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300억을 더 투자할까?
한성의 비서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양기현은 곤란한 질문을 받고는 했다.
“그분은 이상형이 어떻게 돼? 사귀는 사람은 없고?”
“비서 중에 이소희라고 꽤 예쁜 여자 있다던데, 혹시 그 사람이랑 그렇고 그런 관계야?”
처음에는 이상형에 관한 질문이 많았었다.
최고의 신랑감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을 때였다.
하지만 한성이 결혼한 이후로는 더욱더 민감하고 사생활적인 질문을 많이 받았다.
“내가 듣기로 이한성 회장님의 자산이 엄청나다는데, 자산이 정확히 어느 정도 된데?”
“골프나 볼링 같은 스포츠는 별로 안 좋아하시나?”
“왜 이렇게 사교활동을 싫어하는 거야? 네가 한번 힘써서 이한성 회장 좀 불러오면 안 되냐?”
“부부 관계는 어때 보여? 워낙 차가운 성격이라서 부부 관계도 소원하지?”
불과 20대 후반의 나이로 재계 10위권 안에 드는 혜성 그룹을 경영하고 있는 젊은 회장, 이한성.
재계에서 그에 대한 관심은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한성이 주식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들려오면서 이 같은 관심은 더욱더 증폭하였다.
양기현이 바빠진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한성은 사교 생활에 적극적이지 않았기에, 그나마 연회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양기현에게 한성의 사생활을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양기현은 재벌 친구들이나, 어른들을 만날 때마다 늘 질문 공세에 시달리고는 했다.
취미, 성격, 보유 자산, 부부 관계 등등.
그야말로 온갖 것들을 물어보았다.
“미안하지만, 회장님에 관한 정보는 알려줄 수 없어.”
양기현은 한성의 사생활에 관한 질문을 들을 때마다 단호하게 대답했다.
절대 알려줄 수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보유 자산이나 다른 정보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대처했다.
하지만 양기현이 단호하게 대처했음에도 사람들은 끈질기게 질문을 던졌다.
그만큼 한성에 대한 관심이 컸던 것이다.
“지금도 이런데, 세계 상선까지 인수한다면 어떻게 될지 걱정입니다.”
세계 상선을 인수한다면 재계 5위가 될 것은 명약관화하였다.
당연히 사람들의 관심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뭐 달라질 게 있겠어? 기현이 네가 조금 더 귀찮아질 뿐이지.”
“…….”
양기현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질문 공세에 시달리는 양기현은 한성의 인기가 커질수록 머리가 다 아파질 지경인데, 정작 한성 본인은 태연하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한성이 형은 참 한결같네.’
그였으면 사람들의 관심에 부담을 느꼈을 거 같았다.
아니, 어쩌면 기쁨에 취해서 어쩔 줄 몰라 했을 수도 있었다.
사실 20대의 나이에 이 같은 성공을 이루었으면, 그게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한성은 두 가지 중 어떤 모습도 보여주지 않았다.
애초에 양기현은 비서로서 한성의 곁에 있는 동안, 한성이 당황하거나 흥분하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어떤 성공을 이루든, 혹은 실패를 경험하든 한성은 태연한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그냥 침착하기만 한 것도 아니지. 아버지의 말대로 한성이 형은 사업가의 자질을 두루 갖춘 거 같아.’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일성 그룹의 장남인 이명승 부사장부터, 그의 아버지인 세계 그룹 회장까지 한성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만큼 한성의 혜안은 특출났다.
물론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 말고도 직원을 관리하는 능력이나, 리더십, 아이디어 등도 빼어나기 그지없었다.
20대 중후반에 회장이 되었음에도 지금까지 내부적으로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봐도 그가 얼마나 뛰어난 능력을 갖췄는지를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이 형은 요리도 잘하잖아.’
사람들은 혜성 호텔의 양념치킨을 혜성 그룹의 안주인이 만든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지만, 양기현은 진실을 알고 있었다.
양념치킨을 개발한 것은 한성이란 사실을 말이다.
