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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71화 (71/300)

71화 갑자기 왜 쓰러져?

다짜고짜 천억을 준다고 하니 나로서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황 노인의 자산이 재벌 회장들보다 많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투자금으로 천억을 동원할 수 있을 정도였다니.’

역시 이 정도 자산이 있으니 권력자들도 황 노인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거 같았다.

하지만 나는 금세 침착함을 되찾고서 물었다.

“지분은 어느 정도 생각하고 계십니까?”

“20%는 줘야 하지 않겠나?”

20%에 천억이면 한성 주택의 가치를 5천억으로 본다는 뜻이었다.

대기업들의 시가총액도 5천억을 넘는 경우가 극히 드무니 한성 주택을 대기업 급으로 본다는 의미였다.

아무리 혜성 그룹 계열사의 지분을 많이 가지고 있다지만, 현재 시세보다 한참 고평가했다고 볼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건 범인들의 생각이지.’

내 회사의 가치는 노사와 나만이 정확히 알았다.

20%에 천억?

혜성 전자 하나만 해도 그 이상은 될 것이다.

그런데 한성 주택은 혜성 전자의 지분만 95%를 가지고 있었고, 혜성 호텔에 혜성 주류, 혜성 출판사(전 동화 출판사)의 지분까지 갖고 있었다.

심지어 잠실에 있는 부동산의 가치는?

계산을 끝낸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저는 제 회사의 가치를 수조 원 대로 보고 있습니다.”

바둑판을 내려 보던 황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황 노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한성 주택의 매출이 천억이 채 안 되는데, 가치가 수조 원이라고?”

“회장님. 회장님은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알지.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서 천억을 준다는 거였네. 그런데 그조차도 저평가라고 말하니, 꽤 당혹스럽군.”

“정 그러시다면 그냥 돈을 빌려주시기만 해도 괜찮습니다.”

지분을 팔아서 황 노인을 더욱더 든든한 아군으로 만든다면 나쁠 게 없긴 했다.

하지만 연 매출 천억도 안 되는 회사를 다짜고짜 몇 조짜리 회사로 인정해달라고 해서 인정해 줄 리는 없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대출이라도 받는 수밖에.

“좋네. 그럼 10%에 천억은 어떤가?”

10%에 천억이라.

나는 다시금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절대 경영권에 간섭하지 않겠네. 그리고 자네의 회사가 외압을 당하는 일이 없게끔 최대한 막아 주지.”

“그 정도 조건이라면 저도 거절할 이유가 없겠군요. 좋습니다.”

경영권에 간섭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든든한 동맹이 되어준다고 한다.

이러면 나로선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회사 가치야 내 기준보다는 낮게 평가받았지만, 당장 목돈을 쥘 수 있었고 무엇보다 황 회장의 인맥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해서 제 회사 지분을 인수하려는 겁니까?”

나야 좋다지만, 황 노인의 결정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나를 높게 평가한다 해도 뭘 믿고 천억이란 큰돈을 덜컥 맡긴단 말인가.

“작년부터 올 초까지 세무조사에 시달리다 보니, 사채업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네. 지금 굴리는 돈보다 커진다면 반드시 정부의 제재가 따를 거라고 판단했지.”

“결국 정부 때문이었군요.”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정부에 치이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인 듯싶었다.

“아무튼 후회는 없으실 겁니다. 내년부터 엄청난 성장을 거듭하게 될 것이니, 저만 믿어주십시오.”

“끌끌! 자네가 엄청난 성장이라고 하니 기대가 되는군.”

“제가 괜히 수조 원대라고 말한 게 아님을 곧 알게 될 겁니다.”

황 노인 앞에서는 원래 겸손한 척을 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투자자는 운명 공동체.

그러니 솔직하게 내 생각을 말해줄 필요가 있었다.

‘얼결에 천억이 생겼군.’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심지어 이 천억은 어디에 갚아야 할 돈도 아니었다.

순수한 내 개인 재산이었다.

“역시 황 노인에게 은혜를 베풀길 잘했어.”

황 노인이 은원을 확실하게 가리고 또 사람 보는 눈도 정확한 사람이라,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꾸준하게 도움을 줬었다.

물론 일방적인 관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동안 내가 도와준 게 많으니 이렇게 돌아온 거 같았다.

‘근데 이 돈으로 뭘 해야 하지?’

잠시 고민하던 나는 양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땅을 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결정은 내렸나?

