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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70화 (70/300)

70화 돈을 빌려주지 못해서 안달이네

황 노인과 같은 큰손 4인방 중의 한 명이지만, 인상은 상당히 달랐다.

일단 방준호 회장은 나이부터가 50대 중반이었다.

그리고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외양인 황 노인과 달리, 방준호 회장은 마치 건달처럼 험악한 인상이었다.

“어쩐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내 질문에 그는 대답 없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당신이 이한성이야?”

“예. 그렇습니다만.”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작년에 돈을 아주 크게 벌었다면서?”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초면에 반말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 말투까지 영 껄끄러웠다.

“사장님이 당신 부하도 아닌데 왜 말을 함부로 하고 그러십니까?”

역시 인정민은 눈치가 빨랐다.

내가 기분 나빠하는 것을 눈치채고는 방준호에게 일침을 가했다.

그러자 방준호가 코웃음 쳤다.

“별거 가지고 지랄이네. 경찰 출신이라서 그런가?”

“방 회장! 예의 좀 지키라니까요?”

행여나 둘이 싸우기라도 할까 봐, 서둘러 입을 열었다.

방 회장과 기 싸움을 해봐야 좋을 게 없었으니 말이다.

“용건이 뭡니까?”

“그쪽이 황 씨 영감탱이와 붙어서 재미 좀 봤다던데. 사실이야?”

“황인범 회장님을 말씀하시는 거 같은데, 그분이랑 제가 무슨 재미를 봤다는 겁니까?”

“뭐겠어. 돈이지. 돈.”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방준호가 나를 찾아온 이유를 알 거 같았다.

‘황 노인이 내 덕에 재미를 보니까, 그게 부러워서 온 거 아닐까?’

명동 큰손 4인방이 은연중에 서로 대립하는 사이라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었다.

“재미를 보긴 했습니다. 저도 그렇고, 황 회장님도 제 덕에 꽤나 재미를 보셨을 겁니다.”

“어떤 식으로 재미를 봤는데?”

“근데 제가 왜 방 회장님의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겁니까?”

“내 듣기로는, 그쪽이 귀가 참 밝다던데. 정보력이 남다르다나?”

“용건을 말해주셨으면 합니다만.”

“여기까지 말했으면 모르겠어? 황 씨 영감탱이에게 붙는 거 그만하고, 내 쪽으로 붙지? 언제까지 그 노친네와 어울릴 거야?”

역시 예상했던 대로였다.

황 노인이 잘나가니까 그걸 견제하는 차원에서 나를 찾아온 듯싶었다.

“뭔가 착각하시는 거 같은데, 저와 황 회장님은 거래 관계지 결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거래라고? 그 노친네가 그쪽을 어지간히 높게 봤나 봐?”

나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그러자 방준호가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그 거래라는 거, 나와도 했으면 좋겠는데?”

큰손 4인방 중의 하나인 방 회장과의 거래라.

솔직히 나쁘게 볼 일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돈이 필요하던 상황이었으니까.

물론 황 노인 덕에 그렇게 절실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어떤 방식으로 거래하시겠습니까?”

“황 씨랑은 어떻게 거래했었는데?”

“황인범 회장께서 돈을 빌려주시면 제가 그 대가로 정보를 주는 식이었습니다. 물론 이자는 은행보다 낮게 해 주셨고요.”

“은행보다 싸게 해 줬다고? 거의 거저 주다시피 했군. 그쪽이 가진 정보가 얼마나 대단해서 황 씨가 그런 거래를 했지?”

“장희자 어음사기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알려준 적이 있습니다. 작년에는 세무조사가 일어날 것을 미리 알려주었었죠.”

물론 그것 말고도 아웅산 테러 사건이라든가, 이것저것 자잘한 정보들을 알려 줬지만 구태여 그거까지 설명하지는 않았다.

두 가지만으로 내 정보력을 설명하기에 충분했던 탓이다.

“그쪽이 그런 정보들을 황 씨 영감탱이에게 알려줬다고? 그 늙은이가 갑자기 돈 많아진 것도 그 때문인가? 아니, 애초에 그쪽이 그런 정보들을 어떻게 알아낸 거지?”

“죄송합니다만 영업 비밀을 알려줄 순 없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나도 그럼 그 정도의 정보를 받아 볼 수 있는 건가?”