그렇기에 양기현은 한성에게 경외의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보기에 한성은 못 하는 것 하나 없는, 완벽한 남자였던 것이다.
“아쉽습니다.”
“뭐가?”
“회장님의 곁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는 한성의 곁을 떠나야 했다.
더 늦기 전에 세계 그룹으로 돌아가 양 회장의 사위들과 후계 경쟁을 치러야 하는 것이었다.
‘나도 회장이 된다면 과연 한성이 형처럼 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회장이 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혜성 그룹에 처음 입사했을 때의 한성보다는 상황이 좋다지만, 그의 매형들도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나이도 30대, 40대였고 오랜 시간 세계 그룹의 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중 양 회장의 첫째 사위인 한제인의 직책은 무려 그룹 부회장이었다.
내외적으로 양 회장의 후계자 취급을 받기도 하였으니, 양기현의 상황은 더욱 암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도 딱히 나를 후계자로 내세울 생각이 없는 거 같던데…….’
양 회장이 그를 후계자로 세울 생각이었다면, 진즉에 지분을 양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세계 그룹의 지분을 단 1주도 받지 못하였다.
그의 매형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지분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혹시나 나중에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라.”
그때 한성이 불쑥 그 같은 말을 하였다.
양기현은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정말입니까?”
“당연히 진짜지. 네가 지금까지 내게 해준 게 있는데, 나라고 못 해줄 게 뭐가 있겠어?”
한성의 말을 들은 양기현은 크게 감동하였다.
대놓고 후계 경쟁을 도와주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저 발언은 사실상 지지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혜성 그룹의 회장으로서 다른 기업의 후계 경쟁에 관여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텐데도 선뜻 도와준다고 하니 그로서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한성이 형에게도 이득이 있으니까 그러는 거겠지만, 그래도 참 든든하네.’
서자이자 삼남인데도 불구하고 혜성 그룹의 후계 경쟁에서 승리한 것이 바로 한성이었다.
한성이 도와준다면, 이보다 더 든든할 수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이제는 예전처럼 형이라고 불러. 괜히 어색하게 회장이라 부르지 말고.”
“알았어, 다시 형이라고 부를게.”
양기현의 말에 한성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 * *
7월 중순이 되자 결국 스티브 잡스는 귀국하였다.
“호텔이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다음에 또 한국으로 와서 혜성 호텔을 이용하고 싶군요.”
“꼭 다시 와주십시오. 시간이 없어서 못 오겠다 싶으면 제가 미국에다 혜성 호텔을 설립할 테니, 그곳으로라도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미국에다요? 하하, 그러면 자주 가야죠.”
“그런데 제 투자는 결국 안 받기로 결정하신 겁니까?”
“예.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스티브의 성공을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스티브 잡스를 떠나보내고 다시 시간이 흘렀다.
7월 말이 되자, 예정했던 대로 양기현이 인수인계를 마치고 세계 그룹으로 돌아갔다.
“전에 말했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 그냥 한 소리 아니니까, 새겨들어.”
“알겠어. 형이나 나중에 딴말하지 마.”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내가 딴말할 일은 없을 것이다.
나로서는 다른 사람이 후계자가 되는 것보다, 양기현이 세계 그룹의 후계자가 되는 것이 가장 좋았으니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양준현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이한성입니다.”
“말 편히 해주십시오. 그냥 동생처럼 여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흐흐.”
양기현이 가고, 그의 동생 양준현이 왔다.
‘어쩌다 보모가 된 기분이군.’
물론 진짜로 보모처럼 돌보아주고 가르쳐 주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양 회장이 자식 농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는 것인지, 양준현도 한국대 출신의 인재였다.
습득력도 빠르고 눈치도 좋아서 금방 비서 업무에 적응하여 오히려 나를 이것저것 도와주었다.
“회장님, 정말 존경합니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혁혁한 업적을 세우다니. 거기에 아름다운 사모님까지!”
