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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83화 (83/300)

83화 죄다 죽상이네

이호승과 만났을 때와 달리, 이명승과의 대화는 화기애애하였다.

원체 나에게 호의적으로 대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이한성 부회장은 앞을 내다보는 혜안이 남다른 거 같아요. 그런 혜안이 있어서, 혜성 그룹이 급성장을 할 수 있는 거겠죠?”

“아닙니다. 운이 좋았던 거뿐입니다.”

“운이든, 실력이든, 조언해 줘서 감사해요. 이한성 부회장 말고는 아무도 저에게 그런 말을 해준 적이 없어요.”

아쉽게도 자리가 자리인 만큼 긴밀한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다.

하지만 조언 몇 마디는 할 수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이명승은 만족한 기색이었다.

앞으로의 경제 흐름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던 것이다.

“어디까지나 제 예상일뿐이니, 100% 신뢰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 99%만 신뢰하겠습니다. 하하.”

그렇게 이명승과의 대화가 끝나자, 유지은이 말을 걸었다.

“고모부가 저렇게 웃으시는 적은 처음인 거 같아요.”

“원래도 온화한 분이라고 알고 있는데, 아닌가요?”

“온화하기는 한데, 평소엔 굉장히 차분하고 과묵하세요.”

“그렇군요.”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노사도 이명승을 보고 성격이 변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기는 했다.

원 역사의 이명승은 후계 경쟁이나 사업에 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나?

‘가능성이 생겨서 그제야 야망을 품게 된 경우일 수도 있겠군.’

어쩌면 나라는 존재가 그의 성격에 변화를 준 게 아닐까 싶었다.

물론, 성격이 바뀐 이유야 뭐가 됐건 나로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저분들, 계속 한성 씨만 바라보고 있네요.”

“아, 혜성 그룹 임원들입니다. 같이 가서 인사 나눌까요?”

“좋아요.”

그 뒤로 식장을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과 인사를 나눴다.

‘혜성 그룹 임원들이 도대체 몇 명이나 참석한 거야? 30명은 넘어 보이네.’

종태 형이 이렇게 인기가 많았나 싶었다.

뭐, 종태 형보다는 나를 보려고 찾아온 거겠지만 말이다.

* * *

8월이 되자, 혜성 그룹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특히나 재계에서 혜성 그룹을 거론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곧 회장이 바뀔 거라는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이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군. 이한철 회장의 나이가 몇인데 벌써 아들에게 회장직을 물려줘?”

“그러게. 내가 그 양반에 대해 좀 아는데, 사업욕이 장난 아니야. 아마 70대, 80대가 되어서도 회장 자리를 지키려 할걸?”

“부회장 쪽에서 일부로 그런 소문을 낸 게 아닐까?”

“그거 그럴듯한데? 혜성 그룹 내부에서, 부자간의 권력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어.”

사람들은 처음엔 소문을 믿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한철 회장은 아직 현역으로 뛰어도 충분한 나이였다.

60대 초반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겨우 60대의 나이에 그룹 총수라는 막강한 권력을 포기한다는 것이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8월 13일.

소문은 사실로 드러났다.

이한철 회장이 공식적으로 본인의 아들이자 그룹 부회장인 한성에게 회장직을 물려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건강이 안 좋다는 이야긴 들었어도 그 정도로 안 좋았던 건가?”

“허어. 혜성 그룹도 갈 데까지 갔군. 이제 겨우 28살밖에 안 된 애송이가 그룹을 총괄하게 되다니.”

“혜성 건설의 주식을 팔아야 하나?”

회장이 바뀐다는 게 확정 나자 대부분의 사람은 우려를 표하였다.

비록 엄청난 성과를 보여줬다고는 하나, 한성의 나이는 고작 20대 후반에 불과했다.

1979년, 순식간에 도산했던 율성 그룹이라는 사례가 있는 만큼, 사람들은 우려할 수밖에 없었다.

율성 그룹 또한 회장의 나이가 한성과 같은 28살이었으니 말이다.

