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투자천재-96화 (96/300)

96화 달러의 가치는 내려갈 수밖에 없어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아닙니다. 이렇게까지 환영해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자, 당황하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대기업의 회장인 내가 공손하게 나올 줄은 예상치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들의 반응에 싱긋 웃고는 소파를 가리켰다.

“모두, 여기 앉아주십시오.”

김태동, 유주, 배신웅.

비서실에서 어렵게 초대한 이 세 사람은 통화 관련 상품 전문가들이었다.

미국 또는 영국 유학파 출신으로 이 중에 나이가 가장 많은 유주란 사람은 월 스트리트에서 활동하기도 하였었다.

“저희를 스카우트하려고 부르셨다 들었는데, 제안을 받아들이면 혜성 그룹에 입사하게 되는 겁니까?”

마침 유주란 사람이 냉정한 목소리로 그같이 물었다.

“혜성 그룹에 입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제가 따로 회사를 차린 게 있습니다. 그곳에 입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쩐지. 혜성 그룹에는 따로 금융 회사가 없는데 저희를 왜 불렀나 했습니다. 따로 차리셨다는 회사의 이름은 어떻게 됩니까?”

“HS 인베스트먼트입니다.”

“처음 들어보는 회사 이름이군요.”

그야 당연하다.

미국에다가 은밀하게 설립한 투자회사였으니까.

혹시나 안기부가 눈치챌까 봐 달러를 많이 보유한 세계 그룹의 도움까지 받아서 설립하였다.

“저는 선물에다 투자할 생각입니다. 부디 여러분이 저와 함께해 주셨으면 합니다.”

“선물이요? 선물의 위험성을 모르시는 건 아니겠죠?”

“물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험한 만큼 얻을 게 많다는 것도 알고 있지요.”

내 말을 들은 유주는 티 나지 않게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전문가인 그가 보기에 만용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테니, 그런 표정을 짓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김태동은 다르게 반응하였다.

“회장님의 소문, 못 들어보셨어요?”

그는 유주를 향해 답답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무슨 소문을 말하는 겁니까?”

“여기 앉아계신 이한성 회장님은 주식의 신이십니다. 주식으로 한국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다고, 국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김태동의 모습을 보고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그를 보면 벌써 내 직원이 되기라도 한 거 같았다.

“정말로 회장님께서 한국 제일의 부자십니까?”

“태동 씨가 조금 과장하기는 했어도, 제가 주식으로 돈을 많이 번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주식과 선물은 다릅니다. 아무리 주식을 잘하셔도 선물에서 결과가 좋으리란 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모셔온 게 아니겠습니까?”

내 말에 유주는 팔짱을 끼며 고민에 잠겼다.

나는 그런 유주를 두고 다른 두 사람에게 물었다.

“두 분은 어떻게, HS 인베스트먼트에 들어올 생각이 있으십니까?”

“저야, 회장님 아래에서 일할 수 있다면 당연히 입사해야죠.”

즉답한 김태동과 달리, 배신웅은 신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HS 인베스트먼트의 자본금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보통 월급이나, 복지를 먼저 물을 텐데, 자본금을 묻는 게 참 특이한 거 같았다.

“한국 돈으로 백억을 준비했습니다.”

“오, 백억.”

“엄청난 금액이군요!”

두 사람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인 두 사람에게 있어 백억이란 그야말로 엄청난 돈이었다.

하지만 그런 두 사람과 달리, 유주는 코웃음을 치며 싱거운 반응을 보여주었다.

월 스트리트에서 활동한 그로서는 백억이란 돈이 우습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그래 봤자 그의 통장에는 백억은커녕 10억도 없겠지만 말이다.

나는 그 뒤로도 월급이나 성과급, 복지 제도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당연히 월급과 성과급은 업계 최고였다.

“저도 입사하겠습니다.”

결국 배신웅 역시 입사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제 남은 건 유주 한 명뿐이었다.

“회장님께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회장님은 앞으로 달러의 가치가 어떻게 될 거라고 예상하십니까?”

“내려가겠지요.”

“달러의 가치가 내려간다고요? 허.”

유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 예상컨대, 달러는 올해 내내 보합세를 유지할 겁니다. 그러다 연말부터 크게 오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는 속으로 조소를 흘렸다.

