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투자천재-74화 (74/300)

74화 고림 자동차도 괜찮아

(놈들의 상황이 심각하긴 한가 보구나. 민건우 저 자존심 강한 놈이 직접 찾아와서 사과할 정도면.)

그야 그럴 것이다.

고림 그룹에 관한 소식을 들어보면 농성 시위니 비리 의혹이니 온갖 안 좋은 소식들밖에 없었으니까.

‘아마 그룹 내부 상황은 더 심각하지 않을까?’

그나마 흑자가 나오던 곳이 고림 건설이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 해외 실적 수주가 전체적으로 저조해지면서 고림 건설조차도 적자가 날 위기에 처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고림 그룹의 내부 상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할 것이다.

“그래도 아직 멀었습니다.”

(그야 당연하지. 민성준 회장이 직접 찾아와 사죄한다 해도 관용을 베풀어서는 안 될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보복을 멈출 생각은 없었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는 법.

민성준 회장의 배후에 대통령의 장인인 노인회 회장이 있는 만큼, 어느 정도 선은 지켜야 하겠지만, 그룹이 해체되기 직전까지는 계속 공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너는 정말 민성준 회장이 고림 건설을 너에게 넘겨줄 거로 생각하느냐?)

“아니요. 설마 그룹의 핵심 계열사를 넘겨줄 일은 없겠지요. 그래도 살고자 한다면 다른 계열사라도 주지 않겠습니까?)

(이왕이면 고림 자동차나 뜯어냈으면 좋겠구나.)

“거기는 적자가 1년에 백억 이상 나는 곳 아닙니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동차 산업에 진출하고 싶은 생각이 있기는 했다.

미래 가치도 미래 가치지만, 일단 자회사에서 자동차를 생산한다면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하면서 달콤할 거 같았다.

남자에게 자동차란 단순히 네 바퀴 달린 이동수단이 아닌, 성공과 자존감 그리고 로망 등등 아주 여러 의미가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고림 자동차를 인수하는 것에 대해선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일단 적자 규모도 엄청났고, 노동자들이 농성 시위를 벌이는 등 소란이 끊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적자가 많이 난다는 것은 그만큼 투자를 어마어마하겠다는 뜻으로 봐도 되지 않겠어? 뭐 인건비를 제대로 챙겨주지 않아서 저 사달이 났지만 말이다.)

“그렇습니까?”

(실제로 규모 자체는 동화나 거하에 비할 바가 아니야. 경영만 잘했으면 쌍호 자동차 급의 회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사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고림 자동차를 인수한 뒤에 동화 자동차와 거하 자동차까지 인수한다면 단번에 4위권이 되긴 하겠어.’

지금 자동차 시장은 미래, 정우, 기화 이렇게 세 개의 회사가 석권하고 있었다.

동화나 거하를 인수한다고 이들과 경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터.

하지만 고림 그룹에서 사력을 다해 키우고 있는 고림 자동차를 인수한다면 그 3개의 회사와 같은 반열에 서게 될 것이다.

어쩌면 3위, 거기서 투자까지 따라 준다면 2위까지 치고 올라가는 것도 문제가 아니리라.

‘어떻게든 고림에서 자동차를 토해내게 만들어야겠군.’

* * *

고림 그룹 회장 민성준은 노인회 회장 이기동에게 무릎을 꿇은 자세로 말했다.

“어르신, 각하께서 어떤 결정을 내리실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흠! 민 회장도 알겠지만, 요즘 각하의 기분이 썩 좋지 않아요. 하필 혜성의 이 회장이 청와대에서 쓰러졌잖아요?”

“……예. 설마 그 자리에서 쓰러질 줄은 몰랐습니다.”

이한철 회장이 쓰러졌을 때, 민성준도 깜짝 놀랐다.

건강이 그리 좋지 않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대통령의 호통 한 번에 기절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근데 설마 그 일이 혜성 그룹에 호재가 될 줄이야.’

사실 그는 이한철 회장이 쓰러졌을 때, 속으로 쾌재를 불렀었다.

대부분의 재벌 그룹이 창업주 한 사람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른바 ‘원 맨 경영’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혜성 그룹도 다르지 않았다.

혜성 그룹을 창업한 것은 이한철 회장이었고, 혜성 그룹의 모든 계열사는 이한철 회장 한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였다.