“충분한 대가가 따른다면 그렇겠죠.”

“좋아. 백억을 빌려주지. 황 씨 영감탱이처럼 저리로 돈을 빌려주겠어!”

방준호가 마치 엄청난 결단을 내린 것처럼 이야기하였다.

명동의 큰손으로 소문이 자자한 그에게도 백억은 큰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당치도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겨우 백억으로 누구 코에 붙입니까?”

“뭐? 벡억이 겨우라고?”

“저에 관해 조사를 많이 안 하셨나 봅니다. 명동의 큰손이라 하셔서 당연히 아실 거로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아무래도 주식을 안 하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나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전 지금 당장에라도 은행에서 몇백억을 빌릴 수 있습니다. 제 자산을 아무리 보수적으로 잡아도 몇백억은 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미 빌린 돈이 5백억이고, 혜성 주류나 혜성 호텔 등에 딸린 차입금도 만만치 않아서 그리 많은 돈을 빌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2, 3백억 정도는 무리 없이 빌릴 수 있었다. 인맥을 활용하면 그보다 훨씬 더 빌릴 수도 있었고.

단지 지금의 정부를 믿을 수 없어서 빌리지 않는 거뿐이었다.

“그리고 사실, 천억을 부르셨다고 해도 방 회장님께 돈을 빌릴지 말지 고민입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저는 제가 신뢰하지 않는 사람에겐 돈을 빌리지 않습니다.”

내 말에 방준호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신뢰를 왜 그쪽에서 따져? 돈을 빌려주는 내 쪽에서 따져야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으시다면, 빌려주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나는 노골적으로 말했다.

갑은 나라고.

그러자 방준호가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서, 나랑은 절대 거래하지 않겠다는 거야?”

“아무런 담보 없이 3백억을 빌려주신다면, 그 믿음의 대가로 제가 좋은 정보를 제공해드리겠습니다.”

담보만 없다면 빚이 늘어도 상관없다.

물론 방준호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제안일 것이다.

담보 없이 돈을 빌려주는 사채업자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이거 미친놈이네?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아니나 다를까.

방준호가 당장이라도 주먹을 날릴 기세로 사납게 말했다.

그의 눈에는 내가 사기꾼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나라도 그렇게 생각할 거 같긴 해. 대뜸 3백억을 달라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나로서는 굳이 위험 부담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

돈이야 황 노인에게 빌리면 그만이었으니 말이다.

“싫으시다면 어쩔 수 없죠.”

“이딴 장난질을 하다니. 나와 거래를 할 생각은 없다는 뜻이겠지?”

“전 진심이었습니다. 돈만 빌려주셨으면 양질의 가치를 지닌 정보를 회장님께 제공해드렸을 겁니다.”

“흥!”

방준호는 콧방귀를 뀌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동에서 누가 더 오래 살아남는지 똑똑히 지켜봐. 머지않아 황 씨와 붙은 걸 후회하게 될 거다.”

경고 아닌 경고를 남긴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역시 이한성 사장님이십니다. 그 유명한 방 회장을 물 먹이시다니. 성격이 참 시원시원하십니다.”

“일부로 골탕을 줄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럼 담보 없이 돈을 빌리겠다는 말이, 진심으로 하신 말씀이었습니까?”

“예.”

인정민이 혀를 내둘렀다.

그도 내가 일부로 방 회장을 골탕 먹였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내 말투가 그렇게 공격적이었나?’

약간 그런 거 같기는 했다.

뭐 방준호의 말투도 남 말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앞으로는 말투를 조금씩 바꾸긴 해야겠어.’

나는 적이라 생각하는 사람에게 너무 공격적으로 대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서 적을 만들고 싶지는 않으니, 말투를 바꾸긴 해야 할 거 같았다.

* * *

“부회장님께서 지시하신, 샤롯 종합관광 유동에 관해 조사한 결과입니다.”

신은규가 건네준 자료를 읽어 보았다.

‘2천억이라니. 어마어마하군.’

샤롯 종합관광 유동은 이번에 샤롯 그룹에서 새로 설립한 자회사였다.

잠실에 호텔을 비롯하여 각종 스포츠 레저시설을 갖춘 레저타운을 건설하고자 일본 샤롯과 한국 샤롯이 합심하여 샤롯 종합관광 유동을 만들었다.

‘문제는 여기에 백화점도 끼어 있다는 거지.’

