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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66화 (66/300)

66화 고림을 괴롭힐 방법은 많다

“여기 계신 이한성 부회장께서 자네와 만날 때 함께하고 싶다 하시지 뭔가?”

“아, 그렇습니까?”

“이한성 부회장님과 나이도 열 살 정도밖에 차이 안 나고, 같은 기업인이기도 하니 친해지면 자네에게도 좋을 걸세. 하하하.”

이원재가 그리 말하자 민건우는 애써 웃는 얼굴을 하였다.

하지만 경련하듯 떨어대는 얼굴 근육만 봐도 그의 심리 상태가 어떤지를 알 수 있었다.

‘내가 여기 올 거라고 상상이나 해봤을까?’

피식.

민건우의 속내를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과연 무슨 말을 지껄일지 궁금하군.’

나는 이원재의 말을 적당히 받아 주며 민건우를 예의주시하였다.

이원재 앞에서 어떤 말을 씨불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건우는 내가 이원재와 대화를 하는 내내 입을 꾹 다물고만 있었다.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이원재가 민건우를 바라보더니 혀를 차며 말했다.

“자네는 왜 이렇게 말이 없는가? 나였으면 이한성 부회장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배움에 대한 열의를 보였을 텐데, 쯧쯧!”

민건우는 순간적으로 표정 관리를 못 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열 살이나 어린 나를 마치 스승처럼 대하라는 이원재의 말에 그로서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원재 앞에서 속내를 표출할 수도 없는 일.

가까스로 표정을 수습한 채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아,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닌가! 설마 이한성 부회장이 자네보다 나이가 어려서 그런 거야? 에잉, 쯧쯧! 나 때는 열 살이 아니라 스무 살 차이 나는 미국인에게도 굽신굽신하며 금융을 배웠었는데!”

“민건우 부회장 정도면, 저에게 배울 게 뭐 있겠습니까? 오히려 제가 민건우 부회장에게 배워야지요.”

내가 그 같은 말을 하니, 민건우의 표정이 더욱 안 좋아졌다.

옹호해 주는 것처럼 보여도, 결코 그런 의도가 아님을 그 역시 모르지 않았다.

“역시 이한성 부회장! 보면 볼수록 느끼는 거지만, 참 겸손하기 그지없어요. 이래서 제가 이한성 부회장을 좋아합니다! 하하하.”

이원재는 내가 의도했던 대로 실컷 나를 칭찬해 주었다.

나를 어지간히 좋게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이만 일어나 볼 테니, 젊은 사람들끼리 재미 좀 보세요.”

이원재는 불콰하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가십시오.”

“다음에 또 봅시다.”

그렇게 이원재가 사라지자, 민건우가 불쑥 말을 건넸다.

“이런 곳에서 이한성 부회장님을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시겠죠.”

나는 빈정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민건우가 언짢은 표정을 잠시 짓더니, 애써 웃으며 화제를 전환하였다.

“요즘 부회장님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회사도 여럿 인수했다고 들었는데…… 이한성 부회장님의 행보에 대해 듣다 보면, 정말 놀랍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잘 알고 계시는데 왜 그러시는 겁니까?”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를 알고 혜성 그룹을 안다면, 고림 그룹이 도저히 넘볼 수 없는 상대란 것도 알 텐데 왜 그러시냐고요.”

민건우가 눈을 부릅떴다.

노골적이기 그지없는 나의 말에 당황한 거 같았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저로선 도무지 모르겠습니다만?”

“혜성 그룹과 저에 대해 그렇게 안 좋은 이야기를 하고 다녔으면서 모른 척한다고 통할 거 같습니까?”

“안 좋은 이야기라니요? 이한성 부회장님과 저는 한 번 보고 만 사이인데,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 다닐 리가 있겠습니까?”

“이틀 전에 강병철 검사를 만나서 한 이야기는 뭡니까? 화월관이란 요정에서 저에 관해 이야기하셨지 않습니까.”

“……그, 그걸 어떻게?”

민건우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경악이 떠올랐다.

강병철이란 검사와 단둘이 은밀하게 나눈 이야기를 내가 알고 있다는 게, 그로선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조흔 은행의 차기 은행장이 될 이광수 부행장과도 자주 만나면서 혜성 그룹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다니신다고 들었습니다.”

“…….”

