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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79화 (79/300)

79화 빅 5도 시간문제야

혜성 그룹의 자금 조달 능력은 이해 불가 수준이었다.

물론 한성의 개인 자산이 천문학적이라는 소문은 그 역시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주식으로 몇백억을 벌어, 주식 시장에서는 큰손 중의 큰손이라 불리고 있다는 소문도 들어봤다.

하지만 그래 봤자 일개 개인일 뿐이었다.

소문처럼 수백억의 현금을 손에 쥐고 있다 해도, 2, 3백억 정도에 불과할 터.

그런데 지금 혜성 그룹이 보여주는 현금 동원력은 수백억 수준이 아니라 천억 이상은 되어 보였다.

이호승으로선 혜성 그룹의 자금이 어디서 나오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이한성을 찾아가 봐야겠어.’

혜성 그룹의 회장인 이한철에게는 몇 번 찾아간 적이 있었다.

꽤 긍정적인 이야기가 오가긴 했지만, 이한철 회장은 확답을 주지 않았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한성과의 혼사가 성사될 거로 생각했었다.

일성의 차기 회장과 혈연으로 이어지는 것을 거부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몇 달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이야기에 진전이 없는 것을 보니, 혜성 그룹에서 정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이한성이 만에 하나 우리가 아닌 다른 재벌 그룹을 선택한다면…… 아니, 차라리 그건 다행이야.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한성이 큰형님의 처조카와 혼인할 수도 있다는 거지.’

그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장남인 이명승에게 혜성의 풍부한 자금을 안겨 줬다간 골치 아픈 수준으로 안 끝날 수도 있었다.

* * *

나는 창원으로 향했다.

창원에 고림 자동차 본사가 있기 때문이었다.

“직원 수가 5천 명이라고요?”

“예, 정확히는 5,325명입니다.”

중년 사내가 양손을 공손히 모은 채 정자세로 보고하였다.

이륜 사업을 담당하는 고창식 전무였다.

“정우의 절반 정도 되는군요.”

“예, 직원 수로만 따지면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입니다.”

“적자가 백억이나 되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송구합니다.”

“올해 상반기도 적자가 54억이나 나왔다고 했죠?”

“그 올해는, 생산 시설과 직원을 늘리느라…….”

“알겠습니다. 경영수지가 좋지 않다는 건 예상했으니 그리 기죽어 계실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니 고창식의 표정이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 이어지는 질문에 고창식은 우물쭈물하며 말을 못 했다.

“지금 직원들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그가 대답이 없자, 나는 추궁하듯 다시 물었다.

“왜 대답을 안 하십니까? 혜성 그룹에 인수된 것을 직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직원들이 조금 불안해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고용 승계 때문에 걱정하고 있나 보군요.”

“예, 고림 그룹에서 따로 말을 안 해 줘서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는지를 크게 걱정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니 대부분의 기업은 인수 합병할 때, 따로 계약 조건이 없더라도 구조조정은 되도록 자제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합병당한 회사의 종업원들이 안심해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대놓고 한 번에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지는 못하더라도 월급을 줄이거나 좌천시키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임원들도 마찬가지겠죠?”

“그, 그렇습니다.”

“일단 직원들에게 말하세요. 구조조정은 절대 없을 거라고.”

규모를 늘리면 늘렸지, 줄일 시점은 아니었다.

물론 직원들의 경우만 그렇고 임원들의 미래는 나도 아직 몰랐다.

능력이 있으면 살려 주고, 무능하거나 심한 비리를 저질렀을 경우 단호하게 해고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고창식 이 사람은 썩 믿음이 안 간단 말이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데, 잔존한 임원 중 가장 직급이 높은 고창식은 첫인상부터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다른 임원들도 비슷할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리고 밀린 월급도 이번 달 안에 전부 줄 거라는 이야기도 전하세요. 앞으로 월급도 계속 늘어날 거란 이야기도 말입니다.”

