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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48화 (48/300)

48화 이준성을 끝장낼 때인가

“확실히 차별화된 전략이긴 하군요.”

“만약 대중적인 백화점으로 자리를 잡는다면, 혜성 모직의 브랜드 제품도 판매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수익도 극대화되겠지요.”

“괜찮은데요?”

“김한선 상무께서 한번 시장 조사를 해보세요. 제가 다음 달에 부회장이 되면 그때 본격적으로 백화점 사업에 뛰어들 겁니다.”

그렇게 김한선과 대화를 나누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다가왔다.

“부킹 안 합니다.”

김한선은 웨이터인 줄 알고 손을 휘저었지만, 그 사내는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맥주잔을 건넸다.

“좋은 거니까, 뭔지 물어보지는 말고 일단 마셔보세요.”

“술은 이거로 충분합니다.”

“공짭니다. 공짜. 맛만 보세요! 진짜 끝내줍니다.”

공짜라는 말에 김한선이 혹하는 얼굴을 하였다.

월급 많이 받는 임원인데도 공짜는 좋은가 보다.

난 그 모습에 피식 웃고는 사내에게 물었다.

“히로뽕입니까?”

“오우, 저는 그런 거 모르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봐도 히로뽕 같은데.”

사내가 손사래를 치며 절대 아니라고 대답했다.

물론 나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맥주에 히로뽕을 넣어서 권한 뒤에 저도 모르게 히로뽕 중독자로 만드는 게 요즘 마약밀매 조직의 트렌드였다.

그리고 내가 이 나이트에 온 이유도 바로 이곳이 마약밀매 조직의 활동 영역이기 때문이었다.

“아니라면 아쉽게 됐군요. 주변에 약물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데 말입니다.”

김한선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로선 지금의 상황이 괴상하게만 느껴질 것이다.

반면 중간 판매책으로 보이는 사내는 내 말에 흥미를 드러내고 있었다.

“혹시 그 사람, 돈이 많습니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사내가 직접적으로 관심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돈이야 아주 많죠. 압구정에서 사는데, 재산이 아마 억 단위는 될 겁니다.”

“억! 재산이 억이라고요?”

“재벌이니 돈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런데 지금 후계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난 상황이라,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재벌이란 말까지 들으니, 사내의 눈에 탐욕이 어렸다.

마약을 비싸게 팔 생각에 벌써 흥분을 느끼고 있는 거 같았다.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히로뽕이 없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지금은 없어도, 구할 방도야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흐흐! 그러니 그 사람이 누군지만 알려주시죠.”

기다리던 말이었다.

나는 뜸을 들이지 않고 바로 말했다.

“하이츠란 룸살롱에 자주 갑니다. 매주 토요일에는 거의 무조건 간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이름은 이준성이고, 자주 노는 친구들도 경우 레저 이사에, 지성 학원 이사 등 꽤 잘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이재성이 자주 놀러 가는 룸살롱을 알려주자 사내의 눈에 어린 탐욕의 빛이 더욱 강해졌다.

지인들까지 잘 나가는 사람들이라 하니, 더 탐이 날 수밖에 없었다.

“부대표님,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사내가 물러나고 김한선이 심각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대꾸하였다.

“별거 아닙니다. 그냥 이준성 전무를 생각해서 도움이 될까 하고 말해본 겁니다.”

“제 생각이 맞다면 저 사람은…….”

“어디 쪽 사람이든 저희랑 상관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저희가 무슨 마약을 권하고 다닌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허어.”

“그리고 만약 저 사람이 이준성 전무에게 약을 건네준다면 저야 좋은 일이지요. 마지막 남은 경쟁자를 처리할 기회니까.”

김한선이 침을 꿀꺽 삼켰다.

내 말에 섬뜩함을 느낀 거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김한선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확실히, 통하기만 한다면 나쁠 게 없겠습니다.”

“뭐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겠죠.”

실패해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다른 수는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까.

* * *

“지은아! 너는 도대체 언제 결혼하려는 거냐. 네 나이가 벌써 26이야!”

아버지, 유정석의 잔소리가 시작되자 유지은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요즘 들어 부쩍 잔소리가 심해지고 있었다.

“밥 좀 먹자!”

“지금 밥이 넘어가?”

“아, 그러면 안 먹는다?”

유지은이 수저를 내려놓자 이번에는 그녀의 어머니가 나섰다.

“엄마가 기껏 밥을 해줬는데, 겨우 한 숟가락 뜨고 안 먹는다고?”

