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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57화 (57/300)

57화 혜성 전자를 출범할 때가 왔다

‘역시 이런 찌라시가 유포되고 있군.’

어느 장군이 북진 발언을 했다든가.

북괴가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든가.

어느 지역에 북괴 간첩이 침투했다든가.

대충 그런 식의 찌라시들이 유포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주가가 더 내려가겠는데?’

하지만 나는 더 기다리지 않고 조금씩 주식을 매수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현금은 무려 6백억.

지금의 주식 시장에서 6백억은 너무도 큰 액수였다.

그렇기에 폭락장에서 미리 주식을 매수하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도 주가가 많이 내려간 상태이니, 이익은 상당할 것이다.

‘이참에 비자금도 많이 늘려야겠어.’

장희자에게 얻은 25억은 차명 계좌로 가장 고수익을 얻을 종목에다 투자했다.

안기부에 돈을 뜯기고 나니 비자금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언제 또 비자금을 쓰게 될지 모르니 적어도 백억 정도는 만들어 놓는 게 좋을 거 같았다.

* * *

시간이 흘러 11월이 되었다.

11월이 되자, 한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전쟁 분위기는 많이 수그러들었다.

엠바고가 걸렸는지, 아웅산 테러 사건에 대한 보도도 크게 줄었고,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방한한다는 소식까지 들려오면서 전쟁 가능성이 작아졌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하루 매출 3억을 돌파하였습니다.”

전쟁 분위기가 수그러들어서 그런지, 백화점 매출 성장세가 다시 회복됐다.

백화점 사업부의 하루 매출이 마침내 3억에 도달할 정도였다.

“서면 지점 매출이 5천만 원을 돌파했다죠?”

“예, 서면 지점 5천, 강남 본점이 2억 4천, 인천 지점이 1천입니다.”

강남 본점이야 원래 매출이 상당했으니 크게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서면 지점의 성장세는 나조차도 놀라울 정도였다.

혜성에서 인수하기 전까지만 해도 1년 매출이 50억에 불과하던 서면 지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하루에 5천만 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었다.

만약 이 기세대로만 간다면, 무려 350%가량 매출이 성장한 셈이었다.

“다만 인천 지점의 매출이 아쉽군요.”

유일한 실패가 인천 지점이었다.

한 달 매출이 겨우 3억에 불과하였다.

1년으로 치면 35억이 조금 넘는 수준.

처음 인수했을 때보다는 매출이 조금 늘긴 했지만, 다른 지점의 매출 성장세와 비교하면 많이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워낙에 서울로 빠져나가는 구매력이 많아서 쉽지가 않은 거 같습니다.”

“계속 방도를 마련해 보세요. 강남 본점의 푸드 코트가 주부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니, 그것도 참고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백화점은 마케팅이나, 명품 옷, 건물 외관 같은 것도 중요하지만, 먹거리가 차지하는 비중도 결코 작지 않았다.

강남 본점만 봐도 그랬다.

시중에서 팔지 않는 고급스러운 반찬거리를 팔기 시작한 이후로 주부들이 거의 매일 같이 찾아온다고 한다.

어떤 고등학교에서는 잘 사는 집 기준이, 우리 백화점에서 파는 반찬거리를 먹느냐 안 먹느냐로 나눠질 정도였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업무를 마친 뒤에 일찍 퇴근해서는 태신 증권으로 향했다.

대리에서 이제는 과장으로 승진한 정현우가 반갑게 맞이하며 오늘의 주식 시세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주가가 많이 올랐군.’

나는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액수가 액수여서 그런 것일까?

정현우가 그답지 않게 호들갑을 떨었지만, 나는 주가가 상승할 걸 예상하고 있었기에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그래도 기분은 좋네. 940억이라. 덩치가 커서 수익률이 생각했던 것보단 낮긴 해도 두 배 이상은 벌 수 있겠어.’

희미한 미소를 짓고는 잠실로 향했다.

참고로 잠실에는 한성 주택 사무실만 있는 게 아니었다.

7월에 인수했던 이재 전기도 잠실에 연구실을 두고 있었다.

“이 컴퓨터가 아까 전화로 말씀하셨던, 사이보 쓰리입니까?”