적어도 민성준이 알기론 그랬다.

그런데 이한철 회장이 쓰러졌음에도 혜성 그룹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첫날에만 이런저런 소문이 들려오더니, 다음 날부터는 부회장이었던 한성이 중심을 잡고서 경영 공백을 메꾸었다.

그러자 이한철 회장이 쓰러진 일이 오히려 혜성 그룹에 호재가 되었다.

후계자였던 한성의 리더십도 확실하게 증명됐을뿐더러, 대통령이 혜성 그룹을 건드릴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각하께서는 민심을 고려하여 혜성 그룹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태도를 취할 거 같아요.”

이기동의 말에 민성준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결과를 들으니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 하지만 어르신. 혜성을 지금 길들이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길들이기가 힘들어질 겁니다. 이한성 부회장이 어떤 자인지는 제가 설명해 드렸지 않습니까?”

“나도 그 점은 알고 있어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지금도 혜성 그룹이 정부에 탄압당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혜성 그룹을 건드리겠어요?”

그의 말처럼 향간에는 정부가 혜성 그룹을 탄압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혜성 그룹이 워낙에 정부에게 특혜를 받은 일이 없다 보니, 소문에 신빙성이 더해졌다.

다른 재벌 그룹들은 대기업이란 이유로 온갖 특혜를 다 받는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특히나 혜성 그룹의 장남이었던 이준성과 관련하여 이야기가 많았다.

이준성이 검찰에 3번이나 기소된 경험이 있다 보니, 이조차도 정부의 탄압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을 받고 있었다.

“민 회장. 조금만 더 기다려 보세요. 각하께서는 어디까지나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려는 거지, 혜성 그룹을 가만 놔두겠다는 뜻은 아니에요.”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벌써 그렇게 몇 년을 끌어왔던가.

여기서 몇 년을 더 기다렸다간 고림 그룹이 고사할 판이었다.

‘각하만 믿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순 없겠어.’

애초에 지금의 혜성 그룹이라면 정부가 대놓고 압박을 해도 몇 년 버티는 건 문제가 없을 거 같았다.

재계 10위권의 대기업 중에서 대출을 가장 적게 받았으면서 현금 동원력은 빅 4와 비교해도 꿀릴 게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이한성의 요구대로 계열사 몇 개를 넘기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혜성의 공세는 날이 갈수록 거세졌다.

이제는 국내 건설 수주에서도 견제가 들어올 정도였다.

그렇기에 민성준은 한성의 요구를 들을지, 말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동화 자동차의 하 회장은 어떤 반응이었습니까?”

“저희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거 같습니다.”

“그렇군요. 인수가는 어느 정도를 생각하고 있답니까?”

“하 회장은 인수가로 적어도 백억은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백억이라…….”

나는 동화 자동차에 인수 타진을 하였다.

지금 당장 인수할 생각은 없었지만, 일단 물꼬를 틔우려는 의도였다.

‘민성준 회장이 눈치가 있다면 알아서 고림 자동차를 넘겨주겠지?’

굳이 백억을 주고 지금 당장 동화 자동차를 인수할 생각이 없었다.

동화 자동차는 어디까지나 나중을 기약하여 물꼬를 튼 것이고, 내가 진짜 노리는 것은 고림 자동차였다.

‘그나저나 혜성이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긴 하나 보군. 인수 타진 한 번 했을 뿐인데 이렇게 소란스러운 걸 보면.’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저 하 회장에게 인수가를 묻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언론은 벌써 우리가 자동차 산업에 진출하기라도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이 같은 언론의 호들갑에 정우나 미래 같은 대기업에서도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자동차 계열사에 투자와 광고를 늘리는 식으로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것이다.

‘주목을 받으니 기분이 좋기는 한데, 변수가 많아질까 봐 걱정이군.’

어차피 미래는 달라졌으니, 웬만한 변수들은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면 되기는 했다.

그렇지만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은 분명하였다.

이번 동화 자동차 인수 건만 해도 그랬다.

원래라면 동화 자동차는 1985년에 쌍호에서 인수할 예정이었지만, 이제는 그 정보를 확신할 수가 없게 되었다.

