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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47화 (47/300)

47화 신경 쓸 가치도 없다

샤롯 그룹의 회장, 신진호는 최근 들어 심기가 불편하였다.

“이한성이란 놈의 뒷배가 누구인지 알아냈나?”

“뒷배는 따로 없었습니다.”

“뒷배가 없다고? 그럼 그 새파랗게 젊은 놈이 무슨 돈이 있어서 잠실역 부근의 땅을 전부 사버렸다는 거야!”

심기가 불편한 이유는 단순했다.

하필 그가 노리고 있던 잠실역 부근의 땅을 엉뚱한 사람이 가져갔기 때문이었다.

“그냥 젊기만 한 놈은 아니었습니다. 알아보니, 혜성 가의 삼남이었습니다.”

“혜성이라고?”

신진호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잠실 땅을 산 주체가 재벌, 그것도 10대 재벌 중의 하나인 혜성 그룹이었다니.

“그걸 왜 이제야 알아낸 거야! 진즉에 알았더라면, 어떤 식으로든 대처를 했을 텐데!”

누군가가 잠실 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성 주택이라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회사여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땅을 사봐야 얼마나 사겠냐며 우습게 봤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고 확인해 보니, 거의 10만㎡에 가까운 토지를 사들였다.

현금으로 따지면 백억, 아니, 잠실역 근처의 땅값을 생각하면 이백억에 달하는 규모라고 볼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직원도 몇 명 없고, 완전히 신생 기업이라서 방심하고 말았습니다.”

“그럼 혜성에서 잠실의 땅을 사들인 이유는 또 뭐야?”

“혜성에서 땅을 사들인 게 아닌 듯싶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렇다면 설마 혜성의 도움 없이 자기 돈으로 그 많은 땅을 매입했다고 말하는 거야?”

“아무래도 그런 거 같습니다. 조금 조사해 보니, 주식으로 큰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요즘 주식판에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큰손이란 소문도 있습니다.”

그룹 기획조정실의 실장을 맡고 있는 허영만의 말에 신진호는 눈을 부릅떴다.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겨우 20대에 불과한 청년이 그룹의 도움 없이 이백억의 현금을 마련했다는 뜻이 아닌가.

“주식의 신도 아니고 그게 가능한 이야기야?”

“저도 자세히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혜성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신진호는 턱 끝을 쓰다듬었다.

어떻게 자금을 마련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혜성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협상의 여지는 있을 거 같았다.

“그런데 혜성 가의 삼남이라면, 이번에 새롭게 후계자가 되었다는 그 사람 아닌가?”

“예, 동일 인물입니다.”

“골치 아프군. 혜성의 후계자가 되었으면, 어지간한 돈을 쥐여주지 않고서는 만족하지 않을 거란 뜻이 아닌가.”

“아무래도 그럴 거 같습니다.”

“애초에 그놈이 잠실을 노린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투기 목적이 아니겠습니까. 혜성 개발이 목동 땅을 사들인 것도 그자가 직접 지시한 결과라고 합니다.”

잠실을 개발하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신진호로서도 나쁘게 볼 상황은 아니었다.

나중에 돈을 모아 한성의 땅을 사들이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한성이 잠실에 다른 뜻을 두고 있다면 곤란했다.

‘그건 안 될 일이야! 잠실역 주변의 땅은 전부 내가 가져야만 한다.’

그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그 꿈은 다름 아닌, 잠실에 샤롯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자네가 직접 협상을 해보게.”

“알겠습니다. 그런데, 금액은 어느 정도로 하면 되겠습니까?”

“최대 삼백억까지 가능하네. 자금은 어떻게든 마련해보지.”

사실 지금 사봐야 크게 쓸 곳이 없는 땅이었다.

기존에 매입해두었던 땅도 아직 놀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한성은 혜성 그룹의 회장이 될 사람이었다.

자칫 시간을 끌었다간, 혜성 그룹이 본격적으로 잠실을 개발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무리해서라도 한성이 가진 땅을 인수하기로 하였다.

‘만약 협상을 거절하고 내 영토를 침범하려 든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으리라!’