“예! 기존의 사이보 투에서 크게 진화시켰는데, 램을 무려 64킬로바이트까지 끌어 올렸습니다!”

이재 전기 사장, 이재현이 들뜬 목소리로 보고했다.

일성 전자에서 나와 이재 전기를 창업했던 그는 여전히 연구자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듯 보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디자인이 썩 나빠 보이지 않는군요.”

첨단 기계라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물론 노사의 기준에서는 낡고 둔하게 느껴지겠지만 말이다.

“애플 Ⅱ의 디자인을 참고했습니다!”

“양산화에는 무리가 없습니까?”

“혜성 유통에서 주요 부품의 수입 계약을 체결하였으니, 모니터를 제작하는 공장을 가동한다면 당장에라도 양산화를 할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 사이보 쓰리는 대부분의 부품을 수입해서 제작한다.

기술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아직은 중소기업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재 전기가 완제품을 제작할 능력은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모니터는 자체 생산이 가능해서 다행이야.’

처음에만 수입에 의존하면 된다.

곧, 모니터를 시작으로 핵심 부품들을 하나하나 자체 생산하게끔 만들리라.

“램(RAM)이 일종에 첨삭이 가능한 노트였죠? 롬(ROM)은 인쇄된 사전이고?”

노사가 매일같이 영어와 컴퓨터 등 온갖 공부들을 시켰었다.

그 덕인지, 나도 컴퓨터에 대해서는 일반인 수준을 넘어섰다.

물론 그래 봤자, 전문가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지만 말이다.

“정확한 비유이십니다! 램이 노트처럼 일과표를 써넣거나 지울 수 있다면, 롬은 인쇄된 사전처럼 영구적으로 저장된 자료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럼 사이보 쓰리의 사양으로 정확히 어떤 걸 할 수 있는 겁니까?”

“사이보 쓰리는 롬이 12킬로바이트, 램이 64킬로바이트로 게임이나 가정 내에서 쓰이는 일반정보를 처리할 수 있고, 회사의 업무에 쓰는 것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나는 작게 감탄했다.

원래는 가정 내에서만 쓸 수 있을 정도였는데, 겨우 석 달 만에 회사에서 쓸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였다.

“보통 이 정도 사양의 컴퓨터는 가격이 얼마나 합니까?”

“사이보 쓰리의 사양이라면 아무리 못해도 50만 원은 줘야 합니다.”

50만 원이라.

원가가 20만 원 정도이니 나쁘지 않아 보였다.

‘이 정도면 슬슬 혜성 전자로 이름을 바꿔도 되겠는데?’

물론 일성이나 다른 기업들에 비하면 부족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첫 스타트로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뭐, 외국산 컴퓨터를 그대로 조립 제작했다며 욕은 좀 먹겠지만 말이다.

“회장님에게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오오! 드디어 혜성 전자를 출범시키는 겁니까?”

“회장님이 허락하시면 출범하는 거죠.”

내가 그리 말했음에도 이재현은 들뜬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혜성 전자가 출범해야, 그룹 차원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한철 회장이 과연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군.’

아마 놀라지 않을까 싶었다.

백화점 사업을 진두지휘하면서 혜성 전자까지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말이다.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회장실에 들렸다.

이한철 회장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같은 건물에서 일하고 있는데도 참 보기 힘들구나.”

“서로가 각자의 업무에 집중하고 있으니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안색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별거 아니니 신경 쓸 거 없다.”

나는 우려스러운 얼굴로 이한철 회장을 바라봤다.

원래라면 내년에 쓰러져서 병원 생활을 하게 될 이한철 회장이었다.

물론 미래가 바뀌었을 수 있겠지만, 설령 그렇다 한들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몸 좀 챙기십시오.”

“하하, 노력해 보마.”

이한철 회장은 내 말에 의외라는 얼굴을 하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그 같이 대답했다.

“그런데 백화점 사업의 성과가 정말 대단하더구나. 하루 매출이 3억을 돌파했다고?”

“예. 매출이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내년에는 연 매출 1,000억 이상도 가능할 겁니다.”

“허어. 1,000억이라. 혜성 유통의 규모를 단번에 두 배 이상 키웠구나.”

