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이렇게 형편없을 줄이야
(안 그래도 혜성 호텔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는데, 마침 잘 됐군.)
노사가 불쑥 말을 꺼냈다.
“혜성 호텔에 무슨 문제가 생겼습니까?”
(이번에 새로 생긴 게 아니라, 원래부터 문제가 많았다. 저 상태로 외국인들이 오면 아주 민망한 꼴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다 될 정도야.)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어서 저런 소리를 하는지 의문이었다.
‘매출은 잘만 나오던데?’
청담동에 있는 호텔 한 곳에서만 올 한해에 40억의 매출이 나왔다.
70년대식 여관이었던 혜성 관광호텔도 하나둘 현대식 호텔로 탈바꿈하면서 매출은 더 늘어날 전망이었고 말이다.
(내가 직접 가서 확인해봤는데, 청소 상태도 엉망이고 서비스도 개판이더라. 말만 호텔이지, 그냥 모텔이나 다를 게 없을 정도야.)
“정말입니까?”
(그럼, 내가 너에게 거짓말을 해서 뭐하겠냐.)
충격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받았던 보고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서 어련히 잘 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정 내 말이 의심스러우면 네가 직접 가서 살펴봐. 어차피 혜성 호텔 직원들은 네 얼굴도 모르잖아?)
아무래도 그래야 할 거 같았다.
나는 그날 저녁 유지은에게 물었다.
“이번 주말에 약속 있으십니까? 없으시다면 어디 좀 같이 가주시겠습니까.”
“바깥에서 식사하시게요?”
“그건 아니고, 혜성 호텔에 한번 가볼까 합니다.”
“호텔에요?”
“예, 시찰 겸 데이트 어떠십니까.”
호텔 직원들이 유지은의 얼굴을 알아볼까 걱정도 됐지만, 그녀는 본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사람이니, 괜찮을 거 같기도 했다.
“시찰이요? 그럼 직원들에게는 따로 알리지 않고 가는 건가요?”
“예. 아무래도 호텔 직원들이 평소에 고객을 어떻게 응대하는지 알려면 비밀로 하고 가는 게 더 나을 거 같습니다. 어차피 제 얼굴도 모를 테니 말입니다.”
“재미있을 거 같아요. 마치 왕이 미복 잠행을 하는 느낌이랄까?”
유지은의 말에 피식 웃고는 토요일로 일정을 잡았다.
그리고 토요일이 되자 청담동으로 향했다.
“외관은 확실히 괜찮군요.”
“우리 호텔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쁜 거 같아요. 크기도 가장 크고요.”
그녀의 말처럼 청담동에 있는 혜성 호텔은 크기나 인테리어 면에서는 한국 최고라고 봐도 무방하였다.
물론 노사가 지적한 사항은 서비스와 청결 상태였기에 나는 외관보다는 두 가지를 중점으로 살펴봤다.
‘일단 카운터 직원은 친절한데?’
서비스가 부족하다고 해서 불친절하게 대할지 걱정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직원은 내가 묻지 않아도 이것저것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수건이나 일회용 객실 용품도 잘 챙겨줬고 말이다.
다만 방 내부는 확실히, 머리카락 같은 게 많이 보이긴 했다.
창틀에는 아예 먼지가 쌓여있을 정도였다.
“청소를 잘 안 하나 봅니다.”
“……그러게요. 먼지가 조금 많네요.”
“화장실은 어떻습니까?”
“조금 냄새가 나는 거 같아요.”
나도 그녀를 따라 화장실에 들어가서 냄새를 맡아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조금 나는 정도가 아니었다.
청소를 과연 한 게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화장실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였다.
“이 방만 이런 것일 수도 있으니, 방을 교체할 수 있는지 로비로 가서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나는 다시 로비로 돌아가 방을 교체해달라고 요구하였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이미 결제를 하셔서 방을 교체하려면 추가 요금을 내셔야 합니다.”
그 말에 순간 화가 날 뻔했다.
하지만 애써 참는 얼굴로 다시 물었다.
“방이 청소가 안 되어 있어서 그러는데, 정말 안 됩니까?”
