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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78화 (78/300)

78화 돈이야 많을수록 좋지

한성이 먼저 자리를 떠나자, 홀로 남아 술잔을 비우던 하운철 회장은 헛웃음을 지었다.

“허허. 고림 자동차를 인수한다니.”

젊어서 그런 것일까?

패기 하나는 굉장한 거 같았다.

하지만 패기는 패기일 뿐, 현실은 지독하리만치 냉정하였다.

고림 자동차는 고림 그룹의 회장이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계열사였다.

적자도 상당하고 이런저런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자동차 산업을 차기 먹거리 산업으로 생각하고 있는 만큼 고림 그룹에서 고림 자동차를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했다.

‘한 달. 딱 한 달만 기다리고 더 제시할 것이 없으면 그때는 정우 그룹의 제안에 응하는 수밖에 없겠어.’

솔직히 말하면 그의 입장에서 한 달도 많이 기다려주는 것이었다.

정우 그룹이 언제 갑자기 인수 제안을 철회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한 달을 기다리는 것은 그가 그만큼 한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성의 앞에서는 크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는 한성의 활약을 인상 깊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한성은 20대 중반의 나이에 혜성 그룹에 입사해서는 불과 2년 만에 재계의 유명 인사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혜성 그룹의 매출은 천억 이상 상승하였다.

심지어 앞으로는 그보다 훨씬 매출이 늘어날 것을 기대하는 상황이었으니, 하운철 회장으로선 한성을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렇다 할지라도 고림 자동차를 인수하는 건 불가능하겠지.”

마찬가지로 자동차 회사를 운영하는 것도 불가능하였다.

다른 산업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해도 자동차 산업은 궤를 달리하는 산업이었다.

능력이 아무리 출중하다 해도 자동차 산업에서까지 승승장구할 수는 없을 터였다.

하운철 회장이 그런 생각을 하며 한성에 대한 기대를 접을 때였다.

한성과의 만남이 있고 일주일이 지나, 그의 귀로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고림 자동차 생사기로.>

<민성준 회장, 자금난에 눈물을 머금고 자동차 사업 포기!>

<혜성 그룹, 고림 자동차를 인수하나?>

실로 충격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민성준 회장이 자동차 산업을 포기한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동화 자동차 회장으로서 민성준과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하운철 회장이 알고 있는 민성준은 자동차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가진 사람이었다.

언론에서처럼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자동차 회사를 포기할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허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군.”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성이 정말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고림 자동차를 인수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 역시 기꺼운 마음으로 한성에게 동화 자동차를 넘겨줄 생각이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고림 자동차 인수에 성공했다면 자동차 산업에서도 승승장구하여 동화 자동차의 이름을 알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 * *

6월 18일.

나는 수화기를 든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림 그룹에서 이렇게 성의를 보였으니, 과거의 악연은 이제 그만 잊겠습니다.”

내 말에 수화기 너머의 민성준 회장은 잠깐 아무 대답이 없었다.

아마 굴욕감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수화기를 통해 민성준 회장의 처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절대 허튼수작을 부리지 않겠습니다.

“허튼수작 부리셔도 상관없습니다. 이번처럼 또 응징해 주면 되니까.

-…….

“아무튼, 잔금은 계약서에 적힌 대로 천천히 주도록 하겠습니다. 3년에 걸쳐서 말입니다.”

-……예.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뚝.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마침내 복수에 성공하여, 민성준 회장에게서 고림 자동차를 뜯어낸 지금의 상황이 너무도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조금 비싸긴 해도, 프리미엄을 따로 주지 않고 인수 대금도 3년에 걸쳐 분할 납부하기로 했으니 최고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겠지.’

고림 자동차를 뜯어냈다고 해서 공짜로 인수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하지만 저렴하게 인수한 것은 사실이었다.

본래 고림 자동차의 증권시장 거래가격은 1주당 900원 정도였다.

그런데 나는 1주당 750원으로 계산하여 민성준 회장의 소유 주식 지분인 39.6%를 165억에 인수하였다.

보통 이 정도 인수가라면 창업공로를 고려하여 50억 정도의 프리미엄을 얹혀주는 게 업계의 관행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나는 70억 이상 절약한 셈이었다.