“혜성 호텔에 가봤는데, 치킨 요리가 정말 맛있더라고요. 앞으로 단골이 될 거 같습니다.”
“그거 아십니까? 제가 자주 다니는 모임에, 회장님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들 입에서 회장님 이야기가 많이 오가는데, 유부남인데도 아주 인기가 많은 거 같습니다. 흐흐!”
다만 말이 너무 많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말이다.
‘형제면서도 성격이 많이 다르네. 하긴, 대부분이 그렇기는 하지.’
어쨌거나 일만 잘하면 나로선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슬슬 세계 상선을 인수할 준비를 해야겠군.’
양 회장은 올해 안에 세계 상선을 넘겨주겠다고 약속했었다.
오늘이 8월 4일이니, 이제 5개월도 남지 않은 셈이었다.
해운 합리화도 거의 실행 직전이었으니, 아마 더 늦어지지는 않을 터.
지금부터 준비한다 해도 결코 빠른 것은 아니었다.
물론 자금이야 지금도 충분하였다.
평소에도 늘 3백억 이상의 현금은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자금만 있다고 준비가 끝나는 게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해운 사업에 대한 배경지식도 갖추고 있어야 했고, 임원이나 직원들의 고용 문제도 고민을 해봐야 했다.
* * *
세계 상선을 인수할 준비를 하는데 미국에서 신은규의 연락이 왔다.
-엔화 콜옵션 300계약을 매수 주문 체결하였고, 마르크화 풋옵션 250계약을 매도 주문 체결하였습니다.
모두 합해서 550계약을 체결했다는 신은규의 말에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한 계약당 예상되는 순수익이 대략 2만 달러라고 했던가?’
노사가 한 말이니 맞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예정대로 플라자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나는 벌써 천백만 달러의 순수익을 거둔 셈이었다.
“좋습니다. 그 정도 속도라면 8월 중순 안에는 2천 번 이상의 계약을 체결할 수 있겠군요.”
-예, 충분히 가능할 거 같습니다.
하나의 계약을 체결하는데 필요한 증거금은 대략 5천 달러.
HS 인베스트먼트의 자산이 대략 1,300만 달러니, 이론상 2천 번 이상의 계약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계획대로 2천 번 이상의 계약이 진행된다면 무려 4천만 달러의 이익을 거두는 셈이었다.
환율이 달라진다 해도, 한화로 무려 350억의 순이익이었다.
‘이 정도면 스티브에게 투자할 돈을 마련하는 것은 문제가 없겠어.’
원금을 합하면 예상되는 금액이 5천3백만 달러였다.
스티브 잡스에게 투자하게 되면 총 5천만 달러를 투자할 것이었으니, 투자 자금은 충분하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호텔을 인수하거나 다른 회사에 투자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말이다.
“혹시 어려운 점이나 필요하신 것이 있으십니까?”
-딱히 없습니다.
“그럼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예, 반드시 2천 번 이상의 계약을 체결하겠습니다.
그렇게 신은규와의 통화가 끝이 났다.
나는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이 원하는 대로 진행됐다는 생각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움을 느꼈다.
‘5천3백만 달러라. 분명 엄청난 금액이긴 한데, 뭔가 아쉽게 느껴지는군.’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거 같았다.
백억으로 단기간에 400% 가까운 이익을 거두는 셈이었지만, 나는 성에 차지가 않았다.
이렇게 큰돈을 벌 기회는 앞으로 많지 않을 터.
나비효과가 일어날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기회는 적었다.
그러니 무리해서라도 투자를 늘려야 하지 않을까?
“딱 3백억만 더 투자해 볼까?”
만약 3백억을 더 투자한다면, 스티브 잡스에게 투자한다 해도 남는 돈이 천억이 넘었다.
그리고 이 천억이라면 아주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다.
미국의 유명 호텔을 인수하는 것도 가능했고,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쪽으로도 인수 합병이 가능하였다.
혜성 그룹을 올해 안에 빅 5의 일원이 되게 만드는 것도 가능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