“청소가 안 됐다고요? 고객님,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잠시 기다려달라고 하기에 나는 당연히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런데 카운터 직원 대신 매니저란 사람이 오더니, 이같이 말했다.
“고객님, 일단 결제하신 방을 계속 사용하시죠. 청소는 이따가 고객님이 편하실 때 해드리겠습니다.”
“그냥 방만 교체하면 되는 일인데, 그렇게 일 처리를 번거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다른 방을 가셔도 불만이 있으실 거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듣고 순간 헛웃음을 지었다.
다른 방을 가도 불만이 있을 거다?
그렇다면 다른 방도 더럽다는 뜻이 아닌가.
“603호 말고 다른 방도 다 더럽다는 말씀입니까?”
“더러운 건 아닌데, 고객님처럼 예민하신 분들은 조금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손님에게 대놓고 예민하다는 소리를 지껄이다니.
이런 황당한 경험은 오랜만에 겪는 거 같았다.
(어떠냐. 내 말이 맞지?)
노사의 말에 나는 부정할 수 없었다.
아직 일면만 봤을 뿐이지만, 청소 상태나 고객을 응대하는 모습만 봐도 서비스 면에서 많이 부족하였다.
“고객님, 다른 고객들도 계시니 자리 좀 옮겨주실 수 있겠습니까?”
내가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그가 귀찮다는 어투로 말했다.
“고객님? 여기에 계속 서 있으시면 다른 고객분들이 불편해하십니다.”
“알겠습니다. 알겠으니까, 지배인이나 총지배인을 불러오십시오.”
서비스가 얼마나 허접한지 알았으니 더 시간을 끌 필요는 없었다.
총지배인을 직접 불러와 강하게 문책하는 게 좋을 듯싶었다.
“고객님, 그런 요구는 들어줄 수 없습니다.”
“요구가 아니라 명령입니다.”
“하. 명령이라니…….”
매니저는 내 말이 황당하게만 느껴졌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곤 기가 찬다는 듯, ‘이래서 아무나 예약을 받아주면 안 된다니까’ 같은 소리를 지껄였다.
내가 그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는데 뒤쪽에서 유지은이 누군가와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 사모님 아니십니까?”
“호텔에서는 사모님이라고 부르지 마시고, 유지은 상무라고 부르세요. 송 지배인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어쩐 일로……?”
“남편과 오붓한 시간을 나누려고 왔어요.”
“헉! 회장님도 오신 겁니까?”
“저기 계시네요.”
유지은과 대화를 나누던 사내는 다급히 내 쪽으로 뛰어왔다.
“회장님,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청담동 지점에서 근무하는 송원일 지배인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상사가 나에게 허리를 넙죽 숙이며 인사하자, 매니저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다른 직원들의 표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 신분을 알게 되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라고 볼 수 있었다.
“회, 회장님이셨습니까?”
“예. 제가 혜성 그룹 회장입니다. 그런데 제가 아직도 아무나로 보이십니까?”
매니저는 핼쑥한 얼굴을 하더니, 90도로 허리를 꺾으며 외쳤다.
“회장님을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정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저를 몰라본 것은 죄가 아닙니다. 제가 탤런트도 아닌데 얼굴을 어찌 알아보겠습니까. 하지만 모든 고객을 그룹 회장인 저를 대하듯 대했으면 오늘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울상을 짓는 매니저의 모습에 혀를 차고는 옆에서 매니저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는 송원일을 불렀다.
“송 지배인.”
“예, 회장님.”
“오늘 아주 큰 실망을 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어떻게요?”
“……실수를 저지른 직원들에게 강한 징계를 내리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송 지배인도 잘한 거 없는 거 같습니다만.”
“죄, 죄송합니다.”
“징계는 따로 신경 쓰지 마시고, 직원 재교육이나 똑바로 시키십시오.”
나는 소란을 듣고 달려온 총지배인에게도 말했다.
“총지배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청담동 지점은 청소부터 서비스까지 모든 게 엉망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확실하게 달라졌다고 체감하기 전까지는 혜성 호텔 전 직원의 월급을 동결하고 성과급 지급을 중단하겠습니다.”
“……!”