“아빠가 계속 잔소리하잖아.”

“네가 결혼을 안 해서 그런 거 아니야. 그러니 얼른 결혼 좀 해!”

“엄마까지 왜 그래? 나 아직 젊다니까.”

“젊기는! 스물다섯 넘겼으면 노처녀야!”

“그것도 이제 옛날이야기야! 요즘 강남에선 서른 살에 결혼하는 경우도 많거든. 여정이 언니도 아직 결혼 안 했잖아!”

“이것아. 여정이가 너랑 같아?”

“나는 뭐가 다른데?”

그녀가 당당하게 따지니 유정석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비록 직계는 아니어도 그녀 역시 일성 가의 여식이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재벌 가의 여식은 결혼을 늦게 할수록 흠이 되는데, 그녀는 아직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거 같았다.

“그래서 너는 언제 결혼하겠다는 거야?”

“아직은 일이 더 좋아.”

“일은 나중에도 언제든 할 수 있다니까!”

“어떻게 그래. 남편이 원하지 않으면 꼼짝없이 집에서만 있어야 할 텐데.”

유지은은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엘리트 여성이었다.

대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많았기에, 전업주부로 사는 것을 원치 않았다.

사실 그녀는 자신만의 사업을 꾸리려는 생각까지 품고 있었다.

물론 지금 당장 사업가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말이다.

“더는 못 기다려! 내가 찾아놓은 남편감이 몇 명 있으니까, 너는 오늘 당장 선택해. 누구와 결혼할지!”

유정석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이 정도면 상당히 배려해줬다고 생각했다.

딸에게 무려 ‘선택권’을 줬으니 말이다.

다른 재벌가였으면 선택권은커녕 발언권조차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유정석의 배려에도 유지은은 아무 대답 없이 토라진 얼굴을 할 뿐이었다.

그러자 유정석이 더는 참지 못하고 외쳤다.

“이 배은망덕한 것아! 네가 미국에서 안전하게 거하며 공부할 수 있게 뒷바라지해 준 게 누구냐. 너를 귀족 가의 여식처럼 풍족하게 살게 해준 게 누구냔 말이다!”

“…….”

“네가 나의 딸로서 누려왔던 모든 것이 그냥 공짜로 주어진 거라 착각하지 마라! 모든 재벌가의 여식에겐 의무가 있고, 그 의무가 바로 정략결혼이다!”

유정석의 호통에 유지은은 손을 벌벌 떨었다.

그녀 앞에서는 단 한 번도 큰소리를 친 적이 없었던 유정석이었다.

팔불출이라 불릴 정도로 언제나 그녀를 귀하게 대했다.

그렇다 보니 그녀로선 지금의 상황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설마 유정석이 그런 생각을 품고 있을지는 몰랐다.

하지만 유지은은 눈시울을 붉히면서도 끝내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당찬 성격을 가진 그녀답게, 이를 악문 채로 눈물을 참아냈다.

“알았어. 내가 철이 없긴 했네. 26년을 살아오면서, 여태 의무 같은 걸 모르고 살았으니까.”

“아빠가 말을 심하게 했다면, 미안하다.”

“뭐가 미안해? 아빠는 솔직하게 말해준 거뿐이잖아. 내가 철이 없었다는 사실을.”

“꼭 철이 없다는 말은 하려던 것은 아니다. 그냥, 여자는 나이를 먹을수록 결혼할 때 손해 본다는 걸 네가 알아줬으면 해서 한 말이야.”

“알았다니까. 나 진짜 아무렇지 않아.”

“그러냐?”

“그래서 남편감이 누군데?”

유정석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애써 태연한 척하는 그녀의 모습이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의 결혼은 가문을 위한 일이기도 했지만, 그녀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우선 첫 번째로 소개할 사람은 광보 그룹의 장남이다. 너도 아는 사람일 텐데, 서른이라 나이를 조금 먹긴 했어도 검사에다가 광보 그룹의 장남이기까지 해서 나쁘지 않아.”

“다음은?”

“새영 그룹의 장남은 어떠냐.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높고, 나이도 너랑 똑같은데.”

“다음은?”

“고를 생각은 있는 거야?”

“다 들어보고 골라야지. 그리고 나중에 사진도 보여줘.”

“사진은 왜? 남편을 사진 보고 고를 셈이냐.”

“막상 골랐는데 못생겼으면 안 되잖아. 잘 생기진 않아도 평범하게는 생겼으면 해.”