더 놀랄 기운도 없는지 민건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매서운 눈을 하고서 말했다.

“그래서 어쩌라는 겁니까? 혜성 그룹이 부러워서 몇 마디를 하고 다녔을 뿐인데 그게 뭐, 큰 죄라도 됩니까?”

예상했던 대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발뺌하는 민건우였다.

나는 그런 민건우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과하지 않으시니, 어쩔 수 없군요. 공격을 당했는데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무슨 선전포고라도 하시는 거 같습니다.”

“예. 선전포고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이제 고림 그룹과 우리 혜성은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내 말을 들은 민건우는 코웃음을 쳤다.

나를 처음부터 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서인지, 내 말에 별로 감흥이 없는 듯 보였다.

‘이한철 회장이 고림을 적대하는 것과 내가 고림을 적대하는 것이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이는지 곧 알게 될 거다.’

나는 그런 민건우를 보며 싸늘하게 웃었다.

* * *

“혜성의 인맥이 이렇게나 대단할 줄은 몰랐군.”

민건우의 보고를 들은 고림 그룹 회장 민성준은 작게 혀를 찼다.

인맥을 동원한다면 쉽게 쓰러뜨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그 인맥을 동원하는 일부터 막히고 말았다.

“혜성 회장의 인맥이라기보다는, 이한성 개인의 인맥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한성이 그 정도란 말이야?”

“그놈이 돈 많다는 소문이 전국에 퍼져서 그런지, 모두가 그놈과 친해지고 싶어서 안달 난 상태입니다.”

“흠. 통장에만 수백억이 있다는 소문은 나도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었나?”

민성준 회장의 얼굴은 심각하게 굳어졌다.

혜성 그룹.

원래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지만, 한성이 후계자로 등장한 이후로 더욱더 까다로운 상대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아무래도 당분간 혜성을 놔두는 게 좋을 거 같다.”

자금 압박을 하는 건 의미가 없어 보였다.

개인 자산만 수백억에 달할 정도로 돈이 많은데, 은행에서 굳이 혜성 그룹의 여신을 회수할 이유가 없었다.

한성의 인맥을 생각하면 다른 수를 쓰는 것도 여의치 않을 거 같았다.

‘각하의 결단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어.’

작년 연말에 있었던 청와대 만찬에서 확실히 느꼈다.

대통령은 세계 그룹이든, 혜성 그룹이든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그만큼 두 사람을 바라보는 대통령의 눈빛은 예사롭지 않았었다.

하여 그는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면 그때 움직이기로 하였다.

“하지만 이한성 그놈이 저에게 선전포고했습니다.”

“선전포고를?”

“예. 고림 그룹을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민성준은 그 말을 듣고 헛웃음을 흘렸다.

“오만한 놈이군. 어린놈이 감히, 고림을 우습게 보는 건가?”

“그놈에게 공격당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공격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체급 차이가 크긴 했지만, 그래도 못 싸울 정도는 아니었다.

군부의 인맥까지 도와준다면 혜성에 그리 밀리지도 않을 터.

하지만 민성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놔둬라. 지금은 경거망동하지 말고, 대통령 각하의 결단을 기다려야 할 때다.”

“그렇습니까?”

“어차피 그놈도 말로만 요란 떠는 걸 거야.”

“표정은 진심처럼 보였습니다.”

“그 어린놈이 뭘 할 수 있겠어? 돈이 많다고 우리 회사를 인수할 수도 있는 것도 아닌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민건우는 이상하게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한성이 그냥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거 같았다.

* * *

“고림을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마음 같아서는 막강한 자금력을 동원해서 강제 합병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고림 그룹은 전형적인 순환출자 구조를 가진 그룹이었다.

시중에서 유통되는 주식을 전부 인수한다 해도 고림 그룹 비상장 계열사들이 가진 지분 때문에 인수 합병이 불가능하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인 법.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금을 압박하는 거다.)

“자금 압박이라. 고림 그룹의 인맥을 생각하면 쉽지 않을 거 같습니다만.”

(꼭 은행권을 움직일 필요는 없어. 찌라시만 잘 퍼뜨려도 고림 그룹은 큰 위기에 빠질 거야.)

“겨우 그 정도로 되겠습니까?”

