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중동 사업을 포기해
임원들을 불러 어수선한 분위기를 수습한 나는 안지호와 단둘이 면담하는 시간을 가졌다.
“올해 들어 해외건설 수주실적이 지난해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다짜고짜 그 같은 말을 하니, 안지호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예, 그렇습니다.”
“그렇게 쉽게 대답하고 말 게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지를 이야기해 주셔야죠. 해외 매출이 절반 가까이 떨어지게 생겼는데 위기감이 없으십니까?”
“…….”
안지호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아마 속으로 ‘애송이 따위가 감히 나를 꾸짖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그런 안지호를 보며 명령조로 말했다.
“이제는 중동이 아니라 다른 곳을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 세계 그룹처럼 호주나 동남아를 노리든, 아니면 유럽을 노리든 말입니다.”
수주실적이 부진한 것은 혜성 그룹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모든 건설사의 수주실적이 부진하였는데, 기름값이 하락하면서 산유국들이 개발 계획을 대거 축소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도 한동안 이런 상황이 이어지지. 설령 수주를 따내더라도 10년 뒤에나 돈을 받을 수 있어.’
노사가 말하길, 미래 건설조차도 미수금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미수금이 억 단위를 넘어 조 단위라나?
그래서 나는 이참에 중동 사업을 줄이고자 하였다. 수주를 따내기도 어려운데 미수금 회수에 난관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니, 굳이 중동에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올 한해 수주실적이 부진했다는 이유로 중동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중동을 포기하라고 명령한다면 어떻습니까?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실 겁니까?”
“부회장님. 그런 큰 결정은 회장님에게 허락을 맡으시고 내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지금 제가 직무 대행인데 회장님의 허락을 왜 구해야 합니까?”
“저는 회장님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는 한, 중동을 포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안지호의 말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안지호 사장님. 제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십니까?”
“저는 사적인 감정을 가지고 회사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거치고는 나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묘하게 나에게 적대적이었다.
지금도 나를 보는 눈빛이 그리 곱지만은 않았고 말이다.
“한 가지 말씀드리죠. 저는 성격이 나빠서 저를 이유 없이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차라리 싫어하는 이유를 만들어 주는 사람입니다.”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계속해서 싫은 티를 내신다면, 진짜 저를 싫어하게끔 만들어드리겠다는 의미입니다.”
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안지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만 돌아가시고 제 지시대로 중동 사업을 줄일 준비나 하세요. 만약 따르지 않겠다면, 단단히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
안지호는 이를 악문 채 나를 노려봤다.
한참이나 나이가 어린 나에게 협박을 당했으니 그로선 기분이 상할 만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로선 그의 기분을 배려해줄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바라봤다.
“가보겠습니다.”
결국에 먼저 눈을 피한 사람은 안지호였다.
그는 내 지시를 따를 것인지에 대해서 가타부타 이야기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약 끝까지 내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 해고하는 수밖에.’
어차피 중동 붐도 꺼져가는 상황에서 그의 가치도 그리 높다고 볼 수 없었다.
안지호의 가치는 중동 인맥에서 비롯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안지호를 내 편으로 삼기 위해 공을 들이지 않기로 하였다.
* * *
뿌드득!
안지호는 이를 갈았다.
‘사람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감히 나를 이렇게 대하다니.’
그가 지금껏 혜성 건설의 매출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던가.
못해도 천억 이상은 기여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비록 올해의 수주 실적이 부진했다고 해도 이런 식의 대우를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비서실장님.”
안지호는 곧장 진봉현을 찾아갔다.
“안 사장, 무슨 일이십니까.”
“회장님을 뵙고 싶습니다.”
“갑자기 회장님은 왜……?”
“부회장이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에 대해 회장님에게 보고를 드릴까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지시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니, 애초에 부회장님이 어떤 지시를 내렸든 회장님을 만나 뵐 수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금 한창 치료 중이셔서 면회를 받으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리고 회장님은 이한성 부회장님을 믿고 직무 대행을 맡기셨으니, 안 사장도 부회장님의 지시에 따르는 게 맞습니다.”
진봉현의 말에 안지호는 미간을 좁혔다.
“저는 못 따를 거 같습니다.”
“자존심 때문입니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회장 그자는 지나칠 정도로 독선적입니다. 건설이 뭔지도 모르는 주제에 벌써 이것저것 간섭할 정도니 말 다 한 거 아니겠습니까.”
“부회장님은 충분할 만큼 실력을 보여줬지 않습니까. 혜성 모직부터, 혜성 개발과 혜성 유통, 그리고 그 외의 계열사들까지…… 그러니 안 사장님도 일단 한번 믿고 따르는 게 어떻겠습니까?”
안지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사표를 쓰고 말 겁니다.”
“후우, 안 사장님. 지금 그룹의 상황이 어떤지 아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지금 사표 쓰시면 회장님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겠어요?”
그 말에 안지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한철 회장은 그에게 있어 은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미래 건설의 일개 부장이었던 그를 계열사 사장으로까지 승진시켜준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럼 저보고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딱 한 번만 고개를 숙이십시오. 딱 한 번이면 됩니다. 부회장님은 결코 자신의 사람을 홀대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소문만 들어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를 못 믿겠으면 부회장님을 직무 대행으로 삼으신 회장님을 믿고 딱 한 번만 자존심을 굽혀주세요.”
진봉현의 간절한 부탁에 안지호는 표정을 구기면서도 속으로는 고민해보았다.
