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88올림픽이 기대되는걸
혜성 호텔에 다녀온 뒤로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요리를 만들었다.
노사의 레시피가 과연 얼마나 맛있을지, 내 손으로 직접 시험해 보기 위함이었다.
“요리는 끝났는데, 어떻습니까? 잘 된 거 같습니까?”
나는 내가 만든 빨간색 통닭, 아니 양념치킨을 가리키며 노사에게 물었다.
그러자 노사가 입술에 침을 발랐다.
(생긴 것만 봐도 군침이 도는구나. 아주 맛있게 잘 된 거 같아.)
“제 요리 재능이 대단하긴 한가 봅니다. 사흘도 안 돼서 이렇게 먹음직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치킨 요리 하나 한 거 가지고 뭔 유세를 떨어? 애초에 내가 시키는 거 그대로 한 거밖에 없는 주제에 잘난 척이야?)
노사가 그리 말하니 할 말이 없어졌다.
실제로 내가 한 것은 거의 없었고, 노사가 내 손을 빌려서 요리한 거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맛부터 봐라. 어제 실패했던 그 괴상한 요리보다는 훨씬 맛있을 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치킨을 들어 올렸다.
‘과연 얼마나 맛있을지.’
기대하며 한입을 뜯어먹으려는 순간, 뒤에서 유지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성 씨, 주방에서 뭐 하고 계세요?”
“요리하고 있었습니다.”
“한성 씨, 요리도 할 줄 아세요?”
유지은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내가 요리하는 모습은 처음 봤을 테니, 당황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저번에 호텔에서 먹었던 식사가 조금 아쉬웠지 않습니까?”
“예? 그렇죠. 솔직히 실망이 크긴 했어요. 유명한 요리사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조식의 뷔페 요리들도 그렇고 룸서비스도 그렇고 썩 만족스럽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호텔 요리에 실망하셨을 지은 씨를 위해 준비했습니다.”
“이게 뭔가요?”
“별건 아니고, 치킨 요리입니다.”
“치킨이요? 제가 아는 KFC 치킨과는 많이 달라 보이는데…….”
아직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은 치킨보다 통닭이었다.
그나마 작년에 KFC가 들어오면서 치킨이라는 단어가 쓰이게 됐는데, 그 치킨은 미국식 프라이드치킨이었다.
내가 만든 치킨과는 여러모로 궤를 달리하였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양념치킨을 최초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대구에서는 이미 양념치킨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유지은이 양념치킨을 모르는 것만 봐도, 서울에서는 인지도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레시피적으로도 내 쪽이 아마 훨씬 더 맛있을 것이고 말이다.
“대구의 멕시칸 통닭이라는 통닭집에서 처음으로 개발한 양념치킨입니다. 멕시칸 통닭의 레시피에서 제 나름대로 만든 레시피를 추가하여 만들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자신 있는 목소리로 설명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다.
아직 나도 맛 테스트를 제대로 안 해서 그녀가 어떤 평가를 할지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와!”
“어떻습니까?”
“너무 맛있어요! 그렇게 맵지도 않고 적당히 달콤한 맛도 나서 너무 좋은데요?”
그녀의 반응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요리는 노사가 거의 다한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내 손으로 만든 요리를 그녀가 맛있게 먹어주니 기분이 정말 좋았다.
노사도 아마 이런 기분 때문에 요리를 배운 게 아닌가 싶었다.
“이 빨간 것은 고추장이죠?”
“고추장 조금이랑, 딸기잼도 넣었습니다.”
“아, 그래서 달콤한 맛이 있는 거네요.”
유지은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다시 열심히 치킨을 뜯어 먹었다.
손에 양념이 묻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먹는 것을 보면, 맛있긴 한가 보다.
나도 그녀를 따라 치킨을 먹어보았다.
그러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노사가 왜 그렇게 자신감을 가지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
“저는 이 양념치킨이라면 외국인들도 좋아할 거로 생각합니다. 지은 씨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좋아할 수밖에 없을 거 같아요. 이렇게 맛있는걸요?”
손에 양념이 묻는다는 게 아쉽긴 했지만, 노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양념치킨은 세계적으로 인기 만점이었다.
나중에는 뉴욕타임즈 같은 미국의 대표적인 언론까지 한국식 양념치킨을 소개할 정도로 인기를 끌 정도였다.