성과급 지급을 중단하겠다는 내 말에 총지배인과 지배인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혜성 그룹의 급여는 계열사를 막론하고 업계에서 다섯 순위 안에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대단한 점은, 따로 성과급도 지급된다는 점이었다.
주로 연구원들이나 영업직이 받는 성과급을 혜성 그룹은 모든 직원이 받고 있었는데, 혜성 호텔처럼 매출이 수직으로 상승하는 곳은 특히나 성과급이 셌다.
눈앞에 있는 총지배인이나 지배인의 경우, 지금까지 성과급으로만 백만 원 가까이 받았을 정도였다.
올해 남은 기간에도 그만큼 벌 수 있었고 말이다.
그런데 그 성과급이 날아가게 생겼으니, 표정이 안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돈을 벌고 싶으면 더 열심히 일했었어야지.’
외부에서 어렵게 영입한 인재들이 한심한 모습을 보이니 그동안 지급된 월급과 성과급이 아깝게만 느껴졌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해고해 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유지은도 곁에 있고 하니,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기로 하였다.
괜히 이 자리에서 매니저나 다른 직원을 해고한다면 나뿐만 아니라, 유지은까지 악명이 생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텔 서비스가 여러모로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일단 하루를 숙박하기로 하였다.
“이론과 현실은 정말 많이 다른 거 같아요.”
“어떤 점에서요?”
“분명히 저는 혜성 호텔이 초일류 호텔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혜성 관광호텔 때와 크게 다를 게 없어요.”
유지은이 축 처진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에 혜성 호텔의 앞날을 긍정적으로 말하던 그녀가 기운 없는 모습을 보이니 뭔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지은 씨가 만든 호텔 관리 시스템은 완벽했습니다. 단지, 사람이 문제였을 뿐입니다.”
“그런가요?”
“오늘 따끔하게 훈계를 했으니, 청소 문제나 고객 응대에 관련된 문제도 곧 해결될 거 같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런치 시간에 룸서비스로 식사를 주문하자, 또다시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룸서비스가 참으로 창렬스럽구나.)
창렬스럽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감을 들어보니 대충 뜻을 유추할 수는 있을 거 같았다.
아마 맛도 없으면서 쓸데없이 비싸기만 하다는 뜻이 아닐까 싶었다.
‘무슨 계란 하나에 천 원이나 하는지.’
식사 값이 거의 2만 원 가까이 나왔다.
제아무리 호텔 요리라지만, 지나치게 비싼 가격이었다.
‘맛있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 가격이라니.’
청소 상태나 고객 응대 부문만 신경 쓸 게 아니었다.
오히려 룸서비스가 가장 심각하게 느껴졌다.
고객들이, 특히 외국 관광객들이 룸서비스를 시키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생각하면 얼굴이 다 화끈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비장의 레시피를 꺼내는 수밖에 없겠구나.)
“비장의 레시피요?”
(내가 호텔에서 써먹을 한식과 퓨전 요리를 몇 개 알고 있다. 내 요리를 먹어본 사람들은 모두가 맛있다고 엄지를 들었었지.)
“요리도 잘하셨습니까?”
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제 웬만하면 노사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빼어난 요리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요리는커녕 라면 하나도 제대로 못 끓이는데…….’
노사는 도대체 언제 요리를 배웠나 싶었다.
과거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보다 더 바쁘게 산 거 같은데 말이다.
(원래 21세기 아빠들은 주특기 요리는 엄마들보다 잘해. 나도 내가 자신 있는 요리들은 웬만한 요리사들보다 맛있게 한다.)
“하지만 노사는 애를 낳은 적이 없지 않습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다. 말이!)
“죄송합니다.”
(아무튼, 내일 조식 때 메뉴랑 맛이 어떤지 확인하고, 바꿀 수 있으면 싹 다 바꿔. 주방장도 이왕이면 싹 바꾸고 말이야.)
일이 꽤 커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이 상태로는 도무지 초일류 호텔이 될 수 없을 테니까.
‘이번에 선물로 돈을 벌게 되면 외국의 유명 호텔을 인수하던가 해야겠어.’
88올림픽 전까지는 혜성 호텔을 메리어트 호텔이나 콘래드 호텔 부럽지 않은 호텔로 만들어서 외국에서 찾아올 관광객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