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투자천재-94화 (94/300)

94화 일성의 후계자가 되어야지?

‘뭐 기술이 딸려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거지만 말이야.’

어찌 됐든, 마케팅만 잘한다면 엄청난 인기를 끌 게 분명해 보였다.

물론 그 마케팅이란 게 쉽지만은 않을 테지만 말이다.

“이 제품을 소비자에게 어떤 식으로 알리면 좋을 거 같습니까?”

혜성 전자의 임원들에게 그리 묻자, 임원들이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통돌이가 그 어떤 세탁기보다 튼튼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불량률 0%에 도전한다는 자극적인 문구를 사용하면 어떻겠습니까?”

“요즘 경제가 발전하면서 새롭게 가전제품을 사는 주부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회사의 가전제품은 기능들이 너무 복잡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간편함을 강조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내가 처음부터 탱크주의를 선언했기 때문일까?

임원들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서, 내가 원하는 말들만 해주었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여러분의 말처럼 간편함과 불량률 제로 등을 강조한다면 소비자들에게 저희 제품을 확실하게 알릴 수 있을 거 같군요.”

은성이나 일성과는 차별화된 전략이 아닐 수 없었다.

아마 이 탱크주의를 잘만 활용한다면 가전 2사에 도전하는 것도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냉장고나 청소기, TV도 어서 개발이 끝나야 할 텐데.’

참고로 청소기는 이미 개발이 끝나가는 상태.

냉장고나 TV도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적어도 올해 안에는 웬만한 가전제품들은 전부 다 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여러분이 그렇게 자신이 있어 하시니, 대대적으로 환불 정책을 시도해도 좋을 거 같습니다.”

“환불 정책, 말씀입니까?”

“제품을 구매한 이후 1년까지, 불량이 확인될 경우 교환이나 환불을 해주는 겁니다.”

“……!”

임원들이 내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1, 2개월 정도 환불을 보장해 주는 경우야 간혹 있었지만, 무려 1년이나 보장해주는 경우는 우리가 처음이었다.

‘이 정도는 되어야 홍보도 확실하게 되고, 일성이나 은성과도 겨룰 수 있겠지.’

하지만 임원들은 이런 내 생각과 다른 것인지, 여전히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만에 하나 고장이 자주 발생하거나 한다면 손해가 막심할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왜, 자신들 없으십니까?”

“아, 아닙니다!”

“걱정된다면, 마지막까지 확실하게 점검하세요. 불량 제품이 나오지 않게 생산 과정도 다시 점검하시고.”

“알겠습니다.”

“그럼 모두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혜성 전자 임원들과의 대화가 끝나자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슬슬 탱크 박사를 모셔와야겠어. 원 역사에서 탱크주의 마케팅을 처음 기획했던 바로 그 마케팅 전문가를 말이야.’

지금도 마케팅을 신경 쓰고는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브랜드 광고와 제품 광고는 더더욱 중요해질 터.

그렇기에 마케팅 부서의 규모를 키우고 유능한 전문가를 초빙할 필요가 있을 거 같았다.

* * *

신동훈은 28살의 가장이었다.

본래 월세 집에서 살다가 최근에 아내가 임신하여, 부모님의 지원을 받고 새로 집을 구하고 있었다.

“오늘 본 집 정말 괜찮지 않았어?”

TV를 보는 아내에게 신동훈이 묻자, 아내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넓기도 하고 깨끗해서 보기 좋더라. 베란다도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혜성 아파트라서 그런지 더 믿음이 가고 좋은 거 같아.”

“맞아. 대기업이 괜히 대기업이 아니야. 다른 것도 잘 만드는데, 특히나 집을 끝내주게 잘 만들어.”

며칠 동안 발품 해서 집을 찾아보니, 혜성 아파트가 가장 좋아 보였다.

그가 지금껏 본 매물 중에 비싼 편이긴 해도, 외관이 깔끔하면서 평수도 넓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특히나 엘리베이터가 잘 갖추어져 있어서 임신한 아내가 편히 오갈 수 있을 거 같았다.

“근데 집이 너무 넓어서 우리 둘만 살면 좀 휑할 거 같기도 해.”

“뭐 어때. 아이 낳으면 세 식구가 살 건데. 그때는 그리 넓은 것도 아니야.”

신동훈은 아내의 배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아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확실히 집이 휑할 거 같기는 하네. 지금 집에서 가져갈 것도 별로 없으니 말이야.’