안 그래도 백화점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데, 샤롯이 선수 치는 것을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도 서둘러 백화점을 지어야겠군요.”

“조금 전에 고창석 부장이 와서 견적을 알려 줬는데, 그대로 지을 경우 150억은 필요하답니다.”

1만 평짜리 현대식 백화점을 지으려고 했는데, 역시 공사비가 어마어마하였다.

중견 기업도 인수할 수 있을 법한 금액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규모를 줄여도 되지만, 지금은 돈을 쓰는 게 맞아. 백화점 업계의 선두로 도약하려면 투자가 따라야 하는 법이니.’

혜성 백화점의 한 달 매출만 거의 백억에 가까웠다.

그리고 앞으로의 매출은 계속 성장해 나갈 것이다.

만약 잠실 백화점을 개장할 때쯤이면 월 백억이 아니라 월 3, 4백억도 가능해질 터.

그러니 투자를 아낄 이유가 없었다.

“비싸긴 해도 그룹에 건설사가 있으니 이 정도네요.”

“물론입니다. 다른 곳에 공사를 맡겼으면 2백억도 넘을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결정을 내렸다.

잠실에 백화점을 짓기로 말이다.

“그런데, 백화점 말고는 돈 들어갈 곳이 더 없겠죠?”

내 물음에 신은규가 그럴 리가 있겠냐는 목소리로 말했다.

“혜성 전자도 그렇고 혜성 주류도 그렇고 돈 나올 곳보다는 돈 들어갈 곳이 더 많을 거 같습니다만.”

“……사업을 너무 확장한 거 같긴 하군요.”

“부회장님 정도의 재력이라면 아직 여유가 있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다.

현금도 꽤 남아 있었고, 혜성 계열사의 지분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다면 몇백억을 그냥 받아낼 수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돈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제가 인수해야 할 매물이 있어서 말입니다.”

신은규가 황당한 눈빛을 보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떻게든 황 노인에게서 돈을 빌려야겠군.’

* * *

“끌끌! 자네가 방준호와 만났다는 이야긴 들었네.”

황 노인이 백돌을 내려놓으며 그 같이 말했다.

“예. 제 소문을 어디서 들었는지, 저와 거래하고 싶다 하더군요.”

“그런데 거래는 왜 무산된 건가?”

“제가 한 가지 조건을 걸었는데, 그게 마음에 안 들었나 봅니다.”

“조건이 뭐였기에?”

나는 흑돌을 들어 올리며 무심하게 대꾸했다.

“담보 없이 3백억을 빌리는 거였습니다.”

“그게 사실인가?”

“저 정도의 신용이라면 3백억쯤, 빌려주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남들이 보면 뻔뻔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사실이 그러한데.

황 노인은 헛웃음을 짓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에게도 담보 없이 돈을 빌려달라고 할 텐가?”

“제가 설마 황 회장님한테까지 그런 조건을 걸겠습니까?”

내 말에 황 노인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대뜸 이런 말을 하였다.

“담보 없이는 그렇고, 내가 자네의 회사 지분을 비싸게 인수해 주겠네. 미래 가치를 최대한 고려해서 말일세.”

“지분을요?”

나는 들어 올렸던 흑돌을 다시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빈손으로 턱 끝을 쓰다듬었다.

‘오히려 좋은데?’

기존의 혜성 계열사 말고, 내가 세운 혜성 계열사들, 이를테면 혜성 전자나 혜성 호텔, 혜성 주류 등의 지분은 얼마든지 팔아도 됐다.

어차피 지분은 95% 이상 내가 독차지하고 있었으니까.

만약 지분을 팔면 황 노인이 확실한 아군이 되는 효과도 있을 것이고 말이다.

“어느 회사의 지분을 원하십니까?”

“이왕이면 자네의 이름이 들어간 한성 주택의 지분을 갖고 싶네.”

“한성 주택은 상당히 비쌀 겁니다.”

사실상 지주 회사나 다를 게 없는 한성 주택이었다.

혜성 계열사 안에서 내 명의로 된 지분도 많지만, 한성 주택의 명의로 된 지분도 상당히 많았던 것.

잠실에 보유한 부동산 가치도 엄청났고 말이다.

“천억을 주겠네.”

“……!”

황 노인의 입에서 천억이란 말이 나온 순간, 나는 입을 떡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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