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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56화 (56/300)

56화 큰손 중의 큰손이 될 기회

“부탁드립니다. 꼭 김철수 그놈의 약점을 찾아와주십시오.”

(믿고 기다려라.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니. 아, 그런데 이거 하나 알아둬라. 곧 시월이라는 사실을.)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월이 왜요? 시월에 무슨 일이 생깁니까?”

노사가 언제 한번 대략적인 역사 흐름에 관해서 설명해 준 적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대략적인 흐름이었다.

올림픽이나, 금융실명제, IMF 같은 대표적인 역사만 알려준 것이다.

나비효과 때문에 크게 의미가 없을 거라며 세세한 역사는 알려주지 않았다.

(생기지. 아주 중요한 일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겁니까?”

(전대환이 죽을 뻔한 일이다.)

나는 눈을 부릅떴다.

대통령이 죽을 뻔한 일이라니.

실로 놀랍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정말입니까? 대통령이 죽을 뻔했다는 게? 그 사람은 노사께서 회귀하기 전까지만 해도 잘 먹고 잘살았다면서요?”

(천운으로 살아남았지. 원래라면 테러를 당해 죽을 목숨이었는데 말이야.)

“테러라고요? 우리나라에서 테러가 일어나는 겁니까?”

(미얀마, 아니, 지금은 버마인가? 아무튼 그곳을 방문하다 테러를 당하지. 15명인가, 17명인가 그 정도로 많은 사람이 사망했던 거로 기억한다.)

“허어.”

그렇게 많은 사람이 테러로 죽는다고?

노사의 말이 아니었으면 절대 믿지 못했을 이야기였다.

(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매수한 주식들을 미리 정리해놓으라는 거다. 아마 11월 중순까지는 전쟁 위험 때문에 주식이 계속 떨어질 거야.)

“어, 그러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 겁니까?”

(그야 물론이지. 전쟁이 일어났으면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이 멀쩡히 개최됐겠어?)

“이상한 일 아닙니까. 테러를 저지른 건 북괴일 텐데요.”

(당연히 북한이지.)

“그런데 왜 전쟁이 벌어지지 않은 겁니까? 대통령이 어떤 사람이든 간에, 북괴가 우리 대통령을 공격한 건, 사실상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행위 아닙니까?”

나는 조금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리 대통령이 독재자이고 광주에서 무고한 국민을 죽인 살인마라 해도 어쨌든 우리나라의 대통령인 건 사실이었다.

대통령이 공격당했는데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미국이 강하게 말렸다. 전쟁하지 말라고.)

“…….”

입안이 쓰게 느껴졌다.

새삼스레 이 나라가 약소국인 게 실감 났다.

(그래도 다행이지. 이때, 전쟁했으면 한국이 그렇게 발전할 일도 없었을 테니까. 어떻게 보면 이때 전쟁을 하지 않은 게 전대환의 최대 업적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전대환은 전쟁을 참은 대가로 미국에게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었지만 말이야.)

“미국에게 뭘 얻어냈답니까?”

(정권에 대한 지지도 지지지만, 미국의 압력으로 개발을 포기해야 했던 지대지 탄도 미사일 같은 군사 무기에 대한 재개발이 허용됐지.)

“그렇습니까?”

(사실 전대환이 이번 테러로 얻은 건 그뿐만이 아니야. 제3세계 국가들을 상대로 한 외교전도 큰 승리를 거두었지. 북한이 워낙에 미친 짓을 벌여서 친북 성향이 강했던 제3세계 국가들조차 북한과 단교하게 되거든.)

노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테러의 최대 수혜자는 대통령인 거 같았다.

미국으로부터 이것저것 지원을 받는 데다 북한과의 외교전에서 승리까지 거두니 말이다.

“그런데 테러를 막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왜?)

“많은 사람이 죽으니까요.”

(내가 전에 말했을 텐데? 너는 신이 아니니 사람들을 구하는 데 힘쓰지 말라고. 괜히 그런 곳에 마음 쓰다가 만에 하나, 너 때문에 죽지 않아도 될 사람이 죽게 되면 어쩌려고 그러냐?)

정론이었다.

나는 노사 덕에 미래를 일부 알게 됐지만, 그렇다고 신이 된 것은 아니었다.

자연재해나 테러로 인한 희생자들을 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뜻이었다.

‘일단 내 일에나 집중하자.’

남을 보살피는 일은 나중에 내가 힘이 생겼을 때나 할 일이었다.

