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남는 돈으로는 절반은 일본 부동산에 투자하고, 절반은 회사 인수하고 그러면 되겠다.)

“일본 부동산이야 그렇다 치고, 회사는 어떤 걸 인수하면 좋겠습니까?”

(개인적으로는 퀄컴을 인수하는 걸 추천한다.)

“퀄컴이라면 IT 회사 아닙니까?”

(그래. 올해 막 설립한 회사지. 나중에 휴대폰 사업을 할 때 갑질을 당하지 않으려면 네가 퀄컴을 인수하는 게 좋아.)

갑질을 당하지 않으려고 회사를 인수한다니.

뭔가 조금 황당한 이유였다.

하지만 노사의 조언이니 허투루 들을 수는 없었다.

‘올해 설립했으면 별로 비싸지도 않겠군.’

비싸 봐야 천만 달러면 되지 않을까.

아마 2천만 달러가 넘을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애초에 그만한 돈을 주고 인수할 생각도 없고.

그러니 남는 돈으로는 호텔이나 인수하면 좋을 거 같았다.

‘아니면 자동차 브랜드도 괜찮지.’

유럽에 자금 사정이 안 좋은 자동차 기업이 몇 곳 있으니 그중에 하나를 인수해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 * *

“끌끌! 표정이 좋아 보이는군.”

황 노인이 내 얼굴을 보고서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나는 씩 웃었다.

“황 회장님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투자에 성공한 것이냐?”

“예. 원금 4천만 달러에다 추가로 2천만 달러까지 받으실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허어. 2천만 달러씩이나? 그러고도 자네에게 남는 돈이 있나?”

남는 돈이 있냐고?

물으나 마나였다.

황 노인에게 빌린 돈으로 내가 번 돈이 거의 1억 2천만 달러였다.

빌린 돈 4천만 달러에, 이자 2천만 달러, 총 6천만 달러를 돌려준다 해도 순수익이 1억 달러에 가까웠다.

“제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그렇게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니, 두 배 이상은 건진 모양이군.”

나는 대답 없이 미소를 지었다.

“혹시 자네의 투자가 미국 달러 가치가 내려가는 것과 연관이 있는 건가?”

황 노인의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설마 황 노인이 내가 어떤 투자를 했는지 알아맞힐 거라고는 예상 못 했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자네가 달러를 가져갔는데, 그 정도도 추측 못 할까. 그런데, 자네는 달러를 가져갔으니, 오히려 손해를 봐야 정상 아닌가?”

“선물 거래소라고, 화폐의 가치를 두고 거래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거기서 달러가 내려가는 것에 걸었습니다.”

“흠, 자네가 그리 말해줘도 나는 잘 모르겠네.”

“어차피 도박이나 마찬가지니, 굳이 알 필요는 없습니다.”

“주식보다도 더 확률이 낮은 모양이지?”

“비교도 안 됩니다. 주식은 아무리 망해도 상장폐지까지 가지만 않는다면 깡통 찰 일은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선물거래는 정해진 숫자만큼 달러가 내려가거나, 올라가지 않는다면 돈을 모두 잃게 됩니다.”

내 말에 황 노인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끌끌. 그렇게 확률이 낮은데도 자네는 성공을 자신했다는 거지? 그리고 마침내 성공을 이루어낸 것이고?”

“아직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달러가 내려가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뒤늦게 겸손하게 굴 필요 없네. 이미 자네는 확신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 선물거래라는 것이 끝나는 날짜가 언제인가?”

“12월입니다.”

“그러면 12월에는 잔금을 줄 수 있겠군?”

“예, 올해 안에는 반드시 돈을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러자 황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6천만 달러로 입금되는 즉시, 자네에게 5백억을 빌려주겠네. 은행보다 저렴한 이자로 말일세.”

그런 황 노인의 말에 나는 눈을 부릅떴다.

난데없이 5백억이라는 거금을 빌려준다고 하니 나로서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5백억을 말씀입니까?”

“자네는 또 한 번 투자 실력을 증명하였네. 그것도 미국이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말일세. 자네의 실력이 확실한데, 돈을 못 빌려줄 이유가 없지 않겠나.”

나는 속으로 환희를 느꼈다.

안 그래도 현금 유동성이 떨어져 가고 있어 걱정하던 상황이었다.

달러는 넘쳐나게 될 예정이지만, 한화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황 노인이 선뜻 5백억이라는 거금을, 그것도 은행보다 저렴한 이자로 빌려준다고 하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도 기업 한두 곳은 인수할 수 있겠는데?’

어중간한 회사라면 한두 곳이 아니라 열 곳도 인수할 수 있었다.

5백억이란 돈은 그 정도로 큰돈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는. 끌끌!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자네가 아니라 나일세.”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자네를 만난 게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 아니었나 싶네. 물론 나를 찾아온 것은 자네였지만 말일세.”

“왜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황 노인이 괜히 불안한 소리를 하였다.

마치 작별 인사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걱정하지 말게. 나는 아직 정정하니.”

내 표정이 어떻게 보였는지, 황 노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난 또 무슨 병이라도 걸린 줄 알고 식겁했었다.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자네에게 감사 인사를 제대로 못 한 거 같아서, 기회가 생기니 한 거뿐일세.”

“그렇습니까?”

