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투자천재-76화 (76/300)

76화 그걸 준다고?

나는 노사의 말에 놀라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말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기업들의 견제 때문에 그러십니까?”

(그래. 혜성은 단기간에 너무 성장했어. 지금 빅 4중에 긴장하지 않는 기업이 없을 정도야. 여기서 자동차 산업까지 진입한다? 정우 그룹이든, 미래 그룹이든 둘 중 하나는 우리를 견제할 게 분명해.)

산처럼 느껴졌던 빅 4 대기업이 우리 때문에 긴장한다니.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노사의 우려처럼 빅 4의 기업들이 혜성을 경계하기 시작했다면, 골치가 아플 거 같기는 했다.

아직 혜성 그룹은 빅 4의 기업들과 비교했을 때, 규모 면에서 많이 밀렸으니 말이다.

“혼인 동맹이 있다면 든든하기는 하겠군요. 세력 싸움을 할 때 지원을 해줄 것이니 말입니다.”

(지금이라면 얻을 것도 많을 거다. 너의 몸값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이니까.)

그야 그럴 것이다.

이한철 회장의 건강 상태가 세간에 알려지면서 내가 차기 회장이 되는 건 기정사실이 되었다.

더군다나 혜성 그룹의 규모도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상황.

나의 현금 동원 능력도 어느 정도 알려졌을 테니, 재계에서만큼은 내 몸값이 최고조에 달해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안 그래도 온갖 모임에 저를 초대하고 있는데, 몇 번 이야기를 나눠 보고 결정해 보겠습니다.”

세계 그룹의 양 회장처럼 노골적으로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다른 재벌 역시도 나와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온갖 수를 동원하는 중이었다.

일성 그룹에서는 계속 홍나영과 나를 엮으려는 시도를 하였고, 이제는 미래 그룹에서조차 나에게 관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차피 결혼을 해야 한다면, 최상의 조건을 제시하는 쪽과 하는 수밖에.’

연애결혼을 해보고 싶기도 했지만, 솔직히 나 같은 워커홀릭이 언제쯤 연애란 것을 해볼지 의문이었다.

그러니 연애는 포기하기로 하고, 나에게 가장 이익을 주는 상대와 결혼하는 것이 좋을 거 같았다.

‘물론 최선은 유지은 씨와 결혼하는 거겠지.’

유지은.

내가 유일하게 호감을 품은 여인이었다.

조건만 좋다면, 이왕 결혼할 거 유지은과 결혼을 하고 싶었다.

노사의 우려는 곧 현실이 됐다.

“미래 전자에서 우리 연구원들을 빼앗으려 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예. 직원들 말을 들어보니 월급으로 150만 원까지 불렀다고 합니다.”

가장 먼저 견제에 나선 것은 미래 그룹이었다.

정확히는 미래 전자에서 견제에 나섰는데, 혜성 전자의 기술을 빼앗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일성 전자는 못 뺏을 거 같으니 우리를 노리는 모양이군요.”

“예.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연구원들의 충성심이 절대적이어서 미래 전자의 영입 시도를 경영진에게 바로 보고했습니다.”

“정말 다행이군요.”

충성심이라기보다는 격려금의 효과가 아닐까 싶었다.

바로 얼마 전에 인당 수백만 원의 성과금을 받았으니 말이다.

“앞으로도 연구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주세요. 격려금이든, 각종 복지 정책이든 최대한 지원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부회장님이 자리를 지키는 한, 그들이 회사를 배신할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이재현은 자신 있게 말했지만, 나로선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혜성 전자 연구원을 노릴 기업은 미래 전자뿐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정우 그룹도 반도체 산업에 진출한다지?’

빅 4 기업 전체가 반도체 산업에 진출한 상태였다.

그룹의 자존심이 걸려있는 만큼, 더더욱 악착같이 달려들 터.

그렇기에 보안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거 같았다.

“부회장님!”

“무슨 일입니까?”

“정우 자동차에서 동화 자동차 인수전에 참가했습니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미래 전자의 견제는 시작에 불과하였다.

‘정우 그룹이 우리를 견제하다니.’

원래 역사에서는 동화 자동차에 관심도 두지 않았던 정우 자동차가 뜬금없이 인수전에 가담한 것은, 우리를 견제하려는 의도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정우에서 얼마를 제시했습니까?”

“80억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80억이라.

그 정도면 돈으로 찍어 누를 수 있는 수준이긴 했다.

‘문제는 경쟁이 붙으면 어디까지 올라갈지를 알 수 없다는 건데.’

일단 동화 자동차의 하 회장을 만나봐야 할 거 같았다.

“하 회장과의 약속을 잡아주세요.”

“네!”