신진호는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 * *

다음 달에 부회장이 된다지만, 내 일상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오늘도 평소처럼 혜성 개발에 출근해서 업무를 봤다.

“자네는 대출에 대해 부정적인 거 같군. 처음 목동 부지를 살 때는 백억이나 빌렸으면서 말이야.”

“급한 일도 없는데, 굳이 부채율을 늘릴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하기야, 우리 그룹의 부채율이 너무 높긴 했지. 알겠네. 자네의 결정을 존중하지.”

이훈의 말에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언제부터인가 굉장히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이훈이었다.

아직 나의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회장이 되고 난 이후에도 나를 지지해 줄 거 같았다.

“부대표님, 샤롯 그룹의 기획조정 실장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대표이사실을 나오니, 복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이소희가 그와 같은 말을 하였다.

‘샤롯 그룹이라.’

혜성과는 크게 인연이 없는 기업이었다.

물론 나와도 인연이 없고.

그렇다면 샤롯 그룹이 나를 찾아온 이유가 뭘까?

‘뭐, 이유는 하나뿐이겠지.’

나는 피식 웃으며 내 집무실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샤롯 그룹 기획조정실에서 일하는 허영만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이한성입니다. 그런데, 샤롯 그룹에서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혜성 개발의 이한성 부대표님에게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한성 주택의 이한성 사장님에게 찾아온 겁니다.”

“제 회사에 볼일이 있으신가 보군요.”

어느 정도 예상이 갔다.

아마 잠실을 노리고 있는 거겠지.

아니나 다를까.

허영만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잠실의 땅, 저희에게 팔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어렵게 매입한 땅이라, 그건 좀 곤란할 거 같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실제로 지금 당장 잠실 땅을 팔 생각이 없었다.

잠실에다 백화점을 하나 지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땅값이 올라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기도 했고.

“얼마면 되겠습니까?”

나는 속으로 실소를 지었다.

얼마면 되겠냐니.

내가 이재성에게 했던 대사를, 이렇게 역으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글쎄요. 저는 오래 보고 있어서요. 정 사고 싶으시다면 제가 매입한 금액의 세 배는 주셔야겠습니다.”

“세 배라니,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올림픽이 열릴 때까지 가만히만 있어도 열 배 가까이 올라갈 겁니다. 그러니 당연히 세 배 이상은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열 배는 조금 과장된 수치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 버금갈 정도로 땅값이 상승할 것이다.

그것도 불과 5년 안에 말이다.

“잠실역 부근의 땅이라도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죄송하지만, 잠실역 부근은 애초에 팔 생각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따로 지을 게 있어서 말입니다.”

허영만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가장 노리고 있는 땅이 잠실역 부근이었을 텐데, 단호하게 거절하니 기분이 상했을 거다.

“저희 신진호 회장님을 생각해서라도 부디 다시 한번 검토해주십시오.”

그 말을 들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신진호 회장이 혜성 그룹 회장도 아닌데, 내가 왜 신진호 회장을 생각해서 결정을 바꿔야 한단 말인가?

“글쎄요.”

“저희 회장님께서는 잠실에 큰 뜻을 품고 계십니다. 잠실에 테마파크, 백화점, 쇼핑몰, 호텔을 총망라한 대규모 관광 위락단지를 건설하실 계획이지요.”

“그렇게 원대한 뜻을 품으시고 계신다면, 그에 걸맞은 금액을 제시해 주셔야죠.”

지극히 합당한 말이었다.

내가 무슨 샤롯 그룹에 은혜를 입은 것도 아니고 일부로 손해를 볼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허영만은 마치 모욕이라도 받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신진호 회장을 들먹였는데도 시큰둥하게 나오니, 분노하는 거 같았다.

“한율 기업의 소유였던 부지를 120억에 사겠습니다.”

잠시 말이 없던 허영만이 한껏 굳은 얼굴로 그 같이 말했다.

‘내가 한율 기업에게 70억을 주고 샀으니까, 50억 이득인가?’

단기간에 나쁘지 않은 수익이었다.

하지만 내가 노리는 수익은 그보다 훨씬 컸다.

“적어도 3백억은 주셔야겠습니다.”

“…….”

사실 이 정도면 많이 양보한 것이다.