‘채식주의자만 아니었으면 스티브 잡스도 양념치킨을 맛있게 먹었을 텐데. 스티브 잡스에게 양념치킨을 소개하지 못한다는 게 조금 아쉽군.’
뭐 크게 상관은 없었다.
부각을 비롯하여 채식주의자들이 좋아할 만한 요리의 레시피들도 노사가 알고 있는 게 있었으니까.
그 요리들이 양념치킨만큼 맛있다면 스티브 잡스도 크게 만족하지 않을까 싶었다.
“혜성 호텔의 조식 메뉴로 양념치킨을 넣을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호텔에서요? 괜찮은 거 같은데요?”
“그러면 이 치킨은 지은 씨가 만든 거로 알리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무래도 재벌 회장인 제가 요리를 개발했다고 하면 괜히 쓸데없는 말들이 오갈 겁니다. 그러니 지은 씨의 공으로 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하, 하지만 저는 집안일을 전혀 못 하는데…….”
“괜찮습니다. 전혀 어려운 요리가 아니니까.”
유지은은 내 말에도 불구하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보면 내 공을 가로채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누가 레시피를 개발했다고 알려지건 알 바 아니었다.
그저 우리 혜성 호텔에서 개발했다고만 알려지면 됐다.
“어차피 양념치킨이 실패하면 실패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하니, 반드시 좋기만 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니 더 거절하지 말아 주세요.”
“알겠어요. 대신, 양념치킨 만드는 비법을 확실하게 알려주세요. 남들 앞에서 시범을 보이다 괜히 곤혹스러운 일이 생길 수도 있잖아요.”
“물론입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양념치킨을 비롯하여 노사가 알려준 여러 요리의 레시피를 알려주었다.
* * *
“웰컴 투 코리아!”
누군가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스티브 잡스는 헛웃음을 흘렸다.
“큭! 세상을 다 가졌을 때 왔던 이 나라를, 세상을 잃은 뒤에 다시 오게 되었구나.”
2년 전의 그는 그야말로 세상을 다 가진 사람이었다.
그가 이끄는 애플은 세계 최초로 연 매출 10억 달러를 돌파한 개인용 컴퓨터 회사였고, 스티브 잡스 개인은 타임지가 주제로 삼을 정도로 큰 주목을 받았었다.
물론 단순히 인기만 많았던 것은 아니었다.
스티브 잡스의 자산은 무려 2억 달러.
한화로 따지면, 1,500억이 넘는 자산가였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더는 그를 주목하는 사람이 없었고, 자산도 크게 줄어들었다.
심지어 애플사도 더는 그의 것이 아니었다.
창업주였던 그가 자신이 세운 애플사에서 쫓겨난 것이다.
스티브 잡스에게 있어 1985년은 명예도 잃고 돈도 잃은 최악의 해가 아닐 수 없었다.
‘과연 이 나라에서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일성 그룹이라면 모를까, 혜성 그룹은 그에게 있어 듣도 보도 못한 회사였다.
그저 조잡한 조립식 컴퓨터를 생산하는 회사로 알고 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성 그룹의 초대를 받아들인 것은, 혜성 그룹이 그를 찾는 유일한 기업이었기 때문이었다.
애플사 직원들조차 그를 찾지 않는 상황에서 동양의 작은 나라가 자신을 찾는다고 하니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스티브 잡스 씨!”
“누굽니까?”
“저는 혜성 그룹 회장님의 비서인 양기현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갑자기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젊은 사내를 보며 스티브 잡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일성에서는 중년 사장이 마중을 나왔었는데…….’
사장도 아닌, 젊은 비서라니.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지금 스티브 잡스의 상황에서는 까칠하게 나갈 수도 없었다.
지금의 그는 애플사의 CEO가 아닌, 일개 야인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호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젊은 비서를 따라 큼직한 SUV에 올라탔다.
“처음 보는 차인데, 디자인이 괜찮군요. 어느 나라의 차입니까?”
“저희 그룹에서 만든 자동차입니다!”
“예? 혜성 그룹에서 자동차도 만듭니까?”
“자동차도 만들고 세탁기도 만들고 웬만한 것들은 다 만들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일성 그룹을 조사했던 적이 있는 그였기에 한국 대기업이 여러 계열사를 경영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사실, 미국에서도 그런 경우가 적지는 않았으니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혜성 그룹은 잘해봐야 중견에 불과한 기업이었다.
그런데 중견업체가 전자 회사에, 자동차 회사까지 거느리고 있다니.