“정우 자동차도 계속 예의주시해주시고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조금 귀찮아졌지만 아직은 크게 문제 될 게 없었다.

설령 동화 자동차를 정우에게 뺏긴다고 해도 혜성 그룹의 손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자동차 사업은 어디까지나 내 사업욕으로 진출하려는 거지, 혜성 그룹이 반드시 진출해야 하는 사업은 아니었으니까.

‘운 좋으면 고림 자동차를 인수할 수도 있고 말이야.’

미래 그룹이건, 정우 그룹이건 아직은 크게 긴장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았다.

사업적으로 부딪칠 일이 없었으니, 긴장할 필요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두 그룹보단 일성 그룹이 어떻게 나올지가 걱정이었다.

백화점도 그렇고 반도체도 그렇고 일성 그룹이 혜성 그룹을 견제한다면 귀찮은 일이 생길 가능성이 높았다.

다행히 일성 그룹은 잠잠하였다.

나와의 정략결혼을 가장 먼저 시도했던 그룹이라 걱정했는데, 아직은 혼사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따로 견제를 시도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성가시게 굴었던 것은 샤롯 그룹이었다.

“샤롯이 잠실에 백화점을 세운다고 합니다.”

나는 혀를 찼다.

혜성은 이미 잠실에 백화점을 건설하는 중이었다.

무려 150억을 들여서 초호화 백화점을 짓고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큰돈을 써가며 백화점을 지으니, 뉴월드 백화점과 도레미 백화점은 감히 잠실에 진출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우리와 경쟁하려면 부지 값까지 포함해서 2백억 이상은 필요할 텐데, 선두 업체인 그들도 2백억을 마련하는 건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잠실에서만큼은 편하게 매출을 올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샤롯 때문에 그것도 글러 먹었군.’

샤롯의 반응을 보니 잠실에서도 피 터지게 싸워야 할 것만 같았다.

“정말 신진호 회장은 포기할 줄은 모르는 거 같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규모는 어느 정도랍니까?”

“백화점에만 3백억을 투자한다고 합니다.”

역시 샤롯의 자금력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물론 그래봤자 나보다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3백억이라. 그 정도 자금을 투자한다면, 백화점 사업의 비중을 높이겠다는 의미로 봐야겠군요.”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경쟁이 더 치열해지겠어요.”

“마침 샤롯에서 저희보다 더 큰 폭으로 세일을 하는 중입니다.”

“다시 60%까지 갔답니까?”

“이번에는 65%까지 세일을 한다고 합니다. 물론 그래봤자 인기 없는 상품만 그렇게 할인하는 거지만 말입니다.”

안 그래도 백화점 경쟁이 치열해지던 상황이었는데, 샤롯 때문에 더 치열해질 거 같았다.

“아 그리고 샤롯이 부산에 호텔을 새로 짓는다고 합니다.”

“설마 서면에다 짓는답니까?”

“예. 그것도 저희 호텔과 몇 킬로 안 떨어진 곳에다 짓는답니다.”

나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양 회장에게 매입한 부지에다가 혜성 호텔을 짓기 시작한 지가 불과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

위치는 혜성 백화점의 서면점 바로 옆이었는데, 나는 서면을 일종에 전초기지로 여기고 있었다.

부산 공략을 위한 전초기지인 셈이었다.

‘그런데 그걸 또 방해한단 말이지?’

여러모로 성가신 상대였다.

물론 신진호 회장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어떻게, 샤롯을 견제할 방법이 없겠습니까?”

“샤롯 백화점이 적자가 상당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세일 경쟁만 계속해도 샤롯 백화점에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겁니다.”

“그 정도로 견제가 되겠습니까?”

“샤롯 그룹 전체에게 피해를 주고자 하신다면, 아무래도 유통과 식품 쪽을 노려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통과 식품이라.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샤롯 호텔도 유명했지만, 샤롯 그룹의 캐시카우는 유통과 식품이었다.

‘유통은 그렇다 치고, 식품 쪽은 어떻게 견제해야 하지?’

아쉽게도 혜성 그룹은 식품과는 관련이 없었다.

그렇다고 식품업으로 진출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말이다.

‘일단 유통이랑 백화점을 확실하게 견제하는 수밖에 없겠어.’

아니면 나중에 결혼할 때, 결혼 상대의 그룹에 식품 관련 계열사가 있다면 그쪽을 밀어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거 같았다.

* * *

-동남아에서 요즘 혜성 건설의 수주 실적이 엄청나더군.

“세계 건설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닌 수준입니다.”

-겨우 한 달 조금 넘었는데 그 정도면 대단한 거지. 벌써 세 건이나 따냈지 않나?

양 회장의 말에 나는 내심 뿌듯한 기분을 느꼈다.