잠실역 부근의 땅은 몇 년만 지나도 천억 이상으로 오를 땅이니까.

단지 지금 3백억을 받으면 그 3백억으로 더 많은 이익을 볼 거 같아서 팔려는 것이다.

신진호 회장과 굳이 원한을 쌓을 필요가 없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데 허영만은 내가 관용을 베풀었다는 걸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

“서로 생각하는 금액의 차이가 너무 크니, 더 협상의 여지가 없을 거 같습니다.”

“아쉽게 됐군요.”

“예, 정말 아쉽습니다. 저희 샤롯 그룹은 이한성 부대표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말을 그렇게 하니 마치 모든 게 내 탓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구태여 반론하지 않고 어깨만 으쓱였다.

어차피 아쉬운 건 샤롯 그룹이었다.

나는 샤롯 그룹에 딱히 얻을 만한 게 없었고, 반대로 샤롯 그룹은 나에게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으니까.

‘애초에 혜성 유통에서 백화점에 진출하면 적이 될 상대인데, 굳이 마음 쓸 필요는 없지.’

설령 신진호 회장이 나를 원망한다 해도 크게 상관없었다.

미래에 5대 기업이니 뭐니 대단한 기업이 된다지만, 그거야 한참 나중의 일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샤롯 그룹의 과실을 하나하나 빼앗아 간다면 5대 기업으로까지 성장할 여력도 없을 것이다.

* * *

“김한선 상무, 이런 곳에서 만나자고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하하, 오랜만에 오니 나쁘지 않은데요?”

주변은 대단히 시끄러웠다.

70년대에 유행했던 팝송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젊은 남녀들이 노래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정적인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었다.

‘그래도 꽤 신나긴 하네.’

사람들이 괜히 나이트를 오는 게 아닌 거 같았다.

속으로 잡생각을 하던 나는 김한선에게 물었다.

“유통 쪽은 요즘 어떻습니까?”

노랫소리로 시끄러웠음에도 내가 크게 말해서 잘 들렸는지, 김한선이 즉각 대답했다.

“경쟁이 많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대기업에서도 슈퍼마켓 체인점을 많이 늘리고 있습니까?”

“예! 특히 강남이 지옥입니다. 지옥.”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기존의 재래시장도 재래시장이지만, 다른 기업에서 속속 유통업계로 진출하고 있었으니 자연히 경쟁도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다.

“백화점은 어떻습니까?”

“그쪽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들려오는 소식이, 슈퍼마켓보다는 양호한 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겠군요.”

“결국에 백화점을 세우기로 정하신 겁니까?”

“유통 쪽에 뜻을 두었다면 백화점은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한선이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나와 달리 그는 백화점에 확신이 없었다.

“차라리 편의점은 어떻습니까. 야간통행 금지도 풀렸으니, 슬슬 사람들의 소비 패턴도 바뀌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나도 언젠가 편의점을 열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편의점은 시기상조입니다. 편의점은 필연적으로 정가 판매를 지향할 텐데, 근처 슈퍼나 재래시장에서 저희보다 물건을 싸게 팔면 답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많은 재고를 쌓아두어야 하니, 관리 비용도 상당할 겁니다.”

“흠, 그렇습니까?”

“애초에 야간 이동인구가 충분히 늘어날 거라는 추측 또한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야간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지 않습니까?”

김한선이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편의점이 승산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백화점은 승산이 있습니다. 선두 업체들이 덩치를 키워가고 있지만, 파고들 여지는 충분합니다.”

“어떤 전략을 사용하실 생각입니까?”

“다른 백화점에서 ‘고급화’에 초점을 둔다면, 저는 ‘편안함’에 초점을 두고 싶습니다.”

“편안함이라.”

“대중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그런 백화점을 만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단순히 제품 판매를 위한 쇼핑공간이 아닌, 휴식을 취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을 제공하는 겁니다.”

처음 개점했을 때는 대형 주차장, 유아 휴게실 정도로 시작하고 나중에는 영화관과 쇼핑, 외식 등이 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복합 문화 공간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원래는 샤롯 그룹에서 처음으로 시작할 백화점+멀티플렉스를 우리 혜성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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