짐이라도 많으면 모를까, 짐이 그리 많지가 않았다.

요즘은 하나둘 사기 시작하는 세탁기도 아직 사지 못했을 정도였다.

‘가전제품이 고민이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아내가 임신했으니 세탁기를 사기는 해야 할 거 같은데…….’

부모님에게 빌리고 은행에 빌리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현금까지 탈탈 털어야지만 혜성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현금을 써버리니, 가전제품을 살 돈이 없어서 문제였다.

그렇다고 임신한 아내에게 손빨래를 시키는 것도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이었고 말이다.

-탱크처럼 견고하게, 탱크처럼 튼튼하게! 가장 튼튼하면서 저렴한 세탁기, 통돌이를 구입하세요.

그때였다.

마치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TV에서 세탁기 광고가 나왔다.

“통돌이? 저건 어디 거야?”

“혜성 전자에서 이번에 새로 출시한 제품일걸?”

“혜성 전자? 거기서 세탁기도 만들어?”

아내의 말에 신동훈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최근 들어 혜성 그룹이 호텔이나 백화점 같은 사업을 시작했다는 소린 들었지만, 그가 생각하는 혜성 그룹은 기본적으로 건설 회사였다.

그런데 갑자기 세탁기라니?

“몰랐어? 혜성에서 요즘 안 만드는 게 없잖아. 자동차도 만들고, 컴퓨터도 만들고.”

“그래?”

“근데 저 세탁기 진짜 괜찮아 보인다.”

“어떤 점이 괜찮아 보여? 내가 봤을 때는 그냥 투박하게만 보이는데.”

“투박하니까 더 믿음이 가지 않아? 저기 쓰여 있는 내용도 딱 탱크처럼 단단하다고 쓰여 있잖아.”

“그런가?”

“가전제품은 비싸기도 비싸지만 잘 고장 나서 문제인데, 저건 왠지 잘 안 고장 날 것처럼 생겼어.”

아내의 말을 들은 신동훈도 광고를 집중해서 보았다.

‘확실히, 튼튼해 보이기는 하네.’

생각해 보면 세탁기의 외관이 크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그저 고장 안 나고, 세탁만 잘 되면 되는 것이었다.

“가격이 39만 원이라.”

심지어 가격도 굉장히 저렴한 편이었다.

일성이나 은성의 세탁기는 아무리 못해도 50만 원은 줘야 했다.

그런데 무려 10만 원 이상 저렴하다는 게 신동훈으로서는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월급을 합하면 40만 원은 어떻게든 모을 수 있을 거 같기는 한데…….’

문제는 통돌이가 혜성 전자에서 생산한 첫 세탁기라는 점이었다.

과연 혜성 전자의 제품을 신용할 수 있을까?

‘역시, 값비싼 가전제품은 은성 전자의 것을 사는 게 낫지 않을까?’

통돌이보다 비싸다는 게 흠이지만, 조금 더 돈을 쓰고 안전한 제품을 사는 게 나을 거 같았다.

괜히 통돌이를 샀다가 광고와 다르게 고장이라도 난다면 거금을 날리는 셈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때, 신동훈은 한 문구를 보고서 눈을 부릅떴다.

-1년 이내에 고장 날 경우, 100% 환불 보장!

‘고장이 나면 환불을 해준다고?’

실로 믿기 어려운 내용이 아닐 수 없었다.

잔고장이 많은 가전제품을 무려 1년이나 환불을 보장해 준다니.

“와. 얼마나 자신이 있으면, 1년이나 환불을 보장하는 걸까?”

마침 그의 아내도 같은 문구를 봤는지 감탄사를 내뱉었다.

신동훈은 그런 아내의 반응에 마침내 결심을 내렸다.

“우리 저거 살까?”

“응? 세탁기를 사자고?”

“다른 집들도 다 세탁기 있는데 우리만 없으면 손님 초대하기 민망하잖아.”

“그렇긴 한데, 현금 얼마 안 남았잖아.”

“통돌이는 싸잖아. 40이 조금 안 되니까, 그 정도는 모을 수 있을 거야.”

그의 말에 아내가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내색은 안 했어도 세탁기를 가지고 싶었던 모양이다.

* * *

혜성 전자가 통돌이라는 이름의 세탁기를 출시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일성 전자 임원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였다.