그로서는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미국에서 파는 차와 비교해도 그리 떨어지지 않는데……. 혜성 그룹의 저력이 예상보다 훨씬 대단한가 보군.’
스티브 잡스가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양기현이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부터가 목동입니다.”
“2년 전에 봤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벌써 큼직한 건물들이 생기고 있군요. 발전이 놀랍도록 빠른 거 같습니다.”
“외국 바이어들과 대화할 때, 그들이 저에게 이런 말들을 하고는 합니다. 한국은 하루가 바뀔 때마다 빌딩이 생긴다고 말입니다.”
자부심이 느껴지는 양기현의 말에 스티브 잡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가 보기에도 한국의 발전은 놀랍도록 빨랐다.
이 나라의 수도 서울이 불과 30년 전에는 폐허나 다를 게 없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그렇다고 미국에서 온 그가 이제 막 도시의 모습을 드러내는 목동을 보고 감탄할 리는 없었다.
대견하다 정도이지, 다른 의미로 놀랄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저 건물은 꽤 커 보이는데? 완성되면 볼만 하겠어.’
스티브 잡스는 목동 중심부에 있는 건물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건물은 면적이 다른 건물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넓어 보이는데, 어떤 건물인지 아십니까?”
“아! 저 건물도 우리 그룹의 혜성 백화점입니다. 완공은 내년 정도로 예상하는데,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백화점이 될 겁니다. 물론 첫 번째도 잠실에 있는 우리 혜성 백화점입니다.”
“혜성에 백화점도 있어요?”
“백화점뿐이겠습니까? 지금 건물을 세우고 있는 것도 우리 혜성 건설입니다.”
“……!”
놀라웠다.
혜성 그룹이 이렇게도 큰 기업이었다니.
‘어쩌면 애플보다 훨씬 규모가 클 수도 있겠는 걸?’
양기현의 설명에는 아마 어느 정도 과장이 섞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혜성 그룹의 것이 아닌데, 혜성 그룹의 것이라고 거짓말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가 지금까지 본 것만 혜성 그룹 소유라고 해도 혜성 그룹의 규모는 절대 작지 않았다.
“여기가 스티브 잡스 씨가 묵으실 혜성 호텔입니다.”
심지어 혜성 호텔이란 곳은 미국의 유명 호텔들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아 보였다.
로비부터 룸 내부까지 모든 게 호화롭고 고급스러웠다.
서비스도 굉장히 좋아서 대접받는다는 기분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까칠한 성격의 그도 트집을 잡을 게 없을 정도였다.
‘나의 젊은 팬이 이런 기업을 이끌고 있을 줄이야.’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알 수 없었지만, 더욱더 진지하게 임해야 할 거 같았다.
아무리 봐도 그의 첫 동양인 팬은 범상한 인물이 아닌 것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회장님과의 만남은 언제가 편하십니까? 회장님께서는 스티브 잡스 씨가 원하는 날짜라면 언제든 좋다고 하셨습니다.”
“언제든? 지금 당장도 괜찮다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조금 기다리시면 바로 오실 겁니다.”
그 말에 스티브 잡스는 크게 감동을 했다.
2년 전이었으면 당연하다고 생각할 대우였지만, 지금의 그는 자신이 창업한 기업을 빼앗긴 패배자에 불과하였다.
그런데도 이렇게 훌륭한 대접을 해준다니.
“아직 제가 피곤해서 그러는데, 내일 오전에 만나도록 하죠.”
며칠 정도 더 쉬려고 했지만, 그도 혜성 그룹의 회장이란 사람을 하루빨리 보고 싶었다.
그래서 바로 다음 날로 약속을 정하였다.
* * *
“스티브, 오랜만입니다.”
내가 인사를 건네자 스티브 잡스가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식사는 맛있게 하셨습니까?”
“예, 호텔 요리가 굉장히 만족스러웠어요. 한국에 이렇게 맛있는 요리가 있는지 이제 알았다니, 인생에서 손해를 본 기분이에요.”
외국 바이어들이 혜성 호텔의 요리를 극찬했다는 보고를 듣긴 했다.
하지만 역시 보고를 듣는 것과 직접 그 사람의 평가를 듣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심지어 스티브 잡스의 극찬이라……. 이거 정말 기분이 좋은데?’
깐깐한 성격의 스티브 잡스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정도니, 88올림픽 때 찾아올 외국 관광객들의 반응도 기대할 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