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투자천재-63화 (63/300)

63화 혜성 장학회를 만들어야겠어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을 만드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능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중국이나 동남아 시장을 노리는 게 현실적일 거야. 실제로 미래에는 아시아에서 한국의 패션이 유행하기도 하니까.)

“그렇습니까.”

노사의 말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명품 브랜드를 만드는 걸 반대하는 건 아니다. 어차피 바뀌게 될 미래니,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지.)

내 생각이 바로 그거였다.

언제까지 정해진 길만 밟을 수는 없는 노릇.

그러니 기회가 생겼을 때, 새로운 길을 밟아보는 게 미래를 위해서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잃을 거라고 해봐야 약간의 시간과 돈 말고 더 있겠어?’

개인 자산이 천억을 돌파한 지도 꽤 지났다.

이 정도의 자금력이 있다면, 새로운 시도가 실패한다고 해도 두렵지 않았다.

(그런데 너도 참 인기가 많구나. 요즘 들어 재벌들이 네 이야기만 하고 있어.)

“재벌들이요?”

(세계 그룹도 그렇고, 일성 그룹도 그렇고, 너에 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했다.)

“여론은 조용해졌는데, 재벌들은 여전히 저에게 관심이 많나 보군요.”

나는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언론이 떠들썩하게 보도했을 때부터 예상했던 결과였다.

‘내가 이래 봬도 혜성 그룹의 후계잔데, 관심을 안 보내면 오히려 섭섭한 일이지.’

심지어 혜성 그룹의 후계자란 타이틀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주식 시장의 큰손이라는 타이틀까지 가지고 있었다.

내 개인 자산까지 생각한다면, 재계에서 나에게 관심을 보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양 회장이 너를 사윗감으로 점찍은 건 알고 있지?)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생일 때 보여줬던 태도도 그렇고, 기현이를 제 비서로 보낸 것도 그렇고, 저를 굉장히 우호적으로 생각하는 거 같긴 합니다.”

솔직히 세계 그룹의 장남이 내 밑에서 일한다는 게 나로서는 기분이 묘하게만 느껴졌다.

물론 기현이는 착실하게 일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냥 우호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다. 너를 양인정과 이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어.)

“그렇습니까.”

(그런데 세계 그룹뿐만이 아니라, 일성 그룹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일성 그룹이라면 유지은 씨를 말하는 겁니까?”

(아니, 이호승 쪽이다.)

“차기 회장이라는 일성 부회장 말씀이군요.”

세계 그룹에 이어 일성 그룹까지 나를 노린다니.

예전의 혜성이었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었다.

‘그만큼 혜성 그룹의 가치가 높아졌다는 뜻이겠지.’

물론 혜성보다는 내 가치가 높아진 것일 수도 있었다.

대기업 총수들이라면 내 재력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을 테니까.

“쑥스럽긴 해도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제 몸값이 올라갔다는 의미 아닙니까?”

(긍정적인 일이긴 하지. 다만, 너에 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었으니 경각심도 가져야 할 거다.)

“경각심이요?”

(네 자산을 탐내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 백억도 아니고 천억인데? 전대환의 측근이라면 욕심을 내고도 남을 거야.)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10월에 투자했던 주식이 거의 200% 가까이 상승했다.

대출까지 포함하면 내 자산도 이제 1,300억이었다.

이 정도의 자산을 가졌으니, 누구도 나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대통령의 측근들.

내가 아무리 부자가 되었어도 그들만큼은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미리 인맥을 만들어 놓으라는 뜻이군요. 제 비자금을 이용해서.”

(그래. 보험료라고 생각하고서 권력자들에게 한 달에 얼마씩 바쳐. 네가 돈을 주는 동안엔 웬만해선 너를 건들지 않을 거다.)

“한 번에 너무 많이 주지 말고 꾸준하게 주라는 거군요.”

(너는 다른 재벌들처럼 무언가를 청탁하는 게 아니니까, 많이 줄 필요는 없지. 아무튼, 몇 년만 그렇게 보험료를 내면 이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가 될 때, 너는 제왕과도 같은 권력을 가지게 될 거다. 그때는 돈을 가진 자가 왕이니 말이야.)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정치인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나라가 된다니.

“그런데 민주주의 국가가 되면 나중에 뇌물을 준 게 문제 되지 않겠습니까? 청문회라던가, 꽤 고초를 겪게 될 거 같은데…….”

뇌물을 주는 거야, 조금 기분 나쁘긴 해도 주려면 얼마든지 줄 수 있었다.

비자금으로 쓸 차명 계좌에만 80억이 넘게 있었으니까.

문제는 뇌물수수로 인해 받게 될 불이익이었다.