중동 사업의 규모를 줄인 일로 언론에서 자충수를 두었다는 식의 비난을 했었는데, 6월이 되니 그런 말도 쏙 들어갔다.

중동에 진출한 건설사들은 여전히 적자 수주 경쟁을 하고 있었고, 그마저도 실적이 작년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반면 혜성 그룹은?

일찍이 동남아에 진출한 덕에 벌써 세 건의 수주를 따냈다.

규모로 따지면 중동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경쟁이 적었기에 이윤은 훨씬 크다고 봐야 했다.

-어쨌거나 호주에서도 수주를 받게 되었으니, 앞으로 선의의 경쟁을 했으면 하네. 괜히 중동에서처럼 한국 기업끼리 과당 경쟁을 할 필요는 없잖아?

“물론입니다.”

-그런데 요즘 자네를 탐내는 기업들이 많더군.

“예?”

-나만 노리는 줄 알았는데, 재벌 총수들 대부분이 자네를 사윗감으로 생각하는 거 같아.

“……그렇습니까?”

-솔직히 걱정이네.

“어떤 게 걱정입니까?”

-자네가 다른 가문과 결혼을 하게 되면, 우리의 관계가 지금처럼 끈끈하지는 않을 거 아닌가?

나는 내심 그의 말에 동의했다.

지금이야 동맹이나 다를 게 없는 관계였지만, 내가 어떤 상대와 결혼을 하느냐에 따라 양 회장과의 관계도 달라질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내심이 어떻든 굳이 그 사실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양 회장님의 세계 그룹과 저희 혜성 그룹의 관계가 보통 관계는 아니지 않습니까?”

-이한철 회장이 은퇴한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정말 자네를 믿어도 되겠는가?

“예. 믿어주십시오.”

내 말에 양 회장은 그제야 안심했다는 듯,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하! 쓸데없는 의심을 해서 미안하네. 내가 요즘 정부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그래. 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네.

“아닙니다. 다음에 또 연락주십시오.”

-시간 나면 언제든 성북동으로 오게. 자네 집이라 생각해도 좋아.

“……기회 되면 찾아가겠습니다.”

통화가 끝나자 나는 턱 끝을 쓰다듬었다.

‘참 머리가 아프네. 주변에서 계속 결혼 이야기를 꺼내니, 결혼을 해야 할 거 같긴 한데, 누구랑 해야 할지 고민이야.’

양 회장의 막내딸인 양인정도 결혼 상대로 나쁘지 않을 거 같기는 했다.

물론 유지은도 괜찮았고.

하지만 막상 누구 한 명을 고르려니 괜히 고민이 되었다.

역시 결혼이란 게 쉽지 않은 거 같았다.

똑똑!

“들어오세요.”

“부회장님, 일성 화재 대표가 찾아왔습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습니까?”

마침 유지은의 부친이 찾아왔다.

유정석.

일성 화재의 대표이자 나중에 JS 그룹의 수장이 될 인물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반가워요. 저는 일성 화재의 유정석입니다.”

“이한성이라고 합니다.”

유정석의 첫인상은 썩 괜찮아 보였다.

나이 차이가 상당한데도 예의를 차리는 모습이 무척이나 점잖은 성격으로 느껴졌다.

“부회장의 이름은 정말 많이 들었어요. 회사에서도, 저의 집 안에서도 말이에요. 하하.”

“그렇습니까?”

“활약이 굉장하시더군요. 혜성 모직의 여러 브랜드도 그렇고, 혜성 전자나 혜성 주류, 그리고 요즘은 자동차 산업에도 진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직 구상만 하는 단계입니다.”

“추진력이 대단하시니, 구상이 끝나시면 단번에 자동차 시장을 장악하실 거 같아요.”

“과찬이십니다.”

그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고 나를 기분 좋게 만들려는 멘트를 열심히 하였다.

물론 나는 냉철한 성격이기에 겉으로는 미소를 지어도 속으로는 무덤덤한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어떤 용무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아실지 모르겠지만, 제 매형이 일성 그룹의 장남이십니다. 저도 그렇지만, 저의 매형께서는 혜성 그룹과 가까운 관계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관계라면, 동맹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예! 동맹을 원합니다.”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나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확히 어떤 동맹을 원하시는지?”

내가 그리 묻자, 유정석은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의 매형이 일성 회장이 되는데 적극적으로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저보고 일성 그룹의 후계 경쟁에 끼어들라는 말씀입니까?”

“부담스러운 건, 저도 잘 알아요. 당연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겠죠. 어려운 부탁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 대신, 저의 매형이 일성 회장이 된다면 일성 전자의 반도체 사업부를 혜성 그룹에 넘겨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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