미래를 알고 있는 나에게 저런 말을 하니 우습기 그지없었다.

물론 그의 설명을 들어보니 나름대로 일리가 있기는 했다.

“미국의 적자가 심각하긴 해도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입니다. 달러가 약세를 보이면 세계 각국에서 달러를 구입할 것이니, 결코 달러의 가치가 내려갈 일은 없을 겁니다.”

“만약 미국에서 강제로 달러의 가치를 끌어내린다면 어떻겠습니까?”

만약이라고 했지만, 플라자 합의로 현실이 될 것이다.

“터무니없군요.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그런 엄청난 짓을 저리를 리가 있겠습니까?”

“살인적인 금리로 제조업이 무너진 미국입니다. 그리고 미국 제조업의 빈자리를 일본 대기업들이 차지하였습니다.”

“그래서 강제로 달러를 평가절하한다는 겁니까? 일본에 보복하기 위해?”

“예. 지금 미국이 일본의 반도체 회사들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도 보복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 말에 유주는 다시금 고개를 젓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장님과 저와 의견이 다르니, HS 인베스트먼트에는 합류하지 못할 거 같습니다.”

“아쉽게 되었군요.”

나는 그를 굳이 붙잡지 않았다.

달러는 내려가고 엔화는 올라간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알고 있는데 굳이 엄청난 실력자를 데려올 필요는 없었다.

김태동, 배신웅 이 두 사람과 앞으로 미국에서 영입할 전문가들만 있어도 충분한 것이다.

“나중에 달러 가치가 제 말대로 흘러간다면 그때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좋은 대우로 영입해 주시길 바랍니다.”

유주는 나중을 기약하며 그 같이 말했다.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그는 마치 내가 후회할 거라는 식으로 말했지만, 오히려 반대였다.

9월만 돼도 유주는 아마 땅을 치고 후회하지 않을까 싶다.

* * *

내가 직접 미국에 갈 수는 없었기에 나 대신 HS 인베스트먼트를 담당해 줄 사람이 필요하였다.

물론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었다.

내 주변에도 인재는 많이 있었으니까.

“신은규 대표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비서 신은규.

나는 그를 HS 인베스트먼트 대표로 임명하였다.

엘리트인 데다 영어도 가능하고 내 곁에서 경영도 많이 배웠으니 그만큼 적합한 인재가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지.’

김태동이건, 배신웅이건, 별로 신용할 수가 없었다.

내 돈을 가지고 장난을 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신은규가 HS 인베스트먼트의 대표가 되어 그들을 감시해준다면 안심할 수가 있었다.

“어쩌다 보니 대표가 되었지만, 나중에 다시 귀국한다면 그때는 회장님의 곁을 보필하겠습니다.”

“예, 신은규 대표님의 자리는 언제나 비워두겠습니다.”

믿음직한 신은규의 답변에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신은규를 배웅한 나는 일본에 있는 유동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참고로 유동연 역시도 일본에서 내 자산을 관리하고 있었다.

-예, 전화 받았습니다. 회장님.

“혹시 모르니 다음부터는 회장이란 말은 생략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러면 제가 어떻게 호칭해야 할지……?

“사장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사장이나, 회장이나 큰 차이가 있겠냐 마는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대기업 총수들을 제외하면 회장 호칭을 사용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반면 사장이란 호칭은 개나 소나 다 사용하였고 말이다.

어쨌거나 크게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기에 나는 호칭에 대해 더 말하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번 달에는 어느 지역을 중심으로 땅을 사들이고 계십니까?”

신은규의 역할이 선물을 총괄하는 거라면, 유동연의 역할은 일본 부동산을 매입하고 관리하는 것이었다.

-미나토구와 고쿄(일왕이 사는 곳) 근처의 땅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규모는 어느 정도입니까?”

-대략 천 평 정도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좋군요.”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천 평이라면 한국에서는 별거 아니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일반적인 축구장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크기였으니까.

하지만 도쿄를 비롯한 일본의 땅값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천 평 정도만 해도 결코 작은 규모라고 볼 수 없었다.

“남은 자금이 330억 정도죠?”

-예. 엔화로는 백억 엔이 조금 안 됩니다.

“올해 안에 다 쓴다는 생각으로 매입을 서둘러주십시오.”