“이한성, 그자가 회장이 되었으니 앞으로 혜성 그룹의 성장세는 더 가속화되겠어.”

“한 방 먹었군. 후계 작업을 방해하려고 했더니……. 이래서야 혜성을 견제할 수가 없게 됐잖아?”

일반 사람들이 한성의 나이를 보고 혜성 그룹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전망할 때, 재벌 그룹의 총수들은 다른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이미 한성의 능력과 자본력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평가한 한성이란 인물은 회장이었던 이한철보다 훨씬 위협적이었다.

추진력도 엄청났고, 자금 확보 능력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어린 나이치고 리더십도 좋아서 그룹의 고위 임원들조차도 이미 한성에게 굴복한 지 오래였다.

재벌 그룹의 총수들로선 이런 한성의 능력이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 * *

“혜성 그룹은 언제나 예상을 벗어나는군. 지분을 넘길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전격적으로 회장직을 넘길 줄이야.”

일성 그룹 회장 이병건은 감탄하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뒤에 시립 해있는 이호승에게 말했다.

“너로서는 곤란하게 되었구나.”

“혜성 그룹의 회장이 바뀐 일로 제가 곤란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이한성, 그자가 지은이와 결혼한다고 하지 않느냐.”

그 말에 이호승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한성을 이명승에게 뺏긴 일은 그로서도 후회스러우면서 치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빨리 회장이 될 줄 알았다면 더 많은 것을 제시했을 텐데…….’

하지만 지금에 와서 후회해봐야 아무 소용없는 일.

이호승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기색으로 말했다.

“지은이도 우리 일성 그룹의 일원입니다. 이한성을 다른 그룹에 뺏기지 않았으니 저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따름입니다.”

“핑계 하나는 좋구나.”

“…….”

“솔직히 말해서 이번 일로 너에게 실망이 크다. 이한성의 가치를 일찍부터 알려줬는데도 명승이에게 뺏기다니 말이야.”

실제로 이병건은 작년 스티브 잡스를 만난 이후부터 이호승에게 한성의 가치를 피력하였었다.

개인 자산이나, 잠재력 등을 거론하며 꼭 포섭해야 할 인물이라고 설명해 주었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됐다. 나야 네 말처럼, 다른 그룹에 뺏기지 않았으니 상관은 없다.”

“저 역시 상관없습니다. 설령 이한성이 큰형님 쪽에 붙는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생기겠습니까?”

그 말에 이병건은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명승이가 요즘 들어 정력적으로 바뀐 거 같지 않으냐? 신사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말이야.”

이호승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라고 이명승의 변화를 모르지 않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명승은 은둔자처럼 세상의 시선을 피하며 그룹 내부에서도 있는 듯, 없는 듯 지냈었다.

후계자 자리를 박탈당한 뒤로부터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렇게 지내왔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바뀌었단 말이지.’

계속 조용히 지냈으면 좋았을 것을, 얼마 전부터 왕성한 활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룹 임원들과 밀회를 가지는 동시에 신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등, 기존과는 사뭇 다르게 활동하고 있었다.

“너는 명승이가 바뀐 이유에 대해서 뭘 거 같으냐?”

“큰형님이 이한성 때문에 바뀌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렇다. 내가 조사해 보니, 명승이는 이한성 그자에게서 무언가 조언을 받았다더구나.”

겨우 조언 몇 마디로 10년 넘게 변하지 않던 이명승이 갑자기 변했다니.

이호승으로선 선뜻 믿기 어려운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튼 이한성 그자를 너무 무시하지 마라. 만약 명승이가 이한성, 그자의 덕으로 사세를 확장하는데 크게 기여한다면 나는 후계자를 다시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

후계자를 다시 고민해볼 수도 있다는 이병건의 발언에 이호승은 눈을 부릅떴다.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 올랐는데……. 혜성의 떨거지 하나 때문에 이 자리를 잃게 될 수도 있다고?’

그저 경각심을 주기 위해 하는 말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큰형인 이명승도 한때는 그룹 부회장으로 후계자 자리까지 올랐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가볍게 여길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이 자리는 그 누구도 가져갈 수 없다. 절대로……!’