“물론 은퇴 준비를 하고 있기는 하네.”

“예? 은퇴를요?”

“돈도 벌 만큼 벌었으니 슬슬 나도 은퇴를 해야 하지 않겠나.”

황 노인의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이렇게 건강하신데 왜 은퇴를 하십니까?”

“자네 춘부장도 젊은 나이에 은퇴를 하지 않았는가.”

“이한철 명예회장님은 나이 때문이 아니라, 건강이 안 좋으셔서 은퇴하신 겁니다.”

“끌끌. 뭐가 됐건 내 결정은 번복이 없으니 더 말할 필요 없네.”

“…….”

단호하기 그지없는 황 노인의 모습을 보고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황 노인의 은퇴라니.

나로선 씁쓸한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자네에게 빌려준 돈은 계속해서 내가 관리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게. 물론 연말에 빌려주기로 한 돈도 그대로 빌려줄 것이니, 그것도 걱정할 필요 없네.”

“……알겠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내 빚을 황 노인이 직접 관리해준다면, 황 노인의 후계자와 쓸데없는 신경전을 벌일 일은 없을 거 같았다.

물론 추가적인 대출을 받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이참에 은행이랑 친해지게.”

“은행 말씀입니까?”

“사채업자인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하네만, 자네는 너무 은행과 거리를 두고 있어.”

“그렇습니까.”

“혜성 그룹의 규모는 날이 갈수록 커질 걸세. 내가 은퇴하지 않고 명동에 계속 남아있어도 자네를 감당하기는 어려울 거야.”

맞는 말이었다.

황 노인의 재력이 아무리 대단해도, 이미 나에게 빌려준 돈만으로 거의 한계에 직면한 상태였다.

그가 은퇴를 선택한 배경에는 아마 가용할 수 있는 현금이 떨어졌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뭐, 내 덕에 달러만큼은 충분해졌겠지만 말이다.

“충고 감사합니다. 되도록 은행권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끌끌. 괜한 말을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 자네가 어련히 잘할 텐데 말이야.”

“아닙니다. 회장님의 말이 아니었으면 자각을 못 하고 넘어갔을 겁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황 노인의 충고가 아니었으면, 은행권과는 줄곧 담을 쌓고 지냈을 가능성이 높았다.

‘생각해보면 올해부터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텐데, 부채를 늘리는 것에 그렇게까지 거부감을 보일 필요는 없겠어.’

정부가 걱정이었지만, 부채 비율만 400% 정도로 유지한다면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러니 은행권 대출을 받아서 미리미리 사업의 규모를 키워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 * *

다음 날, 나는 혜성 그룹의 임원들을 소집하였다.

플라자 합의에 관련해서 몇 가지 이야기를 전하기 위함이었다.

“어제 있었던 플라자 합의에 대해서는 들어보셨습니까?”

내가 그렇게 물으니 임원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플라자 합의요?”

“그게 뭡니까?”

생각해 보면 아직 플라자 합의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쓰이는 단계가 아니었다.

나는 속으로 쓰게 웃으며 플라자 합의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였다.

“플라자라는 호텔에서 G5 재무장관들이 만나 달러의 가치를 내리자고 합의하지 않았습니까? 그걸 플라자 합의라고 부릅니다.”

“아, 미국에서 하고 있는 그 회의를 플라자 합의라고 부르는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그런데 회장님? 플라자 합의에 대해서는 어찌 물으시는지?”

임원들의 반응을 보니 예상했던 대로 플라자 합의의 파급 효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분위기였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지. 언론에서조차도 플라자 합의에 대해서는 기사 하나 안 내고 있으니 말이야.’

미국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 것은 떠들썩하게 보도하면서도 플라자 합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물론 그렇다 해서, 따로 엠바고가 내려온 것이 아니었다.

그저 플라자 합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관심이 없는 것일 뿐.

이처럼 언론이나 재벌이나, 이 시대의 한국 사람들은 국제 감각에 미숙한 편이었다.

뭐, 사실 나도 노사가 아니었으면 플라자 합의가 뭔지 관심도 두지 않았을 것이다.

얼핏 봐서는 한국과 관련이 없어 보였으니 말이다.

“달러가 내려가고 엔화가 올라가면 어떤 결과가 생기겠습니까?”

“음……. 글쎄요.”

“달러 가치가 내려간다는 말은, 원화의 가치가 올라간다는 뜻이니 아마 수출 기업이 불리해지지 않겠습니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럴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원화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저평가 당하기에 수출에도 큰 손해가 없었다.

“제가 말했지 않습니까. 달러만 내려가는 게 아니라, 엔화도 올라간다고.”

“엔화가 올라간다면 일본과 경쟁하고 있는 전자 쪽이 크게 이득을 보겠군요!”

“전자뿐만이 아니라, 의류와 자동차 쪽의 수출도 늘어날 거 같습니다.”

임원들이 한마디씩 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미래 사람들은 지금 시대를, 3저 호황의 시대라고 부를 겁니다.”

“3저 호황의 시대요?”

“예.”

곧 오게 될 3저 호황.

나로선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이번 호황으로 반드시 빅 5 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냥 재계 5위를 목표로 삼는 게 아니었다.

일성, 미래, 정우, 은성, 이 네 개의 대기업과 같은 반열에 서는 것이 내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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