“……알았다. 사진도 준비해오마.”

“다음은 누구야?”

“혜성 그룹의 삼남이다. 아마 이 사람은 네가 아예 모를 거야.”

“혜성 그룹?”

“그래. 혜성처럼 등장해서 혜성처럼 혜성의 후계자가 된 인물이다. 이름은 이한성. 얼굴만 본다면 내가 점찍은 사람 중에는 가장 나을 것이다.”

“이한성? 이름이 이한성이라고?”

유지은은 처음으로 호기심을 드러냈다.

익숙한 이름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그 사람인가? 혜성에서 일한다고 듣기는 했는데…….’

아직은 한성에 대해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다만 집에 데려다줄 때는, 조금이지만 호감을 느꼈었다.

키도 훤칠하고 잘 생긴데다가 매너까지 좋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 사람이 맞다면……. 한번 만나볼까?’

어차피 유정석의 태도를 보면 누군가 한 명은 만나봐야 할 거 같았다.

이왕 만나야 한다면 조금이라도 호감이 있는 상대와 만나는 게 좋지 않을까?

* * *

나는 한성 주택의 직원을 뽑을 때, 무척이나 신경 써서 뽑았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신경 써서 뽑았던 직원들이 있었으니, 바로 ‘정보’를 담당할 직원들이었다.

앞으로 여러 사업을 할 텐데, 정보만큼 중요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사가 있지만, 아무래도 노사에게만 의존할 수는 없지.’

애초에 노사부터가 정보 조직을 만들라고 지시하였다.

자기 혼자서는 정보를 모으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말이다.

“오늘은 보고할 게 많습니다. 하하.”

“어떤 겁니까?”

“잠실과 관련된 건데, 샤롯에서 잠실의 땅을 사들이고 있다 합니다.”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말하는 사내의 이름은 인정민.

그냥 평범한 신생 회사였으면 영입하기가 어려웠을 고급 인력이었다.

경찰의 고위 간부 출신이었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혜성 그룹의 후계자란 신분 덕에 영입할 수 있었다. 비싼 월급은 덤이었다.

“아직도 잠실을 포기하지 않았나 보군요.”

“신 회장 성격이라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그 사람, 제가 알기로 집착이 어마어마합니다. 흐흐.”

“그럼 저에게도 뒤끝을 가지고 있겠습니다.”

“뭐, 대표님께서 혜성의 수장이 되신다면 문제 될 게 있겠습니까. 고작해야 껌이나 파는 기업인데 말입니다.”

인정민은 샤롯을 무시하고 있었다.

샤롯이 내년부터 고속 성장하여 1987년에는 결국 10대 기업에 진입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물론 1986년에 세계 그룹과 우리 혜성 그룹이 무너져서 그런 결과가 나온 거지만 말이야.’

참고로 샤롯 그룹뿐만이 아니라 10위권 밖에서 놀던 고림 그룹도 혜성 건설을 합병함으로써 9위까지 치고 올라간다.

나로서는 두 기업 모두 좋아할 수가 없었다.

“다른 거는 또 뭐가 있습니까?”

“지시하신 대로 이재 전기에 대해 조사해왔습니다. 조사해 보니 사장이 꽤 능력자더군요. 한국대 전자공학과 출신에 일성 전자를 다녔었습니다.”

이재 전기는 사이보 투라는 이름의 컴퓨터를 출시한 중소기업이었다.

컴퓨터의 성능도 괜찮았고 사장이 워낙 출중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컴퓨터 시장에 진출할 때, 첫 번째 인수 대상으로 삼을 예정이었다.

“자금은 어떻습니까?”

“역시 중소기업이다 보니 자금이 많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사장이 욕심은 많은데, 돈이 없어서 뭐를 못 하고 있더군요.”

“좋군요.”

“저에게 맡기신다면 2억에서 3억 정도에 인수할 수 있을 겁니다. 하하.”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이재 전기에 대한 이야기가 끝이 나자 인정민이 마지막으로 보고하였다.

“대표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준성 상무가 히로뽕에 중독된 거 같습니다.”

“어떤 정보가 있는 겁니까?”

“황성재라는 히로뽕 전달책이 있는데, 이자와 계속 만나고 있습니다. 분명히 상습적으로 투약하고 있을 겁니다.”

인정민의 말에 나는 눈을 빛냈다.

드디어 이준성을 처리할 기회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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