(우리는 고림 그룹의 약점을 알고 있잖아? 고림 그룹의 자금 사정이 얼마나 심각한지 말이야.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를 찌라시로 사람들에게 알린다면, 은행권이든 사채시장이든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어.)

“하긴, 여신을 회수하지는 않아도 추가적인 대출은 막을 수 있겠군요.”

(그 정도만 해도 고림 그룹에게는 타격이 클 거다.)

현재 고림 그룹은 재정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자동차 산업에 진출한 이후로 계속 적자에 허덕이고 있었던 것.

고림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적자만 한 해 백억이나 될 정도였다.

그러니 은행권의 추가적인 대출만 막아도 고림 그룹으로선 타격이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 방법이군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니, 노사가 또다시 새로운 묘수를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고림 그룹의 회장이랑 부회장의 개인 비리를 폭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거야.)

“비리를요? 그게 과연 효과가 있겠습니까?”

고림은 단순히 군부 인맥만 강한 게 아니었다.

사법부와 검찰 인맥도 상당했는데, 웬만한 비리 정도야 그냥 넘어갈 가능성이 컸다.

(언론에 제보한다면 또 다르지. 적어도 고림과 연관된 권력자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지 않겠어? 고림과 친해지면 손해 본다는 식으로 말이야.)

“그렇군요.”

나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민성준이나 민건우의 비리가 언론에 보도된다면 그들의 행보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과 친한 권력자들도 그들을 만나는 게 꺼려질 테고.

‘다만 문제는 언론이 과연 고림 그룹의 비리를 보도할까인데, 그것도 지금의 내 영향력이라면 가능할 거 같기는 해.’

언론은 결코 정의롭지 않았다.

고림 그룹의 비리를 제보받았으면 그걸로 고림 그룹과 거래하면 거래했지, 그걸 그대로 보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나선다면 어떨까?

그때는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지금 나는 혜성 모직, 혜성 백화점에 이어 백약 양조의 광고까지 거하게 하고 있는 상태였다.

광고비로 지출되는 금액의 합이 한 달에 무려 5억.

이 정도 금액이라면 언론에서도 내 편을 들 가능성이 높았다.

(또 하나, 고림 그룹에게 유효한 타격을 줄 방법이 있다.)

“또요?”

나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만으로도 큰 타격을 입힐 거 같은데, 노사는 만족을 모르는 거 같았다.

‘정말 작정하신 모양이군.’

하기야, 예전부터 고림 그룹을 향한 원한을 불태우던 노사였다.

내게 힘이 없는 것도 아니니 노사로선 복수를 미루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겁니까?”

(서울시에 서울랜드 건설 의사를 타진해.)

“서울랜드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기는 이미 고림 그룹에서 짓기로 결정 난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말하는 거다. 어차피 고림은 서울랜드를 포기하지 않아. 다만, 계약 조건 변경을 요구하기 위해 일부러 공사를 미루고 있는 거지. 네가 만약 고림 그룹을 대신해서 지금의 계약 조건을 그대로 들어주겠다고 약속한다면 서울시에서도 긍정적으로 반응할 거다.)

“아! 저희가 나선다면 고림 그룹도 서울시를 상대로 뻣뻣하게 나갈 수가 없겠군요.”

(그래. 지금 서울시를 상대로 부리고 있는 개수작도 더는 못 부리게 될 거다.)

노사의 수에 나는 감탄했다.

현재 고림 그룹은 1차분 시설 투자비를 660억 원에서 480억 원으로 낮출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서울시는 이들의 요구에 분노하면서도 막상 공사가 중단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난다면 고림 그룹은 의도했던 대로 2백억 정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 내가 나서면 고림으로선 골치가 아프긴 하겠어.’

서울랜드를 포기할 수도 없으니 꼼짝없이 660억 원을 투자해야 할 터.

안 그래도 자금난을 겪고 있는 고림 그룹으로선 타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 * *

<한통의 투서로 고림 그룹 “망신살.”>

<고림 그룹 민성준 회장 부정 축재, 탈세 의혹!>

나는 오늘 자 신문을 읽으며 피식 웃었다.

가볍게 날린 잽이 고림 그룹에 유의미한 타격을 주니 그저 즐겁게만 느껴졌다.

‘이제 시작이다.’

지금 당장 고림 그룹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공격이 계속 누적된다면, 그룹 전체가 크게 흔들리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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