“호텔에, 술에, 자동차에 이제는 세탁기까지? 아주 욕심이 지나쳐 보이는군.”

“가전제품을 우습게 본 거지. 가전이란 게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닌데 말이야.”

“고창모, 그 배신자 놈을 스카우트했으니까, 그거 하나 믿고 저러는 거 아니겠어?”

“풉! 겨우 연구원 몇 놈 스카우트했다고 되겠나?”

“그러니 하는 말이야. 이한성, 그자가 젊어서 그런지 아주 생각이 짧아.”

“통돌이란 거, 외양도 우습기 그지없더군. 그렇게 멋없고 투박한 것을 소비자들이 좋아할 거로 생각하는 것인지, 참나.”

“기술이 딸리니까, 탱크주의니 뭐니 일부로 투박하게 만든 척하는 게 아니겠어?”

“아무래도 그게 정답인 거 같은데?”

일성 전자의 임원들은 혜성 전자가 세탁기 사업에 진출하자, 비웃거나 무시하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안 그래도 연구원을 스카우트해간 일로 혜성 전자를 좋게 볼 수가 없는 일성 전자의 임원들이었다.

그런데 일성 전자의 연구원을 빼가고 1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세탁기를 출시했다고 하니, 반응이 좋을 수가 없었다.

“방심하지 마세요. 혜성 그룹의 이 회장은 결코 방심해서 좋을 인물이 아닙니다.”

이호승이 일성 전자 임원들에게 따끔한 한마디를 하였다.

그는 이전부터 한성을 높이 평가하던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당연히 혜성 전자가 가전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일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호승이 혜성 전자가 출시한 통돌이가 큰 성공을 거둘 거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통돌이인지 뭔지 그거는 아마 실패하겠지. 하지만 이번의 실패로 이한성 그자는 큰 경험을 얻게 될 거야.’

그 역시 통돌이의 실패를 예견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가전제품이란 기본적으로 가격이 비싼 편이었다.

그리고 가격이 비싸다 보니 소비자들은 신중하게 제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건설사로 알려진 혜성 그룹에서 세탁기를 출시했다?

혜성 전자에서 아무리 1년간 환불을 보장해 준다 해도,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검증이 안 된 혜성 전자의 제품을 구입할 리가 없었다.

‘혜성 전자가 쫓아올 기회도 주지 않고 빠르게 앞질러 가야겠어. 이참에 은성 전자도 추월하고 말이야.’

이호승은 가전에서만큼은 한성을 확실하게 눌러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반도체처럼 아슬아슬한 경쟁을 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호승의 생각도 잠시뿐이었다.

4월이 되고 5월이 되자, 혜성 전자의 통돌이가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하루에 수십 대씩 팔려나가며, 순식간에 월 매출 10억을 돌파하였다.

“이게 무슨?”

이호승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기능도 별로 없고, 제대로 검증도 안 된 통돌이가 히트를 치다니.

심지어 통돌이는 ‘혼수에 꼭 필요한 신혼 가전제품 1위’라는 듣도 보도 못한 리스트에 오르기까지 했다.

“부회장님, 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

“……!”

이호승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의 부친이 그를 부를 이유야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성 회장인 이병건이 통돌이가 히트한 일을 두고 크게 혼을 냈다.

왜 통돌이의 돌풍을 막지 못했냐는 식의 훈계였다.

‘제기랄. 혜성 그룹 때문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군.’

혜성 그룹, 아니 한성과 관련되면 좋은 일이 없는 거 같았다.

* * *

이명승 사장이 감탄하는 얼굴로 말했다.

“통돌이라고 했던가요? 요즘 그 세탁기가 엄청난 인기를 끈다고 들었는데, 이 회장은 정말 대단하시군요. 모두가 무모한 선택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성공시키다니.”

“운이 좋았습니다.”

나는 겸손하게 대꾸했지만 내심 뿌듯하였다.

통돌이의 인기는 확실히 대단했고, 특히나 신혼부부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현재 세탁기가 없는 가구의 수가 50% 정도 된다고 하니, 앞으로의 매출도 기대할 수 있을 거 같았다.

“하하, 그 운이 정말 부러워요. 저도 그런 운이 있었으면 사업에 성과를 낼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이명승 사장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부러우시면, 이명승 사장님께서도 본격적으로 나서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본격적으로요?”

“예. 일성 회장님의 연세도 연세시니, 슬슬 일성의 후계자가 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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