그날 저녁, 황 노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요즘 자네의 소식을 많이 듣고 있네. 이번에 내 딸아이도 자네의 백화점을 갔다 왔다지 뭔가.

“운이 좋았습니다.”

-매번 그렇게 운이 좋으면 그것도 실력인 거야. 끌끌! 그런데, 부동산은 또 안 알려주나?

“아직은 마땅히 찾은 게 없습니다. 나중에 좋은 곳 찾으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꼭 말해주게. 내가 요즘 자네의 전화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네!

“하하, 알겠습니다.”

그렇게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황 노인이 불현듯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기부에서 자네에게 사람을 보냈다고 들었네.

김철수 부장이 나를 찾아온 걸 어떻게 알고 그리 묻는 걸까?

황 노인은 정말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거 같았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내가 설마 안기부에 끈이 없겠나?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황 노인은 역시 예사로운 인물이 아니었다.

“안기부에 끈이 있으셨으면, 좀 막아주시지 그랬습니까.”

내가 앓는 소리를 하니 황 노인이 끌끌거리며 말했다.

-어쩔 수 없었네. 나도 지금은 세무조사 때문에 여유가 없거든.

황 노인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지금 황 노인의 사정이 그리 좋지 않다는 사실을.

“세무조사를 오래전부터 대비하고 계셨는데도 피해가 크십니까?”

-정부에서 작정한 거 같더군. 이참에 지하경제를 확실하게 길들이려는 모양이야.

“걱정이군요. 황 회장님은 괜찮으십니까?”

-끌끌! 나보다는 내 아래에서 일하는 전주들이 문제지. 꽤 타격이 크거든. 금전적으로든, 시간적으로든 말일세.

“그렇습니까?”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필 이런 시기에 황 노인이 힘을 잃다니.

‘그나마 황 노인 본인이 큰 타격을 입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안기부에서 뇌물을 요구했다지?

“예, 그렇습니다.”

-일단 달라는 대로 건네주고, 조금만 기다리게. 지금 나서기에는 골치가 아파. 자네를 진짜 노리는 사람은 김기훈 처장 따위가 아니거든.

김기훈 처장이란 다름 아닌, 나를 찾아와서 협박했던 김철수 부장을 말한다.

“당연히 더 윗선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안기부의 권력이 강해도 일개 처장이 대기업 부회장인 저를 건들 리는 없지요.”

-처장이 아니라 차장이 있네. 국내를 담당하는 한진영 1차장 말일세. 그자가 자금을 모으라는 지시를 내렸더군. 아마 국회의원이 되려고 준비를 하는 모양이야.

차장이라.

나는 안색을 구겼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거물이 나를 노리고 있었다.

“기다리면 무슨 방도가 있는 겁니까?”

-내가 힘을 되찾으면, 안기부에 압박을 가해주겠네. 더는 자네를 건드리지 못하게끔 말이야.

그 말을 듣자, 황 노인의 존재가 참 든든하게 느껴졌다.

매번 하는 생각이지만, 황 노인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길 정말 잘한 거 같았다.

“그래 주신다면 저로선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끌끌! 자네가 해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네.

“아 참, 황 회장님께 해줄 말이 있습니다.”

-오! 말해보게. 경청하겠네.

“지금도 주식을 하고 계신다면 모두 정리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모두 정리하라? 설마 작년에 있었던 그 일처럼 주가 폭락을 예상하는 건가?

“예. 작년보다 더 가파르게 폭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알겠네. 자네가 그리 말한다면, 당연히 따라야지.

“이유는 묻지 않으시는 겁니까?”

-하하, 자네의 말을 의심할 이유가 있겠나.

나에 대한 신뢰가 굳건하기는 한 거 같았다.

별다른 설명을 해주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

“그런데 혹시 공매도를 생각하고 계신다면, 이번만큼은 말리고 싶습니다.”

-음……. 어째서 그런가?

“자세히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단지, 이번 폭락장으로 이득을 취한다면 높으신 분들이 아주 노여워할 거라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끌끌. 무슨 의민지 알겠네. 공매도는 하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게.

다행이었다.

도와주고도 욕먹을 일은 생기지 않을 거 같았다.

* * *

<버마에서 부총리 등 16명 사망!>

<전 대통령, 6국 순방 취소, 급거 귀국.>

<북괴 즉각 대대적 보도!>

<레이건, 진상규명 협조를 약속!>

1983년 10월 10일.

나비효과는 없었는지 역사에 있었던 일이 그대로 일어났다.