“월급을 늘린단 말씀입니까? 하지만 지금도 적자가 백억이나 나는데…….”

“10위권 한참 밖에서 노는 고림 그룹과 달리 우리 혜성 그룹은 재계 8위의 대기업입니다. 생산직 직원이라고 해도 혜성의 직원인데 월 15만 원도 못 받는 게 말이 됩니까?”

“하, 하, 하. 맞습니다.”

“생산직 직원들에게 잘 설명해서 앞으로 시위 같은 건 발생하지 않게 하세요. 알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미덥지 않은 그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린 나는 그 뒤로도 이것저것 질문하였다.

연간 생산 능력과 매출, 그리고 고림 자동차가 자랑하는 이륜 사업 관련해서도 많이 물어보았다.

확실히 고림 그룹에서 상당한 투자를 한 회사라서 그런지 규모 하나는 큰 거 같았다.

한 해 생산되는 각종 차량의 수만 10만 대를 넘을 정도였다.

매출도 천억이 넘었고 말이다.

‘동화 자동차를 인수 합병한다면 직원 수도 거의 정우 자동차에 근접해지겠군.’

동화 자동차의 종업원 수는 대략 2천5백 명.

두 회사를 합치면 대략 8천 명이니 정우의 1만 명에 거의 근접한 셈이었다.

물론 종업원 수만 비슷할 뿐이었다.

매출이나 인지도 면에서는 비교가 안 됐다.

‘소형 승용차도 진출해야 하는데, 그건 산업합리화 조치가 끝나야지만 가능하겠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다시금 점검하였다.

그러다가 시계를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오후 4시가 넘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다음에는 제가 서울로 부를 테니 고 전무가 직접 올라오시면 될 거 같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저…….”

“뭡니까? 눈치 보지 마시고 말씀하세요.”

“그, 지금 남아 있는 임원들은 어떻게 되는지…….”

“임원들을 몇 명이나 교체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일단 현재 업무에 집중하시고 차후에 결정을 통보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고창식이 축 늘어진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에 속으로 혀를 찼다.

‘역시 혜성 자동차의 대표는 무조건 외부에서 데려오는 수밖에 없겠어.’

고림 자동차 안에서 인재가 있다면, 설령 고림의 사람이었다고 해도 대표로 임명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가장 직급이 높은 고창식이 이런 모습을 보여주니, 아무래도 외부의 인사를 영입해야 할 거 같았다.

“와아아아!”

“만세! 혜성 그룹 만세!”

슬슬 서울로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바깥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직원들이 왜 소란을 피우는 겁니까?”

“밀린 월급을 이번 달 안에 준다고 하니, 저렇게들 좋아하는 거 같습니다.”

“그렇군요.”

나는 피식 웃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기뻐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우리 그룹에서는 월급이 밀릴 일은 없을 겁니다.’

고림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마리라.

하여 나중에는 혜성 그룹에 인수 합병된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게끔 만들 것이다.

* * *

“대단하십니다. 고림 자동차를 인수하시다니. 소식을 듣고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하 회장님과의 약속이지 않습니까?”

“허허.”

하운철 회장은 내 말에 허허롭게 웃고 말았다.

“회장님께서는 혜성 자동차의 미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벌써 회사명을 바꾸신 거예요?”

“이제 곧 바꿀 예정입니다.”

“흠, 고림 자동차를 인수하는 데 성공하셨으니, 당연히 장래도 밝지 않겠어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추궁하듯 묻자 하운철 회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요. 이한성 부회장이 패기도 대단하고, 시원시원한 추진력을 가지고 있으니, 자동차 사업도 성공할 수 있을 거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허허.”

“고림 자동차의 규모는 기화나 정우, 미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하 회장님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규모가 영세하면 경쟁력 유지에 한계가 있죠.”

“이한성 부회장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군요.”

“하 회장님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인수 이야기인가요?”

“예!”

“흠…….”