심지어 3년에 걸쳐 분할 납부하기로 했으니, 인수 조건으로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끌끌! 기어코 고림 자동차를 인수했군. 축하하네.

“이게 다 황 회장님 덕분입니다. 황 회장님이 제 회사 지분을 인수해 주지 않았다면 제가 인수 자금을 어떻게 마련했겠습니까?”

-자네가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나야 고맙고.

“그런데 황 회장님은 이번에 재미를 좀 보셨습니까?”

-550만 주 정도 매입했는데, 벌써 지분 가치가 20억 넘게 올랐네. 자네가 동화 자동차까지 인수한다면 아마 더 오르겠지. 끌끌!

나는 이래 봬도 보수적인 사업가라, 경영권 지분이 50% 이상 되어야 안심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고림 자동차를 인수할 때도 혜성 그룹 계열사를 동원하여 고림 자동차의 주식을 매입하였다.

한 달 동안 내가 확보한 고림 자동차의 지분은 55%였다.

민성준 회장에게서 39%, 주식거래 시장에서 매입한 지분이 16%였던 것이다.

물론 나는 이 정도로도 만족하지 못해서 황 노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러자 황 노인도 수십억을 들여 고림 자동차의 주식을 매입했고, 거의 10%에 가까운 지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로써 우호 자본까지 포함하면 내가 확보한 지분은 65%가 되었다.

‘경영권이 뺏길 일은 절대 없겠군.’

내가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할 때, 황 노인이 말했다.

-혹시 돈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 말하게. 자네라면 3백억 정도는 아무런 담보 없이 빌려줄 테니.

황 노인의 말에 나는 반색했다.

지금 당장에야 돈이 크게 필요하지는 않았다.

고림 자동차의 인수 금액으로 많이 쓰기는 했지만, 지금 당장 나가는 돈은 40억 정도에 불과하였다.

혜성 호텔이나 혜성 백화점의 건설비도 대략 그 정도였다.

건설사가 같은 혜성 그룹이니만큼, 민성준 회장과 마찬가지로 3년에 걸쳐 분할 납부하기로 한 것이다.

그 덕에 내가 가진 현금 자산은 여전히 천억에 가까웠다.

‘하지만 돈이야 많을수록 좋은 법이지.’

반도체도 그렇고 자동차도 그렇고 앞으로 돈 쓸 일이 많을 터.

황 노인에게 담보 없이 3백억을 빌릴 수 있다면 앞으로 더 여유를 가져도 될 거 같았다.

“회장님께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끌끌. 나는 어디까지나 받은 것만큼 주는 것일 뿐이네. 그러니 너무 고마워하지는 말게.

“다음에 회장님에게 도움을 줄 일이 생기면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준다면 나야 고맙지.

그렇게 황 노인과의 통화가 끝나자 이번에는 양 회장이 전화를 걸었다.

-자네가 자동차 사업에 욕심을 내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고림 자동차를 인수할 줄은 몰랐네!

“운이 좋았습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민성준 그 양반을 설득한 건가? 내가 그 양반 성격을 아는데, 절대 그렇게 자신의 회사를 포기할 사람이 아니란 말일세.

“고림 그룹에서 감당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란 걸 알아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허어. 의문이 많지만 어쨌든 축하하네. 고림 자동차가 비록 적자는 많이 나도, 자동차 부품의 품질은 기가 막히지 않나? 자네가 인수했으니 고림 자동차도 높이 비상할 날만 남았어.

양 회장의 말처럼 고림 자동차는 부품 생산 하나만큼은 3대 메이커 회사도 부럽지 않았다.

실제로 3대 메이커 회사에 일부 자동차 부품을 공급하고 있기도 했고 말이다.

‘고림 자동차는 품질이 좋고, 동화 자동차는 인지도가 좋으니 두 회사가 합병하면 시너지 효과가 클 거야.’

동화 자동차 합병은 아직 확정 난 게 아니었지만,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하운철 회장은 신의가 두텁고 약속을 잘 지키기로 소문 난 인물이었다.

내가 고림 자동차를 인수함으로써 약속을 지켰으니 그 역시 약속을 지킬 것이다.