언론이 저리 호들갑을 떨었으니 쌍호가 1년 일찍 인수에 나설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회사에서 가로챌 수도 있는 것이다.

“김종태 상무가 도착했습니다.”

내가 한창 동화 자동차와 고림 자동차를 생각하고 있을 때, 어느덧 약속 시각이 되었는지 종태 형이 내 집무실로 찾아왔다.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네?”

“그럼. 당연히 좋지. 흐흐.”

실실 웃고 있는 종태 형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자유중국(대만)에서 그리 잘 팔린다며?”

“지금 기세라면 40억, 아니, 50억도 팔 거 같다. 역시 자유중국은 우리의 은인이야. 흐흐!”

“일본에서도 꽤 팔린다고 했지?”

“자유중국만은 못하긴 한데, 여기서도 매출이 10억 정도는 나올 거 같더라.”

“괜찮네.”

혜성 모직에서 준비한 신생 브랜드, 드봉.

처음 출시했을 때만 해도 나는 드봉이 실패했다고만 생각했었다.

쁘띠엘르나 원더우더에 비하면 소비자들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내가 유명 탤런트 위주로 협찬을 하라고 지시한 이후로 매출이 조금 늘었지만, 그뿐이었다.

우리 백화점에서조차 재고율이 25% 이상일 정도였다.

하지만 의외로 외국, 특히나 대만에서의 성과가 나쁘지 않았다.

‘한국 브랜드라서 오히려 인기를 끌다니. 이런 나라는 대만밖에 없을 거야.’

노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중에 대만과의 관계가 안 좋아진다고 하는데, 적어도 지금은 대만과의 관계가 굉장히 좋았다.

한국 사람들은 장개석이 한국 독립군을 지원해 줬다고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만이야 공산주의 세력에 맞서는 혈맹으로 인식하고 있어서 우리를 좋아하는 것이고 말이다.

“역시 형을 믿길 잘했네.”

“운이 좋았던 거지.”

“외국에서 성과를 냈으니까 광고도 대대적으로 해야겠어. 자유중국과 일본 같은 선진국에 수십억 어치 매출이 나왔다고 홍보하면 사람들이 많이 관심 두지 않겠어?”

주로 자동차 회사에서 자주 써먹는 수법이었다.

미국 같은 선진국에 자동차를 몇 대 팔면 그게 마치 엄청난 국위 선양인양 홍보하는 것이다.

애국심이 넘쳐나는 시대이기에 이 같은 마케팅은 곧잘 통했다.

아마 드봉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싶었다.

다음 날, 드봉이 외국에서 큰 성과를 냈다는 식의 기사가 고려일보와 동화 일보에서 보도되었다.

물론 언론의 보도는 엄청난 과장이 섞여 있었다.

쁘띠엘르와 원더우더의 매출을 포함해놓고서 드봉이 벌써 백억 매출을 기록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던 것이다.

고려일보에서는 드봉이 도쿄 젊은이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유행하고 있다는, 허위 내용까지 보도하였다.

‘돈값은 확실히 하는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보도 내용을 보면 뭔가 손발이 오글거리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광고 효과는 확실하였다.

기사가 보도된 당일부터 강남 본점에서 심상치 않은 반응을 보였다.

다음 날에는 모든 백화점에서 드봉 제품이 매진되었다.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명품 브랜드로 정착했으면 좋겠네.’

지금 인기가 있다고 유행이 계속되리란 보장은 없었다.

쁘띠엘르나 원더우더도 다른 브랜드의 도전을 계속 받는 중이었으니.

하지만 어찌 됐든, 동이 날 정도로 인기가 많아지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올해 혜성 모직의 매출은 천억을 확실히 넘길 수 있겠어.’

그렇게 한창 기뻐하고 있을 때, 혜성 전자에서도 희소식이 날아왔다.

“이겁니까?”

혜성 전자의 부대표, 이재현이 품속에 있는 무언가를 꺼내서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예, 바로 이게 우리 혜성 전자에서 생산한 64K D램입니다!”

“이 손톱 크기의 메모리칩이 한글 4백만 자 이상을 저장할 수 있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마침내 우리 혜성 전자에서 64K D램을 자체 생산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성 전자 다음으로 이루어낸 성과였다.

‘드디어!’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실로 감격의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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