* * *

혜성 그룹의 회장에 취임한 지 나흘이 지났다.

내 적응력이 확실히 빠른 편이긴 한지, 회장 명함이 벌써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나저나 우리 그룹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군.’

어느 신문이든 한 번씩은 혜성 그룹에 관해 보도하고 있었다.

재계 8위의 혜성 그룹 회장이 바뀌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보도 내용이 썩 유쾌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1979년에 몰락한 율성 그룹을 운운하며 혜성 그룹의 장래도 어둡다는 식으로 보도를 하고 있었다.

“비서실장님. 오늘 자 신문을 읽어 보셨습니까?”

“예. 안 그래도 각 언론사에 전화를 돌려 시정을 요청했습니다.”

진봉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경력이 경력이다 보니, 말하지 않아도 기본적인 것을 알아서 잘하는 거 같았다.

내 비서들은 그런 센스가 조금 부족한 편인데 말이다.

“그룹 안팎으로 저에 대한 우려가 큰 거 같은데, 임직원들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직원들은 회장님이 부회장에 취임했을 때부터 절대적인 신뢰를 구축하였기에, 우려의 분위기는 전혀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그렇습니까?”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신문에서야 우리 그룹이 곧 흔들릴 거라는 식으로 보도했지만, 그건 언론의 호들갑에 지나지 않았다.

‘애초에 무리하게 차입 경영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율성 그룹 회장과 나를 비교하는 것부터가 웃긴 일이지.’

시멘트의 수출이 막히자 순식간에 그룹 전체가 무너졌던 율성 그룹이었다.

부채만 천억이 넘을 정도.

반면 나는 거의 무차입 경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빚이 적었다.

인수한 회사에서 차입금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빚 없이 사업을 일구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임원들은요?”

“임원들의 경우는 조금 다른 의미로 우려를 표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진봉현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직원들보다 더 나를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 그룹 임원들이었다.

처음엔 뻣뻣하기 그지없던 혜성 건설의 임원들조차 이제는 나를 인정할 정도였다.

“뭐 때문에 우려를 표한답니까?”

“회장님의 성격상, 그룹의 체질 전환을 위한 ‘파격 인사’를 단행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파격 인사라. 임원들이라 그런지 눈치 하나는 빠르군요.”

나는 피식 웃었다.

임원들도 이제는 내가 어떻게 움직일지 어느 정도는 예상하는 거 같았다.

하기야, 지금까지 보여준 행보가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임원을 어느 정도나 교체하실 계획입니까?”

“일단 사장급은, 최소 두 명 이상 교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진봉현은 우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계열사 사장이라면 사실상 이한철 명예회장의 가신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나는 바로 그 가신을 교체한다고 선언한 셈이니 진봉현으로선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꼭 지금 당장 교체하겠다는 뜻은 아니었으니까.”

급하게 행동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회장이 된 이상, 시간은 나의 편이었다.

임원들은 3~6개월 정도의 시간을 두고서 천천히 교체하는 게 좋을 거 같았다.

나는 회장이 되고 처음으로 사장단 회의를 소집하였다.

중장기 사업전략을 발표케 해서 옥석을 가리기 위함이었다.

(사장들 얼굴이 하나같이 죽상이구나. 네 얼굴을 보는 게 마누라 보는 것보다 싫은 모양이다.)

노사의 말을 듣고 사장들의 얼굴을 보니, 정말로 불쌍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내가 무슨 공포의 존재가 된 거 같은 기분이군.’

예전에 갓 부회장에 취임했을 때, 혜성 유통의 임원들을 숙청한 적이 있었다.

아마 그 일 때문에 저리들 겁을 먹은 게 아닌가 싶었다.

‘뭐, 그래도 나쁘진 않네. 나를 무시하는 것보단 나를 두려워하는 게 훨씬 나으니 말이야.’

저들의 모습만 봐도 언론에서 우려하는 상황은 절대 일어날 리가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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