“예. 회장님의 땅을 매입하고 싶습니다.”

-어떤 땅을 사고 싶은가?

“지금부터 불러드리겠습니다.”

-불러준다고? 자네도 땅 욕심이 상당한가 보군. 그래, 한번 불러보게.

양 회장이 흐뭇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내가 목록을 하나하나 부르기 시작하자 양 회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내 말을 끊었다.

-잠깐만 기다리게. 자네 도대체 몇 개를 사려고 그러나?

“개포동의 부지도 그렇고, 아직 사고 싶은 땅이 많습니다만.”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고?

목소리만 들어도 당혹감이 느껴졌다.

매물을 한두 개도 아니고 수십 개나 고르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나로선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양 회장이 가진 매물들은 하나같이 구하기가 쉽지 않은 귀중한 매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자네, 돈을 얼마나 쓰려는 거야?

“500억 정도 쓰려고 합니다.”

-허억.

“저렴하게 파는 것이 부담스러우시다면 제값을 주고 파셔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내가 고른 것들은 제값에 주어도 살 수가 없는 매물들이었다.

그러니 나에게 팔아주기만 해도 감사해야 할 입장이었다.

-아니네, 아니야. 한 입으로 두말할 수는 없지. 근데, 내가 다 기억할 수가 없으니 비서를 통해 목록을 전해 주게.

양 회장은 기운 빠진 목소리로 그 같이 말하고는 통화를 끊었다.

20대에 불과한 내가 5백억의 현금을 굴린다고 하니, 노사가 가끔 사용하는 이른바 현타가 온 모양이었다.

‘어쨌든 이걸로 5백억은 썼으니, 나머지 돈으로 뭘 하는 게 좋을까?’

동화 자동차를 인수할까?

잠시 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굳이 지금 인수할 필요는 없지.’

쌍호 그룹에서 동화 자동차를 인수하는 건 내년이었다.

아직은 시간 여유가 있다는 뜻.

나중에 거하 자동차를 인수할 때 같이 인수하면 더 싸게 인수할 수 있을 것이니 동화 자동차는 그때 인수하기로 하였다.

‘호텔을 더 세우는 게 좋을까?’

현재 혜성 호텔은 마무리 공사 작업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아직은 따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원래라면 공사가 끝나는 두 달 정도 뒤부터 본격적으로 투자를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여유 자금이 충분해지니 생각이 달라졌다.

굳이 나중을 기약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고민은 해보는데, 만약 호텔까지 새로 짓는다면 혜성 건설의 올해 매출이 상당하겠군.’

백화점에, 호텔에 굵직굵직한 수주만 벌써 두 개였다.

호텔의 공사비가 어느 정도나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백화점까지 합치면 아무리 못해도 3백억은 나오지 않을까?

‘이 정도면 나를 인정하지 않을 임원은 없겠어.’

혜성 그룹에서 나를 상대로 유일하게 뻣뻣한 태도를 견지하던 게 혜성 건설 임원들이었다.

물론 내가 부회장으로 취임한 뒤로는 나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지만, 여전히 뒤에서는 안 좋은 소리가 오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창업 공신이랍시고 뻣뻣한 태도를 취할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나라는 개인에게서 관급 공사 규모의 수주를 받게 된다면 그들도 넙죽 엎드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 호텔도 짓자. 어차피 양 회장이 넘겨준 매물 중에 입지 좋은 곳도 많으니 말이야.’

* * *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고림 그룹의 사정은 악화하였다.

고림 자동차의 적자는 계속 누적되어 가는데, 어디서 돈을 구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이제는 서울랜드 건설을 반쯤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4월 말.

민성준 회장은 신문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혜성 그룹, 잠실에 대규모 백화점 건설계획!>

<호텔에 공격적으로 진출하는 혜성. 올해에만 신사업을 3개나 추진!>

“우리 고림은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는데, 혜성은 저 멀리 날아가고 있구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두 그룹의 자산은 그리 큰 차이가 없었었다.

재계 순위로 따지면 혜성이 10위에서 11위를 오갔고, 고림은 14위 정도였다.

하지만 이 같은 재계 순위는 작년부터 큰 변동을 보였다.

잘 나가던 고림 건설은 크게 위축되었고, 그룹의 사운을 걸고 하던 자동차 사업은 몇 년째 적자만 거듭하는 중이었다.

전자에, 백화점에, 호텔까지 진출하는 혜성과는 차원이 달랐다.