물론 인수 조건에 대해서는 세세하게 따져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세계 그룹도 요즘 재정 여건이 많이 좋아졌다고 들었습니다.”

-별거 아니네. 악성 부채를 조금 정리한 거뿐이지, 매출이나 영업이익이 크게 늘지는 않았어.

“그렇습니까?”

-그래도 다행인 게, 대통령의 압박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더군. 내년에 총선이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미리 부채를 정리하지 않았다면 나도 정부의 요구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을 거야.

양 회장의 생각대로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압박은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세계 그룹은 부산에 기반을 둔 기업이니만큼, 더욱더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부채를 줄였다고 하니, 이번에는 어떻게든 버티지 않을까?’

세계 그룹이 부채만 없다면 제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대기업이 괜히 대기업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정부에서 작정하고 괴롭힌다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테지만 말이다.

-혹시 나중에 자금이 부족하면 말하게. 우리도 여유가 있는 상황은 아니니 많이 지원해 줄 순 없겠지만, 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지원해 주겠네.

고림 자동차를 인수해서 그런가?

황 노인도 그렇고 양 회장도 그렇고 계속 돈 이야기를 꺼낸다.

누가 보면 내가 엄청난 자금난이라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일 거 같았다.

‘통장에 천억이 있다고 말할 수도 없고…….’

뭐 어쨌든 나로선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아까도 말했듯, 돈은 많을수록 좋은 법이니까.

“감사합니다. 양 회장님도 언제든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일단 기현이를 잘 가르쳐주게. 지금은 그게 가장 중요한 거 같으니.

“예.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양 회장과의 통화가 끝났다.

하지만 오늘따라 나에게 전화를 거는 사람이 유난히 많았다.

고림 자동차를 인수한 것이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자동차까지 인수할 줄이야.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러다 빅 4가 혜성을 포함한 빅 5로 확대되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도 곧 되지 않겠어요? 하하하! 아무튼, 이번 달 안에 한번 봅시다. 부회장과 할 이야기가 아주 많을 거 같으니.

“예, 차장님.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단순히 재계 인사들만 전화를 건 것이 아니었다.

내가 그동안 쌓아온 인맥들도 기회라고 여겼는지, 하나둘 전화를 걸었다.

통화 내용이야 다 비슷비슷했다.

축하한다, 나중에 한번 보자,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라.

대충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짜기라도 한 것처럼 하나같이 고림 자동차의 대표로 누구를 임명할지에 관해 물어보는군. 그런 거 물어봤자 콩고물이 떨어질 일도 없을 텐데 말이야.’

의외로 고림 자동차 대표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아무래도 고림 자동차가 혜성 그룹 안에서 혜성 개발과 엇비슷할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었기에, 콩고물을 원하는 거 같았다.

굳이 대표직이 아니더라도 고림 자동차의 임원 정도면 체면을 세우기에 아주 적합했으니 말이다.

‘임원들이야 있는 사람 중에 가려 뽑으면 될 거 같고, 대표는 그 사람으로 기용하고 싶은데, 과연 어떻게 하면 좋을지…….’

* * *

이호승은 오늘 자 고려일보 기사를 읽으며 딱딱한 표정을 지었다.

‘혜성이 자동차 사업에 진출했다고?’

자동차 사업에 대한 욕심이라면 이호승 그 역시도 남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반도체 사업부에서 연 수백억의 적자가 예상되는 시점에, 감히 다른 사업에 도전하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런데 혜성 그룹은 일성 그룹보다 규모가 작으면서도 반도체 사업에 이어 자동차 사업에까지 도전하고 있었다.

‘도대체 혜성은 자금을 어떻게 조달하고 있는 거지?’

5공이 밀어주는 3김처럼 정부와의 관계가 끈끈한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재계 10위권 기업 중에서 부채 비율이 가장 낮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성 그룹은 그 어떤 기업보다도 급성장하고 있었다.

‘만약 이한성이 큰형님의 편에 서게 되면, 앞으로 성가신 일이 많이 생기겠어.’

커져도 너무 커진 혜성 그룹이었다.

아직 빅 4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성장세를 보면 일성 그룹도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호승은 혜성 그룹이 적으로 돌변하는 상황을 우려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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