괜히 뇌물을 줬다간, 나중에 있을 5공 청문회에서 정치인들에게 어떤 수모를 당하게 될지 모른다.

(너는 청탁을 하는 게 아니니 괜찮을 거다. 그리고 뇌물을 주는 상대만 잘 고른다면 아예 문제가 생길 여지도 없을 거야.)

“어떤 사람에게 뇌물을 줘야 하는 겁니까?”

(한진영 1차장 같은 자들이다. 시류를 읽는 것에 민감해서 군사정권과 함께 몰락하지 않는 자들 말이야.)

나는 턱 끝을 쓰다듬었다.

노사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다.

‘확실히, 한진영 같은 이는 미래에 국회의원까지 되고 떵떵거리며 잘 먹고 잘살다 은퇴하지.’

하나회나 보안사 등에 계속 남아 있는 자들은 초라하게 몰락하고 미리 정치계나 경제계로 떠난 이들은 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선 이후로도 승승장구하였다.

그러니 현재의 권력자이면서 미래에도 잘 나가는 이들에게 뇌물을 준다면 문제가 생길 여지는 없을 거 같았다.

‘한진영은 김기훈을 통해서 자리를 마련하면 되겠군.’

일단 한진영이 시작이었다.

안기부 다음에는 보안사, 경찰, 검찰 등등의 권력자들과 끈을 만들 것이다.

그렇게 한 명, 한 명씩 인맥을 꾸리다 보면, 그때는 인맥만으로 엄청난 권력자가 될 수 있을 거 같았다.

* * *

나는 50대 중반의 사내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였다.

“한진영 차장님,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허허,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훌륭한 애국자시라고?”

비리나 저지르는 안기부 차장에게 애국자란 소리를 들으니 무슨 놀림 받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은 채 한진영에게 쇼핑백을 건네주었다.

“이거 받아 주십시오.”

“이건?”

“로얄 살루트입니다. 차장님이 좋아하신다고 들어서 구해왔습니다.”

“오! 이 귀한 것을!”

한진영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당연히 현금이 들어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양주가 들어있으니 감탄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애초에 첫 만남부터 현금을 건네주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지.’

대뜸 돈을 건네면 긍정적으로 반응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을 탐욕스러운 인간으로 보느냐며 성낼 가능성이 높았다.

한진영처럼 정치인이 될 준비를 하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주의해야 했다.

그렇기에 나는 노사를 통해 알게 된 한진영의 취향을 이용하였다.

한진영의 반응을 보니 내 선택이 탁월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제가 좋아하는 걸 딱 알고서 이런 선물을 다 준비해오셨어요. 하하하!”

“차장님께서 검사로 활약하실 때부터 존경해왔습니다. 기회가 되면 꼭 저의 존경심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마침 기회가 생겨서 기분이 좋습니다.”

존경은커녕 얼마 전까지는 한진영이 누군지도 몰랐었다.

하지만 이왕 뇌물을 주기로 한 거, 어떤 아부라도 떨 자신이 있었다.

“검사 시절의 제가 유명하긴 했죠. 그런데 존경까지야, 하하하! 이거 참 부끄럽군요.”

로얄 살루트에, 몇 마디 아부까지 더 해지자 한진영이 나를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다.

호감까지는 아니어도 나에 관해 관심이 생긴 눈빛이었다.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차장님을 뵐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의외군요. 젊은 부회장께서 저를 그렇게 자주 뵙고 싶다고요?”

“성의를 보여주지 못했으니, 다음에 뵐 때는 제대로 성의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한 천만 원 정도 찔러줄 생각이었다.

지난번처럼 예고도 없이 5억을 뜯기느니, 미리 조금씩 보험료를 납부하려는 것이다.

“성의라…….”

“나라를 위해 대국적인 일을 하실 분이지 않습니까. 저도 그 일에 조금이라도 돕고 싶은 마음입니다.”

“허허, 저는 그런 걸 바라고 부회장님을 만나는 게 아닌데요.”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성의일 뿐이니,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 말에 한진영이 기분 좋게 웃었다.

알아서 뇌물을 주겠다는데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부회장은 저에게 바라시는 게 있습니까?”

한진영이 웃음을 지우고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저는 그저 차장님의 애국 헌신을 돕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허어. 그래도 하나쯤은 있으실 텐데요?”

“제가 바라는 게 하나 있다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기업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돈을 줄 테니, 외압을 막아 달라.

나는 다소 노골적으로 내 의도를 전달했다.

의도를 밝히지 않으면 나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을지 계속 의심하게 될 것이니, 미리 의도를 밝히는 게 나았다.

아니나 다를까.