플라자 합의 이후부터 땅값이 무서울 정도로 치솟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년이 되면 대출받기도 한결 쉬워질 것이니, 땅을 사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회장님의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조금 더 수고해 주십시오.”

유동연과의 대화가 끝나자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책상에 펴놓은 도쿄 지도를 바라보았다.

‘어디를 사도 오르겠지만, 역시 이곳들이 가장 많이 오르겠지?’

미나토구를 비롯하여 롯폰기, 아카사카, 다카나와 등등.

이 지역들은 노사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땅값이 치솟는 곳이었다.

이 중에 미나토구는 도쿄의 빅3이 된다고 하니, 강남을 생각해도 좋을 거 같았다.

‘과연 얼마나 오를지…….’

솔직히 말하면 조금 불안하기도 했다.

지금 일본에 투입한 5백억이란 자금이 순수한 내 돈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회장님. 양희수 회장님과 약속한 시각이 되었습니다.”

마침, 주요 투자자를 만날 시간이 되었다.

주요 투자자란 다름 아닌, 세계 그룹 회장인 양희수였다.

“하하하! 자네, 어제 땡전 뉴스 봤는가?”

“무슨 중요한 뉴스라도 있었습니까?”

“전대환 그놈, 스트레스를 얼마나 많이 받고 있는지 머리털이 남아나지 않을 지경이더군! 옆머리도 다 빠지기 직전이야. 하하하하!”

그런 양 회장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1월까지만 해도 양 회장은 침통한 얼굴을 하였었다.

정부로부터 전 방위적인 압박을 받았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양 회장은 세상을 다 가진 양, 행복한 얼굴이었다.

신한당이 선전할수록 세계 그룹의 사정도 좋아지는 것이다.

“요즘은 회사 경영에 어려움이 없으십니까?”

“정부에서 여전히 귀찮게 굴기는 해도, 크게 문제 될 거는 없네. 이젠 대출도 잘 나오고 있어.”

“그렇습니까.”

“이게 다 자네 덕이야. 자네가 지원해 준 3백억 덕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어.”

“대가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민망합니다.”

“됐네. 모두가 외면할 때, 자네만 도와준 것은 명백한 사실이야. 체면만 아니었으면 자네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일세.”

조금 과장해서 말하는 양 회장이지만, 그의 눈빛은 진심처럼 보였다.

하기야, 그의 입장에서는 나에 대한 고마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양 회장의 말처럼 세계 그룹이 위기에 처했을 때, 세계 그룹을 도와준 사람은 오직 나밖에 없었으니까.

심지어 그 일로 혜성 그룹까지 위기에 처할 뻔했으니, 고마움은 더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에 하나, 자네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투자에서 실패한다고 해도 나는 자네를 탓할 생각이 없네.”

그의 말을 들으니 꽤 안심되었다.

실패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지만, 일본에서 진행되는 일이니 혹시 몰랐다.

하지만 양 회장의 태도를 보니, 투자가 실패해도 크게 문제 생길 일은 없을 거 같았다.

“그리 말씀해주시니, 마음이 놓입니다.”

“자네가 알아서 해주게. 어차피 50억밖에 안 되는 돈이지 않은가. 사실 나는 그 돈을 자네에게 줬다고 생각하는 중이네.”

“아닙니다. 이 투자 자금은 꼭 3년 안에 몇 배로 불려서 돌려드리겠습니다.”

“하하, 그래 주면 고맙고.”

세계 그룹의 입장에서 50억은 그리 큰돈이 아닐 수 있지만, 양희수 개인에게는 큰돈이었다.

양 회장이 투자한 50억은 그의 개인 자금이었기에 나는 반드시 5배 이상으로 불려서 돌려줄 생각이었다.

물론 양 회장은 전혀 기대하지 않는 거 같았지만 말이다.

“세계 상선은 올해 안에는 매각할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늦어져도 괜찮으니 천천히 진행하시죠.”

“아니야. 해운이 합리화 대상으로 선정되면 바로 매각할 것이야. 괜히 내 것도 아닌데 들고 있어 봐야 엄한 생각만 들지 좋을 게 없어.”

그래 준다면 나야 고맙다.

‘2백억으로 세계 상선을 얻다니. 엄청난 이득이군.’

안 그래도 해운 회사가 갖고 싶었는데, 원래라면 절대 가질 수 없는 세계 상선을 얻게 되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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