‘한 번이 어려운 건데 어려운 주문을 요구하는군. 하지만 이대로 부회장을 적대한다면 나는 결국 회사를 나갈 수밖에 없다.’
다른 회사에 간다고 과연 지금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
작년이라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땐 아직 중동 봄이라는 희망이 꺼지기 전이었으니까.
하지만 올해부터 산유국의 건설 계획이 대거 취소되면서 그가 중동에 만들어 놓은 인맥의 가치도 급격하게 떨어졌다.
지금 시기에 다른 회사로 이직한다면, 사장은커녕 일개 이사직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제가 안 사장에 대해서는 부회장님께 좋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부회장님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비서실장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것인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도 입장이란 것이 있으니, 조금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
안지호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비서실장이 뭐랍니까?”
측근이 묻자 안지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부회장의 뜻에 거역하지 말라더군.”
“아니, 너무한 거 아닙니까. 아무리 후계자라지만, 20대에 불과한 애송이를…….”
“그만하게.”
“예?”
“괜히 부회장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했다간 찍히기라도 하면 자네만 곤란할 것이네.”
“하지만…….”
“그만하라니까. 이미 후계자로 확정 난 상태에서 회장님까지 부회장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뭘 할 수 있겠나?”
“…….”
안지호는 측근을 나무라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성을 따르는 수밖에 없는 거 같았다.
괜히 고집을 부렸다간 그의 부하들만 배척을 받게 될 것이니 말이다.
‘일단 한 번 고개를 숙여야겠어. 그러다가 내 의견을 무시하거나 푸대접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때는 진짜 회사를 나가든가 해야지.’
* * *
혜성 그룹의 혼란은 오래 가지 않았다.
한때는 정부에게 찍혔다느니, 이한철 회장이 사경을 헤매고 있다느니, 온갖 뜬소문들이 퍼졌었지만, 그것도 이제 옛날 일이었다.
5월 중순이 되자, 혜성 그룹의 임직원들은 완전히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한철 회장은 여전히 병원에서 입원 중이었지만, 내가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에 분위기가 진정된 것이다.
(안지호까지 저리 나왔으니 이제 혜성 그룹 내부에서 너를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구나.)
노사의 말에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안지호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를 걸지 않았었다.
나와는 성격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절대 굽히지 않을 거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뭐 때문인지, 어느 날 면담을 신청하더니 앞으로는 전적으로 내 말에 따르겠다고 선언하였다.
다른 임원들처럼 적나라하게 충성 맹세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나를 인정하고 받들겠다는 말을 한 셈이었다.
“이러면 안지호를 계속 사장으로 유임하는 수밖에 없겠죠?”
(당연히 그래야겠지. 그리고 애초에 사장으로 임명할 인재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잖아.)
“하긴, 그건 그렇습니다.”
(너는 그가 별로 마음에 안 들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관용을 베풀어라. 능력은 있는 자이니 굳이 배척할 필요는 없다.)
뭐, 내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는데 나도 굳이 배척할 생각은 없었다.
선을 넘은 적이 없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쨌든 타이밍 좋게 중동 사업 규모를 줄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어떻게 아버지를 설득해야 할지 걱정이었는데 말이야.)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안지호도 안지호지만, 사실 중동 사업을 접은 게, 내가 회장 직무 대행이 되고 가장 잘한 일이 아닐까 싶었다.
‘운 좋게 동남아에서 수주 실적까지 나오면 딱 좋겠군.’
중동 사업의 규모를 줄였으니 동남아에서라도 수주 실적을 만회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러면 혜성 건설의 해외 매출도 조금이나마 복구하고 내 명성도 크게 오를 텐데 말이다.
똑똑!
내가 한창 노사와 대화를 나누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더니 이소희가 안으로 들어왔다.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누가 왔습니까?”
“고림 그룹의 부회장입니다.”
불청객의 등장에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굳이 민건우, 그놈을 볼 필요가 있을까?’
이미 고림과 혜성은 돌이킬 수 없는 관계였다.
민건우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일단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어보는 게 어떻겠냐?)
내 표정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지 노사가 그 같은 말을 하였다.
나는 노사의 말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이소희에게 민건우를 불러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오는 민건우를 향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민건우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사죄 인사를 드리려고 왔습니다.”
“사죄라. 혹시 노인회 회장(대통령 장인) 앞에서 우리 그룹을 운운한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대통령이 이번 청와대 만찬에서 유독 이한철 회장을 모질게 나무랐던 건 다 이유가 있었다.
고림 그룹이 뒤에서 바람을 넣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죄할 거면 당신이 올 게 아니라, 당신의 아버지가 직접 와야죠. 당신과 나는 급이 안 맞지 않습니까?”
민건우는 내 말이 당혹스러운지 입만 뻥긋거렸다.
“아, 그리고 혜성 건설을 노리셨으니, 저에게서 사죄를 받아내시려면 적어도 고림 건설은 넘겨주셔야 할 겁니다.”
“지,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그럼 제가 당신에게 장난이라도 칠 거 같습니까?”
“…….”
“아무튼, 이만 가 보세요. 당신과 더 할 이야기가 없는 거 같으니.”
내가 그리 말했는데도 민건우는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가라니까, 제 말이 안 들리십니까?”
“알겠습니다.”
“쯧.”
당황한 기색으로 물러나는 민건우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혀를 찼다.
‘진짜 고림 건설을 넘겨준다면 살려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시 고림 그룹은 절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