버마에서 대통령 수행원들이 북괴 요원들에게 테러를 당한 것이다.

‘역사가 조금 바뀌어서 대통령이 콱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건 아쉽네.’

물론 괜히 하는 생각이었다.

진짜로 대통령이 테러를 당해 죽었다면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도 남았을 터.

역사가 바뀌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오셨습니까, 부회장님.”

“회사의 분위기가 꽤 혼란스러워 보입니다.”

평소처럼 회사에 출근하니, 혜성 건설 직원들이 복도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모습이 보였다.

저마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분위기였다.

“……당장에라도 전쟁이 날까 봐, 직원들이 매우 동요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부회장님은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역사를 알고 있으니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비서들은 감탄한 기색으로 나를 쳐다봤다.

내가 무슨,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 철인처럼 느껴진 모양이었다.

속으로 픽 웃고는 몇 가지 지시를 내렸다.

“혜성 유통에 전해서 당분간 전단지 광고는 자제하라고 하세요. 탤런트 불러오는 등의 요란한 행사도 자제하시고요.”

“예, 알겠습니다.”

나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사재기를 하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사망자 명단까지 나와서 추도의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으니, 이럴 때는 요란한 행사나 광고는 자제하는 것이 좋았다.

‘그래도 이거 하난 다행이군. 개업한 이후에 사건이 터졌다는 것. 만에 하나 개업을 조금만 더 늦게 했으면 타격이 컸겠어.’

만약 개업하자마자 이런 일이 생겼다면?

광고도 제대로 못 했을 테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대놓고 운이 좋았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우리로서는 천만다행이었다.

따르릉! 따르릉!

그때 갑자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저, 차진만 상무입니다. 감사 인사를 하려고 전화드렸습니다. 부회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주식을 정리하셨나 보군요.”

-예! 모두 부회장님 덕입니다.

“아닙니다. 결정은 상무님이 하신 건데요.”

-앞으로는 부회장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그럼 이전에는 안 그랬다는 건가?

나는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런데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부회장님께서는 전쟁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차진만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러자 나는 헛웃음 지었다.

설마 임원인 차진만까지 전쟁을 걱정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미국이 저리 나서는데 설마 전쟁이 나겠습니까. 걱정하지 말고 회사 업무에 집중하세요.”

-아, 정말입니까! 하하하! 부회장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정말 위안이 됩니다!

내 말에 그는 크게 안심하였다.

앞으로 내 말이면 무조건 따르겠다고 하더니, 거짓은 아닌 모양이었다.

차진만과 통화가 끝난 이후에도 전화가 열 통이나 왔다.

그중 대부분이 임원들의 전화였는데, 전화를 건 이유는 차진만과 비슷했다.

‘직원들뿐만이 아니라 임원들도 전쟁이 일어날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군.’

하기야 나도 노사가 아니었으면 지금쯤 초조함을 느끼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를 안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인 거 같았다.

* * *

‘이렇게 사람들이 공포에 휩싸여 빠져있을 때가 큰돈을 벌 기회지.’

우선 은행에 들렀다.

부동산을 담보로 현금을 빌리기 위함이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언제든 찾아주십시오!”

무려 5백억이나 빌렸음에도 은행은 귀빈 대우를 해주었다.

보증이 그만큼 확실하다는 의미였다.

‘잠실의 가치가 많이 오르긴 했나 보군. 하긴 샤롯에서 마구잡이로 사들이고 있으니, 그럴 만하지. 아무튼, 이로써 6백억인가?’

한성 주택이 소유한 부동산을 담보로 5백억을 빌렸고, 기존에 주식을 운용하던 현금 자산이 75억이었다.

그리고 장희자에게 받은 내 비자금도 안기부에 뇌물로 바치고도 25억이나 남아 있었고.

다 합하면 현금 자산이 600억이나 됐다.

‘연말까지 세 배만 올라준다면 은행 빚과 황 노인에게 빌린 돈을 다 갚고 나서도 내 현금 자산이 천억이다.’

천억!

그야말로 억 소리가 나오는 금액이었다.

만약 이 정도의 현금 동원력을 얻게 된다면 나는 단순한 큰손이 아닌, 큰손 중의 큰손이라 불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큰손 중의 큰손이 된다면 그때는 정말 누구도 나를 함부로 할 수 없을 거다.

황 노인만 해도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한, 대통령의 최측근조차 적대하기 꺼려하는 존재이지 않은가.

나 역시 그리될 것이다.

그때는 안기부의 실세라는 한진영 차장 같은 인물도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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