혜성은 재계 9위를 넘어 8위로 거론되고 있지만, 고림은 15위를 간신히 유지하는 중이었다.

“도대체 혜성은 어디서 그 많은 돈을 구해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게 말이다.”

아들, 민건우의 말에 민성준은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한때는 동업 관계였고 그 뒤로는 쭉 경쟁 관계였던 혜성 그룹의 발전은 부러우면서도 질투가 났다.

하지만 질투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이제는 감히 넘볼 수조차 없는 상대가 되고 말았는데.

“아무래도 혜성 건설은 포기해야 할 거 같다.”

“……정녕 방법이 없는 겁니까?”

“지금 상황에서 무슨 방법이 있을까? 혜성 그룹이 저리도 견고한데?”

“…….”

“솔직히 말하면 혜성 건설을 노리기는커녕 그들에게 무릎을 꿇어서라도 살려달라고 해야 할 판이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한성을 애송이 취급했었던 민성준이었다.

그저 돈만 많은 애송이라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성이 본격적으로 고림 그룹을 공격하기 시작하니, 민성준은 꼼짝도 못 하고 당하고 말았다.

본인조차 잊고 있었던 비리들이 언론에 보도되었고, 그룹이 은폐하던 내부 정보들이 찌라시로 유포되었다.

그 탓에 대출받기는 어려워졌고 제2금융권에서는 단기 채권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고림 자동차 직원들이 농성 시위를 벌이는 등, 내부적으로도 온갖 어려움이 발생하였다.

서울랜드도 포기해야 할 상황에 놓였고 말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민성준으로서도 한성이 두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무릎을 꿇는 건…….”

“그룹이 무너지는데 그깟 자존심이 문제냐?”

“물론 그렇긴 합니다만.”

“됐다. 지금 당장 무릎 꿇으라는 것은 아니니까.”

“무언가 방법이 있는 겁니까?”

“각하를 믿어봐야지.”

따로 특별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대통령의 심기가 그 어느 때보다 불편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이를 이용해 보기로 하였다.

대통령에게 뇌물을 더 줘서라도 고림 그룹을 보호해달라고 애원하기로 한 것이다.

* * *

혜성 그룹은 다시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초호화 백화점에 호텔까지, 엄청난 자금력을 과시하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여론의 주목만 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룹 안에서도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하하! 부회장님, 혜성 건설에 대규모 공사를 수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혜성의 건물인데 당연히 혜성 건설에서 지어야죠.”

“부회장님이야말로 혜성 그룹의 영웅입니다. 영웅!”

혜성 건설의 사장은 두 명이다.

해외 파트의 안지호 사장과 국내 파트의 김명운 사장.

그중에 국내 파트의 김명운 사장이 손바닥을 비비며 나에게 열심히 아부하였다.

정부의 고위 간부 출신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경망스러운 태도였다.

나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일단 국내 파트는 확실하게 복종하기로 한 거 같군.’

사장부터가 나에게 아부 떨지 못해 안달 난 상황이었다.

그 아래 임직원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문제는 해외 파트인데…….’

해외 파트의 사장, 안지호.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던 거지만, 그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를 대하는 태도도 뻣뻣하기 그지없었다.

아마, 이한철 회장이 자신을 해고할 리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게 아닐까 싶었다.

안지호는 미래 건설에서 어렵게 모셔온 인재였으니 말이다.

‘인재든 뭐든 간에 계속 저렇게 뻣뻣하게 나온다면 어쩔 수 없지. 회장이 되는 즉시 정리하는 수밖에.’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쪽은 내가 아니었다.

나는 이미 후계자로 확정 난 상황.

더군다나 올해 안에 회장이 되기로 약속받았다.

반면에 안지호는 일개 임원에 불과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는 올해 안에 회사를 나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았다.

설령 지금 당장 회장이 된다고 해도 문제 될 건 없었다.

어차피 시간이 갈수록 해외 파트는 규모를 줄여야 하니, 미리 가지치기한다고 생각하면 될 거 같았다.

“부회장님.”

그때였다.

김명운 사장과 한참 면담을 하는데, 이한철 회장의 비서실장인 진봉현이 다급히 나를 찾아왔다.

“비서실장님께서 어쩐 일입니까?”

“지금 바로 상심 병원에 가셔야 할 거 같습니다.”

“병원을 가라니요?”

“회장님께서 쓰러지셨습니다.”

“……!”

진봉현의 말에 나는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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