“혜성 자동차가 성공하기 위해선 동화 자동차가 꼭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동화 자동차가 살아남기 위해서 혜성 자동차가 필요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 회장님! 부디 현명한 결정을 내려 주시길 바랍니다.”

하운철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흔쾌히 말했다.

“좋아요. 어차피 약속했던 일이니, 저도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수 조건은 최대한 맞춰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하운철 회장에게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약속했든 안 했든 간에 정우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선뜻 내 요구에 응해 줬으니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허허, 기존에 제시했던 조건만 지켜줘도 저는 만족이에요. 그나저나 두 회사가 합병하면 다른 회사들도 위기감을 느끼겠군요.”

“국내 자동차 업계의 판도는 4강 체제로 바뀔 겁니다.”

“4강이라, 그거 참 듣기 좋은 말이군요. 동화 자동차가 4강의 일원이 된다니.”

“저는 4강으로도 만족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세계를 노리려면 적어도 한국에선 1위를 찍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허.”

내 말에 하운철 회장은 기분 좋게 웃었다.

자신이 세운 회사가 한국에서 1위를 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은 듯하였다.

물론 온전히 그의 회사라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사실 두 회사를 합병시키는 것만으로 한국에서 1위를 하는 건 힘들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어요. 허허.”

“그래서 하는 말인데, 하운철 회장님께서 혜성 그룹의 자동차 사업을 진두지휘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운철 회장님의 경험과 노하우, 지식이 있으면 괄목적인 성과를 보일 수 있을 겁니다.”

공석인 혜성 자동차의 대표 자리에 앉힐 인재로 나는 하운철 회장을 점찍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하운철 회장은 자동차 사업에 반평생을 몸담아, 조그만 부품 공장을 수백억 매출의 자동차 회사로 발전시킨 인물이었다.

물론 규모의 영세성과 자금난으로 사업을 포기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규모와 자금력으로 지금까지 버텼다는 게 놀라운 일이었다.

“허허, 나보고 혜성 자동차의 대표가 되라는 말인가요?”

“제 제안이 거북하게 들리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어디까지나 회장님의 능력을 높이 사서 하는 제안입니다.”

“거북하다니, 오히려 기껍지요. 퇴물에 불과한 저를 무려 대표로 임명해 준다는데.”

“그러면 제 제안에 응해 주시겠습니까?”

“원래 저는 고향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이런 제안을 해주시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군요.”

“회장님은 아직 젊으신데 고향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부디, 혜성 자동차를 책임져 주십시오.”

내 간절한 부탁에 하운철 회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이한성 부회장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 거절할 수가 없겠군요.”

“감사합니다!”

나는 쾌재를 불렀다.

동화 자동차를 인수한 데 이어 인재까지 영입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었다.

* * *

<혜성, 동화 자동차 인수!>

<자동차 산업에 새 강자 등장.>

혜성의 이한성 부회장과 동화자동차의 하운철 회장은 24일 주식 매매에 원칙적인 합의를 보았다.

이어 26일, 명의 변경에 관한 계약을 정식 체결하였다.

이로써 국내 자동차 업계의 판도는 미래, 정우, 기화, 혜성 등 대기업 그룹이 영토를 분할 하는 4강 체제로 돌입하게 됐다.

또다시 언론이 떠들썩하였다.

고림 자동차를 인수한 데 이어 같은 달, 동화 자동차까지 인수했으니 당연한 반응이라고 볼 수 있었다.

‘빅 5라 불릴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

얼마 전에 안기부의 한진영 차장이 농담 삼아 곧 빅 5가 되는 거 아니냐고 말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겸손하게 그럴 리 있겠냐고 대답했었는데, 지금 물어보면 다르게 답변할 거 같았다.

‘곧’까지는 아니어도 몇 년 안에는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거 같다고 말이다.

“몇 년이라고 해 봤자 2년? 내년부터 경제가 급성장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2년이 채 안 걸릴 수도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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