“모두에게 인정받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미 충분히 인정받은 거 같다. 임원들과 대화할 때도 네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다들 너를 칭찬하기 바빴어.”

당연히 그럴 것이다.

혜성 건설의 임원들이라고 내가 세운 공을 깎아내릴 수는 없을 테니까.

“그리고 양익수 회장님도 너를 크게 칭찬하더라.”

“양익수 회장님이라면, 세계 그룹 회장님을 말하는 겁니까?”

“이번에 국세청장을 만나러 갈 때, 같이 식사를 했었다. 어쩌다 너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 양 회장님이 너를 아주 높게 평가하셨어.”

“그렇습니까?”

“다음에 기회가 되면 같이 양 회장님을 보러 가자꾸나.”

세계 그룹 회장이라.

혜성과 세트로 망하게 될 기업이라 그런지 뭔가 기분이 묘했다.

‘과연 이번에는 어떻게 되려나.’

잘 모르겠다.

하기야, 혜성 그룹의 미래도 어찌 될지 모르는 판국에 세계 그룹의 미래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국세청장과는 왜 만나셨습니까?”

“……기부하라더군. 아웅산 폭탄 테러의 희생자들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말이야.”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정부에서 기부를 강요하는 이유야 뻔했다.

뇌물.

기부야 요식행위고 기부금의 90% 이상이 권력자들의 뒷주머니로 갈 것이다.

‘이놈의 정부는 진짜 마음에 안 드는군.’

뭐 해주는 것은 없으면서 가져가는 것은 많았다.

그런 주제에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잔소리는 또 얼마나 심한지.

하루빨리 민주화가 돼서 기업을 경영하기 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기부금은 얼마나 주셨습니까?”

“15억을 주기로 했다.”

“다른 기업은 얼마나 주기로 했는지 아십니까?”

“미래가 51억, 일성이 45억, 세계 그룹은 우리와 같이 15억이다. 그 외에 다른 기업들도 거의 비슷비슷하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액수.

혜성 그룹이 재계 10위라는 걸 생각하면 적당한 액수처럼 보였다.

‘근데 세계 그룹과 똑같은 액수라는 게 괜히 찝찝하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렇다고 뇌물을 더 내는 것도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10억 더 준다고 해서 우리 그룹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테니까.

애초에 비자금으로 10억 단위의 액수를 모으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도 했고 말이다.

“아, 고림 그룹 부회장인 민건우는 무려 45억을 약속하더구나. 정부에게 무언가를 바라고서 그러는 거 같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혀를 찼다.

놈들이 노리는 거야 뻔하다.

보나 마나 혜성 건설이겠지.

‘정부만큼이나 마음에 안 드는 놈 같으니.’

연말이 돼서 천억 이상의 자금이 생긴다면 그때는 정말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았다.

혜성 전자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역시나 이한철 회장은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해 주었다.

장하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첨단 제품이라고만 생각했던 컴퓨터를 겨우 석 달 만에 양산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하니, 그로서는 놀랍기만 한 모양이다.

그렇게 이한철 회장과의 만족스러운 대화를 마치고 부회장실로 돌아오니 이소희가 주저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지난달에 찾아오셨던 대흥 상사의 김철수 부장이라는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반가운 손님은 아니었다.

반갑기는커녕 불편하기 그지없는 손님이었다.

하지만 굳이 김철수 부장, 아니 김기훈 처장과의 만남을 피하지 않았다.

“불러오세요.”

“아! 알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소희가 김기훈을 데리고 왔다.

김기훈은 처음 부회장실을 방문했을 때랑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마치 제집에 온 듯, 당당했다.

‘그렇게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노사께서 김기훈의 약점을 찾아내셨다.

물론 그 약점이란 게 김기훈 개인의 비리나 부패 행위를 의미하지 않았다.

김기훈에게 비리를 폭로한다고 협박해봤자, 씨알도 안 먹힐 게 분명했다.

오히려 그의 분노만 산 채, 안기부 전체에게 보복을 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안기부의 입장에서는 김기훈이 저지른 비리보다, 조직의 자존심을 지키는 게 우선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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