내 말에 한진영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부회장 같은 애국자가 기업을 경영하는 데 그 누구도 방해하면 안 되죠!”

나는 그런 한진영의 반응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 * *

“이게 뭔 줄 아나?”

한진영이 양주를 꺼내며 그리 묻자 김기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바스 리갈입니까?”

“시바스 리갈은 무슨. 로얄 살루트일세.”

“아! 각하의 측근들만 마신다는 그 양주입니까? 무척 비싸다고 들었는데…….”

김기훈은 로얄 살루트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어디서 들어보기만 했지, 실제로 먹어본 적은 없는 술이었다.

박 대통령 때부터, 대통령의 측근들만 마셨다는 양주로 알려져 있었기에 더욱더 탐스럽게 느껴졌다.

“자네가 소개해 준 사람이 선물을 해줬네. 하하하!”

“이한성 부회장 말씀입니까?”

“그래, 그 친구! 처음 봤는데, 아주 괜찮은 친구더군.”

한진영의 반응에 김기훈은 눈을 크게 떴다.

설마 한진영이 이렇게까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오만한 놈이라서 당연히 싫어하실 줄 알았는데.’

사실, 김기훈은 한진영이 한성을 적대하길 바랐었다.

한성이 그의 약점을 손에 쥐고 있으니, 한진영이 대신 나서서 한성을 응징해주길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과 달리 한진영은 한성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성격 차이를 생각하면 믿기 힘든 결과였다.

“그 친구를 소개해 줘서 고맙네.”

“아, 아닙니다. 제가 한 게 뭐 있다고요.”

“앞으로 그 친구를 자주 상대해 주게. 만약 그 친구가 도움을 요청하면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받들겠습니다.”

김기훈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된 이상, 그 녀석을 계속 따를 수밖에 없나.’

안기부의 실세 중의 한 명인 한진영이 한성을 적극 지지하기로 하였다.

이러면 김기훈으로서도 방도가 없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성을 따르는 수밖엔.

* * *

갑자기 김기훈이 찾아와서는 이렇게 말했다.

“곧 이준성이 부회장님께 지분을 팔려고 할 겁니다.”

그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김기훈이 이준성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결과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앞으로도 어떤 지시든 내려주십시오. 부회장님의 명령이라면 반드시 수행하겠습니다.”

태도가 조금 바뀐 느낌이었다.

전보다는 훨씬 공손해진 느낌.

‘내가 한진영이랑 친해져서 그런 모양이군.’

인맥을 만들어 놓은 게, 이런 식으로도 효과가 나오는 거 같았다.

“거창하게 명령까지는 아니고, 시간 여유가 되시면 고림 그룹 좀 관찰해 주세요.”

“고림 그룹을요?”

“예. 거기 부회장 위주로 관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받들겠습니다!”

“자. 별건 아닌데 용돈이라고 생각하고 받아 주세요.”

나는 그에게 종이봉투를 건네주었다.

종이봉투 안에는 50만 원이 들어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약점을 손에 쥐고 있다고 그저 시키기만 해선 좋을 게 없었다.

채찍을 썼으면 당근도 줘야 하는 법이니까.

그래서 나는 용돈 수준에 불과한 돈일지라도 꾸준하게 챙겨주기로 하였다.

물론 나에게만 용돈 수준이지, 김기훈 입장에서는 꽤 큰 돈일 것이다.

‘인맥의 힘이 확실히 대단하긴 한 거 같단 말이지.’

김기훈이 물러나고 나는 혼자 상념에 빠졌다.

인맥.

이전까지는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지 않았었는데, 최근 들어 생각이 달라졌다.

대기업을 경영하려면 반드시 인맥의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세무조사만 해도 그렇지. 인맥이 없다면 언제든 탈탈 털릴 수 있어.’

세무조사뿐인가?

대출이나 국가 지원금을 받으려면 인맥이 필요하였다.

관급공사도 무조건 인맥이 있어야 수주를 받을 수 있었고 말이다.

‘앞으로 인맥을 만드는 데 최대한 신경을 써야겠어. 그리고 미래의 권력자들과도 인맥을 만들어야 할 거고.’

지금은 힘이 없는 야당의 정치인이나, 운동권 학생들.

군부정권의 눈치를 봐야 하니 대놓고 그들을 지원해주지는 못하겠지만, 한 달에 2, 3천만 원씩만 몰래몰래 지원해 줘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그 정도만 지원해 줘도 나를 은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물론 그 전에 혜성 장학회부터 만들자고.’

나중에 일성 공화국을 만드는데 일조하는 게 일성 장학생들이었다.

나 역시 이를 참고해서 혜성 장학회를 만들기로 하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